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496)
마존현세강림기-497화(495/2125)
마존현세강림기 20권 (23화)
5장 시작하다 (3)
“오셨습니까?”
조규민은 개운한 얼굴로 강진호를 맞았다. 밝은 환대에 강진호가 살짝 당황했다.
“왜 그러십니까?”
“ 아뇨.”
강진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내젓자 조규민이 씨익 웃으 면서 말했다.
“설마 제가 그날 할 말 못할 말 구분 못하고 했다고 뭔가 어정쩡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 신 건 아니죠?”
“실장님도 좋은 사람은 못 되겠네요.”
“후후후, 그걸 이제 아셨다면 실 망이군요.”
조규민이 너스레를 떨며 강진호를 자리로 안내했다.
강진호는 순순히 조규민이 안내한 자리에 앉았다.
“간만에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오랜만에 그럴까요?”
조규민이 미소를 짓고는 커피 메 이커를 향해 다가갔다. 소파에 앉아 서 조규민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예 전 학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다.
‘오래됐네.’
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
이 사람들과의 인연도 참 오래되 었다고 생각하는 강진호였다.
커다란 유리잔에 아이스 아메리카 노를 탄 조규민이 강진호의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강진호는 사양하지
않고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어떻습니까?”
“맛이 영……
“기, 기계의 차이입니다. 제 실력 이 줄어든 건 아니라구요.”
“그런 걸로 하죠.”
뭔가 이상한 부분에서 자존심이 상한 조규민이지만,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하릴없이 커피 나 타고 있던 그때에 비한다면 실력 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할 테니까.
“아침부터 오셨네요.”
“예.”
“답을 찾았다는 거라 여겨도 되겠
습니까?”
강진호가 딴청을 부렸다.
“회장님이 기운이 없어 보이시는데……
“음……”
말을 돌린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사안이 워낙이 큰 것이다 보니 조규민도 어쩔 수 없이 강진호의의도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고민이 많습니다.”
“계속 저러십니까?”
“한참 되셨죠. 이번에 자제분들을 대면하고 나서 기운이 더 없어진 느 낌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제
분들을 만난 직후에는 활력이 엄청 넘치셨는데, 그게 급격하게 빠져 버 린 느낌이라……
“으음.”
강진호가 침음을 홀렸다.
황정후는 그의 인생에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런 이가 저렇게의욕을 잃고 있다는 사 실이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살짝 그의 몸을 살펴보았지만, 기 력이 쇄한 것 같지는 않았다. 스스 로는 늙었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
지만, 아직 그런 말을 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이유가 뭘까요?”
“음…..”
조규민이 뭔가 말하려 입을 열다가 꾹 다물었다.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
“잠시 정리 좀 하겠습니다.”
조규민이 그리 말하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참이나 고민하는 얼굴을 하던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일단 오프 더 레코드로.”
“……어디가서 말할데도 없습니다.”
“아, 그렇겠네요.”
저 즉각적인 긍정이 사람의 심기를 미묘하게 뒤틀었다.
“아무래도 회장님께서는 지금 크게 매너리즘에 빠지신 것 같습니다.”
“매너리즘이요?”
“네. 그러니까…… 할 것도 없고, 해야 될 것도 없는 상황인 거죠.”
강진호는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 양반은 재계의 사자라 불리던 사람이다.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무 너진, 기반 하나 없는 땅에서 스스 로의 노력과 판단력만으로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온 사람이 아닌가.
그런 이가 매너리즘이라니.
그리 쉽게의욕을 잃을 사람이라 면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잘 이해가 안가네요. 동력을 잃 었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웬만해서는 그럴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왜?”
“……덧없기 때문이겠죠.”
“네?”
조규민이 볼을 긁었다.
“사실 일반론을 회장님 같은 초인 에게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회의는 있지만요.”
“네.”
“사람은 대가 없는 노동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강진호도 긍정했다. 그건 당연한 말이다.
“처음에야 열의와의지가 있으니 내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보상이 크지 않다고 해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게 자신의 열정을 증명하는 길이라고 스스로 위안 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걸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누 군가가 그걸 지속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 안에서 크나큰 정신 적 만족감을 얻고 있는 겁니다. 물 질적인 보상을 능가하는, 정신적인 이득 말이죠.”
“그렇겠죠.”
“문제는 회장님은 그 어디에도 속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조규민이 재떨이에 재를 떨었다.
“그분에게 이제 돈은 별의미가 없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그걸 사용 하는 사람에게의미가 있는 것이지, 쌓아놓는 사람에게는 숫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더구나 회장님은 원래부터 돈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분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회 사가 성장하는 것이었죠.”
확실히 그런 면이 있었다.
서울 외곽지에 전원주택 하나 얻 고 사는 황정후다. 으리으리한 대저 택도 아니고, 낡은 주택에 살면서
국산 자동차를 타는 사람이다. 보통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모 습을 보인다면 자린고비라고 욕을 먹거나,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있 다고 칭찬을 받아야겠지만, 강진호가 보기에는 둘 다 아니었다.
황정후는 정말 돈을 쓰는데 별 관심이 없었다. 사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정도의 돈만 있으면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통장에 돈이 쌓이는게 무슨의미가 있겠는가.
“어?”
강진호가 뭔가 알았다는 듯이 고 개를 들자 조규민이 피식 웃었다.
“네. 금전적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강진호씨 같은 타입인거죠.”
“음.”
“그래서 문제인 겁니다. 만약 회장님이 돈에 미친 사람이었다면 어 떻게든 돈을 더 벌겠다고의욕을 불 태웠을 겁니다. 명예욕에 불타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정계로 진출하겠 다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겠죠. 하지만 회장님은 그 어디에도 관심 이 없습니다. 회장님이 관심이 있던 건 오로지 재경이죠. 그런데…… 재
경은 이제 회장님의 손을 떠나고 있 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만드셨죠.”
“스스로 그렇게 만들다뇨?”
조규민이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미 한번 병상에 누우신 경험 덕분에 자신이 없는 재경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깨달으셨 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재경을 분리 하기 시작하셨죠. 본인이 당장 죽는 다고 해도 재경은 흔들리면 안 되니 까요.”
강진호는 이 부분에서 살짝 비애 같은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평생 동안 회사를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자 신의 죽음이 회사를 무너뜨릴까 봐 눈뜬 채로 자신과 회사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이것만큼은 황정후를 동정할 수밖 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느끼셨겠 죠. 회장님은 이제 재경을 혁신해 나가는 것에 한계를 느끼셨습니다. 어느 정도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지 분을 내주시고 본인 사후에도 재경 이 커 나갈 수 있도록 안배하고 계 시죠. 그런데 그러면 회장님은 무얼
해야 할까요?”
조규민이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 안타까운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자식들과도 반쯤의절했으니 후 대를 준비할 일도 없고, 물려줄 재 산을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회사에서 할 일은 점점 줄어들죠. 아마도 슬 슬 본인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이거, 노인 실업 문제 같은 기분 이 드는데……
“황당하죠?”
조규민이 자기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제가 저분을 걱정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저 같은 봉급쟁이가 어떻게 감히 대재경의 회장을 걱정하겠습니까. 우리가 전혀 신경을 안 써도 회장님의 말년이 초라할 일은 없겠죠. 지금까지 쌓아 두신 부가 있고, 지금까지 쌓아둔 명예가 있으니까요. 이대로 삶을 마 무리하셔도 아마 존경받는 재계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시겠죠. 다 만……
조규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황정후 회장님은 제게 단순히 상사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신은인같은 분이고, 때로는 제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전 수해 주신 아버지 같은 분이거든요. 요즘 한번씩 회장님의 어깨가 처져 있는 걸 보면 조금…… 예, 조금 그 러네요.”
강진호가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입에 물었다.
‘줄담배로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조규민이 조금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아마도 하기 힘든 부탁을 하려는 것 같았다. 어물어물하던 조규민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예전에 자꾸 반대하던 일을 지금 와서 부탁드려 정말 죄송하지만, 황 정후 회장님의 자제분들과 황정후 회장님의 관계를 회복시킬 만한 방 법이 있으십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 해봐도 영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서.”
하지만 강진호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걸 왜요?”
“……아뇨. 상황이 여기까지 왔으니가족이라도 다시 만나셔야……
강진호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 러고는 천천히 담배를 빨았다.
“그건 해결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
“물론 저는 사람에게가족이 필요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 서 황 회장님이가족을 되찾기를 바 랐죠. 하지만 지금 이건 경우가 다
릅니다.”
조규민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자기가 그게 중요하다고 말 해놓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지금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은 뒷방으로 물러나서 손주나 보고 살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건 황정후 회장에게 답이 되지 않을 겁니다. 사자가 풀을 뜯을 수는 없는 법이죠.”
“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이건 미봉책이지,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결국은 재계를 사자처럼 누
비던 황정후의 진취성을 만족시켜 줄 수 없을 것이다.
“방법은 하나뿐이죠. 다시 뛰는 겁니다.”
“하지만 그거 너무가혹합니다. 회장님의 나이가 이제 여든에가까 우세요. 그런 분에게 살 떨리는 재 계의 선봉에 서서 다시 혁신을 시작 하라고 말하는 건……
“뛰는 곳이 꼭 재계일 필요는 없 죠.”
“네?”
강진호가가볍게 웃었다.
“해야 할일이 없어서 스스로가
쓸모없이 느껴진다면, 해야 할 일을 만들어주면 되는 겁니다. 황정후 회장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말이죠.”
말이야 쉽지만.
말로 하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특히나 강진호가 말한 것은 실제로 이루기 위해 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잔뜩 산적해 있었다.
강진호의 능력을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불도저처럼 밀어 붙 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 었다.
“마침 잘됐네요.”
“네?”
“안 그래도 드리려던 말이 있는데, 이게 어쩌면 황정후 회장님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 겠습니다.”
조규민이 멍하게 강진호를 바라보 았다.
강진호는 그 반응을 즐기듯이 미 소 짓고는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정말 로 하고 싶은 일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