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35)
마존현세강림기-536화(534/2125)
마존현세강림기 22권 (12화)
3장 정리하다 (2)
그런 날이 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커피향이 특별하게 느껴지고, 얼굴을 비추는 햇살을의식하게 되는 날.
주변을가득 채우고 있는 공기의 질감을 자각하게 되는, 그런 날이 말이다.
강진호는 멍하니 커피 잔을 바라 보고 있었다. 커피 잔 안을 채우고 있는 커피의 검은 색감이 이상하게 오늘따라 옅으면서도가득 찬 느낌 이었다.
“왜 그러고 있어? 안 먹고?”
“조금 다른 것 같아서요.”
“뭐가? 커피가?”
“ 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강진호가가만히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강유환이 빙그 레 웃으며 말했다.
“커피야 매번 다른게 당연하잖으냐.”
“ 다르다구요?”
“그럼 다르지. 똑같은 커피라도 그날의 온도, 습도, 내리는 속도, 물의 양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법 이지. 그런데 네가 여기에 온 지가 얼마나 됐냐.”
“……오래됐죠.”
“그러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 지.”
“음……”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뭔가 맞는 건 같으면서도 뭔가 납득하기 힘 든 말이었다. 이쪽은 뭔가 감성적으
로 접근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팩트를 들이부우니 시원하기보다는 뭐랄 까, 조금 갑갑한?
“그리고 그저 네 기분이 다를 수도 있겠지.”
“음, 그런 것 같아요.”
“네가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 미각이 있을 리가 없으니 까.”
나른한 오후였다.
시간은 점심때로 넘어가고 있건 만, 아직 손님이 많이 들지 않았다. 넓은 카페 안은 조금은 휑하다는 생
각이 들 정도로 적막했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아니었더라면 조금 더 조용했겠지만 말이다.
“손님이 너무 없네요.”
“많으면 힘들어.”
“그래도 좀 있는게 낫지 않아 요?”
“돈 벌려고 하는 일도 아닌데 뭐 하려고? 적당적당히 버는게 나아. 안 그래도 손님이 너무 몰려서 최근 에 며칠가게 닫았었다. 그랬더니 좀 줄었구나.”
“네?”
강진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버 지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면 안 되냐?”
“그러실 거면 그냥가게를 접으시는게 낫지 않아요?”
“왜?”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시는 것보다야.”
“낭비라니, 인마! 내가 재밌으면 됐지.”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인생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거야. 정말 원하는 것은 이상하게 손 에 들어오지 않지.”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고개가 끄덕여지는게 더 빨랐다. 그의 마음이 강유환의 말에 공감하 고 있었다.
“돈이란 것도 그렇지. 벌어야 한다고 그렇게 아둥바둥거릴 때는 그 리 벌기가 힘들더만, 이제는 돈이고 뭐고 내 할 일 하면서 편히 살고 싶다고 생각하니 자꾸 돈이 들어온 다니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강유환이 불만스레 말하자 강진호가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안다. 돈이 편하게 벌린다
는 소리도 욕먹을 말이지. 세상에 이 몇 푼의 돈이 없어서 힘든 사람 들이 얼마나 많은데. 입 꾹 닫고 살 아야지.”
“그만큼 고생하셨잖아요.”
“고생한 것 없다. 남들 다 하는 걸 고생이라고 하면 욕먹는다.”
아버지의 너스레에 강진호가 웃음을 지었다.
“ 이놈아.”
“ 예‘?”
“사는게 다 그런 거야. 너처럼 세상 걱정 다 짊어진 것처럼 인상 쓰고 살면 올 복도 달아난다.”
“제가 그랬어요?”
“제가 그랬어요오?”
강유환이 손가락으로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런 얼굴을 해가지고는. ‘나는 세상 모든 걱정을 다가지고 있다’ 라는 표정으로.”
“……제가요?”
강진호는 연신 강유환의 지적을 부정했다.
하지만 강유환은 강진호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이 고민이 없을 수가 있나. 다들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사는 거
지. 하지만 그 고민에 묻혀 버리면 결국은 항상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 에 없지.”
진지해진 강유환의 말에 강진호가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한 발부터다.”
“한 발.”
“그래. 한 발을 떼는 것이지. 이 걸 어찌해야 하는가를 고민만 하고 있다 보면 풀리지 않아. 그러니 일 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거지. 그렇게가다 보면 시간이 걸려도 결국은 내가가고자 하는 곳에도달해 있기
마련이야.”
“주변도 보면서 말이죠.”
“그렇지.”
강유환이 손을 뻗어서 커피 잔을 살짝 두드렸다.
“차를 타고 빨리 왔다면 오늘 네가 커피 맛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 네.”
“ 응?”
“네. 당연히 알죠. 제 미각은 완 벽하니까요.”
“……야, 분위기 좋았는데.”
“이런 분위기 질색입니다.”
강진호가 손을 뻗어 커피를 쭉 들이켰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 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가니?”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났어요. 커 피 잘 마셨습니다, 아버지.”
“그래, 이놈아.”
강진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자, 강유환이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흐음.”
살짝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강진호는 무심코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참 단순하군.’
그 몇 마디를 들었다고 속이 시 원해진 것을 보면, 그도 참 단순한 사람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단 한마디가 확 실하게 그의 뇌리에 박혔다.
“한 발씩.”
그래, 한 걸음씩.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하고 진행 하려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교통정리를 하고 싶었지만, 그는
교통정리를 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일의 중요도를 나눌 수 없기 때 문이다.
그의 주변에 산적한 문제, 대부분은 그가 초래한 그 문제들 중에 어 느 것이가장 중요한가.
그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일이 동시에 진행되 었고, 모든 일의 부담이 동시에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일의 중요도를 따지지 않는다.가 장 먼저 해결할 수 있는 일,가장
가까이 있는 일부터 하나씩.
일의 방향성을 정하자가장 먼저 해야 할일이 뭔지 생각났다.
부우우우웅.
강진호는가볍게 액셀을 밟았다.
나름 느긋하게가고 있건만, 12기 통 엔진은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에게는 저 요란 한 엔진음마저 마치 평화로운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저긴가?”
강진호가가만히 차를 몰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잘 닦여 있는도 로를 따라 들어가자, 커다란 호텔
건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안내원이 이끄는 대로 앞쪽에 차를 주차하자, 운전석 쪽으로 주차 요원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주차해 드리겠습니다.”
“아뇨. 사람 태우러 왔어요.”
“아……
주차 요원이 당황하여 주변을 두 리 번거 렸다.
대낮부터 갑자기 들어온 람보르기니를 보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급 호텔인 만큼 이보다 비싼 차도 심심하면 들어온다. 하지만 이 런 새빨간 스포츠카는 쉽게 볼 수
있는게 아니었다.
“손님, 그럼 차를 저쪽으로 조금 옮겨주시겠습니까? 여기는 주차 대 기를 하는 곳이라……
“네.”
강진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옮겼다.
그러자 주차 요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놈이 아니라 다행이다.’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저런 차를 타고 다니는 이들은 하나같이 성 격이 만만치 않다. 차를 옮겨 달라는 당연한 요구에도 두 눈에 쌍심지
를 켜고 ‘내가 누군데 지금니가 나를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는 건데?’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 좋은 졸부라니, 안 어울리는 조합인데……
주차 요원이 저 옆쪽으로 이동하는 빨간 스포츠카를 보며 눈에 살짝 부러움과 질시를 담았다.
물론 그는 착각하고 있었다.
그가 본 이들 중에가장 성격이 좋지 않은 이가 아마 강진호일 것이다.
차를 주차한 강진호가 시트에 등
을 기댔다.
약속 시간이 지금쯤인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호텔 정문에서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노신사가 걸어 나왔다. 희끗한 머리가 그의 나이를 짐작하게 해주지만, 나이답지 않게 딱 벌어진 어깨와 살짝 자라난 정갈 한 턱수염이 댄디함이라는 말의의 미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의 뒤로는 간편한 차림을 한 금발의 여인도 함께하고 있었다.
물론 그 둘은 나이트 위긴스와 엘레나였다.
강진호의 차를 발견한 둘이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강진호 역시 차에서 내려 그들을 맞았다.
“좋은 밤이셨습니까, 로드?”
“……로드?”
어안이 벙벙하다는 강진호의 반응 에 나이트 위긴스가 미소를 지었다.
“체계는 중요한 법이지요.”
“……그냥 강진호라고 부르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로드.”
“아니……”
“호칭은 서로의 관계를 증명하는가장 간단한 방법입니다. 그리고가 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죠. 지금은
제가 로드를 강진호라 부르면서도 제 위치를 정확하게 지킬 수 있을 테지만,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사람이란 느슨해지기 마련입니다. 애초 에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호칭과 관계가 필요한 법이 지요. 로드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다 고 해도 저는 이 호칭을 바꿀 생각 이 없습니다.”
강진호는 아연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이런 걸 좀 겪은 것 같은데?’
소림이 그랬고, 무당이 그랬다.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 모여 있 다는 마교에서야 호칭이나 예의는 대충 스킵하고 지냈다. 그나마 속가 나 속가의 성향이 강한 화산 같은도가도 나름 대화할 만은 했다.
하지만 소림이나 무당 같은, 정말 말 그대로 속세와 거리를 두고 사는 이들은 지켜보는 사람의 숨이 막힐 정도로 예의와 격식을 중시했다.
지금 강진호가 딱 그런 기분이었다.
‘대머리가 되면 느낌이 더 살아날 것 같은데……
승포를 입은 위긴스를 상상해 본
강진호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선 입견인지, 고정관념인지,도무지 승 포를 입은 서양인은 상상이가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한 승포가 아니라 소 림의 황포라면 더더욱.
누군가가 말하기를, 서양인들이 예의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말은 동 양적 사고에서 본 착각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까지 강진호가 만난 한국인들 중 이들처럼 이런 예의에 집착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건 나중에 다시 정리하기로 하
고, 일단은 총회로 들어가시죠.”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로드.”
“……나중에 다시 정리하죠.”
아무래도 강진호의 삶이 위긴스의 삶보다는 오래되었을 테니 말을 낮 춘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겠지만, 이 상하게 껄끄러운 강진호였다.
“그럼……
강진호의 시선이 엘레나에게로 향 했다.
살짝 얼굴을 붉힌 엘레나가 나이 트 위긴스의 조금 뒤에 서 있었다.
“음…..”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차를 타고 갈 생각인데, 제 차가 이인승이라 두 분 다 탈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차를 몰고 올 것을.”
“그런 폐를 끼쳐 드릴 수는 없지 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해결하 겠습니다.”
나이트 위긴스가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엘레나.”
“네, 아버지.”
“들었지?”
“ 네?”
나이트 위긴스가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호텔에 있을래?”
“……”
“아니면 택시?”
“……제 바이크 타고 갈게요.”
“현명하구나. 똑똑해. 역시 내 딸 이야.”
살짝 가까워져 가던 두 부녀 사이에 다시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