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70)
마존현세강림기-671화(669/2125)
마존현세강림기 27권 (22화)
5장 달려들다 (2)
이현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기억난다.
저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 었는지.
영남회와 총회가 치열한 세력 싸 움을 벌이던 당시, 그 김석일보다 더 많이 회자되던 이름이 바로 이현
수라는 이름이었다.
악마 같던 그의 계략에 희생된 이 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총회와 영남회가 하나로 합쳐진 지금도 그 당시의 원한을 잊지 못하 고 이현수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도 허다했다.
지금 이현주는 그런 사람을 상대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조금 자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군. 지금 그쪽이 나와 협상을 할 주제가 된다고 생각하 나?”
“모른다면 알려주지. 그쪽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제안을 하든 이쪽은 받을 생각이 없어. 협상이라는 건 서로 동등한 존재들이 하는 법이 지. 아직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모양인데, 나는 당신의 생떼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어.”
“ 당신……
“대화라는 걸 해보고 싶다면 말이야.”
이현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가지고 있는 패를 모두 까고 처 분을 기다려. 혹시 모르잖아, 이쪽이 기분이 조금 괜찮으면 한번쯤 생각
해 볼지.”
주먹을 꽉 움켜쥔다.
굴욕.
전신이 뒤흔들릴 만큼의 굴욕이었다.
머리로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어떤 굴욕적인 말을 듣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겠 다는 다짐을 하고 왔지만, 막상 눈 앞에서 저런 말을 듣는다는 건 버티 기 힘든 일이었다.
특히나 그녀에게는.
평생을 이중걸의 후광과 함께해 온 사람이 어디서 저런 원색적인 말
을 들어보았겠는가.
어린 시절에는 주위 모든 사람에게 예쁨을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는가진바 능력 이상으로 인정받고 살 았다.
그런 그녀에게 현실의 칼바람은 버티기 힘든 고통이었다.
‘하지만 당연한 거야.’
이제야 현실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동안 그녀가 편히 살아온 만큼 지금 겪어야 하는 현실이 남들보다 조금 혹독한 것뿐이다. 그러니 누구도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이현주가 똑바로 이현수를 바라보 고 말했다.
“무릎이라도 꿇어드릴까요? 아니 면 땅바닥을 기면서 개처럼 짖어볼 까요? 그럼 뼈다귀라도 던져 주실래 요?”
“나쁘지 않군.”
이현수가가라앉은 눈으로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당돌해.’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 상황을 버 틸 수 없을 것이다.
공주처럼 살아오던 여자가 어느 순간 그 모든 권한을 박탈당하고 폐
족으로 몰렸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재빠르게 현실을 파악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 어설픈 각오를 깨부숴 보려 했 건만, 망치로 후려쳐도 흔들리지 않고 독기를 품으며 노려본다.
인정해야 한다.
‘써먹을 수 있겠네.’
이현수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현주의 존재는 억누르는 것보다 활용할 때 더가치가 있다. 이현주가 강진호를 확실하게 지지하고 그 아래에서 움직인다 면, 음지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이
중걸 지지파들도 결국 현실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리 짓궂게 구는 건 이 중걸에 대한 이현수의 반감 때문인가, 아니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군. 말해보지. 내게 줄 정보가 뭐지?”
“이성휘가 강진호씨를 노리고 있 어요.”
“이성휘?”
이현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성휘, 이성휘라…….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이중걸
에 대해 본인보다 더 잘 알고 있던 이현수가 아니더라도 이중걸의 애제 자인 이성휘를 누가 모르겠는가.
제자를 잘 두지 않기로 유명하던 이중걸이고, 그런 이중걸이 말년에 받아들인 제자다. 다시 말하자면, 차 기 총회의 회주로가장 유력하던 이가 바로 이성휘다. 먼 훗날의 이야 기이겠지만.
강진호의 손에 잡혀왔다가 총회의 감옥을 부수고 탈출한 이후로 소식 이 더는 없었는데, 그 이름이 여기 서 등장한단 말인가.
“흐음.”
이현수가가만히 턱을 긁었다.
“그리운 이름이군. 놈과 만났나?”
“네. 찾아왔더라구요.”
“감시하는 이들이 있었을텐데.”
“찾아왔었어요.”
“……시말서라도 쓰게 해야 하 나.”
이현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러면 감시의의미가 뭐란 말인가.
“그래서 그 이성휘가 강진호씨를 노린다고?”
“네. 말하는 뉘앙스를 보면 이미 뭔가가 진행되고 있는 듯했어요. 그
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 할……아버 지가 그리 쉽게 무너진 이유도 그와 제대로 동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 동조가 무엇인지는 모 르겠지만요.”
“음……”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리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완벽할 필요도 없었다. 전력이 갖춰진 적을 치는 것은 병법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따로 뭔가 준비하고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성휘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군요. 이성휘 하나만으로 대
세를 바꿀 수는 없었을 테고, 그럼 이성휘가 연관된 쪽이 있다는 건데.”
이현수가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본, 아니면 중국. 하지만 그놈의 수완으로 그들의 협조를 끌어내는 건 불가능했을텐데?”
“실종된 사람이 하나 더 있죠.”
“……김석일인가.”
“마공을 익히고 있었어요.”
“수수께끼를 푸는 느낌이군. 아주 질 나쁘고 악의가득한 수수께끼이 지만 말이야.”
이현수가의자에 등을 기댔다.
‘김석일과 이성휘라……
생각하지 못한 조합이었다. 그 둘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고정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현수가 총회에서 이리 일을 하게 될 날이 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공통의 목표나 매개체가 있다면 이전의 원한 같은 것은 중요 하지 않다.
그들의 공통의 목표는 빤하다. 강진호겠지.
‘일차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런데 아직도 노리고 있다는 거로군. 그렇 다면……
이현수의 얼굴이 굳었다.
중국.
그가 김석일이라면 강진호가 중국 에 있는 지금을 노릴 것이다.
총회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니까.
게다가…….
‘이거, 생각 이상으로 위험할 수 있겠는데?’
굳이 강진호를 제거하기 위해서 전력을 투입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난동을 부려 강진호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 주변에 알려도 홍왕계가 움직일 테니까.
차도살인지계.
이현수라면 그 방법을 택할 것이다.
“좋은 정보로군.”
이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돌아가. 정보의가치는 충분히 인정해 주지. 당신의 처우는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해 주겠어. 그러니……
“아니요.”
이현수가 이현주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눈을 똑바로 뜬 채 이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돌아가면 보나마나 잊혀지 고 방치되겠죠. 나는 당신을 그리 신뢰하지 않아요. 정보의가치를 인 정했다면, 지금 제 처우를 바꿔주시 죠. 그게 순리 아니겠어요?”
이현수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이거, 생소하군.’
과거 그는 영남회의 두뇌, 영남회의 악마라 불렸다. 그의 밑에서 그가 지시하는 일을 하는 이들은 많았
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현수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총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낸의견에 반박을 하거나 딴 지를 거는 이들은 그의 윗사람들뿐 이었다. 그런데 이현주는 자신이 이 현수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있으면서도 그의의견에 따박따박 반박을 하고 있었다.
조금의 불쾌함.
그리고…….
이현수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컴퓨터는 할 줄 아나?”
“다행히 진화가 덜되지는 않았어
요. 뗀석기를 다루는 정도는 아니거 든요.”
“사무를 볼 수 있느냐고 묻는 거다.”
“할아버지가 컴퓨터를 잘 다루셨을까요?”
“……아니겠지.”
“그럼 그은밀한 서류와 장부들을 누가 다뤘을까요? 혈육도 제대로 믿 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살짝 고민을 하던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를 주지. 일을 주겠어. 그걸 완벽하게 처리해 낸다면, 당신의 지
위를 보장해 주지. 강진호씨가 탐 탁지 않게 여긴다 하더라도 관철시 켜 주겠어.”
이현주의 눈이 빛났다.
“단, 몇가지 조건이 있다.”
“말씀하세요.”
“첫째, 숙소를 옮겨. 감시가 힘드니까. 근처 기숙사에 방을 마련해 줄 테니 거기서 살아.”
“받아들이죠. 아뇨, 오히려 이쪽에 서 부탁하고 싶은 바예요.”
“둘째, 능력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퇴출이다.”
“각오하고 있어요.”
이현주가 눈을 빛냈다. 그 모습을 본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감당하기 쉽지 않겠네.’
의욕이 넘치는 이는 사고를 치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 일에 자신의 인생이 걸렸다고 생각하는 이현주이니 열정이 과할게 빤했다.
다만, 그럼에도 써먹어볼 여지는 충분했다.
‘현실 파악이 빨라.’
이현수가 이현주의 입장이었다면 이리 움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현주는 지금 자신의 삶을 뒤바꿀 수 있는 최적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무척이나 힘들고 고되겠지만, 성 공만 한다면 이중걸의 손녀라는 굴 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셋째, 이성휘와 접촉해봐. 정보가 더 필요해.”
“그건 무리예요. 제가 선을 제대 로 그었거든요. 저는 총회에서 살아 간다고 했어요. 성휘에게 머리가 있 다면, 다시는 제게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
“성급했군.”
“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었어요. 제가 지금 이성휘와 접촉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속으로
저를 계속의심하겠죠.”
“그것도 맞는 말이지.”
‘머리 회전도 빠르고, 눈치도 빨 라.’
이현수는 인정했다.
이 여자는 이리 버리기에는 아까 운 인재다. 애초에 명분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실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게 강진호의 지론 아닌가. 그리고 그건 이현수의 지론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현수가가만히 이현주를 보며 말했다.
“먼저 짚고 넘어가지. 나는 네가
싫다.”
“그 이중걸의 손녀라는 것만으로도 평생 골방에 처박아두고 과자나 까먹게 만들고 싶을 정도야. 모든 일에 꼬투리를 잡아 어떻게든 너를 잘라내려고 애쓸 테니까, 각오하라 고.”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예요. 미리 말해두죠. 나는 반드시 당신을 끌어 내리고 그 자리에 올라갈 거예요. 그러니 조심하라구요.”
“큭큭.”
가볍게 웃은 이현수가 고개를 끄 덕였다.
“휴게실에가서 커피나 한잔하고 있지. 당신이 일할 곳과 자리를 마 련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하니 까.”
“알겠어요. 그리고……
“ 음?”
이현주가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 했다.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셔서.”
“당신 입장에서 저를 객관적으로 봐준다는게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당신의 능력에는 경의를 표 해요.”
“웃기고 있군.”
쓸데없는 공치사에 이현수의 얼굴 이 살짝 붉어졌다.
“물론 인간으로서는 최저라고 생각하지만요.”
“하나만 하지, 하나만.”
“그럼.”
이현주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이현수가 그녀를 불렀다.
“아, 마지막으로가장 중요한 걸
이야기 안 했군. 이건 필수적이야.”
“ 네?”
이현주가 고개를 돌리자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나와 같이 일하고 싶으면 개명 해. 아까부터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올 것 같거든.”
“……미친 새끼.”
깔끔하고 확고한 감상이었다.
이현주가 밖으로 나가자 이현수가 얼굴을 문질렀다.
“왜 내가 이런 소리까지 들으면서 수습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현수의 시선이 창밖 먼 곳으로 향했다.
아주 먼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