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25)
마존현세강림기-626화(624/2125)
마존현세강림기 26권 (2화)
1장 실감하다 (2)
이현수는 천천히 벌어진 입을 다 물었다.
‘와, 이게 뭐야?’
그의 눈에 보이는 파일들은 그야 말로 깔끔했다. 아니, 이 정도면 ‘깔 끔하다’가 아니라 ‘아름답다’라는 말을 써야 한다. 그만큼 지금 이현수
가 보고 있는 파일들은 완벽하게 정 리가 되어 있었다.
“..이걸?”
이현수는 고개를 들어 파일을가 져온 이를 바라보았다.
반백의 머리와 수염이 그야말로 미중년의 표본인 남자. 나이트 위긴 스가 그의 앞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이걸 다 직접 하신 겁니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네, 미 스터 리.”
나이트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고생은 내가 아니라 엘레나가 했 지. 한국어를 영어로 변환해서 기초 파일을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손이 많이가는 작업이니까. 그걸 정리하는 것 정도는 간단한 일일세. 그러니 이 일에 대한 공치사를 하려거든 내가 아닌 엘레나에게 해주면 좋겠 군. 그리고 굳이 만든 파일을 다시 한국어로 변환하는 수고를 덜어준 자네의 영어 실력에도 감사하지.”
“가, 감사하라니요.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일을 나눠 맡아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나 깔끔하게……
이현수는 다시 한번 파일을 보고
는 감탄을 터뜨렸다.
‘뭐지, 이 사람?’
지금까지 그가 만난 실무 경력자 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딱히 그 실력을 논할가치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 이었다. 배운 일을 그대로 반복하고,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며, 시스템에서 오는 불편을 ‘관행’이라든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묻고 넘어가려는 이들.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왜 굳이 일을 만들어서 사람 귀찮게 하느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이현수는 그런 이들을 경멸했다.
스스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자 신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을 존중해 줄 만큼 그는 성격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니 까.
하지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파일 들은 여러의미로 그를 개안시키고 있었다.
완벽하게 정리되어 줄을 서 있는 숫자들을 보고 있으니, 엉망으로 어 질러진 방을 깨끗이 쓸고 닦고, 칼 각까지 잡아놓은 걸 보는 느낌이다.
“평소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나이트라는 건 그런 거지. 말만
들으면 굉장히 거창하고 폼만 잡으 면 되는 자리 같지만, 실제로는 잡 부나 다름없어. 온갖 일을 다 처리 해야 하니, 그걸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버릇을 들이지 않으면 일을 제때 끝낼 수가 없거든.”
“그럼 이런 걸 항상……
“일상이었지.”
이현수는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 최초로 존경할 수 있는 실무 자를 만났다는 감격에 벅찰 틈이 없 다는게 아쉬울 뿐이다.
“그럼 죄송하지만, 몇가지만 더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가능하지. 물론가능하지.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을 모 르지는 않겠지?”
“어떤……
“내 딸은 지금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네. 그녀의 기분을 안정 시키기 위한 1파인트의 아이스크림을 준비하도록 하게. 물론 최고급이 어야겠지.”
“1갤런이라도 준비하죠, 나이트 위긴스.”
이현수는 간만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업무량
도 살인적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나이트 위긴스가도와주기 전까지는 살인적인게 아니라 살인이 날 업무 량을 소화하던 중이었다.
그래도 나이트 위긴스가 이렇게 일을 맡아준 덕분에 한동안은 하루 에 세 시간이상을 잘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도와주는 건 얼마든지 하겠네만, 아무리 봐도 자네의 업무는 비정상 적이고 비효율적인 것 같군. 자네 스스로는 다른 이에게 업무를 분담 하느니 자네가 다 처리해 버리는 것이 시간적으로 이득이라고 생각할지
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체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네. 아무리 무인이라도 하루 20시간이상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지.”
이현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이트 위긴스가 지적하는 부분은 이미 그도 인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아직 이현수에게는 자체적으로 인력을 수급하여 스스로의 팀을 꾸릴 권 한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진호에게 말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허락해 줄지 모르겠지만, 방진 훈 등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그건 아직 시기상조였다.
“충고 감사합니다.”
“ 흐음?”
이현수의 반응에 나이트 위긴스가 알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군. 그래, 권력 싸움이라는 것은 언제나 힘든 법이지.”
“그래도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 아 기특하군.”
푸근한 미소를 짓는 나이트 위긴 스를 보고 있자니 왠지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타인에게 이런 식으로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은 불쾌해 할 만한 일이지만, 나이트 위긴스의
경력과 실력을 감안한다면 핏덩어리 취급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지금 눈앞에 들이밀어진 파일을 보고 있자니,가슴속의 작은 치기마저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나이트.”
“그래……. 내가 뭐도와줄 것은 없는가?”
“예?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업무를 조금……
“그런 것 말고.”
이현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가만히 나이트 위긴스를 바라보 았다.
나이트 위긴스의 눈빛은 처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현수의 눈에는 그 눈빛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사람 좋은 노인의 눈이었다면, 지금은…….
“나이트.”
이현수는 살짝 고민을 했다.
의뭉스러운 자세로 대화 자체를 뭉개 버리는 것도 그가 선호하는 대 처법 중 하나이지만, 지금의 나이트 위긴스에게 그런 식의 반응은 실례 였다.
이현수는 있는 그대로 말을 꺼내 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자신에게 먼
저 손을 내밀어준 나이트 위긴스에 대한 예의였다.
“저 역시 방법이 없어 지금 상황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총회의 모든 일은 강진호씨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그분이 이 상황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저는 그에 따를 생각입니다.”
“이상한 말을 하는군. 이미 로드 께서는 변화를 예고하셨을텐데?”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을 우리 마음대로 재단할 수는 없는 거지요.”
“흐음.”
나이트 위긴스는 홍미롭다는 듯이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사내로군.’
아니면 특이한 사내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 매우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맡은 일에 대해서는 철저한 합리성의 원칙을 따지면서도 동양적인 주 종 관계에 심각할 만큼 매몰되어 있다.
그는 스스로의 모순에 대해서 인 지하고 있을까?
그게 아니면…….
“하나 물어보겠네.”
“ 얼마든지요.”
“자네가 아는 로드는 자네의 일을
일일이 지시하는 분이셨나?”
이현수는 대답을 잠시 망설였다.
나이트 위긴스는 그런 이현수를 이해한다는 듯이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람을 따른 다는 것은 간단한 말이지만, 그 방법은 그리 단순하지 않지. 크게 나눈다면 두가지의 방 법이 있겠지.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을 처리하느냐, 아니면 능동적으로 따르는 이의 앞길을 터주기 위해서
나서느냐. 자네는 어느 쪽을 선호하는 사람인가?”
“ 저는……
이현수는 당연히 후자라고 대답하 려 했다. 하지만 그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정말 후자인가?’
과거의 이현수는 후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현수는 후자를 자신하기에는 너무도 걸리는게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로드는 그리 섬세한 사람이 아닐 세. 혹여 그분이 섬세한 사람일지
몰라도, 일적으로는 그리 섬세하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지. 그래서 내 하나 묻겠는데, 지금까지 로드가 단 한번이라도 자네에게 조직의 분위 기를 저해할 만한 일을 하지 말라는 언질을 준 적 있었는가?”
당연히 그런 적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고 묻는 말이다. 그리고 이현수가 할 수 있는 대답도 하나뿐이었다.
강진호는 단 한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보게.”
나이트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나는 그리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닐세. 자네들에게는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지만, 나는 그리 오랜 시 간 현역으로 활동할 수는 없단 말이 지.”
“몇 십 년은 충분해 보이십니다 만?”
“그 몇 십 년으로는 부족하지. 나는 해보고 싶은 일이 무척이나 많단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일세. 지금 이 조직은 너무도 비대하고 비효율 적이야. 로드가 원하는 일들을 즉각 적으로 처리하기에는 명령 체계도
복잡하고 나뉘어 있어. 단순화가 필 요하네.”
이현수의 눈이 조금은 날카로워졌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흠.”
나이트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 후, 품 안으로 손을 넣더니 시가 케이스를 꺼 냈다.
“한 대 피워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자네도 한 대 하지.”
“그러겠습니다.”
“시가 괜찮나?”
“죄송합니다. 그건 딱히 즐기지 않아서.”
이현수는 품 안에서 자신의 담배를 꺼냈다. 요 몇 년간에는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았지만, 좌우에 골초 들이 담배를 뻑뻑 피워 대는데다가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보니 다시 시 작하게 되었다.
“시가라는 건 한번 태우게 되면 꽤나 오래 피워야 하는 것이라 느긋 할 필요가 있지.”
나이트 위긴스가 시가의 끝을 잘 라내고는 천천히 불을 붙였다.
“그런 것치고는 꽤나 서두르시는 느낌입니다만?”
“매번 그리 느긋할 수는 없잖은가. 때때로는 느긋해야 하는 일도 급히 처리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 지. 예를 들자면 자네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처럼 말일세.”
이현수는 대답 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말을 돌리는 걸 그리 즐기 지 않네. 내가 그리 느긋한 성격이 었다면 원탁을 나와 이곳에 오지도 않았겠지. 알겠나? 자네가 지금 왜 내 말을 껄끄럽게 여기는지 알고 있
네. 혹여나 내가 총회를 마음대로 휘두를까 걱정하기 때문이겠지.”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멍청한 생각이야. 총회는 로드의 것이네. 자네는 내가 로드의 것을 마음대로 휘두를 만큼 담대해 보이는가? 자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 이는지 모르겠지만, 로드의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가락으로 짓 눌러 죽여 버릴 수 있는 벌레쯤으로 보이겠지.”
“그렇게까지……
나이트 위긴스가가볍게 웃었다.
“안타깝지만, 자네들이 로드와 쌓
아 올린 ‘유대’라는 것을 나는 아직 쌓지 못했네. 로드는 자네들을 단순 한 부하라 여기지 않아. 그가 생각 하는 패밀리의 구성원에 자네는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없지. 나와 로 드는 아직 단순한 계약 관계일 뿐이 지.”
나이트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유대라는 건 이제부터 쌓아가야겠지만 말이야. 이보게, 내가 자 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야. 나는 이 조직을 변화시켜야 하 네. 조금 더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조직을 만들어서 로드에게 내가치를 입증해야 하지. 현실적으로 지금 로드가 내게 보이는 흥미는 조금 다른 무학에 대한 관심일 뿐이야. 내 무학이 총회의 전력을 상승시키는데 큰도움이 되지 않으면 금방 사 라질 관심일 뿐이지. 나 역시 그것 만 믿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저를 선택한 이유는요?”
“말이 통하는 상대, 그리고 계획을 세우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실권을 동시에가진 사람.
그것뿐이네.”
차가운 눈빛으로 나이트 위긴스를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이현수가 한 음, 한 음 끊어 말했다.
“제게 뭘 원하시죠?”
“아니, 질문이 잘못되었군. 말해보게, 미스터 리. 내게 무엇올 원하 나‘?”
이현수를가만히 바라보는 나이트 위긴스의 미소가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