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497)
마존현세강림기-498화(496/2125)
마존현세강림기 20권 (24화)
5장 시작하다 (4)
“찾으셨습니까?”
“네.”
확신이 담긴 대답이었다.
조규민은 조금 홍미진진하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대체 어떤 대답을가 져왔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아는 강진호라는 사람은 언제 나 그에게 말로 표현 못할 재미를 주던 사람이다.
그런 이가 저리 즐겁다는 듯 들 고 온 일이라면 분명히 조규민에게도 큰 흥미를가져다줄 것이다.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만?” 강진호가 뜸을 들이듯 미소를 지 으며가만히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네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속 타서 죽을 것 같으니까 그냥 대 답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말씀하신 것에 답이 있더군요.”
“제가 한 말에요?”
“네.”
조규민이 말한 ‘하고 싶은 것’이 라는 화두에 답이 있었다. 새로운 삶에서 강진호가 자신의 입으로 이 걸 해보고 싶다고 말한 분야는 단 하나뿐이 었으니 까.
“그냥 쉽게 생각하면 되는 거였는데, 복잡하게 생각하다 보니 답을 찾기가 어려웠죠. 누가 그러더군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찾는게 아니 라 모두에게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는다구요. 제가 다른 이의 인생을 책임지고 있다는 하찮은 오만 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
다.”
“와……
조규민이 입을 쩌억 벌렸다.
사실 조규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 만약 그 말이 사실이 라고 하더라도 강진호의 앞에서 저 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통렬하네요.”
“한 대 맞은 느낌이었죠.”
강진호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 았어요. 하고 싶은 일이라는 단순한
말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던 거 죠. 조금 쉽게 생각하니 답이 보였 습니다. 다른 사람과 관련 없이 제가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은 따로 있 헜거든요.”
“애타서 죽을 것 같다니까요.” 강진호가 씨익 웃었다.
“별것 아닙니다. 그냥 재단 하나 운영해 보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재단?”
조규민이 멍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니, 잠깐만. 지금 말씀하 신 재단이라는게 복지 재단이라든
가, 교육 재단 같은, 그런 재단 말 씀하시는 건가요?”
“예.”
“그걸 하시겠다구요?”
“ 예.”
조규민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물론 강진호가 그쪽으로 관심을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의 주변에 며 칠만 머물러 봐도 알 수 있는 일이 었다.
뒤로는 사람을 수박처럼 썰고 다니는 사람이 시간 남을 때마다 보육
원에 들르고 애들에게 돈을 물 쓰듯 펑펑 쓰고 있으니까. 얼마 전에도 애들 교육 문제 때문에 그 귀한 시 간을 낭비한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에 와서 재단 운운한다니…….
조규민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강진호가 대답을 찾아왔다는 것은 정말 기꺼운 일이 지만, 그 대답이 그가 원하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차라리 강진호가 세계를 정복하고 싶다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황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강진호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영향력과 현 실적인 힘을 고려한다면, 강진호의 대답은 스케일이 너무 작았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이끄는 자가 아니라 보좌하는 자였다. 강진호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최소한 결정의 당위는 물어야 한다.
“이유가 필요한가요?”
“아뇨, 아뇨. 이유는 필요 없죠. 강진호씨가 그리 결정했다면 그냥 그런 겁니다. 하고 싶은 일에 이유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다만, 저도 개인
적인 납득이 필요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지만, 그 일에 대해 주변에서 따를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니까요.”
“그렇겠죠.”
강진호는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충 정리를 끝낸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불합리가 있습니다.”
“……예?”
“어떤 사람이 평범하게 삶을 살아
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에게 교통사고가 닥칩니다.가족들은 그 사고로 모두 죽어 버리고, 그 사람은 하반신이 마비되 어 평생 휠체어를 떠날 수 없게 됩니다.”
조규민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 사람이 뭘 잘못했죠?”
“잘못이라고 할 건 없죠. 그건 말 말 그대로 운이니까요.”
강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이랄게 없지만, 잘못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겪어야 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진득한 외로움과 어찌할 수 없는 육체뿐이죠.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습니다.”
“으음……”
“다른 경우도 있죠. 태어날 때부 터 장애를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있 습니다.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 모에게 버림받고 겨우겨우 살아남아 길거리를 배회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부모에게 사랑받고 스스로를가 꿀 시간을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보내게 되죠. 쓰레기통을 뒤지면서요.”
조규민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머릿속으로 아마 박유민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박유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강진호가 겪은 두 번째 삶의 이야기였다.
어쩌면 강진호는 운이 좋은 케이 스라고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중원 에 버려진 수많은 아이들 중에 살아 남은 아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평생을 고통받았다고 한들 고통 받는 삶이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강진호는 개중 성공한 인
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한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과 강진호는 뭐가 달랐을까?
하나뿐이다.
강진호가 남다른의지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었다.의지가 강한 어린 아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가 그나마 살아남아서 두 번째 삶을 이어갈 수 있던 이유는 사부를 만난 것, 오직 하나였다.
만약 사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두 번째 삶은 몇 배나 더 비참
했을 것이다. 아니, 비참하기 이전에 처참히 끝이 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의 삶을 결정한 것은 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정말 올바른 것일까?
“결국은 운입니다.”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모두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때때 로 사람의 인생에 홀로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시련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방금 전에 말한 그런 경우겠 죠. 이 어찌할 수 없는 변수 때문에 망가진 삶을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강진호가 살짝 호흡을가다듬고 말했다.
“운명이라고.”
강진호의 목소리가 조금은 격해졌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고, 그 사람의 팔자라고 말하죠. 말 그대로입니다. 어찌할 수 없으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걸 정말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포 장해 넘겨 버려야 하는 겁니까?”
지금에 와서 깨닫는다.
원장 수녀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었는지 말이다.
원장 수녀님은 말씀하셨다.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 라고.
한동안 강진호는 그 말이 무슨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누가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니까.
그렇다면 손을 뻗어달라 소리치는 이들에게 손을 뻗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첫 번째 삶에서 강진호는 누구보 다도움이 필요했다.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은 나이에가족을 모두 잃고, 본인은 하반신 마비를 당했다. 세상 모든 것이 절 망적이고, 세상 모든 것에의미를 잃었다.
그렇게 강진호는 세상과 자신을 격리시켰고,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 었다.
하지만 속내는 또 달랐다.
누군가도와달라고.
이 지옥 속에서 나를 꺼내 달라 고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하지만 마음속의 울부짖음 따위를 누가 들어주겠는가.
결국 강진호는 그 누구의 손도 맞잡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만약 그때, 강진호가 원장 수녀님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와, 아무렇 지도 않게 손을 뻗으며 웃어주는, 그분 같은 이가 강진호의 주변에 있 었다면, 강진호의 첫 번째 삶도 조 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분을 기다려야 하는게 아냐.’
그분은 말씀하셨다.
그런 사람이 되라고.
먼저 나서서, 먼저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이다.
그분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도움이 필요하다고 해 서 무작정 손을 뻗지 못한다는 것을. 때로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누군가가 손을 뻗어주기를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이해한다.
강진호가 그랬으니까.
그 짙은 어둠 속에서 강진호는
단 한번도 나를도와달라고 소리치 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만 감내하며 썩어 들어갔다.
다른 이에게도움을 달라고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이 정말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진호씨.”
조규민의 얼굴이 심각해져 있었다.
강진호가 말하는 재단이라는 것이 단지 생색내기 수준으로 이루어지는 부자들의 복지 재단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이 사람은 정말 제대로 뭔가를 시작해 보려 하고 있었다.
“그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차라 리 정말 뒷세계를 이용해서 한국을 완전히 장악하는게 쉬울 수도 있습니다. 보이는 형체가 있는 것은 어 떻게든 공략할 방법이 있기 마련이 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매뉴 얼이 없으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강진호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규민이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 지 모를 강진호가 아니었다.
“어려운 일이 될 거고, 힘든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만…… 제게 말하셨죠?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말입니다.”
조규민이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이거야 완전히 자기 무덤을 판 격이 아닌가.
강진호를 분발시키겠다고 한 말이 슬슬 자신의 목을 조여오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뒤를 돌아봐도도망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그랬죠.”
“하고 싶은 일이니, 해야죠.”
“그렇게 쉽게 말씀하지 마시고, 생각을 조금……
“생각은 충분히 했습니다. 어쩌면 그전에도 계속 생각해 오고 있던 일 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자꾸만 뒤로 미뤘 습니다.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요. 어 쩌면 결국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없는 제게 이런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부분은 아직 걸리네요.”
“에이, 그건 아니죠.”
“ 예?”
조규민이 손을 내저었다.
“예를 들어 엄청난 범죄자가 겉으로는 착한 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푼다고 치자구요. 그럼 그 선행에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도 움을 외면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겠죠.”
“강진호씨가 지금 하려는 일로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고, 누군가에게 우러러보이고 싶다면 분명 문제가 되겠죠.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 잖아요.”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을 하고 있는 조규민이지만, 머릿속에서는 다른 말이 나오고 있었다.
‘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말려야 하는데 말리지는 못할망정 왜 등을 떠밀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 일이었다.
조규민의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았 다는 듯이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해보고 싶습니다.”
“…..”
“대답은?”
“……”
입을 다무는 것이 조규민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