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23)
마존현세강림기-624화(622/2125)
마존현세강림기 25권 (25화)
5장 구박받다 (5)
벌컥!
간만에 거칠게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 강진호가 두 눈을 부라 렸다.
“어디서 눈을 부라리고 들어와?”
하지만 그 눈에 들어간 힘은 채 빛을 발해보지도 못하고 급격하게
빠져나갔다.
“계셨어요?”
“그래, 계셨지. 이 시간에 내가 어딜가겠니?”
“그렇죠.”
마루 소파에 앉아 있는 백현정을 본 강진호가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다.
가족의 배신에 잠시나마 과거의 패기를 회복한 강진호이지만, 이곳은 중원이 아니었다. 중원에서는 거 칠 것이 없지만, 이 세상에서는 그가 무슨 수를 써도 당해낼 수 없는 사람이 무려 둘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패왕인 분이 지금 그를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그 나이에 사춘기가 다시 온 건 아닐 테고, 문을 왜 그리 확확 열고 다니니?”
“……그랬나요?”
“아들의 반항기를 이 눈으로 목격 하는 마음은 무척이나 감격스럽다 만, 너나 나나 이제 와 그러기에는 나이를 너무 먹지 않았니?”
강진호는 아무 말 없이 신발을 벗었다.
“ 밥은?”
“먹고 왔어요.”
“안 먹고 온 것 같은데?”
“좀 차려줄까?”
“괜찮아요, 어머니. 제가 차려 먹을 수 있어요. 이제 그런 것 하지 마세요.”
“아들.”
“ 예?”
백현정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너는 엄마가 다 큰아들 자꾸 밥을 차려준다고 해서 껄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꾸나.”
“ 예?”
“내가 안 차려줘도 네가 밥이야 먹겠지. 네 나이에 밥 하나 못 차려 먹는게 말이나 되나? 엄마는 우리 아들이 그런 등신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
“그럼 왜?”
“제대로 안 차려 먹으니까 그렇 지.”
백현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차려 먹으면 열 개 나올 반 찬이 세 개 나오고, 국이 식어서 나 오고! 그것도 귀찮으면 빵 쪼가리 잼 발라서 먹으니까 그렇지. 내가
없을 때 그렇게 먹는 거야 누가 신 경이나 쓰겠어? 엄마가 소파에 앉아 서 놀고 있는데,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게 배 속에 대충 뭘 밀어 넣 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밥 먹으니 엄마도 죄책감 드는 거지.”
변명의 여지를 잃어버린 강진호가 슬쩍 어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제가 알아서 차려 먹어요’라는 말을 하려면 좀 제대로 차려 먹어. 반찬 그만큼 해놨는데 달랑 김치에 밥 먹고 있는 걸 보면서 엄마가 어 떻게가만히 있어?”
‘그게 이렇게까지 구박받을 주제
였나?’
세 번의 삶으로 백 년을 넘게 살 아왔건만, 여전히 어머니 앞에서는 아이와 다름없는 강진호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 차려줘, 말 아?”
“괘, 괜찮습니다.”
어머니가 영 불만이라는 얼굴로 아들을 위아래로 훑었다.
몸이 좀 빈약하거나 뚱뚱하다면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보겠지만, 그 녀가 보기에도 그녀의 아들놈의 몸은 너무 완벽했다.
“그러다가 속 버려!”
하지만 완벽하다고 해서 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잔소리란 수비진을 깨는 환상의 크랙과도 같 으니까.
‘이게 아닌데……
기세 좋게 들어와 잔소리 연타를 맞고 시무룩해진 강진호였다. 어떻게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가 눈을 뒤 룩뒤룩 굴리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강은영이 밖으로 나왔다.
“오빠 왔어?”
“너!”
강진호는 기세를 올렸다.
“너 이리 와서 앉아봐.”
“응? 왜‘?”
“어서.”
언제 본 지도 기억이 안 나는 강진호의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언제나와 같은 무 뚝뚝한 얼굴이지만, 강진호 이해도가 높은 강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묻 어나는 미묘한 분노를 알아챌 수 있 었다.
“왜 화났어?”
“너, 내가 뭐라고 했어?”
“ 응?”
“가족은 서로 지켜주는 거라고 했
지. 너, 왜 내 정보 넘기고 다녀? 최연하 씨하고는 언제 그렇게 친해 졌어?”
“아, 그거?”
강은영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태연스레 소파에 앉았다.
“원래 외국 생활 하면 외롭잖아. 그래서 한번씩 톡 오더라고. 나도 저녁에는 행사 갔다가 차에서 이동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톡하다 보니 좀 더 친해 졌지. 친해지다 보니까 생각보다 좋은 언니더라고. 성격은 좀 있는데, 그 성격이 나한테 안 오면 괜찮잖
아. 착하던데?”
착해?
강진호는 뭔가 어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최연하가 착하다니.
아무리 최연하와 친분이 있어서 그녀를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은 강진호라지만, 저 말은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거북이가 헤엄을 못 친 다는 말을 들어도 이리 황당하지는 않을 거다.
“어디가 착해?”
“이쁜게 착한 거야. 남자들이 그 러잖아.”
그럼 착하지.
음, 그래. 그럼 착하지.
기준이 그렇게 되면 최연하의 착 함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진호라고 해도 그걸 부정 할 수는…… 아, 이게 아니고.
“……친해진 것까지는 괜찮다.”
강진호가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왜 거기다가 오빠 행적을 말하고 그래?가족끼리 그런 거 하는 것 아니 랬잖아.”
“에이, 오빠는. 난 잘못한 것 없
어. 난 오빠가 시키는 대로 다 했 어.”
“시키는 대로?”
“응.가족끼리는 숨기는게 없어야 한다며? 언니가 지금가족은 아니지만, 곧가족이 될 거잖아. 그런 사람한테 ‘아직 언니는가족이 아니니까 그런 건 이야기 해줄 수 없다’ 고 말하면 얼마나 각박해?”
“가족이 되다니?”
“언니랑 오빠랑 결혼하면가족 되는 거 아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강진호가 당황하여 뭔가 마구 얼
버무리려고 하는 순간, 백현정이 강은영이 던진 떡밥을 물었다.
“가족이라니,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니?”
“언니 있잖아. 연하 언니.”
“최 연하?”
어머니가 눈을 희번덕거리자 강진호가 움츠러들었다.
“아뇨, 어머니. 그런게 아니라 얘가……
“엄마는 괜찮다.”
“……네?”
백현정이 화사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전에 이야기가 나와서 엄마가 고민을 좀 해봤는데, 생각해 보니 그만한 며느리 어디서 구하기도 힘들어 보이더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 최연한데.”
“배우 출신이라 좀 까탈스러울 것 같아서 꺼려졌는데, 생각해 보니 우 리 집에도 아이돌이 있는데다 내 아들이 거기에 꿀릴 것 같지도 않네. 그럼 괜찮지.”
“저, 저는 그런 생각까지는 안 했 습니다만?”
“요즘 누가 결혼 생각까지 하고
만나니? 자주 만나다가 결혼할 때가 되면 하는 거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요즘은 다 아니라고 한다더라. 그런데 걔 성격은 좀 괜찮니?”
“응, 엄마. 사람이 성격이 좀 있 긴 한데, 생각해 보니 우리 오빠는 그런 여자 만나야 할 것 같아. 저 인간 평소에는 줏대도 없고 주관도 없잖아. 바깥일은 잘 알아서 하면서 집안일에는 왜 저리 사람이 맥이 없 나 모르겠어. 확 끌고 나가줄 사람이 필요해. 그런 면에서는 적격이야.”
“엄마는 좀 걱정이기는 하다. 성 격이 세면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서.”
“안 그래. 안 그래, 엄마. 곰 같은 며느리보다는 여우 같은 며느리가 백배는 나아.”
“그럴까?”
“웅.게다가 나한테 잘하는 것 보 면, 그런 건 확실하게 파악하는 사람 같아. 괜히 기 세우느니 주변 끌 어들이는 타입이야. 엄마 완전 여왕 대접 받을걸?”
“그럼 괜찮지.”
갑자기 펼쳐진 며느리 품평회에
머리가 어질해지는 강진호였다.
살면서 단 한번도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 없는 강진호다. 무 려 백 년 솔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연애도 아니고, 뜬금없이 결혼이라니.
“저는 정말 그럴 생각이 없으니 까, 두 분 다 진정 좀 하시죠.”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던 기관차에 그물을 걸자 기관장들이 실망한 얼 굴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쟤는 남자가 왜 저리 강단이 없니?”
“초식남이잖아. 무해한 남자야.”
“……너무 무해한 거 아닌가 싶다. 남자가 좀 독한 면도 있어야지.”
“엄마, 그러니까 우리가 잘해야 한다니까. 저 양반 저렇게 내버려 두면 평생 여자 손 한번 못 잡고 끝날 거야.”
연타를 얻어맞은 강진호가 축 늘 어 졌다.
주먹으로 하는 대화로는 무적을 자부하는 강진호이지만, 말로 하는 공격은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오빠가 뭘 알아서 해? 그래서 손이나 잡은 적 있어?”
“ 있냐고?”
“뽀뽀는 해봤어?”
“너, 너는 여자가 무슨 그런 말을.”
“허……
강은영이 고개를 돌려 백현정을 바라보았다.
“봤지?”
“답이 없네.”
백현정 역시 한심하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자식의 무해 함은 이미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무해함이가족이 아니라 다른 쪽에 서도 발휘가 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 허우대를가지고.”
“내 말이!”
강진호가 고개를 여기저기로 돌렸다. 지원군을 찾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아버 지는 방문을 굳게 닫은 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문 바로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는데!’
거실에서 오가는 대화를 모두 듣 고 있으면서도 아버지는 밖으로 나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진한 배신감이 느껴졌지만, 이 굶주린 암 사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버지로서도 무리일 것이다.
“어머니.”
강진호가 단호하게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누가 뭐랬니?”
“관심을가져 주시는 건 감사하지 만, 아직 생각하시는 그런 사이는 아닙니다.”
강은영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냥 냅 두면 평생 그런 사이 안
될텐데.”
“넌 조용히.”
강진호가 정색하자 강은영이 슬그 머니 시선을 피했다. 기세를 올릴 때야 거칠 것이 없지만, 정색한 강진호의 눈빛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은 그녀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뭐, 네가 알아서 한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 엄마는 그냥 그 애가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으니까, 혹시 마음이 있으면 엄마 반대 안 할 테니 잘해보라, 이런 거지.”
“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한
동안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재미없다, 재미없어.”
입에 넣은 고기를 억지로 뱉어내야 하는 사자처럼 어머니가 입맛을 다셨다.
“그래. 그럼 들어가서 쉬어라.”
“아……
강진호가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하지 못했다는 듯이 머뭇거렸다.
“ 왜?”
“아, 드릴 말씀이 있는데……
“뭐?”
강진호가 바로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댔다.
생각해 보니 타이밍이 최악이다. 이걸 지금 말하는 건 뭔가 무덤을 파는 것 같은데…….
“엄마한테 뭐 잘못한 거 있니?”
“아니요, 아닙니다. 그런게 아니
강진호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저 한동안 집을 좀 비워야 할 것 같은데요.”
“응? 집을 비운다고? 어디가니?”
“주…”
“주?”
체념한 강진호가 순순히 백기를 들었다.
“중국이요.”
분위기가 싸해졌다.
한동안 말없이 강진호를 바라보고 있던 백현정이가만히 되물었다.
“중국?”
“예.”
“차이나?”
“ 예.”
“혹시 그 최연하 씨가 지금가 있 다는 그 중국 말이니?”
“……예.”
“응, 그렇구나. 우리 아들이 중국 에서 뭘 하려는 모양이네. 혹시 그 할일이라는게 최연하 씨를 만나러가는 건 아니겠지? 방금 우리한테 그렇게 정색해 놓고 말이야.”
끼이이익.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고 나오 던 아버지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더니 슬그머니 다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아버……
쿵!
단호하게 닫히는 문을 보며 강진
호는 끊어져가는 부자간의 정에 신 음했다.
“이리 앉아봐.”
“……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이런 심 정이겠구나.
사악한 미소를 띤 채 입을 푸는 강은영을 보며 강진호는가만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