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723)
마존현세강림기-724화(722/2125)
마존현세강림기 29권 (25화)
5장 고심하다 (5)
“그래, 얼마를 원하지?”
“……”
강진호의 시선이 주강에게로 향했다.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린게 실 수였다.
“아……” 그?”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며 주강이 몸을 부르르 떨 었다.
‘난리 났네.’
이리된 이상 그가 마존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입을 다 물어 버리는 것도 마존에 대한 불경 이다. 등에서 식은땀이 배어나는 감 각을 느끼며 주강이 입을 열었다.
“워, 월급을 주신단 말씀이십니까?”
“그럼 안 받나?”
강진호가 되레 되물었다.
“하, 하지만 그런 전례가 없었습니다.”
강진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고개를 돌린 강진호가 장민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지? 녹봉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제가 철이 들었을 때부터 녹 봉을 주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 습니다.”
강진호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뭘 먹고 사는데?”
“……”
장민이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지금 강진
호의 질문이 대체 무슨의도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녹봉을 준다고?’
그가 알기로는 마교에서 교도들에게 녹봉을 지급한 적이 없었다.
“마존이시여, 개인적인 돈벌이는 교도들이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럼 교는 뭘 하는 건가?”
“교는 교의 포교와 전체적인 관리를……
“그러니까……
강진호가 장민의 말을 잘랐다.
“하는 짓도 없고, 장로니 뭐니 하 면서 돈만 받아먹고 교도들의 생활
은 나 몰라라 한다는 소린가?”
“……”
장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니, 말을 꼬아서 하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게 이상한 건 아니잖은가.
하지만 강진호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일반적인 종교들의 관점에서 보자 면 딱히 이상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 른다. 하지만 마교는 일반적인 종교가 아니었다. 다른 종교를 믿는 교도들은 일상생활과 종교 생활을 병 행한다.
하지만 마교도들은 마공을 익혀야 하기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다른 종교의 입장으로 보자면, 하루 종일 빡빡한 스케줄로 살아가야 하는 목사나 신부가 봉급도 받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그럼 누가 교에 귀의하려 하겠는가.
그렇기에 과거의 교는 교도들의 생활을 책임졌다. 그들이 일굴 수 있는 땅을 주었고,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나눠 주었다. 마교가 끊임없이 풍요로운 중원 땅을 노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교도가 늘
어날수록 척박한 대산에서는 그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기 버거웠으니 까.
그런데…….
‘되레 퇴보했군.’
이해는 한다.
힘을 잃고 추락하면서 교도들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경제력을 잃 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녹봉은…… 아니, 현대어로 해야 겠지. 월급은 지급한다. 지금부터.”
“하, 하나 마존이시여.”
장민이 다급하게 상황을 틀어막으
려 했다.
선언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자금은 어디서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교, 교의 자금이……
장민이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단호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일이지.”
“마존이시여?”
강진호가 모두를 둘러보고 말했다.
“나를 따라 한국으로 갈 이들에게는 모두 월급이 지급된다. 새로이
마공을 익혀야 하는데, 돈까지 신경 써야 한다면 성취가 있을 리 없지. 돈뿐만이 아니다. 너희가 무학을 익 힘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부분은 내가 모두 해결해 주겠다.”
주강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듣고 있는게 맞나?’
무학을 익히기 위해서 돈을 바쳐야 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무학을 익혔다는 이유로 상납을 해야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되레 돈을 주
면서 무학을 익히게 해주겠다고?
“어, 얼마나?”
자신도 모르게 물음이 나왔다.
주강의 말을 들은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정확한 액수는 지금 말하기가 힘 들군. 어느 정도가 적정한 금액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너희의가 족을 부양할 정도는 지불할 생각이다.”
강진호의 머릿속에 계산이 섰다.
이들이 한국으로가게 된다면, 마 교는 결국 총회 내의 한 지부가 될 것이다. 이들의 힘을 활용하는 대신
봉급을 지불해야 한다면, 이현수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돈이야 넘쳐 나지만 인력이 없어 서 고생 중인 곳이 총회였으니까.
데리고가는 것이 문제고, 그 안 에서도 이질적인 문화 때문에 충돌 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 울 뿐, 전력의 강화라는 측면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강진호가 살짝 움찔했다.
주강의 격한 반웅에 너무 질러 버린게 아닐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얼마씩 받지?”
“워낙 다양해서 정확하게 평균을 내기는 힘들지만, 평균적으로 한 달 일을 하는 이들은 달에 팔천 위안 정도를 법니다.”
“팔천 위안이 얼마지?”
강진호가 더듬더듬 스마트폰을 꺼 내 환율기를 켰다.
“이것밖에 안 받아?”
“……예?”
“일만 위안 이상은 보장한다.” 강진호가 막 지르기 시작했다.
“정확한 액수는 따로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달에 일만 위안 이상은 무조건 보장하겠다. 아마 겨우 그
정도 줄 일은 없을 거다.”
‘이거, 뭐 하는 자리지?’
주강이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 헤드 헌팅 하는 곳인가? 언제부터 마교가 종교가 아니라 회사로 업종을 바꿨단 말인가. 앞으로는 마교 대신 見마교의 호칭을 써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질문?”
다들 입을 열지 못했다.
너무 황당한 말을 들어서 이걸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의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 정말 월급을 주시는 겁니까?”
“그동안 월급을 주지 않은 이들이 이상한 거다. 강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하지만 강해지려는 이유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 과정에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 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결과를 좇을 수 없다. 너희는 강해지면 된다. 너 희가 강해진 만큼 교는 그것을 이용 하여 돈을 만들어낼 것이다. 수련하 고, 시키는 대로 움직여라. 그게 너 희의 일이다.”
황당하다.
어찌 들으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 만 지금까지 그 당연한 말이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기에 파격적인 소 리로 들린다.
“보, 봉급은 그럼 계속 지급되는 겁니까? 앞으로도 계속?”
“음, 그 부분은 좀 더 체계를 만 들어야 한다.”
모두의 얼굴에 ‘그럼 그렇지’라는 실망이 어렸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연봉의 인상 부분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회계팀과 실
무팀에서 체계를 만들 것이다. 그 외에 성과가 있는 자들에 한하여 성 과급의 지불과 연봉 인상 폭의 조정 이 있을 것이다.”
“능력이 있는 자는 그 능력만큼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법이지.”
어, 그러니까…….
주강이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마존이시 지?’
그들이 절망의 끝에 빠져 있을 때, 현세에 강림하시여 그들을 새로
운 세상으로 이끄실 분.
‘그게 마공을 주고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뜻이 아니었나?’
복지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뜻이었 나?
일자리를 주고 넉넉한 봉급을 지 불하여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사, 마 인이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 이지…….
아, 이게 아니고.
‘여하튼 이게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강진호는 공동에 흐르는 기이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주 5일 노동과 퇴근 시 간은 보장해 주지 못하겠다. 이건 직업의 특성상 보장할 수 있는 부분 이 아니다. 퇴근시켜야 한다며 수련 하는 사람을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더냐.”
“그, 그렇습니다, 마존이시여.”
“대신가족을데리고 오는 이들의 생활 역시 교에서 보장한다. 집을 제공하고,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도 만들어주겠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뭐한 부인들에게도 적당 한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
언제부터 마교에 복지부가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더없이 파격적 인 제안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불안과 혼란이가득하 던 공동 안이 마치 신도시 개발을 발표하는 자리처럼 뜨거운 열기로 들끓기 시작했다.
‘줄서야 하나?’
앞쪽에도열한 이들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지금이라도 마존이 ‘자, 이 모든 혜택이 선착순 3,000명. 계약서에 사인 먼저 하시는 분이 임자입니다’를 외치면 다들 앞으로 돌진할 기세
다. 잘못하면 싸움이 아니라 살인이 라도 날 기세였다.
“저, 정녕 그게 다 사실입니까?”
“내가 왜 너희에게 거짓을 말해야 하지?”
강진호가 태연하게 답했다.
“너희를 단체로 한국으로데려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너희가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돌아오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알아서 돌아올 수 있겠지. 약속이 지켜지지 않거나 들은 것과 다르다면 돌아와 버리면 그만 아닌
가.”
맞는 말이었다.
외딴섬에 끌려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인가. 중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면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경찰 서에만 들어가서 ‘내가 그 유명한 불법체류자입니다’만 외쳐도 알아서 중국으로 송환해 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를 여 쭐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 었다.
“뭔가 내가 특별한 거라도 하고 있나?”
의아해하는 강진호를 보며 모두가 황당함에 빠져들었다.
“나는 너희의 최선을 원한다. 너 희가 목숨을 걸고 수련하여 강해지 기를 원한다. 그게 마교를 부흥시킬 수 있는가장 빠른 길이고, 나를 강 하게 만드는가장 빠른 길이니까. 그러니 너희가 수련을 함에 있어서 지장이가는 부분은 모두 치워주겠 다는 거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수련해라. 너희가 강해질
방법은 내가 열어주겠다. 무공뿐 아니다. 환경도 만들어주겠다. 노력하는 자들이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 결심이 선 이들은 망설이지 마라.”
“저……”
주강이 손을 번쩍 들었다.
“허한다.”
발언에 대한 허락이 떨어지자, 주 강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마존을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
“쓸데없는 사족은 빼도록.”
“예.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한둘도 아니고, 이 많은 인원들에게 월급을 지불하 고 주거를 해결해 주시는게 정말가능한 일입니까?”
원론적이고도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단 한마디로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쳤다.
“나, 돈 많다.”
“너희 생각보다 더.”
주강의 눈에서 기이한 열기가 끓 어올랐다.
믿고 따르라.
그럼 행복에도달할지니.
그가 생각하던 방향은 아니지 만…… 아니, 생각한 것과는 뭔가 엄청 많이 다르지만, 한가지는 확 실했다.
‘전설은 사실이었어.’
그가 생각하던 전설보다 현실은 더욱 파격적이었다. 마존이 강림하 실 줄 알았더니, 돈 많으신 복지 천 사가 강림했다.
“어디서 신청하며 됩니까!”
순식간에 줄이 어그러지며 마인들 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여기저기 밀려나고 파고드는 마인 들이 왁자지껄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치 콘서트 장을 방불케 하는 그 열기에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하 고는 장민을 보며 물었다.
“얘들 왜 이래?”
“……”
제가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마존이시여…….
“일단 진정해라!”
“진정하라고, 이놈들아!”
“마존께서 노하시기 전에 어서 줄을 다시 맞추지 못할까!”
마존께서 노하신다는 말이 통했다.
앞사람의 머리채를 잡아끌며 앞으로 달려들던 마인들이 제정신을 차리고는 슬금슬금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태사의에 앉아있는 강진호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찰칵.
강진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배를 한 대 더 물고는 천천히 연기를 뿜어냈다.
“일단 진정 좀 하지.”
“예!”
대답이 우렁차다.
강진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마인들의 시선을 보며 혀를 찼다.
“애들을 얼마나 각박하게 다뤘으면……
강진호의 나무람에 장민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이 없는 걸 어쩝니까.’
지금의 마교가 어디 마교인가, 거지굴이지.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돈이 없으니 이리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이지.
“……죄송합니다.”
할 말은 많지만, 할 수가 없다. 마존에게 ‘우리가 돈이 없어서 그런 건데,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할 수는 없잖은가.
강진호는 홍미롭다는 얼굴로 열광하는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붙어 있던 게 신기하군.’
거꾸로 말하면, 이들의 삶이 그만큼이나 각박했다는 뜻이다. 마교에 붙어 있는 것이 그들의 삶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도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없던 이들이다.
가진게 마공뿐이기에 마인으로의 삶을 버릴 수 없다.
그 와중에 언제라도 마기가 골수에 차올라 타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약하다.
‘차라리 외도가 몇 배는 더 강했다.’
그가 현세로 돌아와 첫 번째 마주한 마인이었던 외도가 이들보다는 훨씬 더 강했다.
마기가 골수에 차는 걸 신경 쓰지 않고 마공을 익혔 다면, 이들도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고는 인성을 상실한 괴물이 되었겠지.
강해져야 하지만 강해질 수 없다. 그런 딜레마에 빠진 이들이다.
“이제는 달라져야지.”
강진호가 턱을 쓰다듬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해질 수 있는 길,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였다.
대가가 없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진호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끊임 없이 강해질 수 있던 이유는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오로지 그 이유가 강진호를 강하게 만들었다.
생존이 그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강함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게 돈이지.’
강진호는 세상을 그리 낭만적으로 보지 않았다.
이들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 있던 총회와 영남회도 서로의 이권을 위해서 죽고 죽이는 나선에 빠져들었다.
결국 인간은 이익에 민감하다.
그런 이들에게 이익을 제공하지 않고 의무감만을 강요한다?
파탄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들을 불쌍하게 여겨서가 아니다. 이들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와 생활의 안정이 필수적이었다.
“흠.”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은 강진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질문.”
이제는 분위기가 좀 나아져서인지 빠르게 질문이 쏟아졌다.
“가족들은 함께 넘어갈 수 있습니까?”
“물론이다. 다만, 방법은 다르다.
우선은 너희가 넘어간다. 그런 후에 가족들은 공식적인 방법으로 데리고 올 것이다.”
“그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모른다. 하지만 길지는 않을 것이다. 약속하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탐탁잖아 하는 얼굴들도 있었다.
새로운 삶과 목표를 이야기하는데 가족이라는 현실적 이야기를 끌어들 이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
하지만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에게도 가족은 삶의 목표가 되어주었다.
가족과 친구, 자신의 삶 없이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는 인생이 얼마나 피폐하고 공허한지 강진호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교가 완전히 한국으로 이전하는 겁니까?”
“여기에 남은 이들이 스스로 교를 자칭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한국으로 가는 이들 역시 지금까지의 교의 형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강진호는 담담하게, 그리고 힘있게 대답했다.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 교의 방식은 낡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지.
마교의 이름은 그 형식에 붙은 것이 아니다. 마공을 추구하고 강함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곳이 곧 마교가 된다. 그리고……
강진호가 모두를 한 번 둘러보고는 단언했다.
“내가 있는 곳이 곧 마교다.” 떨림.
담담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겁박하는 말도 아니고, 오만에 찬 말도 아니었다. 그저 하늘이 푸르다고 말하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말 이었다.
그렇기에 느껴진다.
그 말에 담겨 있는 자부심과 확신을.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부심에 마인들의 몸이 떨려왔다.
마공을 익힌 마인이라는 사실을 저토록 자부하는 이가 있었던가.
적어도 그들의 삶에서는 없었다.
과거 영광의 시대를 살던 이들은 마인이라는 사실을 자부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마인이라는 정체성은 숨겨야 할 약점에 불과했다.
뭔가 울컥한다.
스스로를 자부할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에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겨 왔던가.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샜던가.
이상하게 벅차오르는 감정을 진정할 새도 없이 강진호가 말을 이었다.
“허례와 권위는 지금 이 순간부터 버린다. 물을 것이 있다면 주저 말고 묻고, 따질 것이 있다면 참지 말고 따져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겠다.
그리고 모두가 부러워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해주겠다.”
“마존이시여!”
누군가 물었다.
“저희가 한국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마도천하를 이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댔다.
“마도천하가 무엇인가?”
“마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멍청한 소리.”
단호한 부정이 이어졌다.
“마교는 지배하려 한 것이 아니다. 지배하지 않고서는 평온할 수 없던 것뿐이다.”
장로들조차 강진호의 말에 혼란스러움을 드러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싸워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삶에서 안정과 행복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교는 외지로 내몰렸고, 그곳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지는게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싸웠다. 너희의 땅을 조금만 내 달라고.
그리고 그들은 단 한 평의 땅조차 내주지 않으려했다. 마지막까지 싸우려 했지.
그래서 벌어진 전쟁이고, 그렇게 이어진 역사일 뿐 이다.”
강진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었다.
“너희는 이미 전장에 발을 들였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발을 빼고 그저 행복해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 알 것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강해지는 것을 다른 무인들이 내버려 둘리가 없다. 다른 곳은 몰라도 삼왕계는 결코 그 꼴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들이 절로 물러나고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마도천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겠지. 그러니 너희는 싸우게 될 것이다. 마도천하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결과는 같다.
하지만 그 의도가 달랐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에 대한 오해가 있던 모양인데,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해주지.”
강진호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올랐다.
전신을 불태우는 것 같은 검은 마기. 그 마기가 솟구치고 들끓어올라 강진호의 육신을 뒤덮었다.
“나는 너희의 구원자가 아니다. 나는 마도천하를 이룩할 선지자가 아니다. 나는 그저 너희와 함께 살아가는 마인일 뿐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가지고, 걸어가야 할 길을 알고 있을 뿐이다.”
붉은 눈을 한 마귀가 그 위세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 악귀와도 같은 형상을 본 이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마도천하 같은 허상을 좇는다면 따라올 필요 없다. 나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이 나를 건드렸기 때문이지.”
모습과 말이 일치하지 않는다.
세상을 악의(惡意)로 뒤덮을 것 같은 형상을 한 마귀의 입에서 나왔다기에는 너무도 온건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들 이해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전설에 나온 적천마존이다.
하지만 그 적천마존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적천마존이 아니었다.
피와 죽음을 추구하고, 세상을 악으로 뒤덮을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평범한, 더없이 평범한.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안주의 땅을 제공할 수는 없다. 너희가 그곳을 안주의 땅으로 만들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너희 스스로 노력한다면, 적어도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가지지 않는 삶을 주겠다.”
주강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집과 돈을 주시죠.”
“••••••맞다.”
강진호를 둘러싸고 있던 마기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평범한 청년의 모습.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강진호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거, 사실 중요한 거니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주강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제 두려움 같은 건 사라졌다.
“마존이시여, 여쭙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여쭐 시간은 앞으로도 많다고 여기고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말하라.”
“결정을 내린 이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강진호가 주강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청할 곳을 마련하겠다. 장로들 이 신청을 받을 테니, 이주 여부와 함께 이주해야 할 가족들의 명단을 작성하라. 나는 너희에게 많은 시간을 줄 수 없다. 이틀 내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라.”
“마존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주강이 그 자리에 엎드리자 공동을 메운 이들이 우르르 업드렸다.
수천의 마인들이 일제히 엎드리는 광경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아아!’
장민이 몸을 떨었다.
‘이것이구나.’
이것이 교주가 존재하던 시기의 마교다.
충심 가득한 마인들과 앞서서 그를 이끄는 자.
꿈에서도 그리던 광경이 지금 장민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장민의 가슴에도 웅심이 불타올랐다.
믿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교도들을 단숨에 굴복시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힘으로 찍어 누른 것도 아니다. 그저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그들의 충성을 이끌어냈다.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마, 마존이시여!”
장민이 몸 안을 가득 채운 감동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찰나, 강진호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돈 준다니까 다 해결되네.”
장민의 감동이 땅끝까지 떨어졌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여하튼.”
“……예전에도 이러셨습니까?”
“불만이 엄청 많았는데, 녹봉 두배로 올려준다니까 쏙 들어가더군. 돈을 밝히는게 사람의 특성인지, 마인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여튼, 그럼 해결됐지?”
“그, 그렇습니다.”
“이제 다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았겠지?”
장민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이해한 장민이었다.
‘마존은 부자이시다.’
그 어느 것보다 힘이 되는 사실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힘이 있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힘은 세 가지다.
재력, 권력, 폭력.
처음에는 폭력의 힘이 가장 강했다. 하지만 인류가 발전하면서 권력의 힘이 폭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은?
‘재력이지.’
장민은 늙은이가 아니다.
그의 나이는 이곳의 누구보다 많을지언정,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런 그가 보기에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돈이었다. 과거에는 권력이 돈을 벌어주었다면, 지금은 돈이 권력을 불러다주는 시대다.
요즘 아이들의 행태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무학을 익히는 이유는 강해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강함을 추구하는 이유가 달랐다.
과거에는 강함이 명성과 권력을 가져다주었다.
강호에 인정받는 강자들은 타인의 부러움을샀고, 강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고한 학처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함을 주는 대신에 심산유곡이 은거하여 유유자적 살아가라면 누가 그 강함을 받겠는가.
‘확실히 달라졌지.’
지금 대부분의 무인들이 무학을 익히는 이유는 무학을 통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학이 돈을 버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지금 무인계에 소속되어 있는 무인들중 8할은 무인계를 떠나 버릴 것이다.
결국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돈이 많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강점이다.
다만…….
“마존이시여!”
장민의 목소리에 강진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장민이 이리 통렬한 음성을 낼 때마다 불안함이 밀려온다.
“소신은 걱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걱정?”
장민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도들에게 그 많은 것을 보장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가능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약속된 것이 제대 로 주어지지 않거나, 지원이 중간에 끊기는 일이 벌어지면 시작하지 않느니만 못하게 될 것입니다.”
“ 안다.”
강진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하나 액수가 어마어마할 텐데.”
“그 정도 계산할 머리는 있다.” 강진호는 손을 휘저어 장민의 걱 정을 틀어막았다.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총회의 무인들에게도 이미 월급이 지급되고 있으니까.
총회는 회원들에게 월급을 지불하고 무학을 전수한다. 그 대신 회원 들은 총회의 명에 따라 자신의 무학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게 기본적인 총회의 운영 원칙이었다.
그 시스템에 마교도들을 녹여낼 수만 있다면, 딱히 무리한 일도 아니었다. 급격하게 수를 불리는 것은 어느 조직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겠 지만, 가장 큰 문제인 자금이 지금 넘쳐 나는 상황이니까.
총회는 자금이 넘쳐 나는 반면, 그 돈으로도 무력을 더 키울 수 없어 문제인 상황이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맞아떨어진다면, 사소한 문제점 정도는 조율할 수 있다.
물론 그 조율은 이현수가 하게 될 것이다.
이현수가 듣는다면 또 한 번 게거품을 물 일이겠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모두를 위한 일인데.
강진호는 사람은 적당한 쓰임새가 있고, 돈을 받았으면 그 값어치를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현수에게는 충분한 월급이 주어져 있고, 이게 그의 쓰임새였다.
“그리고……
장민은 여전히 불안하다는 듯 말했다.
“설사 그게 가능하다 해도 교도들에게 녹봉을 주는 일이 과연 옳은지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대가 없는 노동은 없는 법이다.”
“하나 마존이시여, 교에 충성하는 이유가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무엇으로 충성해야 하는가?”
“……물론 마존에 대한 존경심과 신앙입니다.”
“존경심?”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돈도 안 주고 부려 먹는 사람에게 잘도 존경심이 생기겠군.”
“저희는 상인이 아니잖습니까?”
“모두 똑같다.”
“하나 과거에는……
“과거? 나보다 과거를 잘 아는가?”
장민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마존의 앞에서 과거를 논할 수는 없다. 마존이 바로 과거에서 온 사람이니까.
“과거라고 뭐가 달랐을 것 같은가? 마교도들이 대단한 신앙이나 충성심이 있어서 교에 귀의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저 갈 곳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서 귀의한 이들이 태반이다.”
“하, 하나……
“교가 아니면 뭐가 달랐을 것 같나? 소림이 천하제일이라 불릴 수 있던 이유는 돈이 많았기 때문이다.
천하에서 돈 좀 있다는 이들은 모두 소림으로 몰려들어 시주금을 내며 극락왕생을 빌었기 때문이지.”
“덕분에 많은 무인들을 키워낼 수 있던 것뿐이다.
무인이 많이 나오니 다시 명성이 높아지고, 그 명성으로 돈이 모이고, 무인이 많아지니 연구가 활발해져 무학의 수준이 올라간 게지.
다른 곳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 무인이란……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무인도 사람이다. 먹지 않고 살 수는 없고, 입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결국 입고 먹는 모든 것은 돈이지.”
“하지만 돈에만 집착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지 않게 만드는 게 너와 내가 해야 할 일 아닌가?”
강진호의 말에 장민이 입을 다물었다.
“돈에만 집착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돈을 주지 않는게 과연 올바른 해결책이더냐?
세상은 돈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다른 가치있는 것이 교에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닌가.
배를 곯는 이에게 음식에 집착하면 안 된답시고 배를 불릴 수 있는 곡식을 주지 않는게 교의 방식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해결책은 모두가 알고 있다. 빤히 알고 있지.”
강진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조금 더 편해지는 방법은 수도 없다. 지금 당장 녹봉을 지급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백 개도 더 댈 수 있다.
납득을 시키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다. 저들에게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마존이시여.”
“교가 먼저 교도들을 우대하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교에 충성을 바칠 이유가 없다. 너희가 말하지 않았던가.
성화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에 자애롭다고. 그 모든 것에 돈이 빠져 있다는 뜻은 아니겠지?”
장민이 격렬하게 손을 내저었다.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존이시여. 다만, 저는 우려가 될 뿐입니 다.”
“변화는 언제나 우려를 동반한다. 하지만 그 우려에 사로잡혀 변화를 거부한다면, 영원히 발전은 없다.
이 일에 있어서 나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 네가 이해하도록.”
장민이 허리를 푹 숙였다.
“마존이시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교의 모든 것은 마존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저는 그저 마존께서 선택을 하시는데 있어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까하여…….
제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해한다.”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오면…… 한 가지만 더 말씀을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말하게나.”
장민이 조금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마존이시여, 노여워하지 마시고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너무 많은 것을 봐왔습니다.
이 나이까지 살다보니 좋은 것만 보지는 못했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봐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강진호의 재촉에 장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역사와 사람들을 봐온 제 결론으로 인간은 결코 선하지 않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존재입니다.
지금은 저들이 마존의 호의를 감사해하고 마존께 충성을 다하겠다 다짐할지는 모르지만…… 몇 년, 아니, 불과 몇 달만 지나더라도 마존께서 베푸시는 모든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되레 왜 더 해주지 못하느냐고 불평을 늘어놓을 겁니다.”
강진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장민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강진호도 이해하고 있었다.
“마존의 은혜는 하해와 같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마존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관없다.”
장민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의 눈에 보인 강진호는 여전히 태연했다.
“착각하지 마라, 장민.”
“내가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이건 마교도라면, 마교에 귀의해 나를 따르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호의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회사에 취직해 월급을 받는 것을 사장의 호의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지. 자신의 능력에 따른 대우를 받을 뿐이다.”
“ 하나••••••
장민이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강진호는 장민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저들의 능력에 비하면 과한 대우겠지.”
“그렇습니다.”
“그 대접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게하는 것이 너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장민.”
강진호가 깊게 담배를 빨고는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지금 저들은 대접받을 가치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언젠가 네가 저들이 받는 대우가 그에 합당하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겠지.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당기는게 너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강진호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다 여기고 노력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 대가가 돌아갈 것이다.
나는 저 들을 가여이 여기는 것이 아니다. 제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 생각은 없다.
따라 오지 못하는 이들은 도태되고 축출 될 것이다. 주어진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저들도 알게 될 것이다.”
“마존이시여.”
장민이 바닥에 엎드렸다.
‘마존의 전설은 헛것이 아니었구나.’
방향이 옳은가는 알 수 없다.
장민은 지금 강진호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강진호가 원하는 것은 그의 인지를 벗어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판단할 수 있었다.
‘마존께서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먼 곳을 보고 계신다.’
그 방향이 옳든 그르든, 마존이 그가 볼 수 없는 곳을 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런 사람이 이끄는 마교가 어찌 강해지지 않겠는가.
과거, 마도시대를 펼친 적천마존의 위명은 결코 무력의 강함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은 것이다. 그 사실을 체감하면서 장민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마존이시여, 하나만 더.”
“거…… 참.”
강진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질문이 있고 의견을 교환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한 번에 뭐 이리 묻는 게 많단 말인가.
“또 뭔가?”
“외람된 말이지만……
“뜸들이지 말고 말해보라.”
“저……
장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웬만해서는 볼 수 없는 장민의 그 표정을 본 강진호가 불안에 휩싸 였다.
“장로들은 아무래도 조금 더 받겠죠?”
“저는 동굴에서만 백 년 가까이를 살았더니, 아직도 아침만 되면 뼈마디가 쑤십니다. 저희가 거주할 집도 한 채쯤……
“……특별히 신경 쓰도록 하지.”
“마존의 은혜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마존이시여!”
돈이 하늘에 닿았겠지.
돈이…….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별생각 없이 쓰던 단어가 어느 날 새로이 다가오는 날이있다.
누군가는 행복이라는 단어의 참뜻 을 깨닫기도 하고, 누군가는 슬픔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알게 된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사람이 집에 돌아가 아무도 없는 차가운 집의 공기를 마주했 을때,
외로움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발견과 함께한다.
때로는 즐거운 발견이 누군가의 곁에 머무르고, 때로는 서글픈 발견이 누군가를 힘겹게 만든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겠지만, 이러한 발견들이 사람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이가 있었다.
이 사람은 딱히 새로운 발견이 흔치 않은 이였다.
단어 하나를 알게 되어도 그 단어에 대해 분석하고 어떤 상황에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감정과 연계되는지를 철저히 연구하는 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단어의 뜻을 새롭게 체감한다는 것은 웬만해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내는 지금 그 드문일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가 새로이 발견하고 있는 단어는 ‘날벼락’이었다.
“그러니까……
수화기를 든 이현수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아니겠지.’
잘못 들었겠지.
이현수는 자신이 들은 말을 격렬하게 부정했다.
언제나 다른 이의 말을 놓치지 않고 분석하는 그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현수는 자신의 청력을 평가절하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흔치 않게 말문도 막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초래한 이는 아주 태연하게, 너무도 태연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어렵나?]“어렵냐구요? 어렵냐고 하셨습니까? 허허허..
이현수의 입가가 바들바들 떨린다.
“어려울 게 뭐 있겠습니까, 회주님. 사람이 달에 가는 시대고, 저 깊은 심해로 탐사정을 보내는 시대가 아닙니까.
인공지능이 사람을 이기는 특이점도 왔는데, 세상에 불가능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다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그렇지가 아니지, 인마! 비꼰 거라고!
배배 꼰 거라는 말이다!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이현수는 울고 싶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상사가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양하게 엿같은 상사들이 존재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면서 지원은 안 해주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네 능력과 열정이 부족해서 해내지 못하는 거라고 지적질을 해 대는 놈?
사람에게 사생활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놈?
입만 열면 사람이 짜증 나는 말 을 실시간으로 내뱉는 놈?
직장 생활을 헬 게이트로 만드는 상사는 그 유형도 다양하고. 난이도 도 다양했다. 하지만 이현수는 이제 기나긴 고민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 었다.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사는 어떤 유형인가.
‘이런 유형이지.’
전화기를 바라보는 이현수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세상에서 제일 사람을 고달프게 만드는 상사는 사람의 능력을 극한 까지 끌어내는 사람이다. 바로 이 사람처럼!
‘왜 이러냐고! 왜!’
강진호는 교묘한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확신 할 수 있다. 이 사람이 시키는 일은 그냥 던지는 게 아니다.
다 이현수이 해낼 수 있는가를 감안해서 철저하게 계산된 일만 시킨다.
문제는 그 계산이 사람이 밤잠 안 자고, 먹고 쉴 시간도 아껴가며 죽어라고 움직였을 때 겨우 해낼 수 있는 수준을 기준으로 움직인다는 거다.
차라리!
차라리 지시를 들었을 때, ‘으아아아! 이건 죽어도 못합니다! 차라리 저를 자르십시오!’를 외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그냥 배를 째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든 가능하긴 하다.
그래서 더 슬픈 이현수였다.
“……가능하죠, 가능합니다. 세상에 불가능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가능하죠.”
물론 가능하지.
생각보다 늘어난 지원자들을 옮기는 일도.
그 지원자보다 더 불어난 지원자의 가족들을 합법적으로 한국으로 이주시키는 일도.
국경을 넘어 밀입국한 지원자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숙소를 만드는 일도.
그 지원자들의 가족이 한국으로 도착했을 때,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 일도.
그리고 그 지원자들의 월급을 주고, 가족들의 직장과 학교를 수배하는 일도!
‘가능하지! 세상에 불가능이 어딨냐! 가능하지! 빌어먹을!’
다 된다.
왜 안 되겠는가.
그걸 한 번에, 한 놈이 모두 처리 하려면 인생을 갈아 넣는 수준이라는 게 문제지!
[조금 과한 지시라는 건 알고 있다. 미안하군.]허허허허.
미안하단다.
미안하시단다.
이현수는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그의 고생을 강진호가 알아주었다는 감동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강진호는 사람이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일을 태연하게 시켜 대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일을 이제는 당연히 맡아서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었다.
“대, 대체 왜 일이 여기까지 온 겁니까? 예상한 규모의 두 배가 넘는 것 같은데요?”
[솔직하게 말하자면…….]“아, 아니요. 솔직하게 말씀 마십시오.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마시라구요.”
[아직 신청이 끝난게 아니라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일단 어제까 지는 두 배였고, 지금도 신청자가 줄을 서 있는 것 같은데……. 확인해 볼까?]“……굳이 뭐 확인까지 하십니까. 뭐, 대충 그렇겠죠. 언제는 안 그랬습니까.”
이현수가 허탈하게 웃었다.
[어찌 된 거냐면…….]강진호가 말해주는 사정을 모두 들은 이현수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했을까?]“솔직히 과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과함을 통해서라도 전력을 불려야 할 땝니다.”
[동의한다.]“다만 회주님, 그렇게 빼온 이들이 저희가 바라는 만큼 강해지지 않는다면, 그 모든 일들은 의미 없는 낭비가 될 뿐입니다.
그만큼의 인원을 받아들인다면 총회도 부담이 생기니까요.”
[돈을 그만큼이나 쌓아놓고 있으면서 고작 만 명 가지고 엄살부릴 일은 아니지.]“그건 그렇지만……
이현수가 한숨을 쉬었다.
‘단순히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일이라면 이리 고민도 하지 않지.’
문제는 그들이 데리고 올 가족들이다. 총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을 지원할 만큼 총회가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지금이야 이중걸과 장로들이 은닉해 둔 비자금을 모조리 회수해서 돈이 넘쳐 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막대한 부담을 피할 수 없었다.
“멀리 보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멀리 볼 수 있게 되는 것만도 이득이다.]“……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현수는 강진호의 방향이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멀리 본다?
총회가 그때까지 생존했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 전력으로 누군가가 쳐들어 오기라도 한다면 총회는 그저 강진호와 바토르, 그리고 위긴스의 무력에만 의지해야 한다.
소수의 몇몇이 있기에 유지되는 균형은 균형이라 부를 수 없다.
지금 이들을 받아들이는게 장기 적으로 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총회는 그 독을 마다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현수의 얼굴이 굳었다.
‘판단력이 흐려졌어.’
지금 이현수는 강진호에게 한 명의 마인이라도 더 데리고 오라고 악 다구니를 써야 할 상황이다.
그게 총회 전체로 보았을 때 가장 이로운 방향이니까. 그런데 격려는 하지 못할망정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의지할 사람이 생겼구나.’
이현수는 정확하게 자신의 상황을 진단했다.
과거였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이현수는 강진호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총회의 일이 중요한 건 알지만, 그 총회를 강하게 만든다고 이현수 자신이 일에 치 여 죽어가고 있으니 내 수고를 알아
달라는 투정이다.
어리광을 부렸다는 생각에 이현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회주님.”
[말해.]“한국의 일은 제가 어떻게든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완벽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데리고 올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데리고 오십시오.”
[…….]“이국에서 회주님이 고생하시는데 지원은 제대로 못할망정 앓는 소리해서 죄송합니다. 제 본뜻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너.]“예, 회주님!”
강진호의 목소리가 떨리는게 느 껴진다.
그 순간, 이현수는 강렬한 죄책감을 느꼈다.
‘힘드시 겠지.’
어찌 보면 지금 이 순간 가장 고생을 하고 있는 이는 이현수가 아니라 강진호였다. 아무리 그가 마인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는 하나,
적진으로 뛰어 들어가 그 안에서 전력이 될 만한 마인들을 끌어오는 일이 쉬울리 없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현수라도 그의 의중을 이해해 주니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이현수가 뿌듯한 마음으로 당당히 가슴을 폈다.
하지만 현실은 딱히 녹록하지 않았다.
[너, 뭐 잘못 먹었냐?]“••••••예?”
뭐냐.
이 반응은?
이현수는 이 순간 강진호와 그의 사이에 커다란 불신의 벽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다고 보너스는 없다.]“언제는 보너스 주셨다고 갑자기 보너스 타령이십니까?”
[……여긴 돈벌레들밖에 없어.]뭔가 강진호가 무시무시한 일들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마음속으로나마 그에게 애도를 보낸 이현수가 정색하고 말을 바꿨다.
“여하튼 좋습니다. 그럼 출발은 언제로 하시겠습니까?”
[삼 일 내로 출발하고 싶은데, 준비는 끝났나?]“삼 일이라면 빠듯하지만 가능합니다. 인원이 늘어났지만, 욱여넣으면 되겠죠. 사람이 아니라 짐이라고 생각하면 적재량이 넉넉하다 못해 넘쳐나는 수준입니다. 다만, 이동하 는 와중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포기해야 합니다.”
[괜찮아. 진행해.]“예, 회주님.”
이현수가 눈을 빛냈다.
[상황이 바뀌면 연락하지. 그전에 준비가 끝나면 전화해.]“중간중간 연락드리겠습니다.”
강진호가 전화를 끊자 이현수가 깊게 심호홉을했다.
‘보통 일은 아니야.’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일을 진행하는 동안 어떤 방해가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급해.’
모든 것이 급박하다.
강진호는 원래 이리 일을 급박하게 진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준비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천천히 준비를 하다가 움직여야 될 때가 되면 전광석화처럼 모든 것을 처리해 버리는 사람이다.
강진호가 준비 단계부터 사람을 이리 재촉하는 건 처음 봤다.
그건 곧 강진호가 지금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아마 그 문제는 홍왕계로부터 비롯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완벽하게 처리해야 해.”
이현수가 전화기를 들었다.
이미 대부분은 확인을 끝냈지만,
한 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번 일이 총회의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안으로 들어와.”
전화로 이현주를 부른 이현수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리가 모든 계획을 다시 한 번 빠르게 점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