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444)
마존현세강림기-445화(443/2125)
마존현세강림기 18권 (21화)
5장도전하다 (1)
‘왜 해야 하지?’
이명환은 불을 꺼놓은 방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진호가 던져 놓은 화두는 그를 놓아 주지 않고 밤새도록 괴롭히고 있었다.
‘그전에 왜 강해져야 하는 거지?’
막연하다. 그저 막연하기만 했다.
강진호를 보며, 아니, 강진호를 보기 전부터 그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누구보다, 그 누구보 다 강해지고 싶다. 그게 무인으로서의 그를 지탱하는 근본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는 그 근 본에의문을가지고 말았다.
왜 강해져야 하는가.
어째서?
시대착오적인생각이다.
무인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 미 그들은 주도권을 바깥의 세상에 빼앗겼다. 과거에는 역사에 드러나
지 않게 암약하던 무인계가 세상을 움직여 왔지만, 화기와 과학이 발달 하면서 무인계는 어둠으로, 어둠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스스로는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지배한다고 자위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당금의 무인계는 빛이 있는 세상으로 발을 들일 수 없어 습하고 어두운 곳으로 밀려난 것이 아닌가.
그런 세상에서 더 강해진다는게 무슨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세상은 돈과 정보를 쥔 자들이 지배하고 있는데.
한때 인류의 역사에서 무라는 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었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었지 만…… 지금 세상에서 무는 화기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단순한 볼거리 로 전락했다.
그런 세상에서 강해지기 위해서 목숨을 건다는 것이가당키나 한 일 인가.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병신 같은 짓이야.’
더없이 멍청한 짓이다. 그 난리를 피우느니 차라리 편의점에가서 로 또 한 장을 사는게 더 현명할 것
이다. 그게 아니라면 나가서 돈이나 벌든가 말이다.
이걸 고민한다는 것은 정말 쓸데 없는 일이었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것을 왜 고민해야 한다는 말인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하고 있느냔 말이지.’
세상에는 수많은 멍청한 짓이 있 지만, 이미 결론이 나 있는 문제를가지고 끙끙대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환은 자신이 더없이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 각하고 있음에도 그 상황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뭔가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미련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진짜 멍청하네.’
이명환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담 배를 입에 물었다. 무인에게 안 좋 다는 이유로 거의 피우지 않는 담배 이지만, 오늘처럼 답답한 날에는 어 쩔 수 없이 한 대씩 피우게 된다.
담배에 불을 붙인 이명환이 자리
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한심한 영혼들.’
창밖으로 불이 켜진 창들이 무수 히 보인다.
집이라고 해봐야 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었다. 총회가 워낙 깊은 산골에 있다 보니 그들이 구할 수 있는 집이라 봐야 총회에서가장가까운 원룸 밀집촌밖에 없었다.
지나는 이들이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원룸촌이지만, 이곳은 한국 에서가장 위험한 이들이 사는 복마 전 같은 곳이다.
지금 그 복마전이 새벽 네 시가
되도록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원 룸 중에서도 나름 높은 곳에 사는 이명환의 눈에 불이 켜진 창들과 곳 곳에 창에서 머리를 내밀고 이명환 처럼 담배를 피워 대는 이들이 보였다.
아마 지금 총회 안의 기숙사도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다 멍청이들밖에 없다니까.”
결론이 빤한 문제를 갖고 고민하는 바보들이 자신 말고도 이리 많다는 것이 나름 위안이 되었다.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지.’
이명환이 피식 웃었다.
멍청한 짓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 그 멍청한 짓에도전을 한다면? 그래서 성공을 한다 면?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고수가 되어 있을 그를 보면서 ‘그때는 그 선택이 당연한 것이었어’라고 마 음 편히 생각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지.’
아마 오장육부가 불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왜 그때도전하지 않았느 냐고 자신을 저주하게 될 것이다.
이명환을 두렵게 하는 것은 그런 상황에 처할 자신이었다. 목숨을 걸 고 뛰어들 용기는 없지만, 그걸 해 낸 사람을 질투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겁 많고 저열한 자신을 직 면하는 것이 더없이 힘들었다.
“쿡쿡쿡쿡.”
이명환이 나직하게 웃었다.
“못났다. 정말.”
담배를 비벼 끄고 창문을 닫은 이명환이 침대에 드러누웠다. 눈을 감고 있으니 강진호의 모습이 떠오 른다.
단신으로 영남회를 찍어 누르던
그 모습, 양손에 장검을 들고 피를 뿌리며 전진하던 강진호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몸이 절로 떨릴 만큼 멋졌다.
멀쩡한 사람들이 보면 사람을 죽 이는 모습을 어떻게 멋지다고 말할 수 있냐고 욕하겠지. 그건 멋진 모 습이 아니라 잔인하고 끔찍한 모습 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무인인 이명환의 눈에는 그건 꿈에도 그리던 모습이었다. 처 음 무학을 배울 때는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수많은 이들을 자 신의 무학으로 벌레처럼 짓밟는, 그
런 격이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을 알아가다 보면 그 꿈이라는 것은 조금씩 깎여 나가기 마련이다.
격이 다른 최고에서 그저 최고로.
나중에는 상위권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남들처럼만.
이명환은 아직 ‘남들보다 더 강 한’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이대로 더 깎여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남들처럼’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 빤한 미래를 알고 있던 이명 환에게 강진호의 모습은 그저 강함
이 아니었다.
그건 꿈이다.
잊어버렸던 꿈.
나이를 먹을 대로 먹어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노인이 오래 된 앨범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꾸었 던 꿈을 발견하는 것처럼. 색이 바 라고 낡아 이제는 어떤 꿈을 꾸었는 지 생각도 나지 않는 그 오래된 기 억이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걸 어찌 담담히 받아들이란 말인가.
가슴이 격동해 오는데.
머리는 나와 다른 이야기라고 체 념해도 몸이 먼저 떨려오는데.
“빌어먹을.”
이명환은 그제야 자신을 괴롭히던 미련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었다.
너무도 허황되고 얼척이 없어서 입에 담는 것도 부끄러운 그 생각. 머릿속으로 혼자서 상상하는 것도 쪽팔린 꿈.
“ 나도……
베개로 눌린 입에서 억눌린 목소 리가 새어 나왔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강진호처럼.
그 강진호처럼.
이명환이 툴툴거리며 웃었다.
안다.
그게 그저 꿈이라는 것을.
꿈이란 건 이룰 수 없기에 꿈인 것이다. 이룰 수 있는 꿈은 꿈이 아니라 목표가 되는 법이니까. 꿈은 좇는게 아니다.
그저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 것이 꿈이다. 목표를 좇는 이는 선지자가 되지만, 꿈을 좇는 이는 몽상가가 되기 마련이니 까.
알고 있다.
자신은 결코 강진호가 될 수 없 다는 것을.
이제 와 목숨을 건다고 해도, 아니, 목숨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건다고 해도 그는 강진호가 될 수 없다.
그와 강진호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점차 더 커져 갈 것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알았다고 놓아버릴 수가 없다.
“그러니까 멍청하다고.”
이명환이 베개에 머리를 마구 박 았다. 퍽퍽,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참이나 머리를 내려친 이명환이 허 탈하게 웃었다.
“포기하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조금의가능성이라도 있으면도전을 해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목숨 까지 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안다.
이건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 고, 현실적으로는도전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걸.
그걸 억지로 잡고 있는 것은 현 실을 파악하지 않으려 하는 그의 내 면 속,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피우
는 난동이었다.
“잠이나 자자.”
이명환이 눈을 감았다.
잠이 잘 오지 않지만, 그는 억지 로라도 잠을 청했다. 알람 없이 잠을 자면 하루 온전히 잠을 자버리는 그의 특성상 눈을 뜨면 다시 밤일 것이다. 그러면 선택하려 해도 선택 할 수 없게 된다.
차라리 그런 상황이 오길 바라며 이명환은 눈을 질끈 감았다.
“꿈이라……
웃기는 소리.
엿 같은 소리.
“……씨발.”
이명환은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이건 참 엿 같은 상황이었다. 인간에게는 습성이라는 것이 있다. 반드시 지켜지는, 원칙 같은 것 말이다. 그게의도적이든의도적이 지 않든.
이명환에게 습성이라는 것은 잠이 었다.
그는 알람이 없으면 기본으로 24 시간을 꼬박 자는 사람이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은 날도 열여섯 시간이 하로 자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다.
생활이가능하냐고?
그래서 알람이 있는 것 아닌가. 다행히 그는 잠귀는 밝은 편이었기 에 알람을 켜놓고 자서 못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그랬는데…… 씨발.”
그런데 왜 오늘은 몇 시간 자지도 않았는데 칼같이 눈이 떠진단 말인가.
습관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잠에서 깨면 다시 자야 한다. 오 늘 그는 온전히 잠으로 하루를 보내
기로 다짐했으니까. 하지만 잠에서 깨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샤워를 하 고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출근하는 중 이었다.
“씨발.”
이명환이 연신 욕을 내뱉었다.
미쳤지.
미쳐도 제대로 미쳤지.
오늘 같은 날은 출근을 안 해도 되는데, 왜 출근을 한단 말인가.
이것이 문명에 종속된 인간의 슬 픔인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차를 몰아가
던 이명환은 총회로 올라가는 이차 선을 꽉꽉 채운 차들을 보며 다시 또 한숨을 내쉬었다.
“병신 같은 것들.”
자신만 병신인 줄 알았는데, 다른 병신들도 참 많았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그는 결심을 했으니까.
출근은 한다. 궁금하니까.
하지만 결코 강당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가가지 않은 길을가려 하는 동료들이 누군지 확 인하고 그들의 선택을 응원해 줄 생각이었다. 나는 용기가 없어가지
못하지만, 너희는 반드시 성공하라 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려 했다.
그랬는데…….
“……씨발.”
눈앞에 보이는 연단을 보며 이명 환이 다시 욕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강당 안이었다. 강당 안.
그러니까, 강당 안이라고!
이 미친 다리야, 난 여기로 올 생각이 아니었다고!
지금이라도 나가야 한다.
지금 당장!
그런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본 이
명환이 다시 한번 한숨을 크게 내 쉬었다.
“……씨발.”
아, 이건 내가 한게 아니다.
저 뒤의 놈이 한 욕이라고.
시커멓게 죽은 얼굴로 강당을 메 운 이들이 하나같이 안절부절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으면서 욕을 내뱉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이명환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병신들아, 어떻게 이리 하나같이 병신이냐.’
저놈들도 자신과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모르겠다.”
이명환이의자에 등을 확 기대고는 고개를 젖혔다.
‘될 대로 되라지.’
이제는 고민하는 것도 지친다.
설마 씨발, 죽기야 하겠어?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강진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명환은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묘한 안도감 이 자신을 채우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 끝난 거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곳으로 온 이상 그는 이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끝도 없는 후회와 후련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적어도 이제는 고 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가 장 컸다.
하룻밤 새 정말 지옥을 경험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강진호가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결정을 한 거죠?”
“……예.”
“에, 그런데……
강진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착오가 하나 있었는데……
착오?
저 양반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확인을 해보니 영남회, 아니, 영 남부 쪽에는 아직 전달이 안 됐더라 구요. 그쪽에도 말을 해줘야 공평하니까. 이거, 내일 이 시간까지로 미 룰게요. 하루만 더 고민해 보고 오 세요. 그럼.”
쿵!
문이 닫히고 이명환은 멍하니 문
을 바라보았다.
하루?
하루 더?
이 지랄을 하루 더 하라고?
이명환의 입이 힘없이 열렸다.
“……개새끼.”
그와 동시에 강당 안이 터져 나 오는 욕으로가득 차버렸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들으며 이명환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저건 악마다.
악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