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90)
마존현세강림기-291화(290/2125)
마존현세강림기 12권 (17화)
4장 베어내다 (2)
다음?
나서라는 건가?
저 앞으로?
‘농담이 아니야.’
세상에는 그런 장면들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는 한다.
동료의 죽음을 본 이들이 분노에
빠져 이성을 잃고 달려들다가 목숨을 잃는다든가, 운 좋게 적을 쓰러 뜨린다든가.
‘개소리 하지 말라고!’
그건 영화니까가능한 일이다.
아니, 장르만 좀 바꿔도 그게 얼 마나 멍청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전쟁 영화라고 생각을 해보 라.
옆에서 말을 하던 이가 스나이퍼의 저격이라든가, 어디선가 나타난 자의 기관총 세례에 순식간에 인간 에서 시체로 바뀌어 버렸는데 화를
내며 적에게 돌진을 한다고?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가장 현명한 선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곳에 서 달아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떨리는 눈으로 겨우 바라본 강진호의 눈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그것 같았다.
‘보내줄 리가 없어.’
맹수 앞에서는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건 중학생만 되어도 아는 상식이다. 여기서 그들이 등을 돌리
는 순간, 강진호가 그들의 뒷목을 노리고 달려들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싸울 수도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을 쓰는 이 와 싸우라고?
차라리 조각칼을 들고 M60 진지 에 돌진하는 쪽이 이길 확률이 높을 것이다.가까이 접근만 할 수 있으 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럼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눈을 마주친 채 결코 등을 보이지 않으며 서서히 물러서기라도 할까?
몸을 세우고?
빌어먹을 저놈은 곰이 아니란 말이다.
물러난다고 보내줄 리가 없다. 그 렇다고 싸울 수도 없다. 소리를 질 러 누군가를 부른다고 해도 웅원이도달하기도 전에 그들의 목은 바닥 에 떨어질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제야 그는 알 수 있었다. 지금 껏 그가 비웃던 이들이 왜 그런 행 동을 했는지 말이다.
“살……”:
눈가에서 눈물이 배어 나온다.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든 신경은 눈앞의 사내에게 쏠려 있어 그런 것을 눈치 챌 틈도 없었다.
“살려주……세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자존심이라는 것은 종잇장 한 장의 무게만큼도 되 지 않는다.
그 역시 죽음을 맞이해야 할 때는 당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었다.
죽음이란 것은 결코 멋지지도, 비 장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저 두려운 것일 뿐.
“흐윽.”
그가 생각하던 죽음은 적어도가 치 있는 것이었지, 이런 무가치한 것이 아니었다. 굴로 숨어든 늙은 너구리의 전령이 되어 어디서 튀어 나온지도 모를 괴물 같은 놈의 손에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는게 대체 어디가 비장하다는 말인가.
그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살려주세요. 저, 저는……
“그렇게 빌면 살려주는 이도 있었 나?”
저벅.
한 걸음가까이 다가온 강진호가 그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어…… 어으……”
지독한 공포가 자리 잡은 뇌가 새 하얗게 탈색되어 간다. 반응할 수 없다. 말을 할 수도 없다. 그저 백 치처럼 어버버대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운이 좋군.”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예전이었다면 고민도 하지 않았 겠지. 이 세계에 감사해야 할 거다.”
“네……?”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목에가해지는 둔중한 충격과 함 께 흐려지는의식. 사내는 이것이 죽음이 아니기를 빌고 또 빌며의식을 놓아버렸다.
털썩, 털썩.
두 사람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흠.”
강진호는 바닥에 쓰러진 이들을 보며가만히 침음을 삼켰다.
‘예전처럼은 되지 않는군.’
그가 강진호가 아닌 적천마존이라 불렸던 시절. 그는 자비를 모르고 관용을 몰랐다. 적의 사정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앞을가
로막는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저 적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죽이지 않았다.
– 위선 부리지 마.
들려온다, 목소리가.
내면의 그가 비웃고 있었다.
그런다고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가?
나와 함께해 온 시간을 부정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천이 넘는 사람을 네 손으로 죽였 잖아. 너는 중원의 역사에서도 다시
없을 살귀였잖아?
그런데 이제 와 그놈들의 목숨을 살려준다고 착한 놈이라도 된 것 같 나? 응?
‘닥쳐.’
강진호는 고개를 저어 목소리를 끊어 냈다.
“착한 척이 아니야.”
그저 행하고 싶은 대로 행할 뿐이 었다.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과거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마음가는 대로, 행하고 싶은 대로 행한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강진호가가만히 쓰러져 있는 이들을 보았다.
‘운이 좋은 거야.’
정말로 말이야.
강진호는 쓰러져 있는 두 사내를 보며 직감했다. 그는 이제 적천마존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세계의 삶이 그를 바꾸어놓았다.
‘돌아갈 필요도 없고.’
스르르릉.
뽑아낸 검을 검집안으로 밀어 넣은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돌려 방진 훈에게 말했다.
“가지.”
방진훈이 입도 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종잡을 수가 없군.’
조금 전까지 내뿜던 기세를 감안 하면 저 두 놈을 그 자리에서 회 쳐 먹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살려준다?
‘알 수가 없어.’
밑에서 바라본 강진호라는 인물은 정말 행동 패턴이 예측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사람을 찢어 죽여 버리지만, 때로는 당 연히 죽일 것이라 생각하는 상황에 서 기절시키는 것을 끝을 낸다.
너무나도 어려운 타입이다.
같은 행동을 했는데 다른 결과가 나오는 사람만큼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 없었다. 방진훈은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아냈다.
어쩌면…….
강진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자신 스스로 내재된 혼란 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방진훈은 머릿속으로 떠오른 상념을 지워 버렸다.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어야 한다.
싫으나 좋으나 한 배를 탄 입장에 서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이가 스스 로를 통제할 수 없는, 폭탄 같은 인간이라는 것은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마인이니까.’
피와 살육에 굶주린 마인이니까, 때때로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과격 해지는 것이겠지.
방진훈은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앞서 걸어가는 강진호의 뒤를 따 르며 방진훈은 손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땀을 옷에 문질러 닦았
마치 잘 짜여진 공포 영화라도 보 고 있는 기분이다.
“여긴가?”
“ 예.”
강진호는 자신의 앞에 보이는 저 택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재밌겠군.”
“네?”
“준비가 많이 되어 있을 것 같지 않아?”
방진훈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너구리는 굴을 여러 개 파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너구리가 다른 굴로도망가지 않고 한 굴에 처박혀 있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곳까지의 방비도 이상 하리만큼 허술했지.’
방진훈이 아는 이중걸은 총회의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그들을 움직 이지 않고 승부에 나설 이가 아니었다. 자기가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서라면 총회가 그들의 손아래서 박 살이 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을 이였다.
그런 이가 총회를 뒤로 물리고 자 신들을 맞아들인다?
‘노망이 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인간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그가 살아온 길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중걸이라는 인간의 행동 양식을 생각해 본다면 저 저택 안은 용담호 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들어가시겠습니까?”
“그럼?”
되묻는 강진호를 보며 방진훈은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나 용담호혈이지.’
이 사람은 맹수다.
너구리가 아무리 함정을 파놓는다 고 하더라도 맹수가 그것을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막는 것이 있다면 부 수면 그만이니까.
“내가 아니라 너희가 결정해야겠 지.”
“ 예‘?”
“따라올 건지 말이야.”
방진훈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귀하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도 이곳에 목 숨을 걸고 온 것입니다.”
강진호가가만히 방진훈과 눈을 마주쳤다.
방진훈 역시 입술을 꽉 깨문 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좋군.”
만족스럽다는 느낌의 웃음.
“그럼 들어가면 되겠지.”
강진호가 앞서서 걸어가자 방진훈 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손을 떼고 다 처리해 주기를 바 라다가 떨어지는 열매나 받아 처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절대 아닙니다.”
“그럼 우리도가자.”
“예!”
강진호를 따라 방진훈을 필두로 한 일행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오늘따라을씨년스럽게만 느껴지는 저택을 보며 방진훈이 초조한 듯 얼굴을 긁었다.
문을 부술 필요는 없었다.
현관 손잡이를 돌리자 문은 자연 스레 열렸다. 마치 그들을 위해서 열어두었다는 듯이 말이다.
‘재밌군.’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농밀한 살기와 진득한 악의가 공기를 타고 폐부로 훅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이 안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것들 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등골이 짜릿하다.
“큭큭큭큭.”
문 안으로 보이는, 한 치 앞도 보 이지 않는 어둠이 너무도 정겹고 익 숙하다.
강진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함정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 서도 그의 걸음은 되레 조금 빨라졌다.
끓어오른다.
‘어쩌면……
그는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기 위 해서 굳이 이곳까지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악의와 악의가 충돌하여 서 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그런 순간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다행하게도 강진호는 실망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저택 안의 넓은 홀의가운데에 선 순간, 작은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 했다.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작은 짐승이 종종걸음으로 이동하는 듯한, 그런 아주 낮은 기척.
강진호는 홍미롭다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척이 늘어난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또 셋으로.
이윽고 수십이나 되는 기척이 그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뭐지?’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잠행술과야행술.
흑도의 잡것들이나 익히는 것이라 천시하기는 했지만, 그가 모를 리 없는 무학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잠행술에가까운데, 뭔가 다 르다. 그가 알고 있는 무학과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방진훈.”
“ 예?”
그의 뒤에서 강진호가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를 주시하고 있던 방진훈 이 서둘러 대답을 했다.
“이중걸이 일본과도 관계가 있 나?”
“……예, 아마.”
“그렇군.”
강진호가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 인술인가.’
중원에서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 만 알았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무학이었다. 그런 것을 이 시대에 와서 접하다니,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럼 마음 놓고 죽여도 되겠군.”
소름 끼치는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강진호가 천천히 적루와 청루를 뽑아들었다. 양손으로 두 검을 잡은 강진호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내 주변으로 오지 마.”
낮은 선언.
“죽는다.”
어둠을 장기로 삼는 자들에게 진 정한 어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