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13)
마존현세강림기-514화(512/2125)
마존현세강림기 21권 (15화)
3장 대비하다 (5)
인간에게 있어서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답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고, 사람에 따 라 어렵다고 느끼는 것 역시 다를 테니까.
하지만 뱅상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한가지를 뽑을 수 있다. 아니, 뽑을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뱅상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면 뱅상은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인간에게가장 힘든 것은 바로 ‘선택’이라고 말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조금 힘겨울지 몰라도 그렇게까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선택으로 인해 유불리가 나뉠지는 모르겠 지만, 결국은 노력을 통해 극복해 낼 수 있다고.
‘개소리.’
뱅상이 이를 갈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선택의 결과에 걸려 있는 것이 작다면 말이다.
선택이라는게 정말 웃기는 점은 그 결과에 무엇이 걸려 있는가에 따라서 압박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거기에 걸려 있는 것이 목숨이라면?
게다가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선 택에 따라 부하 수십의 목숨이 일제 히 사라질 수 있다면?
그래도 선택이 어렵지 않다고 할
것인가?
뱅상은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며칠 새 뱅상의 눈두덩이는 퀭하게 파여 버렸다. 그리고 신경은 있는 대로 날카로워져 저 멀리서 들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도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그렇다.
까드득.
뱅상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무 물어뜯어 이제는 피가 날 지경이지 만,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손가락 따위 어찌 되든 알게 뭔가.
당장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손가락이야 뜯어먹든 부러지든 중요 한게 아니잖은가.
“단장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뱅상 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티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도 좀 드셔야 합니다.”
“괜찮네.”
“당분이 떨어지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현명한 판단을
위해서라도 식사를 해주십시오.”
뱅상이 조금 신경질적인 얼굴로 마티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마티 외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뱅상을 마주 보았다.
“후우.”
뱅상이 낮은 한숨을 토해내었다.
“……그래, 자네의 말이 맞겠지.” 입맛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어떻게든 욱여넣어야 한다. 그래야 머리를 쓸 수 있다. 뱅상은 마티외가가 져온 쟁반을 보며 헛웃음을 홀렸다.
쟁반 위에는 잘 구워진 크루아상 과 잘라낸 바게트, 그리고 치즈와
잼들이 올라가 있었다.
‘빌어먹게도 윤리적이로군.’
죄수나 마찬가지인 입장에서 받기 에는 황송한 식사였다. 한가지를 빼면 말이다.
“홍차라니……. 빌어먹을, 이 나라 에는 커피도 없나.”
아마 뱅상이 이곳에서 풀려나 거 리를 돌아보면 본토를 능가하는 커 피의 나라, 대한민국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철 창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였다.
“왜 이놈들은 프랑스와 영국을 구 분하지 못하는 거지?”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군요.”
“……제길.”
뱅상이 고개를 휘휘 젓고는 크루 아상을 집어 들고 입으로 쑤셔 넣었다. 맛이고 뭐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뭉쳐 넣은 진흙을 씹는 느낌이었다.
뱅상은 쟁반 위에 올려진 것들을 마구 입으로 쑤셔 넣고 대충 으적거 려 삼켰다. 그러고는 홍차를 쭉 들 이켜 버렸다.
“잘 먹었네. 신경 써줘서 고맙군.”
“별말씀을요.”
“……오늘인가.”
“그렇습니다.”
뱅상이 초조하게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강진호가 약속한 날이 오늘이다. 조금 뒤면 강진호가 그에게 와서 물을 것이다.
죽음인가, 복종인가.
그건 너무도 끔찍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고래에 있어가장 많이 강요되던 선택이기도 했다. 그리도 수많은 선택이 강요되었음에도 아직 까지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이 질문의 흉악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차라리 심장마비로 죽어버렸으면 좋겠군.”
“단장님.”
“아네. 그런 약한 소리 할 때가 아니라는 걸 말일세.”
뱅상이 자신의 얼굴을 벅벅 문질 렀다.
“단원들의의견은?”
“반반입니다.”
마티외가 심각한 얼굴로 부연했다.
“명예를 지키며 죽음을 택하자고 하는 쪽이 반입니다. 이대로 살아서 돌아간다고 해도 평생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거죠. 그리고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이들을 따르고 사는게 낫 지 않겠냐는 쪽도 있습니다. 딱히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할 만한 상황 이 아니라……
뱅상은 벽에 등을 기댔다.
‘그렇겠지.’
답이 없는 문제였다.
확실하게 답이 있는 문제라면 그 들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순전히 선택의 방향이 다를 뿐 인 문제였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 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결국 선택은 온전히 뱅상에게 맡
겨 졌다.
그리고 그 책임도 온전히 뱅상에게 있을 것이다.
이만한 중압감을 느낀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뱅상은 자신을 짓눌러 오는 부담 에 압사당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본국에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는 건가?”
“만약 연락이 있었다면 지금쯤 우 리에게도 그 말이 전해졌을 겁니다. 더 이상 선택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을 테니까요.”
“으음, 그렇겠지.”
과연 이들이 그렇게 섬세하게 상황을 전해줄까 하는의문이 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는 없는 일 이었다.
“다만, 단장님.”
뱅상이 고개를 들어 마티외를 바라보았다.
“한가지 선택에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말해보게.”
마티외가 비어버린 쟁반을 내밀었다.
“나쁘지 않습니다.”
“음?”
마티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식사에 대한 불만 하나를 이야기 했을 뿐인데 최상급의 음식이 들어 오고 있습니다.”
“나는 잘 모르겠던데.”
“지금 단장님의 입에 뭐가 맛있겠 습니까.”
“그도 그렇군.”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최상급이 라고 할 수 있죠. 애초에 이곳은 산 속입니다. 이리로 오면서 단장님께 서도 보셨겠죠. 이곳은도심이 아닙니다. 그런데 식사에 대한 요청을 했다고 이만한 음식을 공수해 온다
는 건…… 이들이 무뢰한은 아니라는 겁니다.”
“……자네, 정말 프랑스인답군.”
“네? 어떤의미이신지……
“음식을 얼마나 잘 내오느냐를가 지고 상대를 판단하는게 뭐랄까, 스탠다드한 프랑스인의 이미지라고 할까.”
마티외가가볍게 웃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것은 반드 시 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이없는 대답이지만…….
‘확실히 그런 면이 있군.’
중요한 정보이기는 했다. 이들에
게 투항했을 경우, 그 대우가 결코 나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 으니까. 사소한 일로 판단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태도라는 것은 원래 이런 사소한 것에서 판단해야 하는 법이다.
‘안 어울리는 짓을 하는군.’
섬에서 본 강진호의 이미지라면 자신들을 모조리 탄광에다 쑤셔 박 아 말린 쥐 고기나 던져 주면서 혹 사시킬 것 같았는데,의외로 인도적 인 면이 있었다. 이곳에 잡혀온 이 후로 그들은 단 한번도 비인도적인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이 뱅상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강진호가 그저 잔혹한 악마이기만 하다면 고민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지켜본 강진호는 그 리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 여러가지 면이 혼재해 있는, 무척이나 복잡한 자였다.
몇 번이고 봤음에도 그가 어떤 자인지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더없이 잔인한 학 살자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 보 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청 년 같기도 했다.
그 복잡성이 뱅상의 선택을 힘겹게 만들고 있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했을 경우, 강진호가 어찌 반응할지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뱅상은 선택해야 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주어진 시간이 없었으니까.
저벅.
저벅.
느릿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뱅상의 핏발 선 눈이 계단으로 향했다. 지금은 교대 시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려온다면, 그가
누구일지는 너무도 빤한 일이었다.
계단으로 천천히 내려오는 강진호를 보며 뱅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상상은 사람을 자극한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 강진호라는 사람은 너무도 강렬하게 박혀 있지 만, 실제로 따지고 보면 그가 강진호를 대면한 것은 몇 번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외의 시간 동안 그는 강진호 와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뱅상은 언제나 강진호와 조우할 수밖에 없 었다. 실제로 접한 강진호가 그의 머릿속에 만들어놓은 뼈대에 뱅상이
살을 붙여 나갔으니까.
그의 상상력이 머릿속의 강진호를 괴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상상이?’
뱅상은 웃어버리고 싶었다.
아니, 그건 거짓말이다.
그럼 이럴 리가 없으니까.
지금 그가 생각하는 강진호에 대 한 이미지가 오로•지 그의 머릿속에 서 만들어진 거라면, 계단을 내려오는 강진호의 모습과 그가 상상한 강진호의 모습이 완벽할 정도로 일치 하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텐가.
뱅상은 알 수 있었다.
강진호가 특정한 생각을 하고 계 단을 내려온다면 저런 표정을 지을 것 같았으니까.
그 생각이 맞다면 두가지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첫째로, 본국에서는 그들을 구하기 위한 어 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다 죽일 셈이군.’
그들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절대 저런 얼굴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지 금 그들을 미묘하게나마 귀찮아하고 있었다.
잡아는 놨는데 딱히 쓸모가 없는 이들을 대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빤할 것이다.
계단을 내려온 강진호가 창살 앞 에 멈춰 섰다.
뱅상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홀러내 렸다.
오늘의 강진호는 지난번의 강진호 와는 또 달랐다. 굳이 비교하자면, 일전에 이곳에서 봤던 강진호보다는 섬에서 만난 강진호와 더 비슷하다 고 할 수 있었다.
미쳐 날뛰던 강진호가 아니라, 천
천히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던 그 강진호 말이다.
곧 피와 살육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들끓는 심장을 억누르던 그 강진호. 하지만 차 마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어쩌지 못하던, 그 악마 같던 강진호가 그 들의 앞에 있었다.
“이제……
“협력하겠소!”
강진호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뱅상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다, 단장님!”
“그렇게 쉽게!”
되레 뒤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 려왔다. 하지만 뱅상은 그 모든 말을 무시했다.
‘멍청한 놈들.’
저들은 이런 협상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협력을 한다고 해도 얻어낼 것을 최대한 얻어내는 방 향을 원했을 것이다. 그게 현명한 짓이니까.
뱅상 역시 똑같이 생각했다. 협력을 하는 한이 있어도 결코 쉽게 자 존심을 모두 내주지는 않겠다고 말이다.
조금 전까지는.
계단을 내려오는 강진호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의 이자와는 협상이 통하지 않아.’
대화는 인간과 인간이 하는 것이다. 피에 굶주려 있는 마귀와 인간 이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존심 따위가 아니다.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목숨.
지고하고, 신성하고, 더없이 소중 한 그것.
그것 하나를 지킬 수 있다면 모
든 것을 내주어도 괜찮다.
강진호가가만히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도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는 지 살짝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 일그러진 얼굴이 뱅상에게 말로 다 하지 못할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린다 싶던 강진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기, 통역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