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456)
마존현세강림기-457화(455/2125)
마존현세강림기 19권 (8화)
2장 시험하다 (3)
“인간이란 건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지.”
강진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비상식적이기도 해.”
이명환의 귀로 강진호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항상 죽음에 맞닿아 있는게 인간이야. 뉴스만 보더라도 인간이란 수많은 이유로 죽어 나가지. 질병, 사고, 그리고 살인.”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이들이 지 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지. 그런데 사람이란 건 웃기게도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단 말이지. 교통사고로 하루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죽는데도 태연하게 차를 타고 다니잖아. 그런 걸 보면 이 상하지. 왜 내가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밀려오는 격통.
생 뼈를 부러뜨리는 고통은 끔찍 했다. 그도 무인이라 수많은 부상을 당해보았다. 하지만 사고를 당하거 나 수련 중에 다쳤을 때 느껴야 하는 고통과 이런 상황에서 느껴야 하는 고통은 그 차원이 달랐다.
동일한 부상이라면 동일한 고통이 느껴져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았다. 바짝 곤두선 신경과 예민해진 감각 이 고통을 몇 배로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래서의문이 드는 거야.”
무슨의문?
이명환은 소리치고 싶었다.
그의문을 왜 나에게 푸느냐고! 어째서 나냐고!
“너희가 정말 죽음을 이해하고 있는지 말이야. 알고 입에 올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허세를 부리는 건지.”
강진호의 손이 반대쪽 팔을 잡았다.
이명환의 손이 덜덜 떨렸다.
“너는 어느 쪽일까?”
우드드득!
이명환의 반대쪽 팔도 부러져 나 갔다.
이명환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새 어 나왔다.
고통스러워서?
아니다.
그도 무인이다. 고통에 익숙한 이 고, 결코 고통에는 지지 않겠다고 다짐한 무인이다. 지금 그를 진정으로 괴롭히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고통 이 아니었다.
무력감.
상대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를 짓누르고, 짓 밟고, 태워 버리는 것만 같았다.
펄떡이지 못하게도마 위에 송곳
으로 고정되어 있는 활어가 이런 기분일까?
길고 날카로운 회칼이 자신의 몸을 후벼 파는데도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그런 기분 말이다.
“이제쯤 물어보고 싶은데……
그 목소리는 나직했다.
이명환은 밀려오는 절망감에 저항 할 수 없었다. 저 무미건조한 목소 리. 웃음기가 살짝 섞여 있는, 마치 기계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이명환을 지옥까지 끌고 내려갔다.
눈물을 줄줄 흘리고 침까지 흘려 대며 몸을 떨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눈앞의 마귀가 조금도 동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를 참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부러뜨리겠지.
그의 전신을.
그리고 그의 정신을.
아이가 수수깡을 잘게잘게 부러뜨 리는 것처럼, 그저 흥미와 재미로 사람의 뼈를 부러뜨린다. 어떤 죄책 감도, 어떤 거리낌도 없이 말이다.
“정말 죽음을 각오했나?”
발끝이 바닥에 닿는 감각.
강제로 들어 올려져 있던 몸이
아래로 내려간다. 운동화 끝에 바닥 이 닿는 감각을 느끼는 순간, 이명 환은 희망이라는 것을 품었다.
아이가 장난감에 싫증을 내듯이, 어쩌면 강진호는 지금 이 순간에 이명환에게 홍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저 착각일 뿐이었다.
우드드득.
이명환을 바닥에 닿게 한 강진호가 그 발을 짓밟았다. 발가락과 발 등의 뼈가 모조리 부러져 나간다.
비명은 지르지 못했다. 얼굴이 틀
어막혀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입이 틀어막히지 않 았다면 과연 비명을 지를 수 있었을까?
그가 자유의 몸이라고 해도 이 어찌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는 그저 입을 딱 벌리고 전율하는 것이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어보지.”
그 순간, 강진호가 이명환의 얼굴 에서 손을 떼고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조금의 자유.
하지만 체감하기로는 머리끝까지
잠겨 있던 물에서 고작 얼굴만을 밖으로 빼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대로 물에 잠겨 있다면 저체온증으로 천천히 죽어가겠지만, 당장 질식으로 죽는 것만은 모면했다는 느낌 이랄까.
하지만 이명환은 곧 깨달아야 했다.
그가 빠져나온 물 밖이 불타고 있음을 말이다.
시야가 확 밝아지고, 자신의 목을 움켜잡고 있는 강진호의 얼굴이 눈 에 들어온다.
차라리 보지 말 것을.
눈이라도 감고 있을 것을.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지만, 언제 나 후회란 한발 뒤에 오는 것이 아 닌가.
붉은 눈.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붉은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체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 고, 증오와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 정이 모조리 들끓고 있는 듯도 한 눈동자가 말이다.
붉은 눈과 살짝 말려 올라가 있는 입꼬리.
선한 인상이라고 생각한 강진호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가.
‘아니겠지.’
강진호가 변한 것이 아니다.
이게 강진호의 본모습이다.
‘철부지.’
최진영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이런 강진호처럼 되고 싶다 했다. 그를 동경하고, 그의 강함을 추 종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이다.
아무것도.
“아직도 스스로가 죽음을 각오했 다고 생각하나?”
목을 잡은 강진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목을 조여오는 그 힘은 확연한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죽음을 각 오했다면, 정말 그 죽음을 내려주겠 다는의도를 말이다.
그래, 협박일 수도 있다.
농담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죽음을 각오 했다고 대답할 수 있는가.
이 사람 앞에서? 이 상황에서?
장난처럼 그의 뼈를 부러뜨리고, 고문하며 웃고 있는 저 악마 앞에서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느 냐는 말이다. 그럴 수 있겠냐고!
실감이 난다.
죽음이라는게 무엇인지.
그래.
지금 죽음이 그의 눈앞에 있다.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와서 모든 것을 앗아가고, 결코 저항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 한다 면…… 강진호보다 죽음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죽음을 각오했다고?
이명환은 자신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죽음이 뭔지나 알고 죽음을 각오 했다고 설쳐 댔단 말인가.
이건 영화가 아니다. 죽고 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만화도 아니다. 이건 현실이다.
죽음이란 결코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을 상대로 살점을 하나하나 베 어가는 잔인한 고문 집행자와 같다.
그래.
눈앞의 이 사람처럼 말이다.
그만두자.
그만둬야 한다.
죽어도 좋다는 병신 같은 소리는 입에 담지도 말자. 당장 뒤도 돌아 보지 않고도망가는 거다. 멀리 또 멀리. 다시는 이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말이다.
“끄륵……
소리가 나오는지 확인해 보려던 것뿐인데, 기괴한 목소리가 입에서 홀러나온다. 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확인한 이명환의 입술이 몇 번이고 달싹거렸다.
전신에서 밀려오는 참기 힘든 격 통과 조여 들어오는 목에서 느껴지는 살기.
그 모든 것의 압박 속에서 이명 환이 소리쳤다.
“하…… 합니다!”
“ 흐음?”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조금 더 끌어 올리더니, 이명환을 자신에게 바짝 끌어당겼다.
이명환과 강진호의 눈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도망치고 싶다.
눈을 감아버리고 싶다.
오줌을 지리지 않은게 다행이다.
아니, 그가 느끼지 못한 것뿐이 지, 이미 바지가 축축히 젖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처음 이 방에 들어 왔을 때, 피비린내와 함께 지린내도
살짝 나던 것 같다. 다른 이들도 그 와 같은 꼴을 당했다면 당연한 일이 겠지.
하지만 이명환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도망치지 않겠다는의지 때문이 아니다. 지금 그의 몸은 그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눈을 감 으려고 해도 눈이 감기지가 않는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혀와 입뿐이었다.
핏빛으로 붉게 일렁이는 강진호의 눈이 세상을 다 뒤덮은 것만 같다.
“말해봐.”
“내가 들을 수 있게 말이야. 자, 말해봐. 죽어도 좋다고. 이 정도 고 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이야. 그래야 내가 조금은 덜 심심할 테니 까. 말해봐. 너는 죽음을 각오했다 고, 그러니 얼마든지 더 버틸 수 있 다고 말이야.”
악마란 유혹하는 존재였던가, 겁 박하는 존재였던가.
아마도 악마가 인간에게 계약을 제시한다면 이런 말투일 것이다. 몸 이 절로 떨려오는 무시무시한 협박 속에 교묘한 유혹을 뒤섞어 결코 빠
져나갈 수 없도록 말이다.
“……니다.”
“안 들려.”
우드드득!
쇄골이 부러져 나간다.
예상이 맞았다.
입이 트여 있음에도 이명환은 비 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입을 딱 벌리고 간질 발작이라도 온 사람 처럼 전신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입 어디를 잘못 깨물었는지 벌려 진 입으로 피와 침이 뒤섞여 홀러내 린다. 눈물이 얼마나 쏟아졌는지, 눈
앞에 보이는 붉은 눈동자가 흐려질 정도였다.
“미안하지만 독심술 같은 건 익히 지 않아서 말이야. 말로 해주지 않 으면 모르겠군.”
“끄…… 끄으……
“자, 대답해봐. 죽어도 좋다고 말이야. 네 각오가 어느 정도인지 증명을 해야 하지 않겠어?”
나직한 강진호의 웃음소리가 더없 이 선명하게 이명환의 귀를 파고들 었다.
“그게 아니면 여기서 포기하든가. 그럼 살려주지. 이대로 내보내 주겠
어. 그럼 너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대답은 너무도 빤하다.
이 상황에서 다른 대답을 선택하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정말 말 그 대로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든가, 고통을 즐기는 정신병자일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강진호의 장난감을 자처하는 꼴 이 아닌가. 그런 미친 짓을 누가 하 겠냐는 말이다.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묻지. 제 대로 대답하는게 좋을 거야.”
강진호가 살짝 뜸을 들이고는 속
삭였다.
“정말 죽음을 각오했나? 정말?” 이명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파들파들 애처롭게 떨리는 입술 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혀가…… 필사적으로 소리를 낸다.
“……각……오.”
“그래.”
“각오……했습니다……
강진호의 눈이 살짝 붉어졌다.
이명환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 지 깨달았다. 그만두겠다고 말해야 한다. 그만두겠다고 했어야 한다. 그 래야 이 마귀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입은의지와는 정반대로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 달은 이명환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 기 시작했다.
다시, 다시 말해야 한다. 지금 당 장!
하지만 그의 입은 접착제라도 발 라 굳힌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랫입술과 윗입술이 붙어버린 것처 럼 낮은 신음만이 새어 나올 뿐, ‘말’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전혀 흘러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강진호의 입꼬리가
조금 더 말려 올라갔다.
“좋은 배짱이군.”
마귀가 웃기 시작했다.
마치 마음 놓고 괴롭힐 수 있는 새로운 장난감이 생겼다는 걸 즐거 워하듯이 말이다.
“다시 묻는 건 실례겠지. 그래, 좋아. 네 선택을 존중하지. 앞으로 네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마음껏 상 상해도 좋아. 내가 반드시 그 이상을 보여줄 테니까.”
“하지만 결론은 내려줘야겠지. 그
건 나중 일이니까. 이명환.”
강진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합격.”
그런 후, 세상이 뒤흔들렸다.
고통이 밀려 나가고, 지독한 어지 러움과 구토감이 밀려왔다. 눈을 뜨 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자고 있는지 구분이가지 않을 만큼 지독한 혼란.
그때,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 드세요. 끝났습니다.”
아주 담담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