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91)
마존현세강림기-592화(590/2125)
마존현세강림기 24권 (18화)
4장 교전하다 (3)
이성택은 두방망이질 치는가슴을가만히 억눌렀다.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제 와 새삼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이미 한참 전 이었으니까.
이성택의가슴이 이리 뛰기 시작 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그렇다.
두 번째 회합이 있을 때부터,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처음으로 다시 회합을가졌을 때부터 그의가슴은 그의의지를 벗어나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한동안 없던 일.
이제는 너무도 느리게 뛰기만 해 서 빨리 뛰는 법을 잊어버렸나 싶던 그의 심장이 젊을 때처럼 활기를 찾 아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성택은 그 사실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이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흥분 이 아닌 불안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그러냐?”
기사의 말에 이성택은 슬쩍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의 불안함이 표정으로 드러 난다는 사실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믿을 수 있다고 해서 그의 속을 다 내보일 수는 없었다.
“고민이 있으십니까?”
“고민이라……
이성택은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고민이라 할 만한 일은 아니지. 이미 고민은 끝났으니까.”
“그럼 왜……
이성택의 목소리에 살짝 회한이 묻어났다.
“고민이 끝났다고 해서 미련이 사 라지지는 않지. 언제나 이 선택이 옳은가를 돌아보게 되니까. 설령 이 제는 다시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 다고 해도 말이야. 사람이란 다 그 렇잖은가.”
“옳은 말씀이십니다.”
‘옳은 말이라……
입맛이 쓰다.
뭐가 옳단 말인가.
결정을 했다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이 옳다. 지금의 그처럼 어설프게 미련을가지고 자 꾸 뒤를 돌아보다 보면 될 일도 망 하기 마련이다.
이성택은 그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그 것을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만약 그가 결정한 일을 망설임 없이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면, 지금처럼 타인의 결정에 끌려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일까?’의구심의 원인은 확고했다. 강진호.
그의 모습이 눈가에 아른거린다. 영남회를 공격한 그날.
검붉은 마기를 구름처럼 뿌려 대 며 인간을 썰어버리던 그의 모습이 말이다.
‘그를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이성택은 확신을가질 수 없었다. 만약 다른 이가 이 일을 추진했다면 이성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 났을 것이다. 인간을 모아 사신과 싸우자는 그 멍청한 계획에가담하
기에는 이성택이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욕구가 너무 컸다.
하지만 이번 일을 추진하는 이는 다름 아닌 이중걸이었다.
‘ 이중걸.’
이성택은가만히 눈을 감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대한 민국의 무인계의 역사는 결국 이중 걸의 역사였다. 세계의 모든 무인계는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며 커다란 홍역을 앓았다. 하지만 한국처럼 철 저히 파괴된 곳은 혼치 않았다.
이중걸은 그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고, 전후의 폐허 속에서 한국
의 무인게를 일구어냈다. 김석일이 그 대척점에 있었다고 하지만, 이중 걸이 없었다면 김석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이중걸이 한국의 무인계에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지 대했다.
그리고…….
“ 영향력이라니.”
“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이성택은 고개를 내저었다. 영향력?
그건 영향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중걸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절대적인 신뢰 라는 말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 라도 이중걸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 라는 믿음.
그건 이중걸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아니었다. 그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였다.
그런 이중걸이 강진호에의해 축 출되고, 방진훈이라는 애송이가 총 회의 회주 자리에 앉았다는 것을 알 았을 때…… 이성택이 느낀 황당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찾아오는 부정,의혹, 그리고 체념.
타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그 상황을 받아들인 것은 그가 아는 이중 걸이라는 이가 이리 순순히 물러날 리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참았다.
그렇기에 기다렸다.
이중걸이 다시 그들을 불러 모을 이때를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도 불안하단 말인가.’
이성태가가만히 손을 들어 올려
눈두덩이를 주물렀다.
그는 안다. 이중걸이 얼마나 지독 한 인간인지 말이다.
총회의 이사라는 자리는 능력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능력이 출중한 이들은 살아남지 못 했다.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은 언젠가는 이중걸과 대립하기 마련이었 고, 이중걸은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지금 총회에서 이사니, 장로니 하 며 떵떵거리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 중걸이 시키는 더러운 일을도맡아 한 이들이었다. 그들치고 더러운 피
를 손에 묻히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다. 결국 얼마나 더 이중걸의 충 실한 개가 되느냐가 그들이 출세를 얼마나 빨리하는가를 결정했던 것이다.
이중걸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칼을 뽑았다면 모든 준비가 이미 끝났을 것이다. 이중걸의 말대 로 앞에서 휘둘러지는 칼보다는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더 무서운 법.
강진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 나, 이중걸이 등 뒤에서 숨죽이다 날린 화살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
다.
그런데…….
“ 멀었나?”
“거의도착했습니다.”
이성태는 초조하게 뛰는 심장을가만히 억눌렀다.
‘진정해라.’
얼마 남지 않았다.
곧 그들이 죽든, 이중걸이 죽 든…… 결론이 날 것이다. 그때부터는 이런 긴장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편안함을가지고 살든가, 아니면 편안함을가지고 죽든가. 둘 중 하 나의 결론만이 있을 뿐이다.
내리는 비 때문에 흐려진 시야 사이로 저 멀리 커다란 기와집이 보 이기 시작했다.
‘영화 같군.’
낡아버린 차가 덜커덕거리는 소 리.
내리는 빗소리.
그리고 비를가르며 뻗어가는 헤 드라이트 불빛.
그 모든 것을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마치 낡은 흑백 영화를 보고 있는 심정이었다. 이성택은 그 광경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되찾고 싶은 건 권력 따위가 아
니야.’
그까짓 권력, 있으면 어떻고, 없 으면 어떻단 말인가.
영 광?
그깟 영광 따위 없어도 그만이다. 영광 넘치는 삶을 살았다고 해서 무 덤 자리가 넓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어차피 죽으면 불타 한 줌 뼈밖 에 남지 않는다. 죽은 이에게 영광 따위는 없다.
그가 되찾고 싶은 것은 ‘증명’이 었다.
지나온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
그의 싦’은 이중걸과 함께해 온 것이다.
한데 이중걸이 부정당한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전후의 그 폐허 속에서 한국 무 인계를 재건하고 남부럽지 않게 끌 어올렸다는 그 자부심은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벌써 이중걸의 업적을 부정하 고…… 그의 삶을 부정하는 젊은 것 들을 보며 피가 거꾸로 솟아오른 적 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뭘 안다고.’
이성택은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젊은 놈들이 뭘 안단 말인가.
그 폐허밖에 남지 않은 시절에 그들은 맨주먹으로 이 세상을 일구 어냈다. 먹을 것이라고는 풀뿌리밖 에 없던 시절, 양놈들에게 빌어 밀가루 한 덩어리를 얻어가며 버티고 또 버텼다.
그 지독한 노력의 대가로 일구어 낸 나무가 겨우 과실을 맺자, 젊은 놈들은 그 나무가 자연히 만들어진 것인 줄 알고 열매만 쏙쏙 빼먹었
다.
따로 심지 않았어도 어차피 나무는 자란다는 말로 그들의 업적을 부 정했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으란 말인가?
참으란 말인가?
‘웃기는 소리.’
그렇다면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 이 어떻게 지금의 무인계를 일구어 냈는지 말이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있다 보면 십 년만 지나도 이중걸과 그들의 이름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강진호와 방진훈이라는 이름이 차지
하게 될 것이다.
그게 아니면 한국의 무인계가 없 어지거나.
끼이이익.
닳아버린 브레이크가 날카로운 소 음을 만들어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우산을…”
“됐네. 쉬고 있게나.”
“하나 이사님.”
“됐어.”
이성택은 거칠게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쏴아아아아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그 쏟아 지는 비를 맞으며 이성택은 기와집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배가 처 불렀지.’
우산?
그러고 보면 참 편하게 살았다.
기사가 씌워주는 우산을 쓰고, 남 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며 말이다.
우산은커녕 몸을 덮을 거적때기 하나 찾기 힘들던 시절을 자랑으로 알고 살아온 그가 어느새 지위와 문 명에 젖어버린 것이다.
이성택은 굳은 얼굴을 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발견한 종업원이 놀라 우산을 펴 들고 뛰쳐나왔지만, 손을 내 밀어 그를 저지한다.
“어디?”
“별채입니다.”
이성택은 두말없이 별채로 발을 옮겼다.
별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이성택은 헛웃음을 홀릴 수밖에 없 었다.
“뭐 하는 짓들이오?”
시끌벅적함이 잦아들자 뚱땅거리는가야금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파 고든다. 반쯤 헐벗은 여아들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던 이사들이 살짝 벌게진 얼굴로 이성택을 돌아보았다.
“아, 이 이사. 오셨소이까!”
“오셨소이까?”
이성택이 이를 갈았다.
“이게 뭘 하는 거냐 물었소이다.”
“뭘 하긴 뭘 하오. 보시는 대로 간만에 흥취에 젖어 있는 것 아니겠 소.”
이성택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자, 안으로 드시오.”
“……누가 부른 거요?”
“회주가 불렀겠지.”
이성택이 노한 얼굴로 모두를 둘
러보았다.
다들 술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니 었다. 반쯤은 불편한 얼굴로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나머지 반은 술에 거 나하게 취해 있었다.
“그리 서 있지 마시고 이리 앉으 시오. 뭐 하느냐, 이사님 안 모시 고!”
“여기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사님.”
젊은 여자가 그의 팔을 잡고 끌 었다. 이성택은 단호한 손동작으로 그를 끌어당기는 이를 밀어냈다.
가만히 모두를 바라보던 이성택이
자리로가 앉았다. 이대로 돌아 나 갈 것이 아니라면 앉는 것이 맞다.
‘이게 대사를 논하는 이들이란 말 인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젖어버렸다.
지금의 삶에.
어린아이들이 그들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정 부릴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그들을 보고 누가 그들의 업 적을 인정하겠는가.
좋은 차, 굳건한 부, 그리고 어딜가도 우러러보는 시선.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을 썩게 만
든 것이다.
“ 다들……
“ 아아.”
그가 막 입을 열려 하자, 누군가 손을 들어 그를 만류했다.
“너무 탓하지 마시오. 이 자리는 회주께서 특별히 마련한 자리니까.”
“회주께서?”
“우리는 거사를 앞두고 있지 않 소. 그런데 긴장이 과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오. 그러니 긴장을 풀 라고 마련해 주신 자리요.”
이성택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장수가 전장에 나가기 전에는 몸을 정갈히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술을 퍼마시고 여자를 끼고 노는 것으로 긴장을 푼다?
이성택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다.
이건 이중걸의 방식이 아니었다.
고개를 번쩍 든 이성택이 소리쳤다.
“……누가 회주의 연락을 받으셨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