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03)
마존현세강림기-504화(502/2125)
마존현세강림기 21권 (5화)
1장 설계하다 (5)
“선택권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태연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뱅상은 얼굴을 굳혔다.
‘빌어먹을.’
자신에게 무슨 선택권을 준단 말인가. 애초에 선택이라는 것은 서로
가 동등한 자격을 갖추고 있을 때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강진호와 그는 결코 동등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최악과 차악을 선택하는 경험 따 위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무슨 선택입니까?”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게 사람 아니던가.
“애초에 나는 당신들의 능력을 모 조리 뽑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은 필연적으로 위험을 동반 해야 한다더군.”
강진호가 슬쩍 이현수를 바라보았
다. 이현수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악의를 품은 놈이 살짝 꼬아서 알려주는 순간, 누구 하나는 폐인이 될 수도 있다더군. 그걸 실험해 보는게 우리 아이들인 이상 절대 모 험을 할 생각이 없다는데…… 그래, 맞는 말이지.”
강진호가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런 위험이 있기에 강진호도 그들에게 직접 듣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몸으로 느끼고 따라 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았던가.
무학이란 양날의 검이다.
제대로 배울 경우에는 육체를 강 건하게 해주고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경지에 오를 수 있게 해주지만, 과 정이 조금만 어긋나도 주화입마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강압적으로 자신의 무학을 빼앗기는 입장이 된 슈발리에들이 순순히 모든 것을 뱉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 지만……
모든 정보를 정확히 토해내게 만 들 방법이야 넘쳐 났다. 강진호는
마교의 정수를 이은 자다. 머릿속에 서 지식을 뽑아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좋은 수는 아니었다.
첫 번째 문제는, 그 방법을 사용 하는 순간 강진호와 슈발리에 사이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한 두 번째는 그 방법으로 지식을 알아낸다 하더라도 강진호가 직접 전수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바쁜 강진호가 그런 것까지가르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
릇이었다.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정확하게 총회의 무인들을 지도해 줄 교관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협상을 제시하는 거다. 아무래도 너희의 조국에서는 너희를 구출해 갈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까. 음, 혹시 모르겠군. 지금쯤 이 주위를 둘러싸고 구출 작전을 벌이 고 있을지도.”
그 말에 뱅상은 웃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강진호 하나만으로도 이 총회는 용담호혈과 같은 곳이다. 웬만한 구
조대가 왔다가는 포로가 늘어나거 나, 시체만 발생하게 될 것이다. 심 정적으로는 두 번째의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저 인간이 또 변덕을 부릴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게가능하려면 프랑스가 아니라 원탁 차원에서 인원을 모아야 하는데, 그만한 인원이 대규모로 한국에 들어온다면 총회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강진호가 원탁의 움직 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원탁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 하고 있었다.
‘버림받은 건가?’
뱅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물론 그의 선택이 그리 명예롭지 못한 처신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슈 발리에로서 목숨이 아까워 적에게 포로로 잡힌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동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이 많은 인원이 이 머나먼 타국 에서 죽어가는 꼴을 보느니, 뱅상 자신이 비겁자가 되는 편이 나았다-조국도, 나이트 르보도 그 사실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런 긴 시
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협상이 들어 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엘레나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원탁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아 무리 원탁이 회의를 통해 결론을도 출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조금 비 효율적인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면 당연히 답 이 나왔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침착해라. 원탁이 우리를 버릴 리가 없어.’
머리로는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가슴은 이성에 맞춰 움직
이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연락 이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그의가슴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내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뱅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런 좁은 감옥에 일주일이나 갇혀 있 었는데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에도 자꾸의미를 부여하고 부정적인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곳이 감옥이 아니라 호텔 방이었다면 일주일 정도 원탁과 연
락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리 갑갑 함을 느끼지는 않을 테니까.
필사적으로 원탁을 변호하던 뱅상 에게 강진호가 운을 뗐다.
“그래서 고민이란 말이지.”
“……고민이라 했습니까?”
“그래. 너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뱅상의 얼굴이 굳었다.
강진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잘 이해 할 수 없는 이유로 그들을 살려주었다. 그런데…….
‘이리되면 우리를 살려두는 이유
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앞에 있는 이가 강진호가 아니었 다면 이런 걱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번 죽이려던 사람을 살려 주게 되면 다시 죽이려 하는게 쉽 지가 않다. 그도 몇 번이나 경험한 일이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당연 히 그리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있는 이는 일 반적인 이가 아니라 강진호였다.
뱅상은 강진호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모두 찢어 죽일 수 있 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도 남지.’
무인도에서 보여주었던 강진호의 폭력성과 광기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원탁에서 협상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들이 원 탁의 보호와도움 없이 강진호의 광 기에 다시금 노출된다는의미가 아 닌가.
그것만은 절대 사양이었다.
공포를 떠나서 그건 무조건적인 죽음을의미하니까. 자존심과 명예 까지 버려가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는데 그 대가가 죽음을 조금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면, 너무나도 억울하지 않겠는가.
뱅상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하지만 뱅상은 자신의가슴속을 채워오는 불안 함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말……씀하신 선택권이라는게 뭡니까?”
“간단하다. 협조해라.”
강진호는 뜸을 들이지 않았다.
“우리 측에 협조를 한다면 풀어주 지.”
“협조라면 정확히?”
“아는 정보를 모두 뱉고,가지고
있는 기술도 전수해 주면 좋겠군. 물론 어떤 기술을가지고 있는지 파 악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야. 그게 모두 끝나면 전원 멀쩡히 풀어주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지원해 주겠다.”
뱅상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말을 듣고 나면 물어야 할 것이 하 나 있다. 너무도 빤한 대답이 들려 올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는 그것.
“만약 저희가 그 제안을 거절한다 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강진호가가볍게 웃었다.
“ 알잖아?”
강진호의 대답에 뱅상이 웃어버렸다.
그렇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뭣하러 묻는단 말인가.
눈앞에 있는 이 사람에게 인간미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었다.
“……지금 결정해야 합니까?”
“이틀 주지.”
강진호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 뒤에 다시 올 거야. 그때까 지 마음을 정리하도록. 혹시 모르지. 그 이틀 사이에 연락이 올지. 그럼 상황이 바뀔 수도 있으니 기대를 버 리지 않는 것도 좋겠군.”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뱅 상과 마주 웃어준 강진호가 몸을 돌 렸다.
뱅상은 넋이 빠진 얼굴로 계단을 올라가는 강진호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다 죽일 생각이십니까?”
“글쎄.”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말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야 그렇습니다만.”
이현수는 살짝 고민을 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사이라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강진호와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 걸음 더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제가 듣고 싶은 것은 계산이 아니라 강진호씨의 본심입니다. 어떻
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걸 왜 알아야 하지?”
“그게도움이 되니까요.”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돌려 이현 수를 바라보았다. 무감정한 눈빛에 흠칫한 이현수이지만, 그렇다고 해 서의지를 꺾지는 않았다.
“상관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움 직이는 타입인지를 판단하는 건 아 랫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야 일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최선을 추구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론 대로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제가 최선이라고 생각한 방향이 강진호씨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일이 틀 어질 확률이 높죠. 용인되는 범위를 파악할 수 있어야 최고의 효율로 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청마와 다르군.’
강진호가 흥미롭다는 얼굴을 했다.
그의 느낌으로는 이현수와 청마는 꽤나 비슷한 기질을가지고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가리지 않는 점이라든가, 그러면
서도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파악 하는 점이라든가.
그런데 이곳에서 차이점이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청마는 최선의 결과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했지.’
물론 강진호가 청마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사람은 아니기에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청마는 최선의 결과를 상정하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 본인은 물론, 적천마존조차도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현수는 강진호의 스타일 에 자신이 맞추겠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시대의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살 아온 과정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 만, 둘은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달랐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 예.”
“잘 모르겠군.”
“……네?”
이현수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살면서 단 한번도 포로라는 걸
잡아본 적이 없어서 저들을 어찌 처 리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죽여도 괜찮을 것 같은데, 굳이 죽일 이 유는 없는 것 같고……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일단은 협조를 얻어내는 쪽이가 장 이득일 것 같으니 최대한 그쪽으로 진행해 보고, 그게 안 되면 다시 생각하는 쪽으로가는 건?”
“……확실히 그게 최선입니다.”
“음, 그렇군. 그럼 그렇게 진행해 줘. 밥은 잘 챙겨 주고.”
“빵으로 말이죠.”
“스테이크도 나쁘지 않겠지. 귀한
몸들이니까.”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귀한 몸들이시지.’
여러가지의미로 말이다.
저들이 하찮아서 대충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삼엄한 감시와 압박은 저들의 저항의식을 불태우게 만들 것이고, 스스로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자각을 심어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느슨하게 풀 어놓고 있으면 저들은 혹여 강진호가 자신들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시달리게 된다.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언제든 정리될 수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좀 떨어봐라.’
이현수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심리를 압박하는 일은 그의 특기였다.
“이쪽은 제가 알아서 잘 관리하겠 습니다, 그럼.”
“가봐야지.”
강진호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 았다.
“꼬맹이들이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