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32)
마존현세강림기-533화(531/2125)
마존현세강림기 22권 (9화)
2장 결착 나다 (4)
붉은 눈.
보이는 것은 그저 붉은 눈뿐이었다.
자신의 눈앞에 바짝 대어진 붉은 눈이 세상을 온통 피로 물든 듯한 붉은색으로 만들고 있었다.
오한이 든다.
저 먼 북해의 차가운 호수에 빠 진 것과 같은 섬뜩한 한기가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바토르의의식은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잠이 든 것도 아닌.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닌.
그 어디쯤.
아무리 강건한 그의 육체라고 한 들 이만한 고통을 맨 정신에 버틸 수는 없었다.
육체가 무너진 만큼 그의 정신도
무너졌고, 강진호는 무너진 바토르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 나를 봐라. 바토르.
바토르의의식이 깨어났다.
선명한 목소리.
기이한 일이었다.
그 목소리는 결코 선명하지 않았다.
금속을 마구 긁어내는 듯,야수들 이 집단으로 하울링을 하고 낑낑대는 듯,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 정 돈되지 않은 혼돈, 그 자체였다.
하나 그 끔찍한 혼돈이나 다름없는 소리가 바토르의 내면으로는 너
무도 선명하게 들려온다.
바토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런 후, 보았다.
불꽃을.
혼이 타오르는 듯한 불꽃을 말이다.
붉은, 그리고 푸른.
새하얗고 검은.
그저 어떠한 불꽃이라고 지칭할 수 없는 영혼의 불길이 그의 앞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더없이 신성한 듯 하면서, 더없이 불길한.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불꽃이었다.
바토르의 몸이 천천히 그 불꽃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바토르는 두가지를 느 꼈다.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과, 저 불꽃에 빨려 들어가면 결코 좋은 결 과를 맞이할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저 불꽃이 결코 자신에게 호의를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바토르!
“흐으.. 흐으아아아아아아!”
바토르는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잡을 것도, 막을 것도, 발에 닿는 것도 없다.
그저 무(無).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 에서 자신을 빨아들이는 저 인력(引 方)에 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토르의 육체가 불꽃을 향해 빨려들었다.
‘대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냐!’
자신은 왜 여기에 있고, 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건가.
‘강진호!’
생각나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강진호.
이곳은 그가 만들어낸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바토르의 질린 눈이 그를 끌어당 기는 불꽃으로 향했다.
이 목소리, 이 소름 끼치는 목소 리는 저 불꽃에서 홀러나오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저 불꽃이…….
“강진호오오오오오오오오오 !”
바토르가 절규했다.
모든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에서는 그의 강건한 육체도, 흔
들림 없는 정신마저도 아무런도움 이 되지 않는다.
양발이 로프에 묶여 거꾸로 매달 린 소처럼, 그저도살되기만을 기다 리는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바토르가 떨리는 눈으로 불꽃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명멸하듯 타오르던 불꽃 이 마치 짐승처럼 변하며 그 거대한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내면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감당 할 수 없는 공포에 절규하던 바토르의 몸이 불꽃의 아가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진호오오오오오오오오!”
마지막 단말마를 남기고 바토르의 육체가 완전히 불꽃 안으로 삼켜졌다.
털썩.
강진호는 바토르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거대한 그의 육체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바닥으로 쓰러졌다.
미약한 경련.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항 변하듯 바토르의 육체는 희미한 경
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강진호를 제외한 누구도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홀러가는지를 몰라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강진호가 바토르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이현수를 돌아 보았다.
“지게차라도 불러야 하나? 앰뷸런 스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
그 말투를 듣는 순간, 이현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끝났군.’
조금 전까지의 강진호가 아니었
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경기 일으키게 만들던 그 강진호는 어디 로가버렸는지, 평소와 같이 아주 조금은 멍해 보이는 강진호로 돌아 와 있었다.
이제야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끝 났다는 것을 실감한 이현수의 다리가 그 힘을 잃고 풀리기 시작했다.
휘청거리던 몸을 겨우겨우 다스린 이현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뗐다. 굳이 여기서 분위기를 잡아서 조금 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묻고 싶은 말은 너무
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지 만, 지금은 일단 맞추는 것부터.
“지게차로 저걸 실어 갔다가는 내 일 아침 뉴스에 뜰 겁니다.”
“이쯤 되면 특수 효과 더미로 보 지 않을까?”
“……그건 생각 못했네요. 무척이 나 일리 있는 생각이십니다만……
쓰러져 있는 바토르의 몸을 보고 있으니 확실히 공감이 갔다. 보통 사람이 이 바토르의 몸을 본다면 사람의 시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촬영용으로 만든 더미쯤 이라 생각하겠지.
“그래도 화제는 되겠죠. 사진이 찍혀서 이상한 영화가 제작되고 있 다고 온라인이 들썩거릴 겁니다. 영 추천드리고 싶지 않은 방법이네요.”
“그럼?”
“옮겨야 한다면 탑차를 부르시죠. 그 안에는 들어갈 테니까요.”
“그럼 부탁하지.”
“그런데……
이현수가 본론을 꺼냈다.
“어디로 옮기실 생각이십니까? 만 약 적당한 곳에 묻어버릴 생각이시 라면 굳이 옮기는 것보다는 여기로 굴착기를 부르는게 나을 것 같습니
다만?”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묻을 생각이라면 죽였겠지.”
“살려서 어디에 쓸 생각이십니까?”
“죽여야 하나?”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죽이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 살려둬서 써먹을데가 없으니까요. 홍왕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홍왕은 이자와 계약을 했지만, 강진호씨는 이자와 승부를 벌이셨죠. 성향으로 보건대, 깨어나면 다시 강진호씨에게도전하겠다며 이를 갈 확률이 높
아 보입니다. 귀찮음으로 끝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귀찮음을 방치하 다 보면 언젠가는 사달이 나는 법이 죠.”
이현수는 말을 하면서도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바토르가 당하는 꼴 이 너무도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이 현수였지만, 모든 상황이 끝나자 그를 죽이라 종용하고 있었다.
‘이상한 건 아니지. 그 꼴을 계속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으니 까.’
무슨 꼴을 당하더라도 사는게
낫다는 그의 기본적 지론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세상에는 감당하지 못할 삶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럼 살려도 괜찮겠군.”
“ 예?”
“이제 다시는 덤비지 못할 테니 까.”
이현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진호가 저리 말한다면 사실일 것이다. 그는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 치료하시겠습니까?”
“치료라……
강진호가 혈인이 되어 있는 바토 르를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딱히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아 보 이는군.”
“……저 꼴이 났는데요?”
“그 육체만큼이나 회복력마저 짐 승 수준이야. 이미 심한 상처는 다 아물어 있군.”
“여러모로 사람이 아니군요. 히어 로 무비로 보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걸 때려잡은 당신도 인간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너.”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장다징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장다징이 움찔 했다.
“예!”
“이곳에도 너희가 심어놓은 세력 이 있겠지.”
“저, 저희는 아무도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강진호씨 정도 되는 이를 함정에 빠뜨린다는 것은……
“그게 아니라 한국에 말이야.”
“아…… 예, 그렇습니다.”
“그놈들 불러 이거 좀데려가지. 여기다 두고 갈 수는 없고, 너 혼자 옮기기도 힘들어 보이니까.”
“풀어주시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나?”
강진호가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딱히 대답을 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간다.
“적당한 곳에 처박아두고 며칠이 면의식을 되찾을 거다. 그럼 알게 되겠지.”
장다징은 그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가만히 지켜보 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홍왕이라는 놈에게도 전해.”
“나를 잡고 싶으면 직접 오라고 말이야. 그럼 내가 그 질긴 목숨을 끊어줄 테니.”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의미심장한 눈으로 장다징을 바라 본 강진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저 멀리 보이는 차로 걸어간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총회 차인가?”
“제 차입니다만?”
“음……”
강진호가 조금 미안한 눈으로 차를 바라보았다. 그와 바토르의 격돌 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차가 이미 몇
바퀴는 구른 듯 아주 박살이 나 있 었다.
지금도 그 회색의 아랫부분을 위 로 내보인 채 뒤집어져 있지 않은가.
“일단 세워보지.”
“……예.”
이현수의 목소리에서 살짝 물기가 배어났다.
강진호는 아무 말 없이 차를 살 짝 밀었다. 그러자 차가 빙글 돌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뒤집어졌다.
“살살 좀……
“시동이 걸리려나 모르겠네.”
그래도 나름 관리 잘한 고급 세 단이었는데, 순식간에 폐차장에서 건져온 몰골이 되어 있었다. 과연 이 차를 수리한다고 해서 다시 탈 수 있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찔끔 배어 나왔다.
“……이거 꼭 증언해 주셔야 합니다.”
“증언?”
“비용 처리 꼭 해야 하거든요. 강진호 씨가 말을 해주셔야 이거 비용 처리 할 수 있습니다.”
“강진호씨?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강진호씨?”
강진호는 필사적으로 그를 부르는 이현수의 말을 웃음으로 넘기며 담 배를 꺼내 물었다.
그 와중에 이현수는 울상이 된 얼굴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어보았다. 그러자 용케 시동은 걸렸다.
“별문제 없네.”
“예.가다가 터지지만 않으면 아직은 괜찮겠죠. 겉모습이야 뭐가 중 요하겠습니까. 차는 내면이 중요한 거죠, 내면이.”
사람과는 다르게 말이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천천 히 담배 연기를 빨아당겼다. 폐 속으로 매캐한 담배 연기가 천천히 밀 려 들어오자 끓어오른 열기가 좀가 라앉는 기분이었다.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노곤해지자 이현수가 목소리를 바꿨다.
“괜찮으십니까?”
“문제?”
“……다치지는 않으셨는지.” 강진호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멀쩡하진 않다. 바토르의 겉이 상 한 만큼이나 그의 내부 역시 엉망진
창이었다. 저만한 자를 상대하는데 상처 없이 이긴다는 것은 지금의 그 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처가 거슬리지는 않았다.
지금 그를 거슬리게 하는 것은 조금은 묘한 불쾌감이었다.
바토르를 통해 강진호는 자신의 과거를 보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고 위안해 온 자신의 과거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그 리고 그 폭력 앞에 얼마나 많은 이 들이 고통을 받았을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면피할 수는 없었다. 머리는 속일 수 있어도가슴은 속일 수 없으니까.
강진호 역시 운명과 세상에 피해 자이던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 아무 리 사람이 서는 위치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진다지만, 그저 운이 없었 다는 말로 모든 것을 해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시 익숙해지지 않아.”
“……예‘?”
강진호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먼 교외로 나와서인지 별이가득
한 하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과거 중원의 그것처럼 말이다.
“여전히 말이야.”
짧고도 긴 바토르와의 전투가 그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