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4)
마존현세강림기-54화(54/2125)
마존현세강림기 3권 (4화)
1장 – 졸업하다 (4)
“안녕이고 뭐고, 누구냐고!”
신경질적인 목소리.
한세연은 당황한 듯 머리를 긁었다.
“별건 아니구요, 이것들 안 쓰는건데 할머니 쓰실일 있으면 쓰시고, 버리실 거면 고물상에다……
“염병할, 누가 거지인 줄 알어! 다가지고가!”
한세연이 울상을 지었다.
“할머니, 그런 뜻이 아니구요.”
“가!가라고 했지! 물 퍼맞기 전에가지고 돌아가!”
잔뜩 역정을 낸 할머니가 문고리를 잡고 힘주어 당겼다.
쾅!
방문이 거칠게 닫힌다.
한세연은 질린 얼굴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어쩌지?”
강진호는 태연하게 말했다.
“놓고가자.”
“저리 싫어하시는데.”
“괜찮아.”
강진호는 손수레로 다가갔다.
“대문이 좁아서 수레를 안에 못 넣어.”
“대문 앞에 내려놓고가면 돼.”
“그래도 될까?”
“어차피 파실것 같은데, 괜히 안에 넣으면 나중에 팔때 옮겨야 해서 좋을일 없어.”
“응, 그래. 그럼 놓고가자.”
강진호는 수레에 실은가전제품들을 대문 앞에다 내려놓았다. 커다란가전제품 등은 강진호가 날랐고, 한세
연은 자기가 옮길 수 있는 작은 TV 등을 부지런히 날랐다.
“그런데 왜 화를 내시는 걸까?” 강진호는 무심하게 답했다.
“싫으시니까.”
“ 뭐가?”
“사람이.”
“사람이 왜 싫어?”
강진호는 무슨 말로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람이 왜 싫으냐니.
싫은 것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기에는 한세연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정확하게는 사람 때문에 받는 상처가 싫으시겠지.”
“그런가?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배척하고 살아? 같이 살아야 지.”
“혼자인게 더 편할 때도 있어.”
한세연은 강진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번씩 보면 멍하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강진호였다. 때로는 정 말 생각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떨 때는 이런 말을 아무렇 지도 않게 한다. 마치 자기도 경험해 봤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저러신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래도 우린도와주러 온 건데.”
“사람이 상처 받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 언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
“모르는 사람이 주는 상처는 상처가 아니야. 알기에 상처가 되는 거야. 믿었으니까.”
한세연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무심 하게 하는 말이지만, 그 속에 이상 하게 무게감이 있었다.
“그래서 살갑게 다가오는 사람이 더 무서운 거지. 이해하기 힘들겠지 만……
“알 것도 같고.”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니까.
“그래도 슬프다. 호의를 호의로 받 아들이지 못한다니.”
“그런게 아냐.”
“아니라니?니가 그랬잖아.”
“말했잖아. 그냥 두려운 거라고.”
“뭐가 달라?”
“호의는 알고 있어. 하지만 그 호의 에 반응하는게 껄끄러운 거야.”
“무슨 뜻이야?”
“다 내렸어?”
“응.”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시고가자.”
“뭔 소리야?”
“저거.”
강진호가 대문을가리켰다.
“어?”
대문 안에는 어느새 작은 쟁반에 대 접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어! 이거 뭐지? 이거, 식혜잖아?” 어느새 할머니가 식혜를 내놓은 모양이었다.
당장 꺼지라고 소리쳤지만, 그 무거 운 짐들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약해진 모양이었다.
“마시고가자.”
“ 헤에?”
강진호와 한세연은 대접에 담긴 식 혜를 마시고 빈 그릇을 다시 쟁반 위에 올려다 두었다.
“이런 거구나.”
“호의를 모르는게 아냐. 그냥……
“아, 부끄러운 거구나.”
“……됐다.”
강진호는 설득을 포기했다.
“가자.”
“응.”
한세연은 대문 안을 향해 크게 소리 쳤다.
“할머니, 다음에 또 올게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 세연은 이곳에 올 때보다 더가벼운 마음으로 대문을 나설 수 있었다.
“근데 넌 왜 여기 와 있어?”
“할일이 없어서.”
“ 헤?”
“왜?”
“할일이 없다니!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12년 동안 못한 걸 이 기회에 마저 다 해야지! 얼마나 바쁜데 할일이 없어?”
“음……”
“진짜 할일이 없어? 하고 싶던 것도 없어?”
“딱히.”
“……너 진짜 재미없게 산다.”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재미가 없다?
그건 한세연 같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할일이 없고 오늘 무언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녀는 결코 알지 못할 터였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조금 지루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강진호에게는 더없이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언제 깨어질까 두려울 만큼.
“여행이라도가보는게 어때?”
“여행?”
“그래, 여행. 너 자전거 좋아하잖아. 다른 애들은 이 기회에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돌고 한다던데?”
“그래?”
“아, 그건 여름이다. 이 날씨에 그러 다가는 얼어 죽기 딱 좋겠다.”
“여행이라……
강진호는 생각에 잠겼다.
여행이라…….
그러고 보니 살면서 여행이라는 것을 단 한번도가본 적 없는 것 같 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걸 다니나?”
“무슨 말이야?”
“여행이라는 거.”
“여행? 자주들가지. 패키지로가기도 하고, 배낭 하나 메고 돌기도 하 고.”
“그렇군.”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여행이라…….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왜? 생각 있어?”
“지금은 안 돼.”
“왜?”
“할일이 있어.”
“뭐? 면허 따는 거?”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너 세 번째 떨어졌다며?”
“정인규냐?”
“너 진짜 멍청하다. 어떻게 하면 운 전면허를 세 번이나 떨어지냐? 남들은 한번에 척척 붙던데.”
“……”
“뭐, 능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거지.”
강진호의 이가 살짝 맞물렸다.
“가자. 넌 그냥 자전거나 타고 다녀. 넌 차는 평생 못 몰겠다.” 강진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넌 있어?”
“ 뭘?”
“면허.”
한세연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 갔다.
강진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건 차라리 묻지 않는게 나았을 말이다.
“요즘 면허 없는 사람도 있어? 한번에 못 붙는게 더 이상한 것 아 냐?”
한세연이 지갑을 꺼내 앞으로 내밀 었다. 지갑 안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면허증이 보였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면허증이 눈부시다.
강진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어, 언제?”
“난 수능 끝나자마자 학원 등록해서 바로 땄지. 어쩌나? 난 면허가 있는데. 왜? 차 태워줄까?”
“……”
“자,가자. 이제 돌아가야지.”
강진호가 발을 멈추더니, 한세연에게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으, 으응?”
갑자기 얘가 왜 이러지?
한세연이 당황하여 뭔가 말을 하려는 찰나, 강진호가 수레의 손잡이를
한세연의 손에 쥐어 주었다.
“끌고가.”
“너, 지금 나한테 이거 끌라는 거야? 그거 좀 놀렸다고?”
“비어서가벼워.”
그 말을 남기고 강진호는 몸을 돌려 저벅저벅 걸어갔다.
“야! 그래도…… 잠깐만, 너 어디 갈려고?”
“일이 있어.”
“뭔데?야, 안 돼! 이제 나랑 놀러가야지!”
“다음에.”
“야! 어디가! 어디가냐고!”
한세연은 뒤도 안 돌아보고 멀어져가는 강진호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 었다.
“남자가 소심해서는.”
* * *
“예, 회장님. 그 부분에 대해서
조규민은 창백해진 얼굴로 보고 전 화를 하고 있었다.
“예. 아무래도 이사장과 교수들을 설득하는 것이…… 예? 아, 회장님 께서 직접 나서시면 물론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예……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카랑카 랑한 목소리가 식은땀을 자아낸다. 최근에는 최소 하루에 한번은 직접 통화를 하면서 보고를 하고 있지만, 황정후와 통화를 한다는 것은 좀체 익숙해지기 힘든 일이었다.
한참 동안 보고를 올린 조규민이 힘 겹게 전화를 끊었다.
어제 강진호가 모는 차를 탔던 후유 증이가시지를 않고 있었다.
단 한 시간 정도 보조석에 타고 있 었을 뿐인데 열두 시간 동안 롤러코
스터를 탄 것 같은 지독한 공포가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롤러코스터가 차라리 낫지. 그건 적어도 죽지는 않으니까.” 롤러코스터는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 반면, 강진호가 모는 차는 언 제 죽을지 모른다는 거대한 단점이 있었다.
“으…… 휴가를 내야겠어.”
그동안 단 한번도 휴가를 얻은 적 이 없었으니, 아마도 문제는 없을 터였다. 강진호도 방학이라 학교에 안 나오니 그가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업무 공백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최대한 휴가를 내서 강진호가 운전면허를 딸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그래야 그의 수명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건 산재 취급도 안 해줄 테니 까. 내 목숨은 내가 챙겨야 해.” 조규민은 결심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이 난 김에 바로 본사에 들러 휴가를…….
쾅!
그 순간, 문이 거칠게 열렸다.
“……가, 강진호씨?”
그곳에서 굳은 얼굴을 한 강진호가 조규민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꿀꺽.
조규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저 무표정한 얼굴 사이로 미미한 분 노가 느껴진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강진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가죠.”
“ 예?”
“ 연습.”
조규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무, 무슨 연습 말입니까?”
강진호는 결심을 굳힌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는 붙어야겠어요.”
“그, 그야……
“내일이 시험이니까, 오늘 새벽까지 계속 연습해야겠어요. 바쁜 일 없으 시죠?”
“아니, 그건 아버님도 계시고……
“가게 때문에 바쁘세요.”
“ 친구분들도.”
“경력자가 동승해야 하니까요.”
“알고 있는 운전 경력자가 저 하나 밖에는 없는 겁니까?”
“하나 더 있죠.”
“그럼 제발 그분께 부탁을……
“음……”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이상은 민폐인 것 같기도 했다.
강진호는 결국 자신이 아는 또 한 명의 운전 경력자에게 전화를 했다. 뚜르르르.
[웬일인가?]“아, 회장님?”
“으아아아아아아아아! ”
조규민은 미친 듯이 달려가서 강진호의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회, 회장님!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친구들, 싱겁기는.]“그럼.”
조규민은 전화를 끊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회, 회장님이 강진호씨 차를 탔다가 심장마비라도 오면 재경 그룹이 어떻게 되는 줄 알기나 하는 겁니까?”
“왜 제 차를 타는데 심장마비가 오죠‘?”
“왜 회장님입니까?”
“아는 경력자가 이제 그분밖에 없어요.”
조규민은 하늘을 저주했다.
왜 평온하던 그의 삶에 이런 재앙 덩어리를 내린단 말인가.
자신이 대체 뭘 잘못했다고!
‘교회를 나가자. 아니면 절을 찾아가든가. 이건 신앙의 힘이 필요해.’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타겠습니다.”
“그럼 준비해 주세요.”
조규민은 눈물을 홀리며 지갑을 꺼 냈다.
지갑에 아내 사진이 보였다.
‘미안, 연지야. 나 이제 집에 돌아가 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보험은 들어
뒀으니 행복해야 해.’
“뭐하십니까?”
“아닙니다……
조규민은 그렇게 강진호의 차에 또 한번 오르게 되었다.
다음 날, 조규민은 회사에 휴가계가 아닌 병가계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