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69)
마존현세강림기-670화(668/2125)
마존현세강림기 27권 (21화)
5장 달려들다 (1)
‘이 현주라……
이현수는 눈앞의 여자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래, 물론 알고 있다. 이 여자가 누구이고, 어떤 여자인지 말이다. 어 쩌면 이현주 본인이 알고 있는 것보 다 더 자세히 알고 있을지도 모른
그럼에도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 이었다.
“그래서……
이현수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른함, 그리고 살짝 밀려드는 곤 란함.
아무래도 이 어색함만은 어쩔 수가 없다.
이현수는 이현주의 삶을 뭉개 버 린 이들 중 하나였으니까. 아니, 그 중 하나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도하게 핵심적인 일을 맡지 않았는가.
이현주가 그를 원수라 여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가 한 일이 정당했는가는 중요 하지 않다. 본디 감정이라는 합리성 과는 거리가 먼 일이니까.
그래.
이건 껄끄러움이라 불러야 할 감 정이다.
이현수는 내부로부터 밀려오는 껄 끄러움에 조금 생소해했다.
물론 그도 사람이니 누군가에게 껄끄러움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건 최근 몇 년간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자신에게 고문받는 이가 보내는
증오가득한 눈길도 홀려보내던 이 현수가 껄끄러움이라니.
이현수는 새삼 자신이 많이 변했 다는 것을 실감했다. 불과 반년 전 이었다면 이현주와의 조우에서 껄끄 러움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다고 했습니 까‘?”
이 생소한 감정을 조금 더 즐기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안 타갑게도 이현수는 이 여자와의 조 우에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이현수를 바라보는 이현주의 눈에
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서로 적이었다. 이중걸의 손녀와 김 석일의 오른팔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사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지 금 서로 마주한 채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상전벽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입지의 변화를 겪은 뒤가 아닌가.
사람인 이상 기분이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현수가 이
중걸을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하지만 이현주는 깊은 심호홉으로 감정을 다스렸다.
“강진호씨에 대해 할 말이 있어 서 왔어요.”
“회주님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이현수가 흥미롭다는 듯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의 입에서 강진호의 이름 이 나오는 것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이 사람에게 회주님은 어떤의미
일까?’
증오스러운 적?
아니면 대적할 수 없는 거악?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리 호의 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강진호는 그 이중걸의 숨을 끊어놓은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이현주는 굳이 그를 찾아와서 강진호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었다.
“말씀해 보시죠.”
그렇다면 들어줘야겠지.
“그전에……”
이현주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이 현수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저를 감시할 생각이시 죠?”
“흠…….”
이현수가 볼을 긁었다.
역시나 이 여자와 대화하는 건 껄 끄럽다.
“이쪽의 상황을 모두 이해해 달라 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 만……
“아니요.”
이현주가 단호하게 이현수의 말을 잘랐다.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 요. 제가 알고 싶은 건, 이 감시가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하는 것뿐이에요.”
“글쎄요. 그것 역시 확답을 드리 기는 힘드네요. 굳이 말하자면, 그쪽 에 대한의심이 풀리는 순간이겠 죠.”
“제가 더 이상은 총회에 해를 끼 칠가능성이 없다는게 밝혀지는 순간이라는 거죠?”
“말하자면 그렇겠죠.”
이현주가가만히 이현수를 바라보 며 말했다.
“그걸 누가 결정하나요?”
“음……”
“딴지를 걸거나 당신을 무시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걸 당신이 결 정하는게 월권이 아닌가 하는 거 죠.”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이현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논리적인 지적에 덮 어놓고 ‘아니오’를 외칠 만큼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좀 문제이기는 하지.’
과거 이중걸 시절 때는 중간 계층 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중걸은 독재 자이지만 자신의 공신들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고, 공신들 사이에서
도 서열이 명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떠한 일은 어 느 선에서 해결한다는가이드라인이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 총회에는 그게 없다. 모든 권한은 강진호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딱히 이인자라 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바토르와 나이트 위긴스는 아직 총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판 단은 내릴 수 있겠지만, 그 판단을 명령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현수는 특성 상 완벽한 이인자가 될 수 없다.
결국 지금 총회에서 강진호의 대
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방진훈밖에 없는데, 방진훈은 권력을 내려놓고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활동을 자 제하고 있다.
그 아픈 부분을 이현주가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확실히 이현주에 관련된 일은 처 리할 사람이 애매했다. 이현수가 처 리하기에는가진 권한이 충분치 않고, 강진호가 처리하기에는 너무 사 소한 일이었다.
게다가…….
‘강진호씨에게 말해봐야 빤한 대 답이 돌아오겠지.’
내버려 둬.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혹시나 그 일이 잘못된다고 해도 힘으로 깨부수면 그만이라 생각할 사람이다. 물론 이현수는 그런 강진호의 판단을 1000% 존중한다. 강진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문제는 하나다.
‘그 뒤처리는 제가 한단 말입니 다!’
해결이 된다고 끝이 아니다.
강진호야 사건만 후려쳐서 해결해 버리고 갈 길을가버리겠지만, 사건
현장을 정리하고 그 뒤처리를 하는 것은 이현수 자신이 아닌가. 경험상 사건은 터지고 해결하는 것보다 터 지기 전에 틀어 막는게 백배는 더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현수였다.
“월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 만 제가 월권을 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결국은 강진호씨라는 거네요.”
“ 말하자면.”
이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제가 요구할 것도 하나뿐이네요. 강진호씨와 대면시
켜 주세요.”
“거절합니다.”
“당신에게 거절할 자격은 있나 요?”
“그 정도 자격은 있을 것 같은데요.”
능글맞게 웃는 이현수를 보며 이 현주가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저 느끼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뭉 개 버리고 싶었다.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과하다?”
“네, 과하죠. 당신은 나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망국의 공주
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누군가 나를 옹립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너무 본 모양인데, 나는 폐 족일 뿐이에요. 아무런 힘도 없는.”
“물론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안 타까운 말이지만, 저는 당신에게 그 리 큰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계륵 같은 사람이죠.”
“당사자를 앞에 두고 잘도 지껄이는군요.”
“때로는 직설적일 필요도 있죠.”
“ 알아요?”
이현수가 눈에의문을 담자 이현 주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 정말 재수 없어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군 요. 자각 정도는 하고 있습니다.”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오 신 건 아닐텐데요. 서로 알고 있는 것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을 테니 까요. 저는 그쪽과는 다르게 꽤나 바쁜 사람이라 용건이 없으면 이만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만?”
이현주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말했다.
“할 말은 이게 아니었지만, 여기 서 문제를 발견했네요. 이봐요, 이현 수 씨.”
“ 네.”
“똑똑하다고 자부하시는 분이니 까, 내 질문의 답을 알고 있겠죠. 말해봐요.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지 금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죠?”
“아뇨. 당신은 굳이 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현주는 말없이가만히 이현수를 노려보았다.
“그냥 그렇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몇 해, 아니, 몇 달이라도 시간
이 홀러서 당신에 대한 관심이 아주 없어진다면 곱게 놓아드리죠.”
“곱게 죽이는게 아니라요?”
“죽일 거면 진작 죽였습니다. 이 쪽이 그걸 꺼려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좋은 대답이네요. 하지만 제 질 문에 대한 답변은 아니에요. 말해주 세요. 제가 뭘 해야 당신들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죠?”
이현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일원이라고 한 겁니까?”
“네. 일원, 조직원, 말단. 무슨 말 이든 좋아요. 당신이 말하는 방법은
결국 총회를 떠나야 한다는 결론밖 에 남지 않아요.”
“그게 당신에게도 좋은 것 아닙니까?”
이현주가 피식 웃었다.
“좋아요? 네, 아주 좋죠. 총회를 떠나면 어디 한적한 편의점 알바 자리라도 알아볼까요? 그게 아니면 어디 공장에 들어가도 좋겠네요. 힘 하나는 남자도 못 따라올 테니까.”
이현주의 표정이 표독스러워졌다.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무인이에요. 그 리고 한국에서 무인으로서의 정체성
을 지키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코 총회를 떠날 수 없어요. 나 역시 이 런 말을 하는게 우습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어요. 그 러니!”
이현주가가만히 이현수를 노려보 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두가지 중 하나만 하면 돼요. 내게 총회에 남을 방법을 알 려주든가, 아니면 내가 강진호씨에게 달려들어 울고 짜는 걸 막든가.”
“그거 섬뜩한 협박이네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이현수의 머리는 지금 꽤나 복잡했
이현주가 누군가.
그 이중걸의 손녀다.
이 시대에 혈통을 따지는게 웃기 기는 하지만, 총회를 하나의 왕조라 표현한다면 이현주는 적통 중의 적 통이다. 총회에서 성장한 방진훈은 귀족 정도는 될 것이고, 강진호는,
‘오랑캐 정도 되겠네.’
쓴웃음이 머금어진다.
여자라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녀를 지지해 줘야 할 이중걸의 계파가 완전히 와해되어 눈치만 보고 있
다.
그럼에도 이중걸의 손녀라는 지위는 나름의 상징성을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이토록 경계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총회에 남겠다?
강진호가 지배한 총회에?
“원수의 밑에서 칼이라도 갈아볼 생각입니까?”
“내가 칼을 간다고 그 사람 피부 에 생채기라도 내겠어요?”
“무리겠죠.”
이현수가 머리를 긁었다.
“그럼 굳이 그러는 이유가?”
“자꾸 멍청하게 굴지 말아요. 나는 무인이고, 내 할아버지가 누구든 나는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해요.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이, 무인은 무인계를 떠나 살 수 없어요.”
“음……”
“당신도 알고 있겠죠. 나를 이런 식으로 잊히게 만드는 것보다 대놓 고 부려 먹는게 낫다는 걸. 내가 강진호씨에게 굴복하고 그 휘하에 들어간다는 것은 완전한 항복을의 미하니까요. 할아버지에게 미련을가지고 있던 이들도 모두 포기하게
되겠죠.”
“음……”
혹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그러니 저를 써먹으세요. 얼마든지 이용당해 드리죠. 그 대신, 그 빌어먹을 감시원들 좀 치워줘요. 그게 안 되면 외출이라도 시켜주든가.”
“쿡쿡.”
이현수는 웃고 말았다.
‘당돌하네.’
그의 앞에서 이토록 당당히 자신의의견을 내미는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현수가가만히 이현주를 바라보 다 입을 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은데?”
입은 웃고 있지만, 이현수의 눈을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마치 파충류의 그것처럼 감정 없 이가라앉아 있는 그 눈은 바라보는 이에게 섬뜩함을 안겨주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