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743)
마존현세강림기-744화(742/2125)
마존현세강림기 30권 (23화)
5장 타오르다 (3)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진호를 보며 홍왕이 얼굴을 굳혔다.
다가온다? 자신을 향해?
헛웃음을 참을 수 없다.
자신이 누구인가.
홍왕. 홍왕이다.
천하에 모래알처럼 많은 무인들
중, 감히 왕을 자칭할 수 있는 이는 셋밖에 없다. 창왕, 흑왕 그리고 바 로 그 홍왕이었다.
이는 단순히 홍왕이 강하다는 것 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천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한 무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다른 두 왕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기에 왕을 자칭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말 그대로 왕이었다.
목숨으로 그를 섬기기를 주저 않 는 충성심 넘치는 수하들이 즐비하 고, 자신만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린
다.
천하의 누구도 감히 그가 천하의 패웅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향해 검을 세우고 다가온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가 홍왕이라 불린 이후 감히 그에게 도전하는 이는 없었다. 때때 로 바토르와 같은 자들이 나타나 그 와 무를 견주길 원했지만, 그건 목 숨을 건 생사결이 아니다. 그저 그 의 무학을 견식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금 눈 앞의 사내는 그
의 목을 노리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느릿하게 말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피의 발자국이 남는다.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린 핏물이 아직도 방울 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혈귀.
전신을 피로 물들인 혈귀가 양손 에 긴 장검을 늘어뜨리고는 산보하 듯 그를 향해 걸어온다.
홍왕의 가슴이 천천히 뛰기 시작 했다.
‘가슴이 뛴다?’
홍왕은 자신의 상태를 가만히 재
단했다.
조금 전 그는 강진호의 본질을 보았다. 그 본질은 그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이 두근거림 은 아직 두려움을 걷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인가?
아니다.
홍왕은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 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 감 정 역시 오랫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감정이다. 그 감정의 이름은 호승심 이라 불렸다.
‘저 마귀를 상대로 인정한다는 건 가?’
머리가 결정한 일이 아니다. 그의 몸이 절로 홍분에 떨고 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우(知 友)를 만났다는 듯이.
강진호의 양손에 늘어뜨려진 검이 시커먼 마기로 뒤덮였다. 흘러나온 마기는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 었다. 양팔이 모두 시꺼먼 불꽃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마치 거대한 괴조의 날개처럼.
홍왕은 그 광경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훌륭하군.’
인정해야 했다.
저 자의 마공은 홍왕조차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마공을, 그리고 마인들을 경계해왔다. 그들 이 가진 잠재력은 결코 만만치 않 다.
선인들은 그들을 꾸준히 경계해왔 다.
세상이 마인들의 손에 떨어졌던 시기가 있었음을 결코 잊지 말라 가 르쳤다.
홍왕 역시 그 가르침이 틀리지 않다고 여겼다.
그 기나긴 박해 속에서도 아직 저만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
실이 마인들이 얼마나 끈질긴 자들 인지를 반증하고 있지 않은가?
허나.
‘이 정도는 아니었지.’
어쩌면 차이커창과 같은 이들은 강진호의 존재를 미리 알아채고 그 를 경계해 온 홍왕을 우러를지도 모 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홍왕이 강진호를 경계한 것은 사 실이다. 하지만 홍왕조차도 강진호 가 이런 존재인줄은 꿈에도 상상하 지 못했다.
보라.
저 악귀와 같은 모습을.
그저 마주하고만 있음에도 전신이 날카로운 면도날로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이 날 선 예기를.
‘그야말로 마왕이로군.’
아니, 저들은 이미 저 자를 마왕 이라 지칭했었다.
“마존. 그 이름에 한 치의 부족함 이 없는 모습이로다.”
홍왕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미 그도 알고 있다. 이제 이 곳 의 상황이 어땠는가는 아무런 상관 이 없다. 누가 살고 누가 죽었는가, 지금부터 누가 살고 누가 죽을 것인
가.
그런 것은 이제 부차적인 문제다. 유일한 문제는 눈 앞의 존재였다. 마존.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입은 손해는 손해가 아니다. 그리고 그를 놓친다면 어떤 이득을 얻더라 도 이득이 아니다. 지금 이 곳에서 강진호의 위험성을 가장 확실하게 느낀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홍왕 자신이었다.
저벅.
저벅.
강진호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온
다.
그리고 홍왕은 양 주먹을 움켜쥐 고 그 광경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 다.
아무 것도 아닌 그저 걸음걸이.
하지만 그 걸음 속에서 홍왕의 기세와 강진호의 기세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거리가 3m 내 외로 좁혀졌다.
일반인들에게는 멀찍한 거리라 할 수 있겠지만, 이들에게 이만 한 거 리는 언제든 서로의 목을 따낼 수 있는 거리였다. 검이 닿는 거리까지
접근한 강진호가 가만히 홍왕을 바 라보았다.
그 눈빛에 어린 오만함에 홍왕이 눈빛을 가라앉혔다.
이런 눈으로 그를 바라본 이가 또 있었던가?
하지만 그 모습이 묘하게 어울렸 다. 이 자는 태생부터 누군가를 굽 어보기 위해서 태어난 자 같다.
그 모습을 보니…….
홍왕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홀렸다.
이건 악취미다. 잘 알고 있다. 결 코 이런 상황에서 할 만한 말은 아
니었다. 그럼에도 홍왕은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진호.”
강진호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홍왕을 바라보았다.
“내게 와라.”
“너는 강하다. 더없이 강하지. 그 저 강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조차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 힘은 반드시 귀하게 쓰일 것이다.”
홍왕은 말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 었다.
지금 그는 강진호에게 손을 내밀
었다.
차이커창이 그 사실을 주장할 때 그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겼음에도. 감정의 골이 비할 바 없이 깊어져 결코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임 을 알면서도.
그리고…….
‘받아들이지 않을 테지.’
왕은 굽히지 않기 때문에 왕이다. 홍왕 또한 자신보다 강한 자가 있다 해서 그에게 머리를 굽힐 것인가?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이와 마 찬가지로 강진호 역시 다른 이에게 머리를 굽히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홍왕은 설득을 시도했다.
빛나니까.
찬란하니까.
눈 앞에 보이는 저 젊은 무인이 내뿜는 빛은 그가 가진 현실의 모든 것을 감수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그대가 성장할 수 있다면 그대는 천하를 손에 쥐겠지. 하지만 천하인에게는 시운이 필요하다. 나 와 다른 왕들이 중원을 쥐고 있는 이상 그대는 결코 천하인이 되지 못 한다. 이 곳에서 죽는 게 그대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그러니 내게 와라.
당대는 몰라도 후대에는 그대가 천 하를 쥘 수 있게 해주겠다.”
홍왕은 알고 있다. 이런 감질 나 는 제안으로는 결코 강진호의 마음 을 돌리지 못한다.
알고 있으니 더 내밀 수밖에.
“이인자의 자리를 보장한다. 그대 의 세력 역시 그대에게 그대로 남겨 두겠다. 나 이외의 누구의 명도 받 지 않고, 그대의 세력 역시 그대의 손에 두겠다. 반도의 지배권을 보장 한다.”
멀리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차이 커창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호, 홍왕이시여!’
파격적이다.
너무도 파격적이다.
지금 홍왕은 강진호가 자신을 따 르는 대가로 한국의 지배권을 약속 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이들도 강진호가 그대로 이끌 수 있게 해준 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강진호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홍왕 에게 머리 한 번만 숙이면 강진호는 아무런 피해 없이 마교를 이끌고 한 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지 금까지와는 달리 홍왕에게 침략당할
걱정 없이 힘을 키울 수 있게 된다.
‘어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 까!’
차이커창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 로 홍왕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강진호를 죽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홍왕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 졌다. 게다가 이건 결코 옳은 수가 아니었다. 후방에서 힘을 키운 강진 호가 무슨 일을 벌일 줄 알고 이런 제안을 한다는 말인가?
강진호가 좋다고 저 제안을 받아 들이게 되면 그들은 등 뒤에서 강진
호가 차근차근 힘을 키우는 것을 방 치해야 한다. 이건 전략적으로 봤을 때 최악의 수였다.
‘그럼에도 가지고 싶다는 건가? 저 자가 그만큼이나 눈이 부시다는 것인가?’
차이커창 역시 강진호를 인정한 다.
그를 상관으로 모시고 머리를 조 아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차이 커창이다. 그릇이라는 측면에서 봤 을 때, 강진호가 가진 그릇은 감히 그가 범접할 수 없었다.
강진호를 손에 넣을 방도만 있었
다면 차이커창은 자신의 목숨을 걸 고 홍왕에게 주청 드리기를 주저하 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홍왕은 나 이상으로 강진 호를 평가하고 있다는 건가?’
저 모든 것을 내어줄 만큼?
그 모든 것을 내어준다 해도 강 진호 하나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득이라고 생각할 만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경악과 혼란이 가득했지만, 단 한 가지 생각이 있었기에 차이커창은 경거망동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강진호의 그릇을 잴 수 없 다.
자신보다 큰 사람의 그릇은 잴 도리가 없다. 이 곳에서 강진호의 그릇을 잴 수 있는 사람은 홍왕이 유일할 것이다. 그런 홍왕이 이 제 안을 합리적이라 여겼다면?
‘그 경멸하는 마인을 휘하에 두고 싶어 하실 정도로 저 자가 대단하다 는 건가?’
차이커창이 충격에 빠져 있을 때, 강진호는 아무런 말없이 홍왕을 바 라보고 있었다.
“내게로 와라, 강진호.”
홍왕은 더 이상의 제안을 하지 않았다.
굳이 그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 다. 이런 사내에게 감언이설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어떠한 사탕발림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원하면 따를 것 이고, 원치 않는다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강진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죽인다고 했던 것 같은데?”
“따르지 않으면 죽일 수밖에 없 다.
“따르면?”
“너는 홍왕계의 이인자가 될 것이
다.”
“ 다르군.”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자는 정파인의 후예이기는 하 지만 과거의 그들과는 달랐다. 과거 의 그들이었다면 마인을 휘하에 둔 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공대천의 원수보다 마인을 더 경 멸하던 이들이니까.
하지만 합리적인 일이기도 했다.
과거 마인들과 정파인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역사의 주인공들이었 다. 당연히 서로를 증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은 그 굴레에서
이탈한 이들이다. 합리적으로 생각 한다면 과거의 원한만으로 으르렁 거릴 이유가 없다.
제안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건 확실히 홍왕이 밑지는 장사 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대신에 고 개 한 번 숙여달라는 뜻이다. 그렇 다면 강진호는 한국으로 돌아가 편 하게 마교를 부흥시키고 총회를 단 단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때까지는 홍왕이 시키는 몇 가지 일을 해줘야겠지만, 힘만 키우 고 나면 더 이상은 홍왕의 밑에 있 을 필요도 없다.
아주 간단하다. 아주.
“ 대답은?”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 멍청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 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머리 가 심각하게 나쁜 이가 아니고, 생 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라면 말이 다.
“오늘 처음 알았군.”
궤에서 벗어난 강진호의 대답에 홍왕이 의문을 표했다.
그 순간이었다.
스슷.
강진호의 적루가 허공을 갈랐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칼질. 허공으로 그저 휘두른 일검.
하지만 그 일검을 본 차이커창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검을 휘둘렀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일검이 만들 어낸 결과였다.
선홍빛.
홍왕의 볼이 살짝 갈라지면서 선 홍빛의 피가 그의 뺨을 타고 흐른 다.
강진호의 일검이 홍왕의 몸에 상 처를 낸 것이다.
“나도 생각보다는 멍청한 모양이 야. 그렇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자 순 간 홍왕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 졌다.
“이노오오오오오오오옴!”
그 순간 홍왕이 폭풍같은 패기를 뿜어냈다.
대지가 울리고 바다가 요동친다.
홍왕의 분노에 말 그대로 천하가 떨고 있었다.
그 분노를 정면으로 받으며 강진 호가 이죽거렸다.
“다 지껄였으면 덤벼.”
협상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