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478)
마존현세강림기-479화(477/2125)
마존현세강림기 20권 (5화)
1장 갈구하다 (5)
강진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엘레나는 그 순간 희망을 느꼈다. 과거, 그녀를 짓누르던 그런 압박감이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설득을 하면 그의 마음을 풀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엘레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떻게든……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겠습니다.”
“뭐든이라……
강진호가 기묘한 표정으로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엘레나는 그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눈이 단 호해 졌다.
“네 뭐든! 뭐든 하겠습니다.”
“나쁘지 않군.”
강진호가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진호가 만족 했다니 다행이지만, 그녀는 이제부 터 치욕을 감내해야 한다.
“……여기서요?”
강진호가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귀찮다는 듯이 턱짓을 했다.
“비켜.”
“……네?”
“비키라고.”
강진호의 얼굴에 짜증이 어린 것을 확인한 엘레나가 즉시 옆으로 비 켜섰다.
협상이 통한 것은 확실했다. 강진호가 자신들을 죽일 작정이었다면
비키라고 할 것도 없이 엘레나의 목을 쳐 날려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비키라고 한다는 것은 다른 곳에 관심이 있다는 건데…….
“너.”
엘레나를 비켜서게 한 강진호가 뱅상을가리켰다.
“ 일어서.”
“ 예‘?”
강진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뱅 상이 반문하자, 엘레나가 즉시 통역을 했다.
“일어서시래요. 빨리!”
뱅상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 넣어.”
엘레나의 통역을 들은 뱅상이 영 문도 모른 채 아공간으로 칼을 집어 넣었다.
“꺼내.”
뭔가 애견 훈련소 같은 분위기가 났지만, 뭘 어쩌겠는가. 뱅상은 재빠 른 동작으로 아공간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강진호가 그 광경을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는 거지, 그거?”
“다시 해봐.”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지고 있었다.
“하……
엘레나는 썩은 동태눈이 되어 끓 고 있는 물을 바라보았다.
휴대용가스버너 위에 냄비가 올 려져 있고, 그 냄비에가득 찬 물에는 즉석 밥과 3분 카레가 들어가 있었다.
엘레나가가만히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뭐지, 이 허탈함은?’
많은 각오를 했다.
그런데 식순이 꼴이라니.
고개를 돌린 엘레나의 눈에 강진호의 앞에서 열심히 아공간으로 검을 집어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는 뱅 상의 모습이 보였다.
뱅상 뒤에 서 있는 슈발리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평시 아공간에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검을 뽑아 쓴다는 개념이 강진호 에게는 매우 신기한 모양이었다. 염 소를 던져 넣어 티라노사우르스의 관심을 끄는 것처럼 뱅상은 그것으
로 강진호의 훙미를 끄는 것에 성공 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뱅상이 안쓰러워서 옆 에서 통역이라도 자주 하려고 종알 댔더니 돌아온 말은 하나였다.
“가서 밥이나 해.”
그래서 이 꼴이다.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는가.
그게 정말 밥을 하라는의미였는 지, 귀찮으니 저리가라는의미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혹시 모르지, 이 밥을 먹고 나서 저 미친놈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 아질지 말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검을 넣었다 빼는 뱅상을 보니 안구에 습기가 차오 른다. 나이도 많은 양반이 거의 탈 진할 지경으로 한가지 동작을 반복 하고 있었다.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 까 걱정이었다.
‘그걸 걱정하고 있으니 다행이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모두 죽느냐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느냐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탈진하느냐를 걱정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천국과도 같았다.
‘그런데 기분이 왜 이리 엿 같 지?’
뭔가 그런 느낌이다.
저 별것 아닌 아공간에 패배한 느 낌.
‘동태 눈까리 같으니.’
미적 감각이 다른 동양인이 뭘 알 겠냐, 뭘 알겠어. 그러니 저런 영감 님한테 저런 기술이나 배운답시고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하는 거겠지.
‘아니, 저번에 같이 있던 여자는
내가 보기에도 눈 돌아갈 만큼 이뻤는데……
동양적인 미인은커녕 허리우드 배 우 귀싸대기 올려칠 미모였다. 그 사람은 당장 유럽으로데리고가도 길거리를 마비시킬 것이다.
“생각할수록 열 받네!”
자신도 모르게 빼액! 소리를 지른 엘레나는 강진호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것을 보고는 몸을 움츠렸다.
괜히 눈에 띄어서 좋을게 없다.
몸을 움츠리고 바닥을 내려다보던 엘레나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 었다.
‘내 팔자야.’
전쟁터 한중간에서 동료의 시신을 낀 채 밥을 먹던 병사들의 심정이 딱 이랬을까?
조금 전, 수십 명이 죽은 곳에서 즉석 밥을데우고 있는 엘레나의 심 정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농담할 때가 아니야.’
쾌속선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그녀가 급하게 배를 몰아들어 오면서 배 밑에 구멍이 났다. 그리 고 모터도 망가졌다.
결국 다른 이들이 배를 몰아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가 언
제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럼 예정 없이 강진호와 이 섬에 서 같이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강진호는 수틀리면 그 순간 이곳에 있는 모두의 목을 날려 버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 사실을 새삼 인식한 엘레나가 긴장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강진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헉!’
그러고는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서, 설마……
엘레나가 기겁을 하여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허공에 뭔가 작은 파동이 인다 싶 더니, 얼마 유지되지 못하고 사라지 고 말았다.
“흠.”
강진호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손바 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엘레나와 뱅상은 목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몇 번 보고 저걸 따라 한다고?’
엘레나가 기겁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놀라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동양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검을 다뤄본 적도 없는 서양의 마법사가 검을 잡더니 갑자기 검기를 줄줄이 뽑아내는 것을 본 심정일 것이다.
마나라는 것은 하루이틀만으로 체 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나를 느끼고 활용할 수 있기까지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저 한 시간 정도 마나의 움직임을 본 것만으로 마 나를 움직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아무리 강진호가 동양의 무학으로 입신의 경지에 오른 이라고는 하나
전혀 다른 체계의 무학을 저런 속도 로 익혀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어떻게……
겨우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엘 레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절대 적대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우호적인 관 계를 맺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 떠한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말이다.
엘레나가 조심스레 강진호에게 다가갔다.
“저……”
불만 어린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
라보고 있던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무심한 그의 눈을 보는 순간, 엘레나가 움찔하고 말았다.
“제, 제가 좀 더 잘 설명드릴 수 있는데요.”
“ 뭘?”
“마나에 대해서요. 그리고 마법에 대해서요.”
“너희가 쓰는 기술 말인가?”
“예. 지금처럼 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제가 알려 드릴게요.”
“흐음.”
강진호가 턱을 긁었다.
‘나쁘지는 않아.’
이들을 살려준 이유는 다른게 없 었다.
재미가 없어 보였으니까.
진한 맛을 내는 음식을 먹고 난 후에 옅은 맛의 음식을 먹게 되면 그 음식의 맛을 잘 느낄 수 없는 이치였다.
이미 나나호시 구미를 상대해 그 들을 모두 죽인 강진호의 눈에 슈발 리에들은 딱히 상대해서 재미는 없 지만 죽이기는 해야 하는 귀찮은 존 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엘레나의 협상 덕분
에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익혀야 해.’
강진호는 필연적으로 적루와 청루를 사용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현대는 너무도 많은 눈이 사방에 있 고, 이런 무기를 패용하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에도의심을 살까 봐 이 섬에 적루와 청루를 먼저 보내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지 않았는가.
딱히 죽여도 재미도 없는 이들을 살려주는 대신에 이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대로 쉽게 보내 줄 생각도 없었다. 자신을 노리고 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죽어도 당연한 죄였다. 기술 하나와 교환하 기에는 그의 목숨 값이 너무 비쌌다.
“그러니 배가 오면 저희를 보내주 시……
“한가지.”
“……네?”
“수작질은 사람을 봐가면서 하는 거지. 내가 사람이 좋아서 너희를 살려놓고 있다고 생각하나?”
엘레나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결코 그럴 리가 없다.
지금도 이 백사장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모래로 덮어둔 시체에서 나 온 열기가 백사장을 달구고 있었다. 그 열기를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이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보겠는가.
강진호가 엘레나를가만히 바라보 며 입을 열었다.
“살려는 주지. 하지만 살아남는게 너희에게 그리 좋은 일일까?”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선심 쓰는 듯이 알려준다고 하는게 재미있군. 네 처지를 똑바로 아는게 좋을 거야. 너희는 알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내기 전에는 이곳에서 나가지 못해. 적당한 연습 상대도 필요했는데, 잘됐군.”
“나는 너희를 살려줬어. 하지만 너희는 이제부터 살아남아야 할 거야.”
엘레나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사람이 쉬울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순간적으로 일이 너무 잘 풀려서 잠시 착각을 하고 말았다.
“저, 저는……
그 순간,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저 먼 곳에서 천천히 배가 다가오 고 있었다. 뱃머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방진훈을 보며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배가 적당히 멈추자 방진훈이 지 체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강진호를 향해 일직선으로 헤엄 쳐 왔다.
“……거, 성질하고는.”
엘레나는 강진호의 표정이 전혀 달라진 것을 확인했다. 그녀와 슈발 리에에게 보여주던 그 차갑고 섬뜩
한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조금 온화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가 강진호의 얼굴에 자리했다.
“와! 강진호씨!”
백사장으로 올라온 방진훈이 소리를 질렀다.
“저 빼놓고 이러기 있습니까, 없 습니까?”
“딱히 뺀 건 아닙니다.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이현수 저 새끼, 내가 한번 날 잡아서 산에서 굴려 버릴 겁니다. 싸가지 없는 새끼. 내가 그래도 회 준데!”
“이러니까 뺀 거라고는 생각 안 하세요?”
“자꾸 아픈데 찌르지 마시고.” 방진훈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불룩 솟은 모래들을 보며 혀를 찼다.
“내 저 새끼들, 저 꼴 날 줄 알았 지. 그런데 얘들은 왜 살아 있습니까?”
……사람을 앞에 두고 왜 살아 있 냐니.
저 인간도 정상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기술을 쓰더군요.” 강진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총회에 끌고가서 이현수에게 던
져 보죠. 뭘 뽑아낼지.”
“……와, 진짜 성격 나쁘시네.”
방진훈의 너스레를 들으며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저 먼 곳에서 달 이가만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만나야 할 놈들은 지금까지처럼 단순하지 않을 테니까요.”
예언 같은 예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