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315)
마존현세강림기-316화(315/2125)
마존현세강림기 13권 (17화)
4장 방문하다 (2)
“아들이라고 했는가?”
“네.”
“지금 자네가 말하는 아들이 내 자식들을 말하는게 맞는 건가?”
황정후의 어조는 더없이 딱딱했지 만, 강진호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 였다.
“네.”
“으음.”
황정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강진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역정을 냈을 것이다.
설사 이 나라의 대통령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화를 냈을 것이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황정후는 황정후이니까.
하지만 황정후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껄끄러운 존재가 있다면 그는 강진호였다. 그가 자신에게 해를 끼
칠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강진호는 자신이 베푼은혜를 다 돌려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황정후는 그리 생각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재경이 망하는 꼴을 지켜보며 죽어가야 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준은혜는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가 없었다. 강진호가 전 재산을 내놓으라 했어도 황정후는 거리 낌 없이 주었을 것이다.
그런 강진호이기에 황정후는 화를 낼 수 없었다.
“무슨 일로?”
하지만 말이 짧게 끊어져 나오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눈앞의 강진호에게 고함을 지르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정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인내를 다 소진하고 있었다.
“우연히 만났습니다. 백화점에서 마주쳤죠.”
“자네가 알아보았다고?”
“알아본 건 아니고……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 사정을 주저리주저리 다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여하튼 알게 될 만한 일이 있었
습니다.”
“으음…… 그래, 좋네.”
황정후가가만히 강진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말을 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 내가?”
“네.”
황정후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전혀.”
황정후의 얼굴은 단호하기 그지없 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표정에서 반 대의 감정을 읽어냈다. 사람이 저리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 다는 뜻이었다.
황정후가 들으면 그게 왜 그렇게 되냐고 역정을 내겠지만 말이다.
“그럼 말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내가 궁금해할 것 같은가?”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가만히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일 뿐
이다.
“걱정하더군요.”
“큰아버지께서도 암으로 돌아가셨 다고, 나이가 있으니 건강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게 그 말을 전하라던가?”
“아뇨.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게 회장님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를 원하더군요.”
황정후는 뜻밖이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여기서 말을 조금 흐 리면 황정후가 애가 타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곳은 협
상을 하는 자리도,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자리도 아니었다.
“백화점 VIP 라운지에 들어가려 다가 제지당하고 있었습니다.”
“VIP 라운지?”
“ 예.”
“그 멍청한 놈들이 아직도 허영을 못 버리고!”
황정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른 재벌가의 후손이라면의절을 한다고 해도 돈이 없을 리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서 어릴 적부터 조금씩 재산을 이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정후는 자식들에게 단 한 푼의 재산도 나누어 주지 않았다. 그들이 받은 것은 재경에 재임 하면서 벌어들인 봉급이 전부이지 만, 그 봉급마저도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았다.
‘너희가 신입 사원으로 들어와 공 정하게 경쟁했다면 감히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가’라는 이유에서 였다.
정상적이라면 꽤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직책에 부임했지만, 황 정후는 그 연봉을 반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황정후의 제왕적 권위
앞에서 자식들도 감히 입 밖으로 불 만을 내세우지 못했다.
황정후가 복귀하여 그들의 모든 것을 회수했을 때, 그들에게 남은 것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니 나름 먹고살 만큼의 돈은 있었겠지만, 그들의 생 활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게 빤 했다.
재경을 잠시나마 이끌던 경험으로 다른 기업에 취직을 하는 방법도 있 겠지만, 황정후가 복귀한 것을 알게 된 기업들은 재경과의 마찰을 우려 해 아무도 그들을 쓰려 하지 않았
그런데 VIP 라운지라니.
“허영은 사람을 갉아먹는 법이야.”
“아들과 함께 왔더군요.”
황정후가 입을 다물었다.
“잠깐 쉬려고 간 모양입니다. 자 식이 앞에 있으니 물러서질 못한 모양입니다.”
“저런, 쯧쯧!”
황정후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제 주제에 맞게 살아야 하는 법 이야. 사람이란 그래야지!”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말을 하려고 왔는가? 내게 내 아들놈들이 무슨 꼴로 살고 있는지를 말해주려고?”
황정후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것이 강진호가 아들의 소식을가지고 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들 들이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지, 강진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황정후가 담배를 다 태우고는 다시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지 만, 속이 타는 것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내 자식들이 자네 같기만 했으 면……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제 어머니 말로는 귀염성이 없어 서 별로라는군요.”
“내 자식들이라고 귀엽겠나! 어차 피 귀엽지 못하면 똑 부러지기라도 해야지!”
“……진정하시죠.”
“쯧.”
황정후가 몇 번 빤 담배를 재떨이 에 비벼 껐다. 손동작이 신경질적이 었다.
“왜 말을 안 하는가?”
“뭘 말입니까.”
“겨우 그 말을 하려고 온게 아니 잖은가. 더 할 말이 있으니 왔겠지. 그런데 왜 말을 하지 않느냐, 이 말 일세.”
강진호가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말이라는 것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을 때의미가 있는 거죠.”
강진호의 말이 무엇을의미하는지 모를 황정후가 아니었다. 못마땅하 다는 듯이가만히 아래를 바라보고 있던 황정후가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자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더 기다리게.”
“예.”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려올 정도의 정적이 거실을 장악했다. 강진호는 딱히 초조할 필요가 없고, 황 정후는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니, 불 안한 사람은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 보던가정부뿐이었다.
‘저 청년은 대체 누군데……’
황정후 앞에서는 그 백영기 이사 라도 말을가리기 마련이었다. 조언을 건넬 수는 있지만, 정말 민감한 문제를 입에 올리지는 못했다. 불같은 황정후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청년은 황정후의가장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사정 없이 찔러 들어왔다.
너무 겁이 없는 청년도 이상하고, 그 청년에게 저런 말을 듣고 있으면 서도 딱히 화를 내지 않는 황정후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진정이 좀 된 것 같구만.”
황정후가 한결 산뜻해진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이미 했습니다.”
황정후가 입을 다물었다.
강진호가 그에게 한 말은 자식들
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 에……”.
“아쉬운게 아니라 외로운 거다, 이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예.”
“이보게, 진호.”
황정후가 낮은 웃음을 홀렸다.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어 쩌면 나는 지금 외로운지도 몰라.”
“하지만 이 나이가 되면 외로움이 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동반자와 같은 거야. 누구라도 상실감을 겪고, 누구라도 허무함을 느끼게 되지. 죽
어간다는 것은 그런 거니까.”
“아니요.”
강진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죽어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미련 이 남기 때문이지요.”
황정후의 눈이 흔들렸다.
“죽음의 순간에 무엇을 이루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만족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회장님이 지금의욕을 잃어가는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젊은이들 보다 못하다는 생각 때문도 아닙니다.”
“그럼 뭔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뛸 열정이 없기 때문이죠.”
황정후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 말은 황정후의 정곡을 정확하게 찌르 고 있었다.
해외에 컴퓨터라는 것들이 나타나 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자마자가장 먼저 컴퓨터를 들여와 공부한 이가 황정후다. 그때 그의 나이가 벌써 몇이었던가.
예전의 그였다면 아랫사람들이 더 총명하게 일을 한다면 관련 지식을 익히고 노력하여 뒤처지지 않으려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
했던가.
뒤처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손을 놓아버렸다.
‘열정이라……
“나이가 든다고 열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열정이 사라지니까 나이가 드는 거죠.”
“거꾸로란 말인가?”
“아실텐데요.”
가라앉은 강진호의 눈을 보는 황 정후의 눈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래서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 식어버린 열정이라는 놈을 되살 리기 위해서 이 나이에 이를 악물고 노력이라도 해보라는 건가? 아니면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 내 손으로 내친 자식이라도 다시데 리고 오라는 말인가?”
“어느 쪽도 괜찮겠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하는 거야!”
황정후가 역정을 냈다.
“내가 왜 그놈들을 용서해야 하는가!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지른 놈 들이 아닌가! 인륜이니 천륜이니 하는 헛소리로 나를 설득할 생각은 하
지 말게. 나는 그런 말은 사람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강진호는가만히 황정후의 말을 들었다.
아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일 것이다. 묻는 사람도 없고, 말 할 사람도 없었으니까. 때로는 그저 속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편해지는 일이 있지만, 황정후에게는 그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외로운 법이지.’
정점에 서 있는 이는 누구나 외롭다. 흉금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없
기 때문이다. 절대의 권력을가진 이들은 자신이가진 권력 때문에 점 점 더 고립되어가기 마련이다.
예전의 강진호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들어주는 것으로 좋았다.
“그놈들이 내가 쓰러졌을 때 사람 다운 모습만 보여줬더라도 내가 이 렇게까지 했겠는가? 내가 잘못했 나? 그리 생각하는가? 자네가 생각 하기에는 내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 았어야 하는가? 말을 좀 해보게.”
강진호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이 대답했다.
“당시에 회장님이 하신 선택은 누 구도 잘못되었다 할 수 없을 겁니다. 당연한 선택이고, 당연히 그래야 했습니다.”
“그래! 그렇잖은가! 내가 틀린게 아니란 말이야!”
황정후가 고함치듯 말했다.
“그런데 왜 내가 지금 와서 다시 그놈들을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인가! 그때는 잘못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잘못이란 말인가! 자네가 지금 하는 말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지 알고 있겠지?”
강진호는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황정후를 보며 고개를 저 었다.
“잘못이라는게 아닙니다.”
“그럼?”
“이제는 그만 놓을 때도 되었다는 거죠.”
“……뭘 말인가?”
강진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 었다.
“항상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그 강박 말입니다.”
황정후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