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47)
마존현세강림기-548화(546/2125)
마존현세강림기 22권 (24화)
5장 평화롭다 (4)
부르르릉.
엔진음이 나직하게 울렸다. 강진호는 박유민을 태우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요즘 바쁘지 않아?”
박유민의 말에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바쁘면 너하고 이러고 있겠 냐.”
“바빠도 그럴 것 같은데?”
“음….”
강진호는 부정하지 못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해도 박 유민이 부탁한다면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리 바쁘 지는 않아.”
“신경 쓸 일이 많은 것뿐?”
“……어떻게 알았어?”
“그래 보이니까.”
박유민이 고소를 지었다.
이 둔감한 친구는 자신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모른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강진호는 무표정한 사람이다. 하지만 강진호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그 리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 무표정함 속에 미묘한 표정이 숨어 있으니까. 함께 지낸 시간이 오래 지나다보면 다들 알게 되는 것이다.
“복학 준비도 해야지.”
“준비랄게 뭐 있겠어. 어차피 하는 건데.”
“그래도 간만에 다시 공부하는 건
데.”
“복학을 꼭 해야 하나도 고민 중 이야.”
“응?”
강진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신경 쓸게 많고 할일이 많은데 거기까지 시간을 뺐기 면 정말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그 래서 일단은 고민하고 있는데, 아무 래도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면 집에 서 반대가 심할 것 같아서 껄끄럽 네.”
“야. 학교를 왜 그만둬. 보통 대 학도 아니고 재경대학인데.”
“취직할 것도 아닌데.”
“……어.”
박유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기야 강진호가 지금에 와 평범 한 회사에 평범하게 입사해서 살아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음. 그래도 학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왜?”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그건 이유가 안 돼.”
“그렇지. 그런데……
잠시 이유를 고민하던 박유민이
입을 열었다.
“기회의 문제 같아.”
“기회?”
“응. 학교를 나왔다는 것만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가짓수가 넓어지는 거잖아. 그가능성을 포기한다는 건 아쉬운게 아닐까?”
“어차피 취직할 거 아니라니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혹시 알아? 네가 그런 것과 관련된 일을 해야 할지.”
“음…..”
“그리고 너, 어차피 재단 운영할 거라며.”
“그렇지.”
“물론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너 어차피 경영학과잖아. 그럼 학교에서 배우는게도움이 되 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맡아 해주는 것과 내가 아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맡아 해주는 건 분명 다를 테니까 말이야.”
“그건 생각 못했는데.”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는게 이런 이유 때 문일 것이다. 혼자서는 놓쳤던 부분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으니까.
“그건 일단 다시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그런데 지금 네가 내 걱정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원래 그런 놈인 건 알지만 지금은 네 생각만 해라. 제일 중요한 시기 같은데.”
“그래야지.”
박유민이의지를 다졌다.
강진호의 말이 맞다. 지금은 박유 민 스스로를 챙기는게 우선이었다. 그가 바랐던 삶의 로드맵에 커다란 암초가 나타난 상황이었으니까. 우 선은 본인의 앞가림부터 해야 다른 이를 걱정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열심히 할게.”
“그래.”
강진호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박유민의 이런 면이 좋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거두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다. 그 미묘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전부터 그 어려운 일을 자연스 레 해내고 있는 박유민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자기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해내면
서도 아이들이 힘든 일이 없는지를 언제나 신경 쓰고, 그 와중에 친구 들 걱정까지 하고 있다. 그 일 하나 하나가 힘에 겨운 일이건만, 그 와 중에도 불만 한마디 없지 않은가.
“여기 세워주면 돼.”
“안 올라가고?”
“중간에 들릴데가 있어서. 슈퍼 좀 갔다 갈 거야. 애들 과자라도 사가야지.”
“그럼 슈퍼 들렀다 다시 타고가 면 되지.”
“나도 운동 좀 하자. 이러다가 다 리 퇴화하겠다.”
박유민의 너스레에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럼 하고 싶은 대로 해.”
슈퍼 앞에 차를 세운 강진호가 박 유민을 배웅했다. 박유민이 손을 흔 들며 슈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강진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 박유민을 보고나면 힘이 난다.
‘디딘 곳을 봐야겠지.’
아버지의 말은 그에게 금과옥조가 되었다. 나아가는 것에만 정신이 팔 려서는 안 된다. 나아가는 와중에 그의 주변을 확실히 보고, 내가 디
딘 곳이 어디인지를 확실히 생각해야 한다.
강진호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죽겠네 진짜.”
한진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입시 제도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 지는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한 새디스 트가 틀림없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하면 수험생들이 좀 더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입시 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냈을 것
이다.
그게 아니면 사람이 이리 피가 마를 수가 있는가.
분명 아는 문제 같은데 보면 또 다르고, 이건 틀림없다 싶었던 것이 당연하게 틀려 있다.
“문제가 교묘한 건가, 내가 머리가 나쁜 건가.”
“후자 아닐까?”
“너 죽는다, 진짜.”
한진성이 고개를 들자 조미혜가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틀렸던 문제를 그렇게 계속 다시 틀리는 것도 굉장한 재주지. 오빠를
보고 있으면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 화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어.”
“원숭이가 아니고 유인원이거든?”
“그런 걸 알고 있는 걸 보면 인간은 인간인데 말이야.”
“이게 진짜!”
한진성이 벌떡 일어나자 조미혜가 혀를 쏙 내밀었다.
“왜? 때리게? 때리게?”
“하아.”
한진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그래도 좀 나아지긴 했어. 희망을가져.”
“사람 적당히 놀려라.”
“아니. 정말 나아졌다니까?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진짜?”
“개미 눈곱만큼?”
“이게 뒤질라고, 진짜!”
한진성이 조미혜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는 순간 문이 열리더니 강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한진성. 제발 내가 예습 좀 하라 고 했지?니가 그러니까 성적이 안 오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이, 이건 억울합니다. 저는 진짜 공부 하려고 했거든요.”
“너는 항상 억울해. 그게 문제야.”
“아니, 진짜 이번에는 억울하거든 요?”
“됐고. 진로 상담실로가봐.”
“네‘?”
“진로 상담실로가보라고.”
한진성의 눈이 혼들렸다.
“헐? 저는 대학 진로가 어려운 겁니까?”
“뭔 소리야 임마?”
“아니면 수업도 재끼고 진로 상담 실로 부를 이유가 없잖아요. 저 그 냥 공장 갈까요?”
“강진호씨 오셨다.‘
“아……”
한진성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 고는 주춤주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럼 선생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될 수 있으면 수업 끝나기 전에는 오지 말고.”
“ 헐.”
한진성이 눈을 꿈뻑대다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왜 저러냐. 쟤는?”
강사의 말에 조미혜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열심히 해요.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그래, 그래. 내가 말실수를 했구 나. 미혜 앞에서 진성이 욕하면 안 되는 건데.”
“제,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 요?”
“그래. 그래. 수업 시작하자. 아이 고. 서러워서 장가라도 얼른가야 지.”
“그게가고 싶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죠?”
“……수업 시작하자.”
말을 돌리는 강사를 보며 피식 웃은 조미혜가가만히 문 쪽을 바라보 았다.
‘또 징징대지 말아야 할텐데.’ 걱정이 앞서는 조미혜였다.
“어. 형?”
“응.”
강진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진성을 보며 손을 들었다.
“오랜만이다.”
“예, 형.”
한진성은 강진호를 보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서인 지, 강진호가 최근에 바빠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얼굴 한번 보려고. 물어볼 것도 있고.”
“아, 네.”
한진성이 조심스레 강진호의 앞에 앉았다.
‘이런 상황이면 이상하게 긴장된 단 말이야.’
보육원에서 여럿이서 함께 있을 때는 뭔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순둥한 형의 느낌인데 이렇게 둘이 있을 때는 느낌이 확 달랐다.
둘이서 마주하면 이상하게 긴장되
는 느낌이었다.
강진호에게만 있는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딱히 저쪽이서 이쪽을 겁 박한다는 느낌이 없음에도 한진성은 미묘한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요즘 어때?”
“네?”
“공부는 잘 되가?”
한진성이 미묘한 표정으로 강진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잘 되어가요.”
“별일이네.”
“뭐가요‘?”
“일단 우는 소리부터 하고 시작할
줄 알았거든.”
“제가 세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음…..”
한진성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 뭡니까? 그 반응은?”
“아니. 뭐.”
강진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네가가장 연장자라서 네가 말을 해주는게 나을 것 같아 서 불렀다. 어때? 불편한 점은 없 고‘?”
“공부를 너무시키는게 불편하기는 하지만 별 문제는 없어요.”
강진호는 한진성의 교육 평가표를
열었다.
의외로 학업 욕구가 높다는 평가가 있었다. 아직 공부를 시작한 시 간이 짧아서 큰 진척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이해도가 빨라서 큰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본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한진성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한다고?”
“……다 열심히 해요. 저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래. 그럼 다행이다.”
말이 여기서 끊겨 버리자 뭔가 불 만족스러웠는지 한진성이 입을 열었
다.
“그리고……
“응?”
“솔직히 이런 기회 주신 것에 정 말 감사하고 있어요.”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말을 듣는 건 정말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나 그 말이 한진성에게 서 나왔다는 것이 더더욱 어색했다.
“공치사는 됐다.”
“공치사가 아니라요.”
한진성이 강진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솔직히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예
요.”
“과해?”
“네.”
한진성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아직 어리지만 투자는 결과를 보고 하는 거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솔직히 그런 식으로 보자면 이 건 잘못된 투자거든요.”
“왜?”
“들어간 돈을 회수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왜 회수를 못해. 너희가 잘 해주 면 되지.”
“에이, 형.”
한진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애들 머리 빤하잖아요. 이런다고 뭐 그리 대단한 애가 나오 겠어요.”
강진호가가만히 한진성을 보며 말했다.
“대단한 애 나오라고 하는 거 아 냐.”
“ 네?”
“내가 바라는 건 너희가 참지 않는 거야.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당 연히 뭔가를 감내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려는 거지. 그것만으로도가치 있는 일이야.”
한진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이거 부담돼요.”
“그럼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갚 아. 그때는 내가 빈털터리가 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에이, 형이요?”
“그럴 수도 있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한진성이 어이없다는 듯이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하. 네, 좋아요. 그럼 그때는 제가 형 먹여 살려 드릴게요.”
“말만 들어도 고맙네. 그런데 그 러려면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
지?”
“……취소해도 되나요?”
“안 돼, 임마.”
강진호와 한진성이 마주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