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369)
마존현세강림기-370화(369/2125)
마존현세강림기 15권 (21화)
5장 정리하다 (1)
“……못할 짓이군, 이것도.” 이현수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건물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지하로 대피한 이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후, 아직 숨이 붙어 고통 스러워하고 있는 이들 중 치료가가 능하겠다 싶은 이는 내보내고,가망
이 없는 이들은 이현수가 직접 숨을 끊어주었다.
그에게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 할 수 있는 자격 따위가 있을 리는 없지만, 대책도 없이 고통받으며 서 서히 죽어가는 이들을 방치하는 것 보다는 그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도와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이현수의 생각이었다.
덕분에 이제 건물 안에는 그 하나 만이 남아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아 있는 이는 셋이고, 이제 곧 둘이 될 것이
다.
‘어쩌면 하나일지도 모르겠군.’
지금 듣는 사람이 절로 귀를 난도 질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비 명을 질러 대고 있는 김석일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비명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는 결코 김석일을 살려두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현수 역시 시체나 다름 없었다.
강진호가가장 분노하게 만든 일을 실질적으로 계획한 것은 이현수 이고, 강진호의 굶주림은 김석일 하 나만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이제 곧 자신이 김석일과 같은 꼴 이 되리란 것을 이현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 어쩌면……
시체나 다름없는 이와 곧 시체가 될 이.
그리고 강진호.
그렇다면 지금 이 건물 안에는 남 아 있는 인간이 없다. 시체는 인간 이 아니고, 강진호도 인간이 아니니 까.
살아 있는 이는 있되,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이들만이 공존한다는
생각이 들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
다.
“끄아아아아… 아아.. 으흐흐
비명과 흐느낌이 뒤섞인 그 소리가 텅 빈 건물을 울려온다.
이현수의 몸이 덜덜 떨렸다.
‘김석일이라고, 김석일.’
김석일이 누군가.
맨몸으로 총회에 대항하여 영남회 라는 세력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키 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물론 외 부의도움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
만,도움이란 것도 활용할 수 있는 인간에게나의미가 있는 것이다.
김석일이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면 중국이도왔다고 해서 영남회를 만 들어낼 수 있었을까?
아니다.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김석일의 비인간적인 면과 더러운 면을 증오하다시피 하는 이현수이지 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김석일이 라는 인간의 대단함은 인정하고 있 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도 한 방울 나오 지 않는다는 말과 지독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의 살아 있는 증거가
바로 김석일이었다.
그런 김석일이 지금 아이처럼 흐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이 버틸 수 없을 만큼 공 포스러운 이현수였다.
그가 아는 김석일이라는 사람은 팔다리를 끊어내고 몸을 톱으로 자 른다고 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잘려 나가는 자신의 육 체를 보면서도 비웃음을 홀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빌고, 소리치 고, 울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으면
저 김석일이 아이처럼 울 수가 있단 말인가.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아무리 이현수라고 할지라도 지금 김석일이 고통받고 있는 저 회장실 안으로 들어가 볼 용기는 없으니까. 그 안에서가학성을 마구 드러내고 있을 악마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 지는 않다.
악마는 상상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 누구도 악마라는 존재를 실제로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강진호.’
여러가지의미로 강진호란 인물
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가 영남회에 쳐들어와 모든 것을 해결하기까지의 과정 하나하나가 이현수의 예상과 들어맞은 것이 하 나도 없었다.
상대의 반웅을 예측하여 덫 놓기를 즐기는 이현수의 입장에서는 마 치 눈앞에 천적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하기야……
예측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영남회 전체가 달려들어도 막지 못한 이다. 계략이나 전략으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동 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동원했 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했음에도 강진호는 모든 것을 홀로 유유히 해결해 버렸다.
아무도 없는 건물에서 스산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
그 비명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 고 있었다.
이현수는가만히 눈을 감았다.
악연으로 점철된 사이이지만, 그 래도 김석일과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왔다. 그러니 그의 죽음에 그저 담담할 수만은 없는 이현수였다.
작은 흐느낌.
그리고 쉬어버린 목소리.
힘껏 내지르지만 채 목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비명.
그리고…….
정적.
낮은 정적.
숨소리조차 천둥소리만큼 크게 들 려올 정도의 깊은 정적이 건물 내부를가득 메웠다.
끼이이익.
그리고 그 정적을 날카롭게 깨트 려 버리는 문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는
이현수는 마음을 다스렸다.
‘이제 곧 보게 되겠지.’
사람이 죽을 때 사신이라는 존재를 본다는 것은 그저 미신에 불과하 겠지만, 이현수만은 사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신이 지금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회장실로 향하는 길은 하나뿐이 고, 그 길에 이현수가 서 있으니까.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이현수는 치밀어 오르는의문을 억눌렀다.
달아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강진호가 대단하다고는 하
지만, 김석일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지금이라면 영남회를 빠져나가도주 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멍청한 총회 놈들은 이미 포위를 풀고 전의를 상실한 이들을 제압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까.
그런데 왜 자신은도망치지 않는 것일까?
물론 강진호가 쫓아올 수는 있다.
지금까지 강진호의 수완으로 보았을 때,도망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붙잡힐 것이다. 총회와 영남회를 모 두 움직일 수 있는 강진호의 손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빠른 시간 내에 한국을 뜬다면 몰 라도.
하지만…….
‘그것 자체로의미가 있는 것 아 닐까?’
붙잡힌다고 하더라도 강진호의 손을 지금 당장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살 수 있는 시간도 조금이 나마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로도 충분히가치가 있지 않을까?
달아나고 싶다.
지금 당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도망가서 아 무도 없는 산속에 처박혀 살아간다 면 어쩌면 저 괴물을 마주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현수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게 무서운 거지.’
강진호를 보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그를 마주하게 됨으로 그에게 일 어날 일은 더욱 공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지 금 이 자리에서도망쳐 언젠가 강진
호가 그의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면서 살아가는 일이었다.
이현수는 그런 삶을 버텨낼 자신 이 없었다.
누군가 본다면 구차하게 삶을 이 어가지 않고 당당하게 마지막을 맞 이하는 모습이라 추켜세울지 모르겠 지만, 이현수의 속내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사신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반쯤 열린 문 뒤로 전신을 피로 물들인 강진호가 천천히 걸어 나왔
다.
‘굳이 이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말끔한 강진호의 모습만으로도 이 현수는 충분히 공포를 느낄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지금 강진호의 겉모 습은 조금 과한 감이 있었다.
호랑이가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오줌을 지릴텐데, 그 호랑 이의 얼굴에 피 칠을 하고 뜯겨 나 간 사슴의 목을 물려놓은 느낌이랄까?
토옥.
강진호의 손끝에서 홀러나온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도 선 명하게 들렸다.
그 피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또옥, 또옥.
손끝에서, 그리고 젖어 늘어뜨려 진 머리카락의 끝에서 핏방울이 방 울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붉디붉은 광경에서 새하얀 눈 이 천천히 들려진다.
강진호의 시선이 자신에게 와닿았 다 느낀 순간, 이현수는 전신이 조
금 편안해지는 듯한 기이한 감각을 느껴야 했다.
마치…… 뭐라고 해야 할까?
말기 암으로 희망이 없는 환자가 전신에가해지는 끔찍한 고통을 진 통제와 마약으로 겨우겨우 버텨내다가 어느 순간 고통이가시는 것을 느끼는 것?
그와 비슷한 감각일 것이다.
육체적으로야 멀쩡하다지만, 이현 수의 정신 상태는 이미 피폐하기가 말기 암 환자와 그리 다르지 않을 테니까. 이미 결정되어 있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담담히 맞이해야 한
다.
그리고 지금.
그와 죽음의 눈이 마주쳤다.
최근 몇 달간 강진호라는 이름을 노이로제가 걸릴 만큼 되뇌며 살아 온 이현수이지만, 이렇게 직접 강진호와 마주 서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다.
그리고 이현수는 알 수 있었다.
‘모르고 있었어.’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 누구도.
이 사람은 그저 귀로 듣고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
는 사람이었다.
살기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정면에서 맞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 자가 얼마나 괴물 같은 인간인지 단 10%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수많은 정보와 사례들로 강진호라는 인간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 하고 있다 자신한 이현수마저도 허 탈함이 몰려올 정도였다.
‘패한 것이 너무 당연했군.’
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
가장 강대하고 무서운 적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으니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한 것이 너무
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때늦은 깨달음이지만 말이다.
강진호의 시선이 천천히 그의 위 아래를 홅는다.
마치 뱀이 자신의 육체를 기어가는 둣한 느낌이 들었다. 부르르 몸을 떠는 이현수를 일별한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강진호가 달 려들 것이라 생각한 이현수는 말없 이 자신을 바라보는 강진호의 눈빛
에 짓눌리고 있었다.
사람이 눈빛만으로 몸이 눌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매우 신 기한 경험이지만, 그 경험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 에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새어버렸는데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머뭇거리던 이현수는 강진호의 손 이가만히 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 손은 아마 이현수를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손이 뻗어져 자신의 목을 잘라 버 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강진호의 손은 그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강진호의 손이 향한 곳은 본인의 얼굴이었다.
손을 들어 눈가로 자꾸만 홀러내 리는 핏물을 쓱 홈쳐 낸 강진호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 샤워장 있나?”
이현수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샤워장?
지금 샤워장을 찾는 건가?
‘이 인간…… 어디가 돌아버린 것 아닌가?’
지금이 어떤 상황이고, 사람이 얼 마나 죽어갔는데 태연하게 샤워장을 찾는다는 말인가.
순간, 뭔가 울컥하는게 치밀어 올랐다.
그 갈 곳 잃은 분노를 참아내지 못한 이현수가 소리쳤다.
“이, 있습니다!”
“안내해.”
“……예.”
샤워장을 향해 몸을 돌린 이현수의 얼굴이 처량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아닌데……
뭔가 상황이 애매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샤워장으로 향하는 길을 바 라보며 이현수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