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41)
마존현세강림기-642화(640/2125)
마존현세강림기 26권 (18화)
4장 처리하다 (3)
후환을 남겨서는 안 된다.
강진호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 고 있었다. 그의 스승은 언제나 그 에게 말했다.
“인정으로 후환을 남긴다는 것은 네 등 뒤에 칼 하나를 두고가는
것이다. 하나의 칼이 네 등을 노린 다면 막을 수 있겠지. 두어 개의 칼 이 노려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칼이 열이 되고, 백이 되 고, 천이 된다면…… 네가 과연 막을 수 있겠느냐? 네가 후환을 남기 지 않으려 한다면, 세상이 너를 비 난할 것이다. 그리고 너를 죽이려 하는 자도 생겨나겠지. 하지만 기억 해라. 등 뒤의 칼 백 개를 상대하는 것보다 눈앞의 칼 천 개를 상대하는게 낫다.”
지금은 뼛속 깊이 새긴 말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현대를 살아가던 강진호에게 사람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몇 번이고 풀어줬다. 심지 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를 죽이려고 한 이들도 몇 번이고 살려줬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강진호의 등 에 남았다.
과거, 중국인의 사고방식은 강진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잘못을 했는가, 잘 못을 하지 않았는가를 중히 여기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에게 피해를 끼 쳤거나, 화가 나게 했다면 그 인과 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상대를 원수 라 여겼다.
그리고 그 원수를 갚는 것을 당연 하게 여기고 오히려 권장한다.
그것을 협의(依義)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던 이들이 바로 중원인들이다.
살려준 이들이 그가 마실 물에 독을 타는 일은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민간인을 참살하던 이를 제압하고 풀어줬더니, 며칠 뒤 잠을 자는 그를 기습하기도 했다. 먼저 시비를
걸어온 이를 쓰러뜨렸더니, 동료들을 우르르 끌고 와 그를 죽이려 들 기도 했다.
그런 일을 수도 없이 겪다 보니 결론이 나왔다.
스승의 말이 옳다.
후환을 남긴다는 것은 스스로의 목숨을 갉아먹는 일이다. 적어도 그 세계에서는 말이다.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첫 살인을 하고는 칠 주야가 넘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잠도 제 대로 자지 못했다. 쇠약해진 육체
때문에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 고 나서야 이를 악물고 음식을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살아야 하니까.
두 번째는 처음보다는 좀 나았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몇 명을 죽였는지 더 이상 셀 수 없게 된 시점부터는 사람을 죽여도 아무렇지 않았다. 마치 귓가에 앵앵 거리는 모기를 잡아 죽이는 걸 당연 하게 여기듯 사람을 죽여 댔다.
그때쯤 강진호는 실감했다.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강진호의 기억을가지고 있는 괴물일 뿐이었
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자 편해 졌다.
‘조금 달랐을까?’
놓아버린 측면도 있었다.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 으니까. 중원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그렇다면 중원인이 되어야 한다.
중원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가 과거에 익힌 현대인의가치관 과 지식은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외눈박이가 사는 세상에 떨어진 두
눈박이는 병신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강진호는 스스로를 버렸다.
만약 그때, 이 세계로 다시 돌아 올 것을 알았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생명을 좀 더 소중하게 여겼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하튼 강진호는 적이라고 여겨진 상대를 손에서 놓아준 적이 없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죽여왔다. 이 세계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다.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서 죽음을
유보시킨 적은 있지만, 그의의지와 다르게 상대를 놓아준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죽이고 싶어 한 이를 풀 어준 강진호의 심정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그런 걸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내가! 그만큼! 일찍! 좀! 오라 고!”
“잘못했습니다.”
“여자가! 그렇게! 말을! 빙빙! 돌 려가며!”
“죄송합니다.”
아마 조금 전, 그 느끼하게 생긴
놈 말고 평범하게 생긴 놈 정도면 보통 사람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을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사람 하나를 죽이는데 1초도 걸리지 않을 테니까.
그런 이를 장난감처럼 짓밟은 강진호다.
처음 이 세계로 돌아왔을 때의 강진호는 강자의 기억을가지고 있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처음 무인계에 접선했을 때도 무학을 익힌 것뿐이 지, 강자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명실상부 한 강자였다. 그럼에도 뭐라고 할
까…….
강진호는 깨달았다.
무력이라는 것이 이 세계에도 폭 넓게 쓰여질 여지는 있지만, 아무짝 에도 쓸모없는 분야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듣고 있어요?”
“뼈에 새기고 있습니다.”
“홍!”
강진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홀러 내렸다.
‘이게 아닌데……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구 해주면 굉장한 감사를 받지 않는가.
그런데 되레 구박이라니.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 만, 최연하의 말을 듣다 보면 납득 이 간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이 잘못한 느낌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심해 요?”
최연하는 아주 날을 잡았다.
평소에도 불만이 많았지만, 그 불 만을 이야기하는게 조금은 껄끄러 운 면이 있었다. 강진호가 그녀에게 심어주는 불만이라는 것은 말하기에는 구차하고, 그렇다고 말하지 않기
에는 속이 터지는 종류의 것이니까.
그 쌓여온 불만이 지금 폭발하고 있었다.
“평소에 그러니까! 사람이 해달라는 걸 좀 빨리 해줘야 할 거 아니 에요!”
“……노력했습니다.”
“노력? 지금 노력이라 그랬어요?”
“네……
최연하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먼저 전화한 적 있어요?”
“있는 것도 같은데……
“용건 있어서 전화한 거 말고 안 부 전화 먼저 한 적 있어요?”
이건 대답할 수 있었다.
“ 없습니다.”
아주 깔끔하게 말이다.
“전화 한 통 해주는게 그렇게 어 려워요?”
강진호는 고개를 슬쩍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잘못된게 아니었어.’
잔소리는 어머니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세상의 모 든 여자들은 잔소리를 만렙 찍은 것이 틀림없다. 시전하느냐, 시전하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무심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잘생겨가 지고 여기저기 눈총이나 받고 다니 고.”
“ 아니……
“중국 오면서까지 트레이닝복 입 고 왔어! 무슨 운동선수예요? 올림 픽 나가시나?”
이제는 뭔가 주제를 많이 벗어난 것 같지만, 지금 그걸 지적하면 잔 소리가 삼십분 더 추가되겠지. 강진호는 내리는 비를 맞는 구도자의 심 정으로 조용히 최연하의 구박을 감
내했다.
“진짜……
한참 동안 화를 낸 최연하가 목이 타는지 기침을 했다.
“물 드릴까요?”
“아이스커피!”
“끝내주게 내려 드리죠.”
호텔 방 한쪽에 커피 드리퍼의 존 재를 확인한 강진호가 자리에서 벌 떡 일어났다.
아버지가 카페를 차리면서 늘어난 것은 커피 내리는 실력밖에 없다. 이런가정용 커피 드리퍼와 대충 골 라온 원두로는 맛을 내기가 힘들지
만, 적어도 커피를 탄다는 핑계로 이 자리를 떠날 수는 있었다.
최연하의 앞에서 빠져나온 강진호가 원두를 갈고 드리퍼의 버튼을 눌 렀다.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평소에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 피 드리퍼의 속도에 속이 터질 뻔한 적도 있지만, 오늘따라 커피가 떨어 지는 속도가 빨랐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 겠는가.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냉장 고에서 물 한 병 꺼내서 이리 와
요!”
“ 네.”
그 달콤한 시간마저도 허락받지 못하는구나.
강진호는 시큰해지는 눈가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이러려고 중국에 온게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가 중국에 안 왔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니 새삼 섬뜩한 강진호였다.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낸 강진호가 침대 앞쪽으로 다가가 최연
하에게 생수를 내밀고는 바닥에 앉 았다.
“위에 앉아요.”
“거긴 좀 그래서……
“올라와요.”
강진호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침대 한구석에 앉았다.
최연하의 입이 달싹거렸다.
구박을 좀 더 하고 싶은데,은근 슬쩍 멀리 앉아서 눈치를 보는 모습 이 상처 입은 강아지 같아서 험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 기를 잡아야 하는데
최연하는 알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언제나 주도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 주는 존중 이 있는 관계?
말은 좋다. 그걸 실제로 할 수 있는 이가 잘 없어서 그렇지.
강진호와 최연하의 관계는 최연하가 우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진호에게 일방적으로 쏠려 있는 관계였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 하다. 최연하는 강진호에게 집착하지만, 강진호는 최연하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내일 당장 최연하가 강진호에게 ‘이제 그만 봅시다’라고 해도 강진호는 ‘네, 그러죠’라는 말로 떠나 릴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최연하는 언제 나 강진호의 눈치를 봤다. 겉으로는 짜증을 부리지만, 속으로는 그 짜증 에 강진호가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 하는 상황이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의도하지 않게 일방적으로 구박을 퍼부을 수 있는 주도권을 손 에 넣었으니, 이 와중에 좀 더 주도 권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이런다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강진호는 그녀에게 집착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서 로 기분만 상하는 일이다.게다가 지금 그녀는 강진호에게 감사해야 할 상황 아닌가.
“강진호씨.”
“네?”
최연하가 고개를 앞으로 푹 숙였다.
“미안해요. 어리광 부렸어요.”
“네?”
최연하가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화를 낼 상황 아니라는 것 알아 요. 짜증 부릴 상황도 아니고, 되레 고맙다고 절을 해도 모자란 상황이 라는 것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짜 증을 낸 건…… 그냥 어리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그러고 싶었어 요. 강진호씨가 아니면 내가 이럴 일은 절대 없었겠지만…… 그냥 그 럴 때가 있잖아요. ‘내가 지금 많이 힘들고 슬프니까, 네가 짜증이 좀 나더라도 티 내지 말고 나를 받아 줘’라고 우기고 싶은 때가.”
“……없는 모양이네. 하긴 당신은 그렇겠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는 강진호를 보며 최연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 사람이야 그럴 일이 없겠지. 강하니까. 그것도 아주 대책 없이.
“여하튼 덕분에 기분이 많이 풀렸 어요. 구해줘서 고마워요. 정말로. 그리고 미안해요. 항상 어리광만 부 려서.”
최연하가 눈가를 홈치는 모습을 본 강진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리광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
고,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습니다. 늦게 온 것도 맞 고, 신경을 많이 못 쓴 것도 맞죠.”
최연하가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 았다.
“바빴다는 변명을 쓰고 싶지만, 그런 변명으로 면피할 수 있는 상황 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 안 해도 됩니다.”
“ 진짜……
최연하가 눈가를 홈치며 웃었다.
“진짜 멋대가리 하나도 없네.”
“그럼 나 부탁 하나 있는데, 들어 줄래요?”
“네. 물론이죠.”
“자고가요.”
강진호의 몸이 굳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네?”
“자고가라구요.”
그와 동시에 등골을 타고 폭포수 같은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