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320)
마존현세강림기-321화(320/2125)
마존현세강림기 13권 (22화)
5장 받아치다 (2)
깔끔하게 환복을 하고 나온 최연하가 보육원으로 올라가는 트럭들을 보면서 개운한 얼굴을 했다.
“아, 이상하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네.”
‘좋은 일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쩐지 낯간지러운 말 같아서 하기가 꺼려졌다.
“간만에 쇼핑을 해서 그런가 봐. 아, 그러고 보니 나 뭐 지른 지가 한참 됐네. 이렇게 또 스트레스의 원인을 하나 파악하네요.”
좋은 일 해서가 아니구나.
“안 들어가 봐도 되겠어요?”
“네‘?”
“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그 순간만큼은 다른 걸 다 잊을 수 있을 만큼 말 이죠.”
최연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
“됐어요.”
“음‘?”
‘어째서?’라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진호의 시선에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애들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어른 들도 같이 있으니까. 분명히 애들에게 나한테 고맙다고 하라 그럴 거 아니에요.”
“……그렇겠죠.”
“전 그런 거 질색이에요. 그런 낯 간지러운 말을 들으면 전신에 소름
이 돋아서 닭이 되고 말 거야. 그런 꼴을 당하느니, 그냥 조용히 갈래요. 애들한테는 강진호씨가 해줬다고 하세요.”
“그렇게는 안 합니다.”
“자존심은.”
최연하가 알 만하다는 듯이 강진호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경멸했어요?”
“무슨 말이죠?”
“그렇잖아요. 고생도 안 해보고 연기나 한다고 깝쭉대는 여자 골탕 좀 먹어보라고데리고 왔더니, 두 시간 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자
기가 해야 할 빨래를 세탁기를 사는 걸로 무마해 버리는 건데, 좀 질리 지 않을까 싶어서요.”
강진호가 정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첫째로…… 골탕 먹어보라고데 리고 온게 아닙니다.”
“둘째는?”
“그런 걸로 무마했다고 생각 안 합니다. 사람들이 돈이 많다고 해서 돈을 쉽게 쓰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말만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니 고 맙네요.”
사람이 삐딱한게 아니라 천성적으로 부드러운 말을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런의미에서 보면 부드러운 말 과 담을 쌓은 강진호와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었다.
“가요.”
“ 예.”
자신의 차를 놔두고 다시 강진호의 차를 타는 최연하를 보면서 강진호가 운전석에 올랐다.
‘천천히.’
다른 사람이 그의 차를 탈 때마다 머릿속으로 되뇌어야 한다고 조규민
에게 배웠다. 얼마나 귀에 못이 박 히도록 들었는지, 이제 반쯤은 세뇌가 된 느낌이었다.
부우우우웅.
하지만 아무래도 차가 차다 보니 세단보다 빠르게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강진호는 슬쩍 최연하의 시선을 살폈지만, 표정이 딱히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뿐 아니라 최연하의 표정이 어 제와는 다르게 많이 풀려 있었다. 어제는 정말 말 그대로 ‘건드리기만 해봐라. 내가 여기서 빵 터져 줄 테
니까’ 하는 기색을 마구 내뿜었는데, 오늘은 좀 사람 같았다.
“어디로 갈까요?”
“가까운데로요.”
“가까운데요?”
“네. 강진호씨와 커피 마시면서 분위기를 잡는 것은 이제 포기했어 요. 그건 정말 아무런가치가 없는 일이더라구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알아 서……
“잠깐!”
최연하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버지가게로 갈 생각은 하지
마세요.”
“와, 얼굴 봐. 진짜 그럴 생각이 었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진짜! 내가 강세아 씨한테 아버지가 커피숍 한다는 말 안 들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이 남자, 진짜 최악이네.”
“안 될 이유가 있나요?”
“당연히 안 되죠. 강진호씨는 우 리 엄마가 하는가게에서 나하고 같 이 밥 먹고 싶어요?”
“안 될 이유라도?”
“……됐어요. 내가 그냥 안 바랄 테니까, 다른데로가주기나 해요.”
“알겠습니다.”
옆에서 한숨을 푸욱푸욱 내쉬는 최연하를 보며 강진호가 고개를 갸 웃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었다.
“으, 커피 들어가니 좀 살겠네.”
최연하가 기지개를 쭉 켰다.
한결 개운해진 듯 이제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나쁘지 않았네요.
나름 쓸모가 있다는 건 인정.”
“……제가 뭘 했습니까?”
“딱히 한 건 없지만, 그 보육원으로 나를데리고 갔다는 건 인정해 드릴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슨 짓을 했어도 하루 만에 기분이 이리 나아질 일은 없었을 것 같으니까.”
최연하의 말에 강진호는 형식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특히 기분이 나빴던 이유라도?”
“음…..”
최연하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는 황당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내가 왜 그 이야기를 강진호씨 한테 해야 하죠?”
“그럼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럴 때는 ‘듣고 싶으니까요’라 고 해야죠! 강진호씨는 왜 그렇게 센스가 없어요?”
강진호가 난감한 얼굴로 살짝 고 개를 숙였다.
‘종잡을 수가 없군.’
지금까지 살면서 여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 딱히 부담을 느껴본 적이 없는 강진호이지만, 최연하와 대화를 하다 보면 짧은 시간 사이에
도 몇 번씩 구박을 받는 느낌이었다.
“뭐, 좋아요. 말해줄게요. 그럼 밥 까지 사 줘요.”
“……알겠습니다.”
최연하가 소리 내어 웃더니 말했다.
“그냥 뭐랄까…… 이걸 뭐라고 설 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바이오 리듬이 최악인데 상황까지 영 별로 라서 둘이 겹쳐 안 좋은 쪽으로 시 너지를 냈다고 해야 하나?”
“말은 알겠는데, 뜻은 모르겠군요.”
“배우라는게 좀 그래요. 작품을 찍을 때는 잠도 부족해서 쪽잠을 자 면서 배역에 몰입을 하거든요. 그러 다가 어느 순간 작품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어떨까요?”
“좋겠죠. 쉴 수 있으니까.”
“아뇨.”
최연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허탈하고 불안해요.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몸도 안 좋아지고, 이제는 배역이 아니라 나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허탈하고, 그리고 내가 과 연 잘했을까 불안하죠. 그리고 뭐랄
까……
최연하가 짜증 난다는 얼굴이 되 었다.
“사람이란게 꼭 그렇잖아요. 그 걸 고칠 수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들다가 이제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어지면 꼭 다른 생각이 나거든 요. ‘아, 그때 내가 연기를 왜 그런 식으로 했을까? 그 감정 선을 생각 하면 이쪽으로 갔어야 하는 건데, 지금은 못 고치는데, 이 둥신 같은 년’.”
최연하가 자학하듯 말하자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최연하가 하고 있는 말이 그가 생각하던 것과 비슷해서 살짝 동질감 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에 사로잡혀서 후회하는 건 강진호의 전매특허 같은 일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끔 찍해지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상황에 드라마 평가도 별로다 보니 한도 끝도 없이 굴 파고 들어가 던 중이었죠.”
“은영이 말로는 드라마 반응이 나 쁘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네. 나쁘지 않았어요, 드라마는요.”
최연하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내가 별로였어요.”
“네?”
“연기를 제대로 못했거든요. 제가 어디서 연기파라고 자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이 나이에 이 또 래에 비슷한 급으로 예쁜 애들 사이 에서는 독보적이라는 메리트가 있는 배우였는데, 이번에 이도저도 아닌 연기를 하는 덕분에 그동안 쌓아놓은 메리트를 다 날려 먹게 생겼어요.”
강진호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이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시도 때도 없
이 찾아와서 그를 괴롭히던 최연하의 열정을 생각한다면, 이도저도 아 닌 연기라는 말은 좀 이상한 감이 있었다.
최연하의 성격에 그럴 리가 없을텐데?
“마음이 콩밭에가 있었거든요.”
“콩밭이요?”
“네. 강진호씨요.”
최연하가가만히 강진호를 응시했다. 그 시선에 부담을 느낀 강진호가 슬쩍 시선을 피하자 최연하가 짓 궂은 미소를 지었다.
“연기를 하는 내내 강진호씨를
생각했거든요. 강진호씨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강진호씨는 지금 드 라마를 보고 있을까.”
앞에 놓인 커피를 살짝 들이켠 강진호가 다시 원래의 평정을 되찾은 듯하자 김이 식어버린 최연하가 입 술을 삐쭉 내밀었다.
“네, 맞아요. 차기작 이야기예요. 드라마를 찍고 있는 와중에도 강진호 씨를 어떻게 꼬셔서 다음 작에 남주로 만들까를 고민했죠. 그딴 생각을 하면서 드라마를 찍었으니 평 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죠.”
“다른 사람을 탓할 일은 아니네
요.
“네, 아니죠. 다 강진호씨 때문 이지.”
“……저요?”
“네!”
최연하가 확언하듯 말했다.
“저 이래 봬도 프로의식 확실한 여자거든요.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는게 얼굴 팔아먹는 것만으로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압니다.”
그 바닥이 얼마나 더러운지는 강진호가 이미 경험했다. 문뜩 예전 강은여의 소속사가 생각났다. 이전
삶에서는 강은영이 그때가 되기 전 에 죽었기에 몰랐지만, 이번 삶에서 강진호가 힘이 없었다면 강은영 역 시 무슨 꼴을 당했을지 모른다.
“유혹도 엄청 많았어요. 그래도 제가 그거 다 뿌리치고 연기만으로…… 연기랑 얼굴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여자거든요. 그때는 당장 눈 앞의 작품을 미친 듯이 하는 열정이 란게 있었는데, 헛바람이 든 모양 이에요. 지금 작품도 안 마치고 다 음 작품에서 얼마나 뜰 것인가를 생각하다니, 미친 거죠.”
최연하가 작정한 듯이 말했다.
“그게 다 강진호씨 때문이에요.”
“네‘?”
“강진호씨가 제 연기 인생의 평 정을 뒤흔들 만큼 잘생겨서 그런 거 예요. 왜 그 얼굴을 그런 식으로 쓰는지 모르겠네. 강진호씨 얼굴이면 펄펄 날아다닐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강진호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최연하가 고개를 슬쩍 숙여 달아 오른 얼굴을 감췄다.
‘미쳤나 봐.’
마지막에 그녀가 하려던 말은 ‘하 기야 딱히 그 얼굴이 아니었다고 해도 저는 여기에 있었겠지만요’였다. 무심코 그 말을 하려던 최연하는 자 신의 말이 무엇을의미하는지를 깨 닫고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와, 설마 나?’
최연하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 했다.
당황스럽다.
“어디 아프세요?”
“네?”
“아니, 갑가기 상태가 안 좋아 보 여서.”
“아, 아뇨. 아니에요, 그런 거. 괜 찮아요.”
최연하가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강진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세상에.”
“네?”
자꾸 혼잣말을 하는 최연하와 그 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강진호.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이
상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저가야겠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최연하가 손부채질을 하더니,가방을 움켜잡 고 옆으로 저벅저벅 걸었다.
“ 식사는요?”
“돼, 됐어요!”
“그럼 차 있는 곳까지 태워 드릴게요.”
“아뇨, 괜찮아요.”
“걸어가면 멀어요.”
“됐다니까요! 택시 타고 갈 거예 요!”
“……예.”
뜬금없이 버럭 성질을 내는 최연하를 보며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그럼 갈게요. 커피 잘 마셨 어요. 다음에 또 봐요.”
“아, 네.”
“저녁에는 못 들를 것 같으니까, 휴대폰 잘 오는지 확인 좀 해주세 요. 그럼.”
후다닥 뛰듯이 밖으로 나가는 최 연하를 보면서 강진호가 고개를 절 레절레 저었다.
‘알 수 없는 여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