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12)
마존현세강림기-513화(511/2125)
마존현세강림기 21권 (14화)
3장 대비하다 (4)
[아직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는 거 예요?]화면 너머에서 소리를 지르는 엘 레나를 보며 나이트 위긴스는 눈두 덩이를 문지르려 했다. 하지만 손끝 이 맨들맨들한가면에 닿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가면을 움켜잡아 버렸다.
‘빌어먹을가면.’
한때는 이가면이 그의 자부심이 던 시절도 있었다.
나이트들에게가면은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걸의미한다. 한 국가의 구성원이자 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한가족의 일원이던 자신을 잊고 오 로지 원탁에 종사하며 세상의 평화를 지켜 나간다는의지. 그의지의 발현이 바로 이가면이었다.
나이트 위긴스는 이가면을 처음 받아 얼굴에 덮어쓰던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그의 모든 노력을 인정받 았다는 뿌듯함과 드디어 나이트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다는 그 벅 찬 환희, 그리고 얼굴을 무겁게 짓 누르던 중압감까지……. 그 모든 감 촉이 살아 있던가면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이트 위긴스는가면이 슬슬 거추장스러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원탁에 봉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는 알지 못 했다. 그건 영광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야 그 진정 한의미가 무엇인지 나이트 위긴스
는 실감하고야 말았다.
이곳에 그는 없다.
나이트 위긴스만이 있을 뿐이다.
그 스스로 아무리 옳지 못한 행 동이라 생각한다 해도 그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합의 로도출된의견에 따르는 것이 나이 트의의무이니까.
자신을 내려놓는다는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한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나이트 위긴스!]‘빌어먹을.’
딸에게조차가면을 쓴 채 얼굴을
들이밀고, 그 딸에게 이름조차 불리 지 못하는 것을 명예랍시고 살아왔 다니. 머리가 살짝 돌아버리지 않고 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탁은 이것을 신성하고도 무거운의무라고 말하지만…….
“원탁의 합의는 여러 사람의의견을 바탕으로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 하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너도 알고 있었을텐데?”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슈발리에들이 단 체로 목이 잘려 나가도 결코 이상하지 않단 말이에요. 이런 일에 대응
하라고 원탁이 있는 것 아니에요? 절차와 과정 때문에 살려야 할 사람을 살릴 수 없다면, 대체 그 원탁의 절차라는 건 왜 필요한 건데요.] 그건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이가면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나이트 위긴스도 똑같은 말을 외치 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가면을 쓰고 있는 이상 그가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기다려라.”
[나이트 위긴스!]“젠장, 기다리라고 하지 않느냐!” 억눌린 짜증이 고함이 되어 튀어
나왔다.
진심으로 화를 내버린 나이트 위 긴스는 아차했지만, 이미 화면 건너 편의 엘레나의 얼굴은 더없이 굳어 버린 뒤였다.
[죄송해요.]
“아니, 아니다. 내가…… 내가 소 리를 질러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미안하다, 엘레나.”
참담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이트 위긴스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들은 지금도 죽음의 공
포와 싸우고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그 강진호의 성정이라면, 저들이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에 당 장 모두를 찢어 죽여도 이상하지 않 아요.“
“안다, 알고 있단다.”
[그러니 당장 결론을 내리지 못해도 최소한 협상의의지를…… 그들의가치를 주지시켜 주세요. 부탁드 려요.]“그렇게 하도록 노력하마.”
[예. 그럼.]화면이 검게 물들자 나이트 위긴 스가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은 딱딱한 금속의 느낌뿐이었다.
“빌어먹을!”
나이트 위긴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을 걷어찼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책상을 천장까지 날려 버린 위긴 스가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이 빌어먹을 놈들! 사람을 대체 뭐라 생각하는 거야!”
위긴스는 닥치는 대로 걷어차 책 상을 때려 부셨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 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이 잡혀 있다.
사람이 포로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그 포로로 잡힌 이들에게…… 뭐라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서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 자고?
“이 개자식들!”
그건 남이 주는게 아니라 스스 로 선택하는 것이다. 왜 타인의 운 명을 제멋대로 주무르려 한다는 말 인가! 그건, 그건…….
위긴스의 손이 멈췄다.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고?’
위긴스는 웃어버렸다.
실제로 그가 지금까지 해온 행위가 그들이 하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버린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들이 얽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개개인의의지가 세계의 흐름을 결정한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그들의의지를 꺾고 비트는 행위가, 명예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죽음을 강요하는 행위가 뭐가 그리 다르다는 말인가.
‘정신 차려!’
위긴스는가까스로 사고를 멈췄다.
이 이상 나아간다는 것은 원탁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세상을 평화로 끌고가는 것은 원탁의 존재의의다. 그 존재의의를 부 정해 버린다면, 원탁을 부정하는 것 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그는 원탁의 소속이자, 원탁의 핵 심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이 —
그 순간, 화면에 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길.’
방이 엉망이다.
다른 신호였다면 그는 과감하게
연락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울리고 있는 신호는 마스터의 것이었다. 어떤 상황이라 해도 마스 터의 신호를 무시할 수는 없다.
연결 버튼을 누른 위긴스가 화면을 향해 목례를 했다.
“나이트 위긴스입니다.
화면 건너의 마스터는 아무 말 없이 이쪽을 응시했다.
[혼란이 있었던가.]“혼란이 아닙니다.”
[그러면?]“……회의입니다.”
마스터는가볍게 한숨을 내쉬었
다.
“마스터.”
[말하게나.]“우리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에도 슈발리에들은가혹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탁상공론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나이트 위긴스.]“명예? 그런 개 같은 것이 생명 보다 중요하단 말입니까? 마스터께 서 저 상황에 처했다면 삶 대신에 명예를 택하시겠습니까?”
홍분해서 말을 쏟아내는 나이트
위긴스를 보며 마스터가 눈을가라 앉혔다.
[원탁은 홀로 이끌어가는 곳이 아니네.]“네, 압니다. 그곳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곳이지요. 그리고 빌어먹게 비효율적인!”
나이트 위긴스가 피를 토하듯이 말했다.
“모두가 합의하여 틀린 답이 나온 다면, 모두가 그것을 지지했다는 이 유로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건 다수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폭압일 뿐입니다.”
[그 폭압이 세상을 발전시켰지.]나이트 위긴스는 생각했다.
저가면 뒤에는 뭐가 숨겨져 있을까?
검디검은가면은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표정조차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저 말의의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한때 감정을 보이지 않기에 더욱 합리적이라 생각해 온 원탁의 시스 템이 징그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 검은가면 뒤에 괴물의 얼굴이 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
가.
[일단은 흥분을가라앉히게.]“마스터!”
[자네의 기분은 이해하네. 하지만 나이트 르보를 위시로 한 대다수의 나이트들이 한국과의 협상을 꺼려하는 이상, 내 독단으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네.]“그렇다면 마스터는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순간, 마스터의 몸이 움찔했다.
나이트 위긴스는 자신의 실언을 알아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 어 있었다. 오늘 실수를 여러 번 한
다. 이게 다 감정이 격해졌기 때문 이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금 속의 감촉으로도 그의 감정을 모두 억누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긴스, 나는 조율자네. 명령권자가 아니지.]“ 하나……
[협의라는 것은 때로는 너무도 비 효율적이고 비정상적이지. 길고 긴 고뇌의 시간을 거쳐 지독한 답을 내 놓기도 하는, 끔찍한 시스템이지. 인 정하네.]여전히가면 안에서는 무감정한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협의가 우리를 여기까 지 이끌었네. 누군가 홀로 독단으로 원탁을 이끌었다면 조금은 더 효율 적이고 과격한 발전을 할 수도 있었 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파탄에 처했 겠지. 잊지 말게. 협의는 효율을 위 한 것이 아니네. 최악을 피하기 위 한 것이지.]
위긴스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납득할 수밖에 없는 정론이었다. 하지만 그 정론을도저히가슴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이트들은 슈발리에를 버리려
하는 것이 아닐세. 한국과 협상을 하는 것이 원탁을 위험에 처하게 만 들 수 있다는 것이지.]
“그건 겁이 난다는의미 아닙니까?”
[그러면 안 되는가?]마스터가 차갑게 말했다.
[겁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불필요 한 감정이었다면 이미 사라졌겠지. 겁은 인간은 조심스럽게 만들어주 고, 위험을 피하게 만들어주지. 나는 겁쟁이를 싫어하지 않네.]위긴스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스터에게 이리 깊은 실망을 느 낀 것은 처음이다.
[나이트 위긴스, 나 역시 그들이 희생되기를 바라지 않네. 다시 한번 회의를 열어 모두의의견을 조율 해 보겠네. 그러니…… 머리를 식히 고 기다리도록 하게. 자네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은 모두가 몇 번씩은 겪어온 일일세. 자신의의견과 원탁의의견이 어긋나는 상황에서 느끼는 자괴감 같은 것 말일세.]‘그게 아니야.’
위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투정 같은게 아니었다. 이건 원탁에 대 한 근본적인의문이었다.
[원탁의 협의는 절대적이네. 판을 바꾸고 싶다면 다른 이들을 설득하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고 하여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 다음 회의 때는 좀 더 건설적인의견을 기대하지. 나를 실망시키지 말게나.]화면이 퍽, 꺼졌다.
나이트 위긴스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다음 회의?”
다음?
“빌어먹을, 그때는 협상할 포로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무슨 태평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이런 개 같은!”
콰앙!
나이트 위긴스가 잔해가 되어버린 책상을 다시 걷어찼다. 머릿속으로 웃고 있을 나이트 르보의 빌어먹을 면상이 떠올랐다.
“나, 나이트!”
등 뒤에서 들려오는 놀란 목소리 에 나이트 위긴스가 주먹을 꽉 움켜 쥐었다.
‘그래, 움직이지 않는다, 이거지?’
원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자 신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그는 나이 트니까. 그에게는 원탁의 소속 인원을 보호할의무가 있었다. 아직 명 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항명은 아니다.
“비행기.”
“ 예?”
“비행기 표를 준비해라.”
“나이트?”
위긴스가 몸을 쭉 폈다. 차라리 여기까지 와버리니 되레 마음이 편 해지고 있었다.
징계?
박탈?
제멋대로 하라지.
“한국으로 간다. 이 빌어먹을 상황을 해결해야겠어.”
그 여파가 얼마나 끔찍할지는 충 분히 예상이가지만, 여기 앉은 채 썩어가는 것보다 백배는 나을 것이다. 후련한 마음이 되어버린 나이트 위긴스가 냉장고로 향했다.
“하, 하지만 아직 업무가……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할 사람이 있겠지.
하지만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냉장고를 거칠게 열어젖힌 나이트 위긴스가 냉장고 안에서 캔 맥주를 꺼내 뚜껑을 땄다.
“아, 그리고 엘레나의 선물로는 뭐가 좋을 것 같나?”
집사가 머리를 움켜잡았다.
저 인간, 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