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321)
마존현세강림기-322화(321/2125)
마존현세강림기 13권 (23화)
5장 받아치다 (3)
“오늘도 저기압이신가?”
“쉿, 조용히 해. 말소리 다 들리 잖아.”
“너무 조용하니까 기분이 이상해 서 그렇지.”
조규민은 귓가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비서실 안쪽으로 그의 업무실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비서 업무라는 것이 서로 공유해야 할 부분이 워낙 에 많기에 그의 업무실 바깥에도 따 로 그의 책상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분위기 파악도 할 겸 밖에서 일을 시작했다. 5분도 지 나지 않아 후회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사실 그룹이라는 것은 그렇다. 워 낙에 많은 이들이 일하고 있어서 서 로 특별한 분위기를 공유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윗층에서 기침 소리만 나도 분위기가 싸해지
는 곳이 또한 그룹이다.
그리고 그 영향을가장 크게 받는 곳은 아무래도 회장님을 지척에서 모셔야 하는 비서실이었다.
막말로 황정후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헛기침만 해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회장님의 심기가 불 편하신가’로 오전을 떼울 수 있는 곳이 비서실이었다.
일을 안 하고 그것만 생각한다는게 아니라, 일을 하는 와중에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며칠째냐고.”
“회장님이 저러시는 거 처음 보는데……
비서들에게는 거의게엄령이 떨어 져 있었다.
아무리 기분이 나쁜 일이 있다 해도 사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결코 티를 내지 않던 황정후가 요 며칠 언짢은 기색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출근할 때마다 굳은 얼굴로 회장 실로 들어가는 황정후 덕분에 비서 실은 그야말로 공포 분위기였다.
“구조 조정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구조 조정? 사원은가족이라고 절대 내가 자르는 일은 없다고 하신 회장님이시잖아.”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이런 시 대에 아무리 회장님이라도 어쩔 수 없는 거지.”
“에이, 그래도 회장님인데.”
“모르는 거라니까. 막말로 자기 자식까지 내팽개친 분이신데, 직원 정도야 언제든 날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크흐흠!”
조규민이 헛기침을 하자 비서실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썩을 인간들.’
지금 뒷담화를 까고 있는 것들 중 에는 조규민보다 윗사람도 있고, 선 배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일순 조규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소리를 내면 이런 분위기가 될 줄 알았기에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지 만, 이건 좀 과했다.
“적당히들 하시죠.”
“그, 그래, 일해야지.”
“쯧.”
조규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조규민
을 보며 남아 있는 이들이 살짝 눈 살을 찌푸렸다.
“저 인간, 왜 저래?”
“지는 잘릴 일 없다는 거 아닙니까?”
“회장님 총애 좀 받는다고 요즘 너무 막 나가는 거 같은데. 저러다가 신임이 거둬지면 끈 떨어진 연 된다는 것 몰라서 저러는 건가?”
“나중에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이쁘다고 충고까지 해주겠 어.”
조규민은 문에 등을 기댄 채 한숨을 쉬었다.
‘다 들린다, 이것들아.’
듣고 싶어서 들은 것은 아니다. 조금 지쳤다는 생각에 문에 몸을 기 댔을 뿐인데, 저들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이다.
조규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위로 향했다. 무슨 말이 좀 더 나올 모양이지만,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나올 말이야 빤했으니까. 그 말을 굳이 들어줄 필요는 없다.
조규민은 계단을 걸어 올라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한쪽 구석에 마
련되어 있는 흡연 구역으로 간 조규 민이 벤치에 걸터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바람이 시원하네.’
옥상에 올라오면 항상 바람이 불 어서 좋다. 더구나 재경 사옥의 옥 상은 개방형이라 바람이 항상 시원 하게 느껴진다. 겨울이 되면 살을 에는 추위로 느껴지지만, 지금 날씨 에는 딱 괜찮은 정도다.
‘아니, 조금 더운가.’
별다른 생각 없이 담배를 빨던 조규민이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회, 회장님?”
황정후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 이자, 조규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났다.
“ 앉아.”
“여기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흡연구역에 담배 피우러 오지, 자러 왔겠나?”
조규민은의아한 눈으로 황정후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담배?’
회장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황 정후가 여기에 왜 온단 말인가. 자 신이야 말단 직원이나 다름없으니
강진호가 방문했을 때가 아니면 위 로 올라와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 하지만, 황정후는 그게 아닐텐데.
“바람이나 좀 쐬러 왔네.”
황정후의 표정에 살짝 씁쓸함이 어려 있다는 것을 발견한 조규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황정후가 말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감히 물을 수 없었다.
“남자의 질투는 보기 흉한 법이 지.”
“ 예?”
“알지 않는가.”
“아……”
조규민이 입맛을 다셨다.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예. 능력에 비해 과분한 것을 누 리고 있다면, 잃어야 할 것도 있는 법이죠.”
“음……”
황정후는 기특하다는 듯이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사내 정치라는 것은 생각보다 음 험하고, 위험하고, 또 쪼잔하기 그지 없다. 남자가 사람을 안 좋게 보기 시작하면, 여자들의 그것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시시콜콜해지기 마련이다.
조규민은 나이에 비해 너무 높은 지위에 있다. 황정후가 보기에는 합 당한 지위이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 에는 낙하산이라 생각될 만할 것이다.
당장에는 황정후의 카리스마와 위 엄이 조규민의 능력에 대한의심을 불식시키고 있지만…….
‘너무 강진호 위주로 돌렸어.’
다른 이들은 조규민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최상층의 몇몇은 조규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
는지 알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하는 일도 딱히 없어 보이는 놈이 매일 바쁜 척 외근이나 나가고 높은 지위에 앉아 여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니 눈치가 보일 수밖에.
다행히 황정후가 예전에 자식들을 어찌 대했는지를 똑똑히 본 이들이 라 숨겨둔 아들이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한술 더 떠서 황정후의 비자금 관리책이 조규민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경력과 신분을 감안할 때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만큼 조규
민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았다.
“불만인 점은 없나?”
“아닙니다, 회장님.”
조규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저는 제 능력을 최대로 발 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 활에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예.”
조규민의 얼굴에는 한 점의 망설 임도 없었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이 있 다는 것은 세상의 진리입니다. 제가
회장님께 받은 것과 강진호씨에게 받은 것이 있는데, 모든 것이 잘 풀 리기를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로 상처받을 만큼 예민하지도 않고, 이런 걸 일일이 해명하고 싶어 할 정도로 인간관계가 능숙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제 일이나 잘하 고 싶어 하는 소인배에 불과하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황정후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건 소인배가 아니라 담대하다 고 하는 거지.’
조규민 나름으로는 겸손하게 말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황정후가 듣기로는 제 자랑을 늘어놓는 것처 럼 들렸다.
“휴우.”
황정후가 한숨을 내쉬자 조규민이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평소라면 황정후에게 이런 말을 먼저 건넨다는게 커다란 불경이겠 지만, 지금의 황정후에게서는 뭔가 털어놓고 싶어 하는 기색이 보였다.
조규민의 말에 황정후가 빙그레
웃었다.
“자네가 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네.”
“네?”
뜨헉한 조규민이 얼굴을 굳히자 황정후가 웃으며 부연했다.
“강진호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 놈은 나도 감당하기가 힘들거든. 그 러니 강진호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자식 놈들이 자네만큼만 똑똑했더라 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중이야.”
“……자제분들은 하나같이 수재입니다만.”
“지식이 많은 것과 지혜가 뛰어난 것은 별개의 문제야. 많이 아는 사람은 지혜로울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지,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야. 안타깝게도 내 아들놈들은 머리는 좋을지 모르나 지혜롭지는 못했어.”
황정후의 말에 조규민이가만히 입을 닫았다. 자고로 부모가 자식의 흥을 볼 때는 맞장구를 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뭔가를 잘못 키운 건지, 아니면 그놈들이 처음부터 인성이 글 러 먹었는지 모르겠네. 자네만 해도 이리 훌륭히 자신의 일을 해주고 있
는데.”
“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조규민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건 제 개인적인의견입니다, 회장님.”
“응? 말해보게나.”
“제가 만약 회장님의 아들로 태어 났다면, 지금같이 무던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어째서?”
황정후의 물음에 조규민이 쓴웃음을 삼켰다.
“회장님이 황정후이기 때문입니
황정후 회장의 미간이 살짝 좁아 졌다.
“회장님은 회장님이시기에 자신이 얼마나 다른 이들에게 큰 압박이 되는지 알지 못하십니다. 자제분들은 회장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큰 복 이기도 하지만, 큰 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자식에게는 남들의 몇 배로 더 엄격하신 회장님이라면 더더욱 그렇 겠죠. 저는 아마 그 프레셔를 버티 지 못했을 겁니다.”
“……내 잘못이라는 건가?”
“잘못은 아닙니다.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다만, 그렇다는 겁니다. 이건 그냥 사실일 뿐이죠.”
황정후가 멍하니 조규민을 바라보 았다.
“이보게, 규민이.”
“예, 회장님.”
“자네는 민재를 싫어하지 않았나? 민재 때문에 인생이 망가질 뻔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럼 여기서 그 녀석들을 옹호하는 것보다는 그냥 맞장구나 치는게 낫지 않나? 자네 말을 듣고 내가 그놈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면 자네
는 좋을게 없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다만……
“ 다만?”
조규민이 조금은 개운하다는 얼굴 로 말했다.
“저에게 피해가 온다고 해서 회장님께 거짓 보고를 할 수는 없는 노 릇 아니겠습니까. 그건 회장님께 죄를 짓는 일이지요. 없는 일을 지어 내서 옹호해 줄 수는 없지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는 것은 망설 이지 않을 겁니다.”
“쯧쯧, 출세하기는 그른 타입이군. 내가 자네를 잘못 봤어.”
“천성이 그런 모양입니다.”
“못난 놈.”
영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조규민을 바라보는 황정후이지만, 그의 눈빛은 표정과는 다르게 따뜻했다.
‘거꾸로가르쳤군.’
신의를 지키는 법을가르치고 나 서 계산하고 손해를 보지 않는 법을가르쳤어야 하는데, 어릴 적부터 손 해를 보지 않는 법부터가르쳤다.
강진호의 말만으로는 명확하지 않 던 것들이 조규민의 말을 듣는 순간 확연해진다. 황정후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럼 내가 하나 물어도 되겠나?”
“회장님은 언제든 제게 질문을 하 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 형식적인 말은 치우고 말이야.”
“예. 성심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
황정후가 조금 망설이는 듯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참 동안 하늘을 보고 있던 황정후가 고 개를 다시 내려 조규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광 어린 눈빛으로 황정후가 천 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