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68)
마존현세강림기-669화(667/2125)
마존현세강림기 27권 (20화)
4장 조정하다 (5)
“고마워요.”
괜찮다는 말을 하려던 강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최연하의 목소리에 서 느껴지는 진정성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저 형식상으로 하는 고마움의 표시가 아니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때로는 이해를 넘어 전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저, 그래서요……
“ 네?”
“고마움을 좀 표시하고 싶은데……
“……네?”
최연하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 러고는 주변을 살피더니, 이내 결심을 한 표정으로 살짝 몸을 일으켰다. 차 안이라 완전히 설 수는 없지 만, 어정쩡한 자세로나마 몸을 일으 켰다.
“아니, 잠시만……
강진호가 뭔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자세를 뒤틀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굳이 무 슨 표시까지.”
“음, 그러네요. 사실 이런 걸로 고마움을 표시한다는게 웃기는 일 이죠. 맞아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행히 최연하가 납득한 것 같자 강진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건 납득이 아니었다.
“그럼 말 바꾸죠. 이건 고마움의 표시 같은게 아니에요.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 네?”
최연하가 슬금슬금 강진호에게 다가왔다. 강진호의 몸이 점점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밴의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어디까지 물러날 수 있 겠는가. 등 뒤로 전해지는가죽 시 트의 탄탄함을 한계까지 느낀 강진호가 식은땀을 홀려 댔다.
“아니, 왜……
“가만히 있어봐요.”
“아니, 잠시……
“가만히 있으라니까. 누나가 알아 서 할게.”
보통 여기서 그 대사가 나오나?
이 여자도 좀 이상하다. 아니, 좀 많이 이상하다.
“대사가 좀……
“뭐? 내가 누나 맞잖아.”
그렇지.
민증상으로는.
그런데 이쪽은 사실 할아버지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살아왔는데.
그렇다고 누나가 아니라고 하기도 뭐하고…….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 지.
강진호가 쭈삣대며 뒤로 물러섰
다.
하지만 최연하는 먹이를 움켜잡은 독수리처럼 눈빛을 형형하게 뿜어냈다.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이 말이다.
강진호는 고민했다.
밀어내야 하는가.
아니면 받아들여야(?) 하는가.
고민은 금새 정리되었다.
단호하게 밀고 들어오는 최연하이 지만,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입술 역시 떨리기는 마찬가 지였다.
저런 얼굴을 한 사람을 어떻게 밀
어내겠는가.
결국 강진호는 눈을 감고 말았다.
덜컥.
“오늘 촬영 여기까지 한대요.”
“그, 그래?”
앞문을 열고 들어온 한은솔이 쓰 고 있던 모자를 보조석으로 던지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룸미러로 슬쩍 뒤를 살핀 한은솔 이 고개를 갸웃했다.
“에어컨 끄고 있었어요?”
“아, 아니.”
“그런데 뭐가 이렇게 후덥지근하
지?”
“여, 여름이잖아.”
“응?”
한은솔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그의 머릿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언제나 최연하 측정기를 풀가동 하고 있는 그의 뇌가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누나가 뭔가 이상하다.
‘뭐지?’
한은솔의 눈이 룸미러를 날카롭게 홀었다.
‘뭐야, 저 표정은?’
한은솔이 입을 슬 벌렸다.
의자에 앉아 양손을가지런히 모은 최연하의 자세가 심각한 어색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저 여자는 저 런 자세가 어울리지 않는다.
새초롬한 최연하라니, 세상에!
유태인을 사랑하는 히틀러라는 말 보다 더 어색한 말이었다.
‘볼에 홍조? 홍조오오?’
저 발그레한 볼은 또 뭐란 말인가.
뭔가 있다.
이건 분명 뭔가 있었다.
한은솔의 눈이 새로운 정보를 탐 색하기 위해서 룸미러를 훑었다. 그
의 시선이 향한 곳은 최연하의 뒷자 석에 타고 있는 강진호였다.
‘저, 저건 또 뭐야?’
강진호는 살짝 넋이 나가 있었다.
얼굴이 풀린 강진호라니.
이건 새초롬한 최연하보다 더 이 상하다. 한은솔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강진호가 저런 얼굴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무표정하지만 절도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저…….
‘헤벌죽?’
아닌데.
헤벌죽이라고 하기에는 뭐하고,
저걸 뭐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명탐정에 빙의한 한은솔이 날카로 운 눈으로 차 안을 훑었다. 그러고는 눈을 빛냈다.
“강진호씨.”
“……네?”
“입술에 립스틱 묻었어요.”
강진호가가만히 손을 들어 입술을 홈쳤다.
하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안 묻었는……
강진호가 아차하는 얼굴로 한은솔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은솔이 회 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했네, 했어.”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 고, 최연하의 얼굴은 대놓고 썩었다.
“하참, 순수하기도 하시지. 촬영장 한구석에 세워진 밴에서 입술 박치 기라니. 영화보다 더 영화 같……
“뒈지기 싫으면 운전이나 하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한은
솔은 아무 말 없이 시동을 걸었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죽는다.
그렇게 묘한 공기를 품은 채 차가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미묘하다.
공기가 무척이나 미묘했다.
한은솔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 지로 참아냈다.
기분이 나쁘냐고?
꼭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최연하 와 강진호가 키스를 했다는 사실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무슨 초딩이냐?’
둘 다 스물이 넘은 성인들인데, 저 어색어색한 공기를 보라.
‘귀엽다, 귀여워.’
최연하의 사회적 지위야 말해서 무엇 하겠냐마는, 강진호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재력이 나 사회적 지위가 결코 최연하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은솔이 었다.
그런데 저게 뭔가.
그만한 사람들이 뽀뽀 한번 했다 고 눈도 서로 못 마주치고 있는 실
정이라니.
여기가 무슨 천연기념물 보호소도 아니고.
‘잘 만났어.’
어울린다.
더럽게 잘 어울렸다.
어쩌면 저 사람들은 천생연분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표독스럽기 짝이 없는 최연하가 강진호만 만나 면 순한 양이 되는 것도 우스웠고, 저 답도 없던 류웨이를 개처럼 조련 한 강진호가 최연하 앞에서는 어색 어색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도 우스
웠다.
어쩌면 저 두 사람은 서로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중요한 건 저게 내숭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연하는 자기가 하고 있는 작업 들이 모두 내숭이라고 떠벌이기는 했지만, 한은솔이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다. 내숭이라는 것은 상대를 속 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연하는 강진호의 앞에서는 정말 성격이 변했다.
저 관계가 계속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확실하다.
그러니 어떻게 저 관계에 딴지를 걸겠는가.
최연하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는 것은 확인한 한은솔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설마 운전하고 있는 사람을 때리 지야 않겠지.
“거, 청춘 남녀가 그럴 수도 있 지, 뭘 그리 부끄러워하고……
퉁!
운전석으로 날아온 파우치가 유리 창에 튕기자 한은솔이 다시 입을 다 물었다.
재밌다.
이거, 너무 재밌다.
한은솔은 느꼈다. 어쩌면 지금이 그가 최연하를 놀려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설사 차에서 내리고 나서 최연하에게 물 어뜯김을 당한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은 그가 왕이 아닌가.
“누나.”
“왜!”
날카로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하지만 한은솔은 능글맞은 목소리 로 최연하의 독기를 홀려냈다.
“숙소 옮길까요?”
“응? 숙소? 숙소는 왜?”
“아무래도 이 호텔은 보는 눈이 많잖아요. 좀 으쓱한데로 옮기면 구설수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구설수가 왜 나?”
“에이, 남녀가 한방에서 지낼 건데, 어떻게 구설수가 안 나요. 같은 층에 한국인 투숙객도……
까아아앙!
밴 앞유리에 립스틱이 부딪치며 튕겨 올랐다.
이건 좀 위험한데.
“주……둥아리 계속 놀려보시지?”
“……잘못했습니다.”
여기서 더 놀렸다가는 뒷감당이 안 된다는 것을 파악한 한은솔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입가에 걸 린 웃음만큼은 어떻게 멈출 수가 없 었다.
“쪼개?”
“아니에요, 아닙니다. 제가 웃으려 고 웃는…… 줍!”
최연하의 눈이 불타올랐다.
달싹이는 최연하의 입술을 보며 한은솔이 시선을 전방으로 고정했다. 지금 시선을 마주치면 운전을 하고 있더라도 저 여자가 달려들의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 때문에 빈약 해졌던 머리가 이제 겨우 다시 나고 있는데, 다시 탈모약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누나, 제가 잘못…… 어?”
뭔가 말을 하려던 한은솔이 경호 성을 내고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뭐지?’
외길.
아래로 향하는 산길의가운데를 누군가 틀어막고 있었다.
한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열은 되어 보이는 이들이 길을가로막은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누가 있는데요?”
눈을가늘게 뜨고 길을가로막은 이들의 행색을 살핀 한은솔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남루한 복장.
영 좋지 않아 보이는 표정들.
그 두가지만 보더라도 이게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밀고 들어갈까?’
차를 세우는 것은 위험했다.
이곳에는 인적이 없다. 괜히 차를 세웠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 른다.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위협을가하든 말든 차로 밀어버려야 한다.
하지만 저들이 비키지 않는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떻게 하지?’
그때였다.
길을 막고 있던 이들 중 하나가 손에 든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칼?’
그자가 손에 든 것이 커다란 정글도라는 것을 알아챈 한은솔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숙여요!”
사내가 손에 들고 있던 정글도를 그대로 차를 향해 집어 던졌다. 맹 렬한 기세로 회전하며 날아든 정글도가 차의 앞 유리에 그대로 틀어박 혔다.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앞 유리가 그대로 터져 버린다. 한은솔은 몸을 숙인 채 전력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제발!’
핸들을 왼쪽으로 급격하게 틀었다. 오른쪽으로 조금만 기울어지면
절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다행 히 차가 멈춰 서는 느낌이 난다. 떨 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어떻게 하지?’
강도? 아니면…….
어느 쪽이든 좋은 결과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어딘가에도 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한 한은솔이 휴대폰을 움켜잡는 순간, 어느새 최 연하를 안아 보호하고 있던 강진호가 몸을 일으켰다.
“여기 계십시오.”
“……네?”
“금방 끝낼 테니까, 여기 계시면 됩니다. 오래 안 걸립니다.”
“가, 강진호씨?”
“괜찮습니다. 지금 기분이 좋으니 까요.”
강진호는 한은솔이 말릴 틈도 없 이 뒷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한은솔이 기겁을 해서 소리쳤다.
“누, 누나, 말려야 하는 거 아니 에요? 저 미친 새끼들…… 칼 들었 다구요.”
하지만 최연하의 반응은 한은솔의 예상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은솔아.”
“네!”
“들었어?”
“……예?”
최연하가 숨길 수 없는 웃음을 드 러내며 볼을 감쌌다.
“지금 기분이 좋대. 꺄아!”
“……”
뒤쪽으로 돌아가 있던 한은솔의 몸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좌석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젖힌 한은솔이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답도 없다, 답도 없어.’
그의 배우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자는 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