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09)
마존현세강림기-610화(608/2125)
마존현세강림기 25권 (11화)
3장 자극하다 (1)
조남평 이사는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었다.
단순히 커피를 자주 마시는 수준을 넘어서 커피 자체를 좋아했다. 원두와 블렌딩을 따져가며 직접 커 피를 내려 먹을 정도였다.
과거 커피가 서양 쓴물이라는 명
칭으로 불리고, 커피를 먹는 이들이 괴짜 취급을 받던 시절부터 그는 커 피를 즐겼다.
커피에서 그가 특히나 좋아하는 것은 향이었다.
쌉싸래한 커피가 혀를 적시고 목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즐거웠지만, 커피의 향이 주는 그윽함에 비할 수는 없었다.
지금 그의 앞에 놓인 커피가 바 로 그런 커피다.
향이 좋은 커피.
하지만 조남평은 조금도 즐겁지 못했다.
오히려 이 진한 커피향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있었다.
어째서 일까?
아마 향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 커피는 그가 직접 내린 커피다. 세상에 수많은 커피 전문점이 있지만, 그의 취향에 이보다 더 부 합하는 커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러니 커피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조남평 자신 일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잘못된 것은 조 남평의 기분이다. 사람이 기분이 좋 지 않을 때는 모든 것이 언짢게 느
껴지기 마련이다. 그게 비록 평소에는 더없이 좋아하던 커피향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의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원인이 지금 그의 앞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현수.
조남평은 이 순간 인생이 꽤나 묘하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그가 이 현수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현수가 김석일의 두뇌로 활약하 던 시절, 조남평은 어떻게든 이현수
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현수는 김석일의 모자란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 넣는 존재였으니까. 그만 없었으면 총회가 영남회에게 밀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던 이현수가 지금 그의 앞에 앉아 있다.
이래서 인생은 재미있는 것이다.
조남평은 손을 뻗어 이현수의 목을 움켜잡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 꼈다. 저 얇은 목 따위 마음만 먹으 면 지금 당장이라도 꺾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게 또 인생이지.’
지금 그가 이현수를 죽인다면, 그 들의 모든 계획은 박살이 날 것이다. 설사 사고나 실수로가장한다고 하더라도 뒷일을 장담할 수 없다.
강진호는 그다지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그걸 알기에 이현수도 지금 그의 앞에서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뭐라고 했나?”
조남평이 울분을 참으며 물었다.
“음, 어려운 말이었나요? 전 아니 라고 생각하는데?”
저 이죽이는 얼굴을 뭉개 버리고 싶다.
조남평이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와 장난하고 싶은 생각 이 없네. 용건이 없다면 이만가주게.”
“용건이라……. 정말 몰라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겠죠? 용건을 못 들 으셨다면 다시 말씀드리죠. 이쪽으로 붙으십시오.”
“꺼지라고 했다.”
이현수가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잘 생각하고 말씀하시는게 나을
겁니다.”
“이놈이!”
조남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순간,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장로들의 연합에서 배신하고 이 쪽으로 붙으라는 이현수는 쫓아내실 수 있겠죠. 하지만……
이현수가의미심장한 눈으로 조남 평을 노려보았다.
“이중걸의 반란에서 손을 떼고 이 쪽으로 붙으라 말하는 이현수를 쫓 아내실 수는 없을 겁니다.”
조남평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놈이 뭐라고 지껄인 거 지?
“뭐라 했는가. 반란?”
“ 예.”
“허어…… 무슨 헛소리를. 나는 자네의 장난에 더 맞춰줄 생각은 없 네. 참아주는 것도 여기까지야. 지금 당장 여기서……
“다 죽습니다.”
조남평이 입을 다물었다.
“외면한다고 해서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 방에서 소득 없이 나가는 순간, 저는 제가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
일에 연관된 이들을 다 죽일 겁니다.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않고 말이 죠.”
“이 개새끼야!”
조남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침묵 속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조남평은 한참 동안 이 현수를 노려보다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화를 내면 안 됐다.
그저 끝까지 모르는 일이라고 시 치미를 떼야 했다.
이 순간,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워
졌다.
실수, 실수다.
하지만 실수가 아니었다.
저 이현수가 그저 떠보기 위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그가 모르 쇠로 일관한다면, 이현수는 확실하게 자신의 말을 지켰을 것이다. 그게 그가 영남회의 악마로 군림하던 시절의 방식이었으니까.
“욕을 듣는 건 꽤나 오랜만의 일 이군요. 그러고 보면 강진호씨도 사람은 참 좋단 말이죠. 욕은 안 하니까.”
그걸로 사람 좋음을 판별할 수
있는가는의문이지만 말이다.
조남평의 머리가 필사적으로 회전 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을 다?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까지?
어느 정도까지 내주어야 하는지를 필사적으로 고민한다. 팔다리를 잘 라내고서라도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가능성은 있다.
“앉으세요.”
이현수가 나직하게 말했다.
“너……
“앉으라고 했습니다.”
이현수의 단호한 목소리에 조남평은 주저앉듯 자리에 앉았다. 그의 얼굴이 불신과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터 알았다는 말인가. 대체 언제부터!
“참 이상한 일이죠.”
이현수가가볍게 웃었다.
“예전에 당신들은 나를 그토록이 나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내게 당한게 한두 번이 아니었을텐데요. 그런데 왜 저를 경계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이 무언가를 꾸 민다면,가장 경계해야할 사람은 강진호 씨가 아니라 저일텐데요. 설 마 제가 강진호씨의 애완견처럼 산 다고 해서 예전의 이빨을 모두 잃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이 들고 나서 이런 천대는 처 음 받아보는 것 같아서 좀 어색하고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덕분에 일이 좀 편하게 진행 되 었으니 까요.”
“후우우……
조남평이 심호흡을 했다. 이제부 터 시작될 거다. 지루한 눈치 싸움 이 말이다. 필요하다면 그의 목숨을 내주고서라도…….
“눈알 굴릴 필요 없습니다. 전부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들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거기에 누구까지 연류되어 있는지, 그리고…… 굳이 그런 걸 알 필요도 없는 일이죠. 저 희는 이중걸의 목만 잘라내면 되니 까.”
“이……
조남평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이길 수가 없는게임이다.
이현수의 말이 맞았다. 저들은 애 초에 팔다리 따위는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저 이중걸 하나만 치면 된다. 이중걸을 잃어버린다면, 그들은 다시 구심점 없이 지리멸렬하게 될 테니까.
“그럼!”
조남평이 탁자를 내려쳤다.
“그럼 그렇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왜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있나! 왜! 회주의 목을 자르기 전에 에피타이 저로 내 목이라도가져가겠다던가? 좋지.가져가라. 칼이라도 빌려줄까, 이 개새끼야?”
“워워, 진정하시죠.”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지만, 조 남평의 눈에는 더없이 냉정한 악마 처럼 보였다. 영남회의 악마는 그저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제가 지금까지 기다린 이유가 뭐 겠습니까? 일망타진하고 싶은 것뿐 입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협조 자가 필요합니다. 자, 지금부터가 본 론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현수가 살짝 분위기를 몰아갔다.
“조 이사님이 우리에게 협조해 주 신다면, 반항하는 이만 죽이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 죽어야겠죠.”
“……뭐?”
조남평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 졌다.
지금 이걸 협상이라고 하는 건가?
이게 어떻게 협상이란 말인가. 이게!
“이 마귀 같은 놈.”
“마귀 같아요? 제가? 아니죠. 저는 합리적인 겁니다, 조 이사님.”
찰칵.
이현수가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이건도저히 끊을 수가 없단 말 이야.’
이런 순간 때문에라도 담배는 끊을 수가 없다. 구렁텅이에 몰리고 몰려 목이 잘리나 팔이 잘리나를 선 택해야 하는 인간이 보여주는 표정은 이럴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이었으니까.
“시작은 그쪽이 먼저 한 겁니다. 제가 부추긴 것도 아니잖습니까. 예 로부터 반란을 획책하다 걸리면 구 족의 목이 달아나는 법이죠. 그렇다
고 제가가족들까지 건드리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원래대로라면 당사자 들의 목이 다 잘려야 하는게 당연 함에도 그중 살아남을 사람 수를 늘 려준다는데,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받아야죠.”
조남평은 웃어버렸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되레 웃음이 나온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주둥아리 함부로 놀리지 않는게 좋을 거다. 나도 이쯤 되면 더는 뒤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이 자리에서 네 모가지를 꺾어버리
는 건 별일도 아니야.”
“네, 별일 아니죠. 그래서 특별히 이번 일에 연관된 이들의 목록이 담 긴 서류를 남겨두고 왔습니다. 특별 히 제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들도 듬뿍듬뿍 추가해 뒀죠. 그걸 보시면 매우 만족하실 것 같습니다만?”
“이 개 같은 새끼, 이…… 이!”
사람을 눈빛으로 죽일 수 있다면, 지금쯤 이현수의 몸은 천참만륙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람은 눈빛만으로는 죽지 않는 존재였다.
“시간 끄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 습니다.”
재떨이에 재를 턴 이현수가 냉막 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결정하시죠. 우리에게 협조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든가.”
“……얼마나 살려주겠다는 거냐?”
“반항하지 않는 이는 누구든 살려 줍니다.”
“ 회주도?”
“농담이시죠?”
이현수가 어이없다는 둣 말했다.
“가져다 댈 사람을가져다 대셔야
죠.
“조 이사님, 저도 시간이 많은 사람은 아닙니다. 조 이사님 정도 되 시는 분이면 이미 계산이 끝났을 거 아닙니까. 서로 시간 끌지 마십시다. 어차피 이미 결론이 난 문제 아닙니 까.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이중걸 이 살아나는 결과는 없습니다. 그럼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남는 방법을 택해야죠.”
조 이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 따위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만,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 으면 됐는데!”
그러니 남은 것은 울분을 토하는 것뿐이었다.
“아니오, 조 이사님.”
하지만 이현수는 그 울분조차 받 아주지 않았다.
“강진호씨와 적대하기로 한 이상 그쪽의 승산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럴듯해 보이는 모래성을 쌓아 올렸을 뿐이죠.”
“네놈이 뭘 안단 말이냐!”
“모든 것을 알죠.”
“닥쳐라, 이놈! 너는 모른다. 너는
우리가 어떻게 이 총회를 이끌어왔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던 그 시 절에 오로지 피땀만으로 만들어낸 과실이다. 그런데 총회가 만들어지는데 조금도 기여하지 않은 네놈들 이 그 과실만 날름 처먹겠다고? 그 러면서 조금의 미안함도가지지 않는다는 말이냐!”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조 이사님.”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그게 아닙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입니다. 강한 자가 먹는 거죠.”
이현수가 쐐기를 박았다.
“조 이사님이가진 걸 빼앗긴 이 유는 그냥 약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잔인한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