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68)
마존현세강림기-569화(567/2125)
마존현세강림기 23권 (20화)
4장 설득하다 (5)
택시를 잡아 주영기를 태워 보낸 강진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담배 끝에 불을 붙이고가만히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뱉는다.
“택시 타야지.”
“뭐 얼마나 된다고. 걸어가면 돼.”
“그래도 택시 타는게 낫지 않 아‘?”
“진호야, 돈이라는 건 쓰다 보면 없어지는 거야. 무조건 짠돌이처럼 사는 것도 안 좋지만, 아낄 건 아껴야지.”
“……이런 건 안 아껴도 돼.”
“됐어. 그보다 좀 같이가자. 하 고 싶은 말도 있고, 오랜만에 산책 이나 좀 하게. 술도 깨야 해.”
“음……”
강진호는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택시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박유민에게 택시를 타라고 한 것은 번화가를 걷다 보면 박유민을 힐끔거리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악의는 아니다.
만약 박유민의 걸음걸이를 비웃는 이들이 있다면 강진호는 절대 그놈 들을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힐끔거림은 반쯤은 본능적 인 것이었다.
나와 다른 이를 보는 신기한 시 선.
악의 없는 그 시선이 때로는 사
람을 더 힘들게 한다. 그리고 박유 민은 평생을 그런 시선을 받으며 살 아온 것이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강진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가자.”
하지만 박유민은 딱히 그런 걸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정말로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신경 쓰는 티를 내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강진호의 눈에 박유민은 참 강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좀 서늘해졌다.”
“음,가을이지.”
“여름에는 이렇게 걸어서 어디 간 다는 생각도 못했어. 나는 더위에 너무 약하거든. 인류 최고의 위인은 에어컨을 발명한 사람인 것 같아.”
“ 인정한다.”
둘은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 누며 보육원으로 향했다. 한참 그렇게 걷다 보니 예전 생각이 났다.
“저쪽 골목이다.”
“응?”
“예전에 네가 날 태우고 다니던 길이 저쪽이야.”
“그러네.”
강진호가가볍게 웃었다.
그때는 그의 자전거 금동이가 박 유민의 발이 되주었다. 달동네까지 올라가는게 힘들 수밖에 없는 박유 민을 위해서 강진호가 그를 항상 태 워줬으니까.
“돌이켜 보면 너는 그때부터 이상 했어.”
“음?”
“걸어서도 올라가기 힘든 길을 자전거로 어떻게 올라가냐? 그것도 나를 태우고.”
“다리가 튼튼하면 돼.”
“……네 기준이면 세상에 다리가 튼튼한 사람은 없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박유민이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강진호도 자연스레 박 유민처럼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하늘.
시커먼 물감을 칠해놓은 것처럼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진호야.”
“응‘?”
“원장 선생님이 지금 나를 보시면 잘하고 있다고 해주실까?”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원장 수녀님.’
이제는 조금 낯설어진 이름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름을 들을 때마 다 살아난다. 그분의 말씀이, 그리고 그분의 얼굴이, 그리고…….
그 손길.
강진호의 손을 마주 잡은, 그 앙 상하던 손의 감촉이 화인처럼 강진호의 기억에 박혀 있었다.
“잘하고 있다고 하실 거야.”
“정말?”
“그래, 그러실 거야.”
설사 박유민이 잘못된 길로 빠져 들고 있어도 원장 수녀님은 그를 나
무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가만히 손을 내밀어 박유민을 끌어당겼겠 지.
강진호는 그녀처럼은 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자애로움을 모아놓은 것 같은 원장 수녀님은 그에게 있어 서는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녀처럼은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리될 필요는 없어.’
그가 원장 수녀님과 같아질 수는 없겠지만, 원장 수녀님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마음이 아닌 몸으
로, 그리고 생각으로.
방향은 다르지만 말이다.
“원장 수녀님은 네가 어떻게 되길 바라셨는데?”
“음……”
박유민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원장 수녀님을 떠올리기만 해도 수많은 기억들이 떠오르지만, 이 질 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거야.”
강진호의 말에 박유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야?”
“그분은 네가 어떤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으셨어. 그저 네가 잘살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 셨겠지.”
“그런 분이야.”
“그래, 그러네.”
박유민의 목소리가 아련해졌다.
박유민에게 있어서 원장 수녀님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리 고 그 어머니가 그만큼이나 훌륭한 분이셨는데, 어찌 그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호야, 나는 말이야……”
“음.”
“내가 고아라는 사실이 한번씩은 너무 힘들었어.”
“그래, 이해한다.”
“그런데 한번씩은 참 그게 좋을 때도 있었어. 내가 고아가 아니었으 면 이 보육원에 오지 못했을 거고, 원장 수녀님을 만날 수 없었겠지. 그리고 아이들도 못 봤을 거고.”
“음…..”
강진호는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이건 주변 사람이 긍정할 수 있
는 일이 아니다. 그저 들어주는 것이 강진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내 스스로가 바르거나 대단 하다고 자부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보육원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지금처 럼은 될 수 없었을 거야. 아마 다리가 불편한 걸 평생 원망하며 살았겠 지.”
“넌 그럴 놈이 아냐.”
“아니, 맞아. 내가 너 만나기 전 에 얼마나 음침했는지 기억 안 나?”
“음침했나?”
“기억력하고는.”
박유민이 피식 웃었다.
그는 강진호가 좋았다.
그의 인생을 바꿔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안겨준 그의 친구는 단 한번도 그 일로 생색을 낸 적이 없었다.
“나는 너무 많은 걸 받았어. 그래 서 때로는 좀 걱정이 돼. 내가 너나 원장 수녀님에게 받은 만큼은 훌륭 한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그게 안 될까 봐.”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히고 박 유민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는 하는
데…… 그래도 좀 벅차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멍청하긴.”
강진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 수녀님은 네게 아무것도 바 라지 않았어.”
“그건 아는데……
“다만, 너한테 더 무서운 걸 주셨 지.”
“응?”
강진호가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 며 말했다.
“양심.”
“……”
“그리고 책임감.”
박유민의 입술이 살짝 달싹거렸다.
“남들 보기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어쩌면 간단 한 일이지. 그저 내가 조금 더 참으 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걸로 족하지 않지. 나를 속일 수는 없으니까.”
“맞아.”
“결국 내가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는 나 자신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거야. 원장 수녀님은 네게 그걸 주 셨지.”
그녀는 거울 같은 사람이다.
왜곡되지 않은 거울.
그녀를 생각하면 언제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스스로가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건 그녀가 주고 간가장 큰 선 물이자,가장 큰 짐이었다.
“그러니 원장 수녀님이 널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고민할 필요 없어. 네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 하겠지.”
“그래, 그 말이 맞다. 그런데……야, 그게 더 무서운 것 같은데?”
“내가 언제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 고 한 적 있나?”
“……너, 친구 맞냐?”
“그럼. 최고의 친구지.”
“에이.”
박유민이 피식 웃고 말았다.
“다 왔네.”
“음.”
나름 천천히 걷는다고 걸었는데도 어느새 보육원에도착한 둘이었다.
“들를까?”
“애들 다 자는데 들어가서 뭐 하게. 멀쩡한 낮에 오시죠.”
“그래야겠다.”
“그래. 그럼 나는 들어가 볼게.”
“그래. 연습실 들어갈 때 전화하 고.”
“그전에도 전화할 건데?”
“마음대로 해.”
박유민이 환희 웃으며 손을 흔들 었다. 강진호 역시 보육원으로 향하는 박유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박유민의 모습이 보육원 안으로 사라지자 강진호는 담배 한 대를 꺼 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폐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가 천천히 빠져나간
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담배 향을 맡 으며, 강진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원장 수녀님이 지금 나의 모습을 어떻게 보실까라……
어쩌면 그건 박유민이 아니라 강진호가 해야 할 질문일지도 몰랐다.
박유민은 잘못된 것이 없으니까.
그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 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강진호 자 신은 어떤가.
그는 걸어 들어가고 있다.
전쟁의 불길 속으로 말이다.
그가 지금과 같은 노선을 견지하는 이상, 피와 죽음은 화인처럼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이 세계로 처음 왔을 때, 강진호는 그저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다.
평범한 삶. 남들과 같은 삶. 죽고 죽이지 않는, 그저 평범한 현대인의 삶.
하지만 지금은?
“잘하고 있는 겁니까?”
강진호는 눈을 감았다.
알고 있다. 이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결국 이 세계도 폭력에서 완전히
유리되어 있지는 못했다. 이곳에도 무인이 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 상 언젠가는 겪어야 할일이다.
하지만…….
그래, 다르겠지.
이 세계로 처음 돌아왔을 때의 강진호와 지금의 강진호는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뿐, 그 안의 내용물은 완벽히 변해 버렸다.
그리고 때로는 그 사실이 강진호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떳떳한가.’
박유민과 그는 반대다.
그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는 잘못 된 점이 없었다. 그의 세상을 침범 해 온 것은 다른 이들이고, 그의 세 상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대항을 하 고 있는 것뿐이다.
스스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물 어도 대답은 같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을 그녀 앞에서 할 수 있을까?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죽 이고, 나의 친인을 지키기 위해서 적의 목을 베면서 나는 떳떳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겠지.
그녀의 눈조차 마주 보지 못하겠 지.
아이러니였다.
강진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 았다. 어둡기 짝이 없는 하늘에 그 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죄송해하지는 않을 겁니다.”
강진호의 입에서 씁쓸한 뇌까림이 흘러나왔다.
“그저 다른 것뿐이니까요. 저는 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이 말을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화를 냈을까?
아니면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 았을까?
아니면……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제나 원장 수녀님은 강진호의 이해를 벗어나 있었으니까.
“그 말은 지키겠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 예, 지킬게요. 당신이 했던 것처럼
힘든 사람들이 줄어들도록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세상 에는 손에 피를 묻힐 사람도 필요합니다. 남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제가 해야죠. 그러니까……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강진호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 았다.
하늘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원장 수녀님의 눈이 너무도 서글프다.
“나는 내 세상을 지킬 겁니다.”
비록 그것이 누군가의 목숨을 빼
앗는 일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홀린다고 해도 말이다.
이제 와 달라질게 뭐가 있는가.
처음부터 그는 악마였는데.
“ 다만……
입에 문 담배를 바닥에 던진 강진호가 담배꽁초를 발로 밟아 비볐다.
강진호는 차마 마지막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거리에 내려앉은 어둠을 향해 천 천히 걸어가는 강진호의 등은 어쩐 지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