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434)
마존현세강림기-435화(433/2125)
마존현세강림기 18권 (11화)
3장 교육하다 (1)
“일찍 왔네. 잔소리 한 시간은 듣 고 올 줄 알았는데.”
“누나가 기다리는데 제가 그러고 있을 수는 없죠.”
“나야 뭐, 택시 타고가면 그만이 지.”
조금의 미련도 없어 보이는 최연
하였다. 이런 시원시원함이 때로는 정말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대상이 본인이 되었을 때는야속 하기도 하다.
“누나.”
“응?”
“얘기 좀 해요.”
“뭔 얘기? 나는 할 말 다 했는데?”
“아뇨. 누나.”
한은솔이가만히 최연하를 보며 말했다.
“진지하게요.”
“카페로가요. 조용한데로.”
최연하가 딱히 대답이 없자 한은 솔이 차를 출발시켰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건너편에 놓인 커피잔에 맺힌 이 슬이 채 아래로 떨어지기도 전에 최 연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은솔은 고개를 돌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칸막이가 있는 카페라 이곳에 최연하가 있 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없겠지 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누나, 어쩌려고 그래요?”
“말이 좀 이상하네? 나는 어쩌려는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 건데. 뭘 어떻게 해보자고 하는 쪽은 너희 쪽이지.”
“누나는 배우잖아요. 배우가 작품을 안 하겠다는게 이상하잖아요.”
“뭐 이상할게 있어. 모 배우님은 지금 칠 년 넘게 작품 하나 안 찍는데도 대한민국 최고 미남 배우 자리를 유지하고 계시는데. 그런 케이 스 흔하잖아.”
“그거 옛날에 누나가 제일 이상하 다고 했던 거잖아요.”
최연하가 입을 꾹 다물었다.
“배우는 작품을 해야 배우고,가 수는 노래를 해야가수다. 찍어놓은 작품의 이미지로 CF나 찍으며 먹고 살 거 같으면 배우 간판 떼라고 하 던게 누나잖아요.”
“그랬지.”
최연하가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 그랬지. 그랬어. 아니, 뭐, 지금도 딱히 그 마인드가 달라진 건 아냐. 내 기준으로는 아직 이미지나 파먹고 살 정도로 이미지를 잘 쌓아 놓은 것도 아니고.”
“네, 누나. 그랬잖아요. 올해가 누
나 커리어에 전환점이 시작되는 시 기라고, 이제는 더 이상 얼굴 예쁜 배우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고.”
“그래서 그 작품을 하라고?”
“아뇨. 저는 누나가 그거 하든 말 든 상관 없어요. 신경도 안 써요. 제가 지금 답답한 건 누나가 작품을 아예 안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안 하려는 건 아냐.”
“알아요. 하지만 대본도 안 보죠. 시나리오 좋은게 있나 찾아볼 생각도 안 하죠.”
“누나.”
한은솔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누나는 저한테 원더우먼 같았어요.”
“이상하게 띄우지 마.”
“햇병아리 매니저이던 시절부터 제게 있어서 누나는 정말 빛나 보였 어요. 그때도 항상 생각했어요. 내가 이 바닥에서 빨리 치고 올라가서 언 젠가는 누나 매니저가 되어보고 싶 다구요.”
“ 성공했네?”
“……어려서 멍청했던 거죠.”
“뭐, 인마?”
“여하튼 그때 누나는 정말 배우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았어요. 어떻게든 배역을 연구해서 이해하려 하고, 모르는 건 새파란 애송이를 잡고 물어서라도 알려고 하던 사람이었어요. 기억나세요?”
“할 말만 하자,은솔아.”
“돌이켜 보면 누나는 열정이 뛰어 나거나 연기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 이 있던게 아니에요.”
“응?”
“그냥 누나는 하나밖에 못하는 사람인 거예요, 하나밖에. 눈에 뭐가 하나 꽂히면 그걸 해야 하는 사람인
거죠. 그때는 그게 연기였던 거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에요.”
최연하가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 졌다.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예전부터 정신 팔렸다는 말을 자 주 듣고 다녔다. 배우가 되기 전에도 뭔가를 하나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십자수 하나 잡았다가 방을 십자수로도배 해 버린 경험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누나는 연기가 아니 라 다른 거에 집착하고 있는 거예 요. 그러니까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는 거죠. 정확하게 말하면, 누나는 작품을 하기 싫은게 아닐 거예요. 그냥 그쪽으로 이상할 정도로 관심 이 안가는 거겠죠.”
“……너, 대나무 꽂았니?”
귀신같이 그녀의 상태를 알아챈 한은솔을 보며 최연하가 몸을 부르 르 떨었다.
쟤 무슨 심리 상담사인가?
“우리도 귀가 있고 입이 있잖아 요. 매니저들끼리도 이야기를 하니 까. 누나 같은 케이스가 꽤 있다고 하더라구요. 활동 잘하다가 갑자기 때려치운다거나, 덜컥 시집가서 연
예계에 발끝만 걸치고 있는다든가.”
“그렇지……
“누나, 솔직하게 말해봐요.”
“응?”
“이번 거 대본이 마음에 안 든게 아니죠?”
“아냐. 대본이 마음에 안 들었어.”
“거짓말하지 마요. 내가 아는 누 나는 해야 하는 일인데 대본이 마음 에 안 들면 작가 찾아가서 대본 고 쳐 내라고 소리 지르던 사람이에요.”
“정말 누나가 마음에 안 든게 대
본이었으면, 대본을 수정하려 했겠 죠. 그쪽에서도 나쁠게 없어요. 누 나가 스스로 중국어 배워서 좀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데, 누가 그걸 싫 어해요. 단역 배우 쓰는 것도 아니 고, 그만한 돈 주고 주연급으로 캐 스팅하는 건데 열심히 해준다면 땡 큐지.”
최연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육 개월 동안 중국가 있는게 싫은 거죠? 강진호씨랑 여섯 달을 떨어져 있어야 하니까?”
“아니거든? 얘 웃긴다.”
최연하가 어이없다는 듯이 손부채
질을 했다.
“넌 내가 공사도 구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니?”
“아뇨, 누나.”
한은솔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누나는 공사를 구분 못하는게 아니에요. 중요한게 달라졌을 뿐이 죠. 예전에는 일이 중요했지만, 지금 누나에게는 일보다 강진호씨가 더 중요해진 거죠.”
최연하는 딱히 반박을 할 수 없 었다.
충동적으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최근 그녀의 생활을 돌이 켜 보면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최 근 그녀의 생활은 강진호가 어찌 움 직이느냐에 따라 요동치고 있었으니 까.
“누나.”
“알았어, 네가 뭔 말 하는지.”
“네?”
“연애질 그만하고 일이나 하라는 거지?”
“ 아뇨.”
“……엥?”
한은솔이 떨떠름한 눈으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누나, 저은솔이에요. 나는 누나를 매니저로 알았지만, 정말 친누나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누나가 행복한 길을 택한다면 나도 좋은 거 예요. 내가 뭐, 누나 하나 잘 물어 서 내 매출 올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놈 같아요? 나는 내 배우 내가 만들어서 내가 키울 거예요.”
“그래. 우리은솔이 장하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연애는 그 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누나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거죠. 일이랑 연애를 병행 못하잖아요. 뭔
가 이거다 싶으면 거기에 자기 100%를 쏟아부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건데, 솔직히 누나가 남자라고 생각해 보세요. 하던 거 모두 팽개 치고 누나만 보는 여자가 있으면 어 떨 거 같아요?”
“고맙지.”
“……아니, 그런 거 말고.” 한은솔이 말을 더듬었다.
이게 아닌데…….
“야, 그냥 할 말 있으면 바로 해. 이리저리 빙빙 돌리지 말고. 뭘 그 렇게 꼬아 제끼냐.”
“네, 누나.”
한은솔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강진호씨 대단한 사람이라면서 요?”
“그렇지.”
“그런데 아직 못 꼬셨죠?”
“누나, 대단한 사람을 꼬시기 위 해서는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법이에요. 물론 누나 예쁘죠. 예쁘면 장땡이죠. 그런데 그 양반도 잘생겼고 능력 있다면서요?”
“대신 나는 어마어마하게 예쁘잖 아.”
“누나, 사람은 얼굴만 파먹고 사는게 아니잖아요. 종합 능력치라는게 있단 말이에요. 성격 감안하면 누나보다 나은 여자 많아요.”
“뭐, 인마?”
“진실을 봅시다, 우리. 진실을!” 한은솔이 정곡을 찌르기 시작했다.
“강진호씨가 얼굴 보는 타입이에 요?”
“……아니지. 그럼 벌써게임 끝 났지.”
“내가 보는 그 사람은 얼굴 같은 건 그다지 신경 안 쓰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럼 성격이랑 능력인데…… 누나, 솔직히 성격 파탄자잖 아요.”
살다 보면 면전에서 욕을 들어먹 어도 반발을 할 수 없는 순간이란게 있다. 지금 최연하가 딱 그런 심 정이었다. 뭔가 울컥하고 짜증은 나는데, 맞는 말이라 반격이 안 나간다.
“그럼 최소한 능력이라도 있어야 경쟁력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누나는 자기가가진 유일한 능 력까지 내팽개치고 있는 거예요. 누 나, 연애라는 건 한쪽이 다른 한쪽
을 끌고가는게 아니에요. 서로 대 등한 사람들이 서로를 지탱해 주며 나가는 거죠. 그런데 누나는 지금 그냥 좋아한다는 마음만 있으면 다 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최연하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거저거 다 팽개치고 그 사람에게만 매달리는게 전부가 아니에요. 진짜 그 사람이 좋다면 내 능력을 키워서 저 사람이 절대 나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들어야죠. 그게 더 최연하다운 연애 아니에요?”
“ 맞아.”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진짜 그 말이 맞 아.”
통렬한 일격이었다.
“애정이라는 것만 있으면 어떻게 든 될 거라고 생각했어. 사람 관계 라는게 그런게 아닌데 말이야.”
“네, 누나! 그거예요.”
“일단은 내가 그 사람에 못지않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데, 그게 맞는 건데……
최연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나는 그랬지. 내가 그런 사람이었지. 잊고 있었어. 네 덕분에 생각났다.”
최연하가가만히 한은솔을 보다가 싱긋 웃었다.
“고마워.”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그 사람한테의지하고 싶은게 아니라 그 사람이랑 같이하고 싶은 건데, 이대 로라면 그저의지하는 것밖에는 안 되네. 네 말이 맞아, 네 말이.”
최연하가 주먹을 꼭 쥐었다.
“절대 포기 못할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지.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야. 그래, 내가 잠시 정신이 어디로 나 갔나 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던 최 연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갈게.”
“태워 드릴게요.”
“아냐. 생각 좀 정리해야겠어. 오 늘 정말 고마웠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너 연애 코치로 나가면 잘하겠다야.”
“제 주제에 무슨.”
“아니. 정말 무슨도사 같았어. 어떻게 내 상황을 그렇게 콕 집어내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빚은 꼭 갚을게. 근사하게 저녁 한번 먹자.”
“비싼 거 먹을 거예요.”
“그래라. 그럼 간다.”
최연하가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가자 한은솔은 그 자리에 앉아서 말 없이 음료를 쭉 들이켰다.
‘연애 코치라……
우스운 이야기다.
연애 경험도 많지 않은 그가 무 슨 연애 코치를 한단 말인가.
적당한 조언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오직 한가지였다.
‘사람은 레벨이 맞아야 마음이라도 내보일 수 있는 거니까.’
스스로 격에 맞게 올라서지 못하 면 숨겨둔 마음을 보일 수조차 없으
니까. 스스로가 초라해서 말이다.
그걸 알기에 할 수 있는 조언이 었다. 적어도 최연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오지랖도 넓지.”
한은솔이 남아 있는 아메리카노를 다시 한번 쭉 들이켰다.
“써.”
씁쓸하다.
혀끝이, 마음이.
씁쓸하고 또 씁쓸하다.
하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