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490)
마존현세강림기-491화(489/2125)
마존현세강림기 20권 (17화)
4장 고민하다 (2)
통렬하다.
그 말이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조규민의 말은 통렬하기 짝이 없었다.
강진호는 조규민의 말을 듣는 순간,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뭘 하고 싶은 거냐’라……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말이었다.
얼마 전이었다면 단 한마디로 대 답을 했을 것이다.
‘평범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목적이 무너진 지 이 미 오래라는 것은 강진호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그의 삶은 조규민의 말대로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가 그의 삶을 건드려 오기 때문에 그에 반응한다. 그리고 무찌 른다. 그를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보게 만든다. 그리고 누군가가도움
을 요청하면 돕는다.
그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전제로 시작된다.
외부의 자극.
그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마 강진호보다 그 말의의미를 잘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시간은 눈 깜빡할 새에 흘러간다. 오지 않는 시간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 같 지만, 지나간 시간은 짧디짧게 느껴 진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게 된다면,
지나온 모든 시간은 그저 짧을 뿐이다.
이미 강진호는 두 번이나 그러한 것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강진호씨.”
조규민이 힘을 담아 강진호를 불 렀다.
“강진호씨는 세상을 바꿀 힘을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없어요.”
강진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조규민의 말은 틀린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기다리면 언젠가는 강진호씨가 자신의 길을 찾을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강진호씨는 이미 충분히 조건을 갖췄어요. 그리 고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이 모였 죠. 스스로의지가 있다면 못할 것이 없는 시점에 왔음에도 전혀 움직 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규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낭비입니다.”
찰칵.
조규민이 답답하다는 듯이 담배를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불
을 붙인 조규민이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고는 천천히 내뱉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겁니다. 강진호 씨는 대체 뭘 하고 싶으신 겁니까?”
강진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행복하게 살 고 싶다는 것은 목적이 될 수 없다.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지만, 그가 행 복을 쟁취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은 모두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까.게다가…….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은가?’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의 삶은 이제 부족함이 없다. 그의 행복을 방해하던 모든 것들은 사라졌다. 그가 행복을 위해서 필요 하다 생각한가족과 친구, 그리고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 같은 요소들은 이미 모두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는 행복을 위해서 더 이상 뭘 해야 하는가.
강진호는 답답하다는 듯이가만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천천히 폐 속으로 묵직한 담배 연기가 차오르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이 짧은 쾌락이 답을 찾는 것에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강진호가가 장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뭔가를 찾아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예.”
“압니다. 강진호씨도 정신이 없 다는 것 정도는요. 겉으로 드러난 삶을 유지하고, 그리고 이면의 삶도 함께 살아야 하니까 두 배의 힘이 든다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방진훈 씨에게 들어보니 최근에도 뭔가 일이 있던 것 같은데, 힘들겠
죠. 어렵겠죠.”
조규민의 눈은 단호했다.
“하지만 강진호씨는 그걸 감당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죠.”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불합리하게 느껴질지 모르는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조규민의 말이 무엇을의미하는지 정 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저지른 잘못은 한가지다.
참지 못한 것.
세상에는 수많은 불합리가 존재한다. 평범한 이들은 자신들이 불합리
함에 수없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외면한다. 합리화한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맞서 싸울 수 없으니까.
세상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개개 인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 인다.
강진호는 그러지 못했다.
시작은 최영수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도 작은 일이다.
박유민이 최영수에게 괴롭힘을 당
하는 걸 고깝게 여긴 사람이 그중 강진호뿐이었을까?
암묵적인 동조자라고 결론 내린 반 아이들이 다들 최영수의 그 행동을 통쾌한 행동이라고, 문제없는 행 동이라고 여겼을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부 분은 침묵을 택했다. 맞서 싸울 수 없으니까. 하지만 강진호 자신은 입으로는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살 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참지 못했다.
평범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숙 여야 하는 곳에서 숙이지 못하는 이는 결코 평범해질 수 없다. 모난 돌 이 되고, 주머니 속에 들어간 송곳 이 된다.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강진호는 고개를 숙이지 못할 것이다.
그런 강진호가 평범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뿐이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를 그 스스로 깨버리는 것이다. 그걸 관철하지 못한다면 강진호는 평생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건 강진호가 택 한 길이다.
조규민은 지금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 피곤하군.’
익히 알고 있던 일이지만 새삼 깨닫게 되니 피로가 몰려왔다. 지금 까지처럼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일 들이 있을 것이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그를 제거하려 들 것이고,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들은 수작을 부려올 것이다.
그럼 강진호는 그런 이들을 계속 해서 밀어내고, 제거하고, 짓밟아야
한다.
대체 언제까지?
뜬금없는 곳에서 그의 인생을 관 통하는 화두를 듣게 된 강진호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들어 피로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도 실감하고 있었다. 중 국이 그를 견제하고, 일본과 유럽이 그를 제거하려 들고 있다. 이대로는 언제가 파탄이 난다.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지금의 삶이 어느 순간 급격하게 무너지게 될 것이다.
“지금 강진호씨가 해야 할 일은 하나입니다.”
“……하나요?”
“네. 움직이는 거죠.”
“강진호씨는 지금 석상처럼 굳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자 얼음 발판 위에 올라와 있다고 여기 고 있죠. 내가 조금만 과격하게 움 직이면 이 얼음 발판이 깨져서 주변 사람마저 모두 떨어질까 봐 안절부 절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랬던가.
딱히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 만 일정 부분 옳은 구석이 있다는 것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게 문제라는 거죠.”
“하지만 그게 사실이잖습니까.” 강진호의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 갔다.
“지금 제 주변 사람들의 삶이라는 건 저의 존재로 인해서 반쯤은 유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주변을 신경 쓰지 말고 살라는 겁니까?”
“ 네.”
조규민이 깔끔하게 답했다.
그러자 되레 강진호가 말문이 막 혔다.
“강진호씨, 조금 이기적이 되세
요.”
조규민은 안타까운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씨가 세상 전부를 짊어지 고 있다는 생각 같은 건 버리세요. 사람들은 다 그래요.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지만, 막상 강진호씨가 사라진다고 해도 세상은 그리 바뀌 지 않습니다. 물론 버거움이야 있겠 죠. 하지만 그 버거움이라는 것은 원래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강진호씨가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의 짐을 대신 짊어질 필요는 없는 겁니다.”
조규민이 목이 탄다는 듯이 넥타 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제가 한마디 해드릴까요?”
“……이미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살짝 삐딱하게 나온 대답이지만, 조규민은 깔끔하게 강진호의 반웅을 무시했다.
“제가 강진호씨에게 목적이 뭐냐 고 물었을 때, 강진호씨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해볼까요?”
“……예?”
“모두가 다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삶. 그곳에서 강진호씨가가져야 할 포지션에 대해서 생각하
셨겠죠.”
강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조규민의 말이 맞았다. 목적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에 강진호는 자신 이 어떻게 해야 모두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고민했으니까.
“재밌는 것 하나 말씀드리죠. 제가 처음에 강진호씨에게 뭐라고 물 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한다.
강진호의 기억력은 비상한 수준이니까.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말을 입 밖
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스스로도 알아차려 버린 것이다.
모순을.
“‘뭘 하고 싶으신 겁니까’라고 물 었습니다. 제가 물은 것은 강진호씨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거기에 ‘우리’는 없습니다. 강진호씨가 있는 거죠. 정말 강진호씨는 모두를 위해서 사는 삶이 강진호씨를 위한 삶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강진호씨.”
조규민이 깊이 한숨을 쉬었다.
이 남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불가사의 한 사람이었다. 해내지 못할 것이 없는 슈퍼맨이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자 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근에야 조규민도 이 기 이한 위화감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강진호는 원하는 것이 없다.
바라는 것도 없다.
그의 모든 삶의 근원은 주변인들의 행복에 맞춰져 있다. 그러한 삶 에 자신의 행복이 있을 리 없는 것
이다.
“숙제를 드릴게요.”
“강진호씨가 정말 하고 싶어 한 것이 뭔지 생각해 보세요. 다른 사람 생각하시지 말구요. 제가 말했잖 습니까. 강진호씨가 뭘 하고 싶냐 고, 제가 따르겠다고 한 것은 강진호 씨가 저를 정상으로 이끌어줄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강진호씨가 무 엇을 하든 제가 거기에도움이 되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이러다 보면 강진호씨가 되레 저를 행복하게 만 들어주려고 애쓰고 있을 것 같네요.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되었다 생각하고 한 말씀 드 리죠. 강진호씨……
조규민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사람 우습게 보지 마시죠.”
“나는 강진호씨의도움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강진호 씨의 주변 사람들도 다들 자신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자 세요? 강진호씨의 당연한 희생은 아무도 바라지 않아요. 애들 얼굴 보고 못 느끼십니까? 이제는 그게 애들에게 되레 부담이 되고 있어
요.”
“ 저는……
“저는 강진호씨의 능력을 빨아먹 으러 온 모기 새끼도 아니고, 강진호 씨에게 배려받고 싶어서 같이 일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강진호씨가 하고 싶은 일을 같이 이뤄가는 거예요. 강진호 씨가 말이 되어 모는 마차에 타고 싶은게 아니라 같이 끌어가고 싶은 거라구요.”
조규민이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으로 던졌다.
“나는 강진호의 친구이자 동료가
되고 싶은 거지, 강진호씨의 신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죠.”
강진호가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규민의 말은 그의 심장을 헤집 어놓고 있었다.
“생각하세요, 강진호씨. 정말 강진호 씨가 하고 싶은게 뭔지, 그걸 찾아내세요. 그럼 모두가 강진호씨의 곁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 찾아내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강진호씨를 부담스레 여기는 날이 올 겁니다. 건방진 소리 해서 죄송
했습니다.”
조규민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몸을 돌려 멀어져 갔다.
강진호는 멀어지는 조규민을 차마 잡지 못하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