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73)
마존현세강림기-574화(572/2125)
마존현세강림기 23권 (25화)
5장 발전하다 (5)
“외공에 서양 무학이라……”
이중걸은 씁쓸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총회의 건물들 사이로 젊은 무인들이 여 기저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런 걸 활력이라고 하겠지.
이중걸은 강진호와 방진훈을 인정
했다.
그들이 총회를 맡으면서 총회는 활력을 얻었다. 이제 와 돌이켜 보 면, 그가 회주를 맡고 있는 동안 총 회가 정체되어 있던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실수를 냉정하게 직시한다는 것은 어렵고도 쓰디쓴 일이었다. 하지만 이중걸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증거로….
그의 복권을 원하는 젊은 무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간간이 방진훈이나 강진호에게 불 만을가진 젊은 무인들은 존재하지
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끌어내리 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변 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무인들조차도 변화의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의 변 화라 해도, 변화하지 않고 고여 있는 것보다는 낫다.
아마도 그런 생각일 것이다.
‘ 변화라……
이중걸이 손을 들어 눈가를 주물 렀다.
돌이켜 보면 그는 변화라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 물론 변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만 든 변화라는 것은 영남회를 이기기 위해서 강해지는 방향이었다. 현재의 체제를 최대한 유지한 채 무인들을 육성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낸 체제가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문제가 있던 건 아니겠지…… 당시의 체제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체제가 아니 라 사람이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당시에는 완벽해 보이던 체제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수정되기 마련이다. 물론 그 수정의 과정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일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꾸준히 수정하고 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과거보다 훨씬 앞선 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중걸은 그것을 간과했다.
고생 끝에 서로 잡음이 없는 체 제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안도하고 말았다. 잡음이 없다는 것은 변화가 없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방진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기회가 있었다. 방진훈이 변화와 즉각적인 대처를 요구했을 때, 그의의견을 수용 했다면 여기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중걸은 그의의견을 수 용하지 않았다. 그의의견을 듣지 않고 그의 태도를 보았다. 젊은 이 사가 그에게 반발한다는 것은 자신 에 대한도전이라 여겼다.
‘어리석었지.’
이중걸이 혀를 찼다.
그때, 방진훈의의견을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이 있었다면,
총회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역시 지금 처럼 뒷방으로 밀려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이중걸에게는 지금 과 같은 포용력이 없었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는 언제나 자신의의견이가장 옳다고 생각하 기 마련이다.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 인간은 실패를 통해 자신의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이중걸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 었다.
그렇기에 이중걸은 실패했다.
인정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 실이었다.
그의 삶 전체를 돌아본다면 나름 성공했다고 자평할 수 있을지 모르 겠지만, 이중걸의 마지막은 아름답 지 못했다.
후회하느냐고?
후회야 하지. 당연히 후회하지.
하지만 그것이 불복을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올바르지 못했다. 그럼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이중걸은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 았다.
자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는 결국 총회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 렇게 손을 놓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총회를 바라보니, 예전과는 다른 것 들이 보였다.
장기를 둬도 훈수 두는 이가 직 접 장기를 두는 이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처음으로 총회의 회주라는 막중한 직위에서 물러 난 이중걸 역시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총회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 방향은 아니지.’
변화는 좋다. 변화는 언제나 필요 하다.
하지만 그 변화라는 것은 긍정적 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총회는 뭔가.
‘예전의 나와 같아.’
그저 강해지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강해지기 위해 한 일들이 나중에 얼마나 큰 부작용으로 이어 질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전형적으로 잘되는 집의 마인드였다.
다소의 위험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런 믿음을 베이스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과거의 자신 처럼 말이다.
이중걸이 살짝 초조한 얼굴로 창을 두드렸다.
막아야 한다.
이건 단순히 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 무도 총회의 천년 영광을 위한 큰 그림이었다.
“사욕이 아니라 말이지.”
“……정말 그런가요?”
이중걸이 몸을 돌렸다.
“ 왔느냐?”
손녀인 이현주가 차가운 눈으로 이중걸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이 좋지 않구나.”
“좋을 수가 없죠. 할아버지께서 자꾸 자리를 비우시는데요.”
“나도 사적인 일이 있기 마련이 지.”
“그게 정말 사적인 일 때문인가 요?”
이중걸의 눈이 살짝가늘어졌다.
예상한 일이다. 아무리 극비리에 움직인다고 해도 결국 알아챌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그와 동선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현주
에게 모든 것을 숨긴다는 건 불가능 했다.
영특한 아이이니 이중걸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도 알 것이다.
“사적인 일이 아니라면 어쩌겠느 냐?”
이중걸의 되물음에 이현주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할아버지.”
“그래, 말해보거라.”
이중걸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건 아니에요, 할아버지.”
“뭐가 아니라는 말이냐?”
“……지금 하고 계신 일이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지
잘 모르겠구나.”
“쿠데타라고 말씀드릴까요?”
“아니면 반란이라고 해드릴까요?”
“ 현주야.”
“제 것을 찾는다고 말씀하시지는 마세요. 총회는 할아버지의 것이 아니에요. 지금은 왕정 시대도 아니잖 아요.”
“현주야!”
이중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라고 욕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사심을가지고 지금의 일을 진행하는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알아다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영 광을 누리겠다고, 그깟 권력에 눈이 멀어 총회를 뒤집으려 하겠느냐?”
“정말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어 요?”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정말 할아버지께서 그런 마음이 아니시라면,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 하실 필요는 없어요.가서 말하면 되는 거죠. 강진호씨는 대화가 통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방진
훈 회주도 충분히 할아버지의의견을 존중해 줄 거예요.”
“너는 모른다.”
이중걸이 딱 잘라 말했다.
“너는 남자를 모른다. 무인이란 족속들을 몰라.”
이중걸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겠지. 이해하고 납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시는데요?”
“거꾸로 말해보자.”
이중걸이 굳은 얼굴로 이현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저들에게 외색을 빼고 한국 전통만으로 총회를 일으키자고 한다면, 저들이 어찌할 것 같으냐?” 이현주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중걸은 그것 보라는 듯이 말했다.
“너는 지금 내가 강진호들을 설득 하길 바라는게 아니다. 그들과 대 화하면서 내가 납득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그렇지 않느냐?”
“할아버지……
이현주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세상이 변했어요. 이제 더 이상
옛것만 붙들고 살 수는 없다구요.”
“네가 틀렸다.”
“……네?”
“내가 원하는 것은 전통을 고수하는게 아니다.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전통이라는 것도 옛 어른들이 보시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겠지. 그게 무슨 전통이냐 고 할 만큼 말이다.”
이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을 지키고 싶은게 아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총회다. 너는 이대로 총회가 유지될 수 있다 고 보느냐?”
“왜 안 되죠?”
“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변 화가 저런 식이어서는 안 돼. 그 변 화는 반드시 갈등을 낳는다. 이미 총회와 영남회라는 섞이지 못한 두 세력이 공존하는 마당에, 저런 식으로 수뇌부의 주변을 외부인이 치고 들어가면 지금까지 총회에 헌신해 온 이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이현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총회에 헌신해 온 이들 중에 이현주도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인정한다.
서럽기는 하다.
과거 이현주는 총회의 핵심 중 하나였다. 발언권이 그리 크지는 않 았지만, 젊은 무인들을 대표하는 입 장에서 총회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강진호들이 전권을 잡고부 터는 존재감이 사라졌다.
과거에 그녀를 동경하던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조차 이제는 그녀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서글픈 일이었다.
그나마 이현주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의 능력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후광으로 스스로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
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가 이현주처럼 자신의 처지를 납득할 수 있을까?
무리겠지.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걸 자신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외부적인 요인이나 핑곗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고 생각 할 것이다.
총회와 영남부를 통틀어서 지금 자신의 지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할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강진호
의 카리스마에 억눌려 있을 뿐, 드 러나지 않은 수면 아래에서는 불만 이 들끓고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하지만 그게 흐름이에요.”
“그들은 최선을 다해왔다. 지금의 총회를 만든 것은 그들이겠지. 그런데 그들에게 어떠한 보상과 존경도 표하지 않고, 젊은 놈들만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거냐? 나는 그런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결국은 할아버지들이 다시 전권을 잡고 싶다는 욕심일 뿐이잖아요.”
이중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유야 있겠죠. 그래요, 어떤 일 이든 이유는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이유가 온당한가의 문제 아닌가요?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너무 홀 로 생각했다고, 대화하지 않았다 고……. 지금의 할아버지도 똑같아 요.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문제를..”
“ 대화?”
이중걸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순진한 소리를 하는구나. 세상에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문제 같은 것은 없어. 특히나 이 세상은 더하
다. 강진호가 대화로 총회를 장악했 느냐? 방진훈이 대화를 통해서 회주 자리에 올랐느냐?”
“힘으로 오른 자리는 대화로 내주 지 않는다. 힘으로 오른 자리를 빼 앗기 위해서는 우리도 힘을 쓸 수밖 에 없지.”
“무리란 거 알고 계시잖아요.”
“ 현주야.”
이중걸이가만히 미소를 띠었다.
“너는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왜 내가 이중걸인지 말이다.”
“이제 모두가 다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내가 왜 이중걸인지, 내가 어떻게 그동안 총회를 다스려 왔는 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기억하게 해 주겠다. 이 내가! 그리고……
이중걸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 었다.
“네게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는 말 이겠지. 너는 한동안 총회에 나오지 않는게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 있 어라.”
“할아버지!”
“이 녀석 좀 끌고가가둬놓아 라.”
이중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장년들이 들 어와 이현주의 양팔을 잡아끌었다.
“할아버지! 아직 늦지 않았어요! 할아버지!”
문밖으로 끌려 나가는 이현주를 지켜보던 이중걸이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늦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시작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