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11)
마존현세강림기-512화(510/2125)
마존현세강림기 21권 (13화)
3장 대비하다 (3)
“피하려 한다면 피할 수 있나?”
이현수는 입을 다물었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대 답은 수십가지가 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대답도 지금 강진호의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이 될 수는 없었다.
‘피할 수 있는가……
이현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강진호는 단 한마디로 그의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 인정하자.’
이현수의 마음속에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중국은 대국이다. 한국으로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대국이다.
드러난 세계에서의 국력 차이 따 위는 드러나지 않은 세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중국을 삼분하고 있는 홍왕계가 단독으로 나서도 한 국은 감당할 수 없다. 아니, 감당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쓸려 나가게 될 것이다.
지금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작게는 중국의 세 파벌이 서 로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고, 크게는 중국과 일본이 서로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절묘하게 들어 맞는 힘의 균형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있는 셈이었다.
‘절묘하게 말이야.’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사실에 안 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현수는 그 사실에 되레 압박을 느끼고 있었
다.
절묘하게 균형이 들어맞는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조금만 변수가 생 겨도 그 균형이 와르르 무너진다는의미와도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작은 변수만 생겨도 지금까지 유지되 고 있던 평화는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
‘아니, 이미 무너지고 있겠지.’
그 변수가 지금 이현수의 눈앞에 있었다.
강진호.
이 남자는 그동안 힘겹게 유지되 고 있던 동아시아의 균형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변화는 이미 나타났다.
나나호시 구미가 한국을 집어삼키 겠답시고 넘어와 강진호를 습격했 고, 그동안 소문만 무성히 들어오던 유럽의 원탁마저 한국에 나타났다.
강진호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라 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 에 강진호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확 실히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뭐, 부정적인 쪽에 더가깝겠지 만 말이지.’
이현수는 기본적으로 비관주의자
다.
그가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잘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타입이었다 면 김석일을 몰락시키고 강진호에게 자기 목을 내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현수는 이 모든 상황 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가 없었다. 이 무너진 균형의 결과로 말미암아 중국이나 일본이 한국으로 밀고 들 어오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살얼음판 위에서 유지되던 균형은 이미 무너졌다. 그렇다면 다음 결과야 빤한 것 아닌가.
“솔직히…… 저는 좀 두렵습니다.”
이현수의 말에 강진호가 살짝 눈을가늘게 떴다.
“두렵다고?”
“ 예.”
강진호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현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강한 척, 어른스러운 척해야 한다 고 언제나 강요받아 왔지만, 때로는 그런 태도가 일을 크게 더 키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일본과 중국을 감 당할 수 없습니다. 강진호씨…… 당신은 강합니다. 어쩌면 당신 개인은 중국과 일본의 무인들과 대등할 지도 모릅니다. 아뇨, 그 이상이겠 죠. 하지만 우리는 중국은커녕 일본 조차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현수의 목소리가 떨려 나오고 있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겁니다.”
“계속해봐.”
강진호는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탓하지도 않았다. 그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분명한 사실이 었으니까.
강진호는 자신이 스스로 대단하다 여기지도 않지만, 사실을 말하는 이를 강박할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을 상대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애당초 상대 하지 않는 거죠. 지금까지 한국은 철저하게 그 법칙을 지켜왔습니다. 아뇨.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제로 그 법칙을 지킬 수밖에 없었죠.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을 상대할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대로 계속 그
두 나라와 충돌하게 된다면, 결국에는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강진호는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이성적으로 볼 때, 강진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부 분은 여기까지였다. 강자는 언제나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이기 마련이니 까.
강진호를 조금 더 믿어보는 것은 이현수의 선택이지만, 그에 대한 리 스크는 이현수가 온전히 짊어질 수
밖에 없다. 이현수가 판단하는 스스 로의 입지는 강진호의 사소한 변덕 만으로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에 불 과하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들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바토르와 싸우는 것은 강진호씨 에게는 별것 아닌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소한 싸움에 불과할 수도 있 겠죠.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작지 않을 겁니다. 그 싸움으로 총회는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이제는 중국이든 일 본이든 어느 한쪽과 유화책을 펼 수
밖에 없습니다.”
강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가만히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낮은 침묵.
이현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라앉아 있는 강진호의 눈빛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아직 그에 겐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강진호가 입을 열 었다.
“그렇게 숙이고 숙이다 보면 결국 에는 자존심마저 잃게 된다. 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긍지를가진다면, 그건 패배한게 아니다.
자존심을 버린 채 생존한다는게 대 체 무슨의미가 있지? 무인이란 그런게 아니지.”
이현수는 눈을 감아버렸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대답이 강진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이상, 그가 할 말은 더 이상 없었다.
“예. 그러시다면……
“……라는 뻔한 소리를 할 생각은 없어.”
이현수가 눈을 번쩍 떴다. 강진호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확실히 조금 전까지 그가 보
여주던 섬뜩한 미소와는 달랐다.
“생존이 우선이다라……. 공감하는 이야기야.”
이현수는 모르고 있었다.
그가 알던 강자와 강진호는 근본 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좋은 환경에서 스스로의 무학을 익혀 강 해진 현대의 무인들과 살아남기 위 해서 못할 것이 없던 강진호는 근본 부터가 다른 존재였다.
자존심?
‘쓸데없는 것이지.’
필요하다면 홍왕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일 수 있다. 자존심
을 내세우다 패배하고 쓰러진다면, 강진호의 주변 모두가 불행해지게 된다. 모두의 행복이라는 절대의가 치에 비한다면 자존심 따위는 재활 용도 안 되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필요하다면 홍왕과 화친하는 것 역시 못할 바가 없지.”
이현수가의외라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지금 강진호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면, 그 역시 강진호를 모두 파 악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참 양파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무렵,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게가능한가?”
“ 예?”
“화친이란 것은 서로의 필요로 인 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와 화친을 해서 홍왕이 얻을 수 있는게 뭐가 있나?”
“아, 아뇨. 홍왕은 이미 영남회를 통해서 한국을 지배하려 한 적이 있 습니다.”
“그건 지배겠지.”
“아……”
이현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자와의 거래라는 건 그런 거
야. 내가 약자이긴 하지만원하는 이익을 모두 얻어낼 수 있는 거래라는 것은 동화책에나 나오는 거지. 화친이란 이름으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부터 실질적인 지배가 시작되겠 지.”
이현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쉽게 보고 있던 것은 강진호가 아니라 되레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전에도 그랬지.’
겉으로 보기에는 무작정 일을 저 지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는 사람이다.
영남회에 쳐들어올 때도 모두가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 무모함을 바 탕으로 피해를 최소화시킨 사람이 바로 강진호였다.
‘이성과야성이라……
이현수가 보기에 강진호의야성적 인 모습은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억지로 만들어내 분위기를 끌어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강진호는 스스로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 고, 그 사실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
까?”
“방법은 하나뿐이지.”
강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피해를 입 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야. 강 자가 되는 거지. 강자가 될 수 없다 면……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내가 너를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목숨 걸고 붙는다면 네 목 줄기는 물어뜯고 죽겠다는의지를 보여줘야 지. 그래야 함부로 굴 수 없을 테니 까.”
섬뜩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현수는 느낄 수 있었다. 강진호는 정말 그런 마인드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현수 자신이 강진호보다 강하다 고 해서 이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을까?
‘아니겠지.’
스스로 하는 말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 겠는가.
확실한 것 하나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는 이현수보다 강진호가
훨씬 능숙하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과거 강진호가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 모르는 이현수로는 결코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럼……
강진호가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잡아 먹힌다. 드러난 세상은 어떤지 모르 겠지만, 내가 살아온 세상은 결국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장 잡아먹히느냐, 그게 아니면 천천히 피를 뽑히느냐의 차이겠지. 전자와
후자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가 혹한 이야기지.”
이현수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제시한 말은 결국 천천히 피를 뽑히며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 해 보자는의미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쪽에서 신사적으로 나간다고 저 쪽도 신사적으로 나와준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중국 놈들에게 신사적인 행동을 바란다?
‘개 같은 소리.’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게 꿈과 같은 소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현수가 아닌가. 그런 그가 화친이라는 답을 내놓았다는 것은 결국 중국이가지고 있는 압도 적인 힘 앞에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멍청했습니다.”
“아니.”
기이한 압력이 일어나 이현수를 자리에 앉혔다. 이현수가 눈을 휘둥 그레 떴다.
“실수라고도 할 수 없어. 내 말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 결국은 탁상공론. 실제로는 어 찌 홀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거지.”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현수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그저 강진호의 말이 그럴 싸해 보일 뿐이다. 정답이라는 것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정답이 나중에도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럼 우선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강진호가 비릿하게 웃었다.
“보여 줘야죠.”
이현수의 몸이 살짝 떨렸다.
그래.
보게 된다면 달라질 것이다. 그들의 생각 역시.
‘그’ 강진호를 보게 된다면 누구 라도, 설사 홍왕이라 해도 말이다.
그 기이한 감각에 이현수가 몸을 떨었다.
저 중국이, 저 강대하고 폭압적인 나라가 강진호라는 이름에 떨게 되는 그 순간이 온다는 것은 말로 형 언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강해져야겠 죠.”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물론입니다.”
또 하나의 방향이 잡히는 순간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