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326)
마존현세강림기-327화(326/2125)
마존현세강림기 14권 (3화)
1장 선언하다 (3)
“휴우!”
사람은 때때로 잡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봄이 오면 처녀의 마음이 들 뜨는 것처럼 시기나 상황에 따라 이 상한 상념에 사로잡혀 제대로 생활을 할 수 없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그런 상황이 오면 휴식
을 취하고, 휴식할 수 없는 이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그런 시기를 극복 하려 애쓴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고,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하는 이들도 있다.
최연하는 그중에서 운동을 택하는 부류에 속했다.
평소에도 몸매 관리를 위해서 적 당히 운동을 하기는 했지만, 그 운 동의 강도가 한없이 올라간다.
전신에서 땀을 쫙 빼내고 나면 개 운함이 찾아오고, 그 여세를 몰아 숙면을 취하고 나면 잡생각이 사라 지고 집중력이 올라가기 마련이었
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돌겠네.”
사이클에서 내려온 최연하가 바닥 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글픈 일이지만, 그녀는 이미 오 늘 치의 운동을 모두 끝내고 왔다. 집에 있는 어설픈 운동기구가 아니 라 트레이닝 센터를 방문해 제대로 PT를 받고 오는 길이다.
오늘 날 잡았으니 어설프게 하지 말고 집에 기어 들어가게 해달라는 요구까지 했고, 그녀의 트레이너는 그 요구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와 또 운동을 해야 할 만큼 그녀의 심정은 복잡했다.
“잘하는 짓이다.”
최연하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녀의 나이도 이제 적지 않은데, 별일도 아닌 걸가지고 이러지도 저 러지도 못하며 안절부절못할 시기는 지나지 않았는가.
“잘난 척은 혼자 다 해놓고.”
최연하가 숫제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 왜 자꾸 생각나냐고!’
의식을 하기 전까지는 나름 괜찮 았다.가끔씩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그의 얼굴을 머릿속에 달 고 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만난 것이 결정타였다.
아주 작은 감정을 직시해 버렸다.
의식하지 않을 때는 몰랐지만,가 슴속에 감정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감정이 눈덩이처 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재수도 없지, 재수도 없어!”
왜 하필 그런 인간을!
아, 물론 그 인간이 뭐가 이상하 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인간이었다 면 최연하가 지금 이러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최연하의 ‘그런’은 ‘이상 한’이란의미가 아니라 ‘무뚝뚝한’이 란의미였다.
막말로 얼굴 되지, 몸매 되지. 돈 많지, 성격…… 성격이야 눈에 보이는게 아니니까 뭐 상관없잖아?
여하튼 다방면으로 한국 여자의 평균을 아득히 뛰어넘는 최연하다. 그녀가 만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 어 있는 남자 중 99%는 최연하가
관심만 보여줘도 길길이 날뛰며 난 리를 칠 것이다.
문제는 강진호가 나머지 1%에 속 하는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망신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어설프게 뭔가를 시도했다가는 그 돌부처 같은 인간의 무대응에 속이 갈가리 찢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연애 경험은 없지만, 주 변에서 본게 너무 많고, 그녀가 봐 온 시나리오가 너무 많았다.
“내가 어쩌다가……
바닥에 누워데굴데굴 구르다가 없는 이불을 걷어차기 시작한 지 좀
지났을 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최연하는데구루루 굴러 전화기 옆까지가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네.”
[음? 전화 받네? 나다!]“네, 대표님.”
[다름이 아니고……. 연하야.]“네, 말씀하세요.”
[이번에 정말 좋은 시나리오가 들 어왔거든. 내가 봤는데, 이게 시나리 오가 정말 기가 막히다. 여주인공이 너한테 딱이야! 내가 봤는데! 이게 정말 딱이거든?]“네에.”
최연하가 힘없이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그러니 그냥 부담가지지 말고 시나리…… 뭐? 본다고?]“네. 보내주세요.”
[그, 그래! 그래, 보내줘야지! 내가 내일 아침에 바로 매니저 통해서 보내줄게.]“네. 그러세요.”
[그런데…….]“네.”
[내가 이걸 묻는게 좀 이상하기는 한데…… 갑자기 왜 그러니? 평 소 같으면 하지도 않을 시나리오 보는게 귀찮다고 전화 끊었을 거잖 아.]“아, 그거요?”
[그래.]“그냥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무슨 생각?]“통하지도 않을 걸 어떻게든 해보 려고 애쓰는 사람 심정이 얼마나 갑
갑하고 짜증이 날까, 얼마나 비참할 까……
[헐…….]
“상대방은 생각도 없는데 이쪽만 애가 닳아서 끙끙대는게 얼마나 사람 속을 썩이는지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지금까지 못할 짓을 엄청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보내주세요, 그 시나리오. 잘 검토해 보고 괜찮 으면 할게요.”
[저, 정말이지?]
“네. 대신에 시나리오가 좋아야 해요. 감독도 좋아야 하구요.”
[그럼! 그럼! 누가 출현할 작품인
데, 내가 허투루 골랐겠니? 아주 엄 선을 했단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른 시나리오도 몇 개 보내줄까?]
“……네, 그러세요.”
[알았다. 너 내일 되어서 말 바꾸 기 없기다?]“네에.”
[……근데 너, 어디 아픈 건 아니 지‘?]“대표님 슬슬 인내력이 바닥나려 고 하는데요.”
[아니다! 그래! 끊을게. 잘 자라!] 띠릭,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기자 최연하가 대자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못할 짓이지.”
사람은 당하는 입장이 되어봐야 느낄 수 있는 점도 있다더니, 그동 안 그녀가 얼마나 주변인들의 애간 장을 태웠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나…… 이런 거 알고 싶 지 않다고.’
신경질적으로 일어나던 최연하가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늘 운동을 너무 무리하게 했더니 다리가 후들거려서 잘 걸을 수가 없었다.
“에이, 씨!”
확 짜증을 낸 최연하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로 전신을 씻고 나서야 좀 개운해진 기분이 들었다. 새 옷을 꺼내 입고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품을 바르고 있자니, 그제야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정신 차리자.”
이건 사실 좀 쪽팔리는 일이다.
자신이 누군가.
장기적으로 통할 좋은 배우 이미 지를 위해 노출을 줄여서 그렇지, 인기가 물밀 듯 밀려올 때 예능 좀 나가주고 얼굴을 좀 팔았으면 국민
여신 칭호도 어렵지 않게 얻을 최연하다. 그런 최연하가 남자 때문에 빌빌거리다니.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에서 그녀를 그리고 있을 팬들을 생각하면 결 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헐, 씨!”
거울을 본 최연하가 기겁을 했다.
잠깐 딴생각을 했더니 기초를 바 르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아주 풀 메이크업이 되어 있었다. 평소에 그 녀가 간단히 비비만 바르고 외출하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볼 때, 무의식적으로 풀 메이크업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 이년아! 어딜가려고!” 당황한 최연하가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고개를 슬쩍 돌려 시계를 보니 열 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마칠 시간이네.’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만 최연하가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답도 없네, 진짜.’
자괴감을 느낀 최연하가 그 자리 에 벌렁 누워 다리를 마구 뻗어 댔
다.
“으아아아아아! 이불킥 십 년감이 다! 진짜!”
누군가 이런 모습을 보지 않았기 에 망정이지, 매니저에게라도 이 모 습을 들켰다면 지금쯤 최연하는 어 느 다리에서 뛰어내려야가장 쪽팔 리지 않게 죽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 고 있었을 것이다.
“내 이미지는 이런게 아니야!”
차갑고도도한 이미지를 지켜오기 위해서 이십 년 동안 애썼는데, 그 노력이 단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줄 이야.
장르가 드라마에서 시트콤으로 바 뀌고 있는 것을 느끼며 최연하가 머 리를 쥐어뜯었다.
“진정하고! 화장 지우고 자야지.”
한숨 푹 자고 나면 나을 것 같았다.
사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어서 면역이 없는 것이다. 다 행스럽게도 최연하는 인간의 어떠한 감정도 최고조로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슬퍼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상황이 오더라도 조금 시간이 지 나면 배가 고파 밥을 먹는게 사람
아니던가.
지금이야 달달거리지만, 한 열흘 만 지나도…….
힐끔 다시 시계를 본 최연하가 석 상처럼 굳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껏 화장도 했는데 그냥 지우고 자려니 아깝기도 하고……
딱히 뭐 이 밤에 뭘 해보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 전에 그 만큼이나도와줬는데 잠깐 커피 한 잔 얻어먹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원래 밥을 얻어먹기로 했는데 그
날 그렇게 나오면서 밥도 못 얻어먹 었고…….
변명거리는 충분…….
“꺄아아아아악!”
이 밤에 강진호를 만나러 갈 구실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 최 연하가 바닥을 마구 굴렀다.
“미쳤어! 미쳤어!”
한동안 끙끙 앓던 최연하가 슬그 머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차라리 그냥가보자.’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오묘해서 간절히 바라던 것을 손에 넣으면 기 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간절함
이 사라지는 효과를 내기도 하지 않는가.
이대로 혼자서 망상에 빠져 있다 보면 그녀 안의 강진호가 커질 거라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이치다. 이건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는 효과가 아닌가. 미친 여자가 잘생긴 남주에게 물 싸대기를 때리면 남주는 황당 해하지만, 그 일을 자꾸 떠올리면서 여주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감정을 키워 나가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좀 더 자주 봤으면 벌어지 지 않았을 일일텐데 말이다.
“그래, 그래서가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정상적이지 않은 반응이니까.
막상 강진호를 만나면 진정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최연하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고는 옷 방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강진호를 만나서 이 애 매한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 벌이는 일이다. 이대로 좀 더 꾸물대다가는 강진호가 퇴근해 버릴지도 모 른다는 생각 때문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
았다.
“옷장에 왜 입을 옷이 없어!”
대형 방 하나에가득 차 있는 옷 장들이 자괴감을 느낄 만한 발언을 하며 최연하가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마구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이거? 아냐. 이거 너무 과해. 이 밤에 이렇게 입고 처 나갔다가는 그 인간이 오해할 거야. 이거?야밤에 트레이닝복 질질 끌고 나갔다가는 내 이미지가!”
혼자서 온갖 옷을 다 벗겨 입어보 던 최연하가 마침내 결코 남이 보기 에 꾸민 듯 보이지는 않지만은근히
센스가 묻어나는, ‘저여자는 대충 아무거나 걸쳐도 예쁘구나’룩을 완 성해 냈다.
“좋아!”
거울을 보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최연하가 막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다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은 최연하 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연하야. 난데, 그 시나리오 지금 보냈다. 애가가지고 갈 거다.]
“안 돼요. 내일 오라고 하세요.”
[내일 되면 또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내일 읽어도 되니까 일단 받아만 둬.]
“저 지금 나가요.”
[여, 연하야! 이 밤에 어딜가니! 조금 전에 마음잡은 것 같더니만!]“몰라요. 저 나가야 하니까, 내일 아침에 오라고 해요. 아니, 내일 아 침에는 뻗어서 잘 것 같으니까, 모 레 오라고 하세요. 그럼 끊어요.”
처절한 대표의 비명을 뒤로하고 최연하가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그 그로테스크한 피자집 이다.
연기 대상을 받으러 무대로 향할 때보다 더 비장한 심정으로 최연하는 차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