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38)
마존현세강림기-539화(537/2125)
마존현세강림기 22권 (15화)
3장 정리하다 (5)
“……누가 와 있다고?”
“나이트 뭐라고 하던데요?”
“나이트……. 나이트 뒤에 무슨 말이 붙는지가 제일 중요한데 말이야.”
뱅상은 살짝 질린 얼굴로 회의실 로 향하고 있었다.
최근 그의 삶은 매우 평온했다.
나름의 고뇌가 없는 것은 아니지 만,의도적으로 머리를 비우고 지금 당장 닥친 일에 몰두하자는 방향을 세운 이후로는 나름 만족스러운 생 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알고 있는 것들을 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특히나 그들에게는 특정한 인원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전수해 서 일정 기간 내에 일정한 수준으로도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이 없었다.
그저 아는 것을 전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군대로 따지자면 땡보직이었다.
이 땡보직이 포로인 그들에게 주 어졌다는 것이 이 총회라는 곳의 민 주성을 말해주는지, 그게 아니면 무 능함을 말해주는지를 정확히 재단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뱅상은 평온함에 젖어 있었다.
본국에서 아직 연락이 없다는 사 실이 때로 그를 우울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알고는 있다. 이제는 연락이 온다
고 해도 달라질게 없다는 사실을. 이미 그는 선택을 했고, 자신의 선 택을 지켜야 한다. 이제 와 그의 조 국과 원탁이 그를 구출하려 한다고 해도 오히려 그 손을 거부해야 할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도 구출의 손길이 이 곳에도달했는가,도달하지 않았는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적어도 지 금처럼 조국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 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어이없는 소식이 전 해져 왔다.
나이트.
그 지고한 이들 중 하나가 지금 총회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뱅상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전쟁 포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본국에서는 그들을데려가기 위한 어떤 협상도 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슬 슬 포기하려는 찰나, 난데없이 국방 부 장관이 적지를 방문해서 포로의 몸값을 협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게다가 이들은 지금 그들을 그 회담장으로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굶주리고 학대받아 처참하기 짝이
없는 포로의 모습을 보여주어 몸값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야 전형적인 수법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뱅상은 굶주리지도, 학대를 받지도 않았다.
되레 슈발리에 특유의 지독한 수 련을 하지 못하고 양질의 식사를 제 공받은 결과, 살이 조금 더 찐 상황 이다.
이런 자신들을 왜 굳이 회담장으로 끌고 간단 말인가.
“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지?” “……어차피 이 양반들, 우리 상 식으로는 판단이 안 된다는 것이미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렇지. 그건 그렇지.”
뱅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의 눈에 회의실의 문이 들어오 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그 리고 반면에 해서는 안 될 말도 많은 것 같았다.
대체 어디까지를 말해야 하고, 말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무정하게 문이 열 렸다.
그러고 나서 뱅상은 깨닫고 말았
다.
그의 모든 생각이 이제 아무런의미가 없어졌음을 말이다.
“……누구?”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인 것 같 군.”
자리에 앉아 있는 노신사의 유창 한 프랑스어를 듣는 순간, 뱅상은 직감적으로 일이 잘못 돌아간다는 걸 알아챘다. 노신사의 옆에 앉아 있는 엘레나만 봐도 이 노신사의 정 체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나이트 위긴스?”
“어떤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 군. 처음 보는군? 아니면 오랜만이 네? 글쎄, 아무래도 좋겠지. 이쪽으로 오게, 슈발리에 커맨더. 자네와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아니, 아니지.”
나이트 위긴스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로드, 제게 회의실 하나를 내주 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로드와 다른 분들 앞에서는 저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 같군요.”
“편한 대로.”
“……허락하신다구요?”
이현수가 딴지를 걸고 나오자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회의실 안에서 암살 계획을 짜지는 않을 테니, 그냥 주지. 그럴 거 면 뭐 하러 풀어놔? 사슬로 친친 묶어두지.”
“으으음..
평소의 이현수였다면 확실히 이렇게 민감하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현수는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옆 회의실을 쓰시 죠.”
나이트 위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현수가 안내해 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간 나이트 위긴스가 마치 주 인인 것처럼 뱅상과 마티외에게 손 짓을 했다.
“들어오게. 엘레나, 너도 들어오거 라.”
“……예.”
일단 상관은 상관이다.
한동안 원탁과의 관계를 끊어야 함에도 뱅상은 예의를 갖춰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유럽에 있으면서도 한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
는군.”
“동감입니다. 인생이라는게 참 오묘한 측면이 있군요.”
솔직한 감상이었다.
‘그리고 이 사람과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도 말이야.’
나이트 중 하나가 이곳에 왔다고 했을 때,가장 예상할 수 없는 이가 바로 나이트 위긴스였다.
왜냐면 그가 나이트 르보와 앙숙 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들은 모두가 공유하는 사 실이었으니까. 나이트 르보를 모신 슈발리에의 뱅상이 그 사실을 모를
리는 없는 것이다.
구 할의 확률로 나이트 르보, 아니면 나머지.
나이트 위긴스일 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을 열기 전까지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나이트 위긴스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아이러니를 참지 못한 뱅상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의를 따질 겨를이 없군요. 대체 상황이 어떻게 홀러가는 것입니까?”
“음, 이해할지는 모르겠군. 그리고
이 말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르겠 어. 그냥 간단하게 사실만을 이야기 해 주지. 원탁은 그대들을 구출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네.”
“……예?”
“변명을 하자면, 적에게 잡힌 이 들을 협상을 통해 빼오는 것이 되레 그대들의 명예를 해칠 수 있다고 여 겼기 때문이네.”
뱅상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해한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심지어 그들 사이에서도 그런의 견이 팽팽할 정도였으니까. 하지 만…….
“왜 그런 말이 나오고, 그런의견 이 나왔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선택은 우리가 하게 해주 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동의하는 일이야. 일처리가 어설 펐지. 다만, 마스터도 어쩔 수 없었을 걸세. 그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이트 르보가 워낙에 강경했으니 까.”
뱅상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진실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납득하고 있었다. 나이트 르보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마음이 흔들리고 있지만, 뱅상은의연한 자세를 잡았다. 이 사람 앞 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만큼이나 뱅상과 나이트 위긴 스의 관계는 미묘했다.
“그렇군요. 그럼 그 사실을 전해 주러 오셨습니까? 이 먼 곳까지?”
“그럴 일은 없겠지. 내가 자네들 에게 전해줄 소식은 따로 있네.”
“물어도 되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부로 자네들은 자유 일세.”
“ 예?”
“자유란 말이지. 이곳에 머무르든, 아니면 원탁으로 복귀하든, 그게 아니면 프랑스로 돌아가 슈발리에가 아닌 그저 자신으로 살아가든…… 모든 것이 자유네.”
“이, 이들이 우릴 풀어준다구요?”
“그렇다네?”
“어째서?”
“간단하지. 이제 필요가 없으니 까.”
나이트 위긴스의 말이 무엇을의
미하는지 이해한 뱅상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나이트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서, 설마?”
“그래, 그 설마네. 내가 여기에 남기로 했네. 그러니 자네들은 그만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하게.”
뱅상이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차이커창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는 수많은 실패를 했다.
최근에 그가 한 실패만 쭉 나열 하더라도 그의 무능은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는 수준이었다.
실패에는 책임이 따른다.
차이커창은 언제든 그 책임을 질 용의가 있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책임이 아니다. 그를 내려다보는 이가 그에게 보이는 실망의 시선이 었다.
실패가가져오는 벌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저분이 그에게가지고 있는 신뢰
가 깎여 나간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 없는 형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 었다.
그가 이번에 저지른 실패는 지금 까지의 그 어떤 실패보다 컸다. 그 럼에도 그의 마음은 차분하기 그지 없었다.
“……졌다고?”
“그렇습니다.”
인정해야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차이커창은 상황이 이리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현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니 왜 불안에 떨겠는가.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벌어졌는데.
“바토르마저……
홍왕의 목소리 역시 담담했다.
“그래, 그렇겠지. 이리될 것 같았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
홍왕이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실망이 아니었다. 인정이었다.
강진호.
한국을 지배하는 그 무인에 대한 인정이 두 사람의 사이에 흐르고 있 었다.
“바토르의 상태는?”
“살아 있다고 합니다.”
“무르군.”
홍왕의 혀를 찼다.
“이보게, 차이커창.”
“예, 홍왕이시여.”
“내 처음으로 자네에게 진심으로 묻겠네.”
“하명하십시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차이커창이 입술을 핥았다. 저 질 문은 듣는 순간, 그의 입술이 급속도로 말라가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강진호는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당연 히 해결될 거라 생각할 때마다 상상 이상의 모습으로 우리의 계획을 무 너뜨렸습니다.”
“그래, 그랬지.”
“그럼 이제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를 왕들 이상의 위험 존재라 규정 하고 리스크를 감안한 채 총력을 기 울여 쓰러뜨리든가, 그게 아니면 화 친을 하는 것입니다.”
“ 화친?”
“ 예.”
차이커창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그를 적대시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는 딱히 이쪽을 적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달려든 이들을 처리했을 뿐이고, 지금까지 이쪽에게 해를 끼
치기 위해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그랬지.”
“그가 마인이기에 당연히 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여겼습니다만…… 그의 행동 패턴은 지금까지의 마인들 과는 다릅니다. 그러니 화친의 여지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 말을 끝낸 차이커창은 눈을 슬쩍 감았다.
그는 지금 무리한 말을 하고 있 었다.
홍왕은 마인을 경멸한다. 그리고 마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홍 왕에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마인
과 손을 잡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마인과는 다르 다는, 거리도 안 되는 여지 하나를 들고 말이다.
노한 홍왕의 반응이 돌아오더라도 감내하겠다는 심정이었지만,의외로 홍왕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적으로 삼는 것도 좋다. 화친을 하는 것도 좋다.”
“ 예?”
“하나!”
홍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역시 사람과 사람의 일. 귀로 듣고 서면으로 받은 것만으로 판단
하지 않겠다. 차이커창!”
“예, 홍왕이시여!”
“강진호와 조우할 방법을 찾아 라.”
차이커창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떠졌다.
“내 이 두 눈으로 그가 어떤 자인 지 확인해야겠다.”
결코 움직이지 않을 거라 여겨지 던 중국의 왕이 그 무거운 몸을 일 으켰다.
그 여파가 세상을 얼마나 뒤흔들 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