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765)
마존현세강림기-766화(764/2125)
마존현세강림기 31권 (20화)
4장 조율하다 (5)
거울 속에 낯선 얼굴이 보인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는 제멋 대로 헝클어져 부스스하기 짝이 없 고,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되던 턱은 여기저기 자라난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눈가를 덮은 음영과 거칠어진 피
부
낯설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빌어먹을.’
차이커창은 수도꼭지에서 세차게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얼굴을 문질 렀다. 지금 단장을 할 시간은 없지 만, 적어도 청결은 유지해야 한다. 얼굴을 깨끗하게 씻은 그가 물기 묻 은 손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이 현수.’
그의 머릿속에 이현수라는 세 글 자가 떠올랐다.
그런 후, 자연스레 수많은 욕설들
이 뒤따라 머리로 홀러들었다. 이제 는 이현수라는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욕이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 다.
“ 후우••••••
차이커창의 손이 눈두덩이를 거칠 게 쓸었다.
“잘도 설쳐 대는군.”
홍왕계의 지낭이라 불리는 그의 특성상 수많은 이들과 협상과 조율 을 해왔다. 그가 상대한 이들 중에 서는 창왕계와 흑왕계의 수뇌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지금까지 그를
이토록이나 피곤하게 만든 이는 없 었다.
이현수는 마치 사냥개 같았다.
그가 지금까지 상대한 이들이 여 우나 들개 같은 이들이었다면, 이현 수는 철저하게 훈련된 사냥개처럼 군다. 상대가 약점을 보이면 집요하 게 물고 늘어진다.
상대를 반드시 쓰러뜨려 오늘의 만찬으로 삼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 저 시간을 끌다 보면 언젠가는 과다 출혈로 쓰러진다는 둣 급할 것 없이 느긋하게 툭툭 건드리기만 한다.
아군이라면 칭찬했을 것이다. 박
수를 치고 후계자로 육성하려 했겠 지. 하지만 그놈이 하필이면 총회에 있다는 것이 차이커창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총회, 계속 총회로군.’
단 한 번도 총회가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부담이 되는 상대는 강진호 였지, 총회가 아니었다. 총회 따위는 강진호라는 틀 안에 찬 모래와 같 다. 높고 거대해 보이지만, 틀에 구 멍이 나면 순식간에 새어 나가는 모 래.
하지만 직접 겪어본 모래성은 생
각 이상으로 견고했다.
‘ 모르겠군.’
원래 총회가 이만한 잠재력을 갖 추고 있었는지, 그게 아니면 그 강 진호가 총회를 이 짧은 시간 만에 이만큼이나 키워낸건지.
후자라면 끔찍한 일이다.
물기를 닦아내고 옷매무새를 가다 듬은 차이커창이 깊은 한숨을 내쉬 고는 화장실을 나섰다. 그러고는 붉 은빛으로 도색된 복도를 지나 거대 한 문 앞에 섰다.
“후욱.”
한 번 깊게 심호흡을 한 차이커
창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차이커창입니다.”
문이 열린다.
차이커창은 무릎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공간 안에 설치된 계단 앞에 다다른 그가 머리를 땅에 박으며 입을 열었다.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홍왕이 시여.”
높은 계단 위의 옥좌.
그 옥좌에 홍왕이 나른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가만히 고개를 숙인 차이커창을 바라보던 홍왕이 우렁우 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하라.”
“예. 총회와의 협상은 진척을 보 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많아 시간을 끌리고는 있으나, 곧 협상이 마무리될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많다?”
“더 내놓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가?”
홍왕은 말없이 고개를 젖혔다.
침묵.
무거운 침묵이 차이커창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차이커창이 입술을 지 그시 깨물었다.
차라리 실수가 있었다면, 그가 뭔
가 잘못을 하여 이리 협상이 지지부 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마음이 한결 나을 것이다. 그 실수에 대해 죄를 청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협상이 이리 끌리 는 이유는 홍왕계가 처한 상황 때문 이다. 그 사실이 차이커창의 속을 쓰리게 만들었다.
달라진 위상.
그들은 딱히 변한 것이 없건만, 그들의 위상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한 달만 전에 총회와 협상을 했다면 그들의 목을 움켜쥐고 마음대로 흔
들 수 있었을 것이다.
“차이 커창.”
“예, 홍왕이시여.”
“고개를 숙이지 마라.”
차이커창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홍왕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의 실수가 아니다. 아니, 설사 너의 실수였다고 해도 다를 것은 없 다. 고개를 숙이지 마라. 너는 나의 머리다. 머리가 고개를 숙이면, 몸은 자연히 따르게 되는 법이지. 너는 나를 패배자로 만들고 싶은 것이 냐?”
차이커창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 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고개를 들어라.”
“예!”
차이커창이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 다.
그 모습을 본 홍왕이 만족스럽다 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내가 나약하여 네게 부담을 주었 구나.”
“홍왕이시여,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 간악한 창왕의 무리가 준동한 탓
입니다. 그게 어찌 홍왕의 잘못이겠 습니까.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한 저의 잘못입니다.”
“내가 나약하지 않았다면 벌어지 지 않았을 일.”
홍왕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 다.
“하나 그렇다 해서 고개를 숙이지 는 마라. 패배는 언제고 찾아온다. 한고조는 패하고, 패하고, 또 패했 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겼기에 황제 가 될 수 있었지. 한 번의 패배로 그가 꿈을 꺾어버렸다면, 그는 패배 자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힘겹고 수치스럽겠지. 하지만 그 것조차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다. 가시밭길을 걸으며 울상을 짓지 마 라. 베이고 찔려 피가 흐르더라도 이를 악물고 버텨라.”
“예!”
“보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쟁취하는 것이지. 너는 이 굴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이 굴욕 을 안겨준 이들에게 천 배, 만 배로 되갚아주면 되는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좋다.”
흥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협상 자체는 진척되고 있다는 뜻 이겠지.”
“예. 저들 역시 화친에는 동의했 습니다. 다만, 과한 재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줘버려.”
“••••••예?”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터, 요구 하는 것이 있다면 그냥 줘버려라.”
“하나 홍왕이시여.”
차이커창이 마른침을 삼켰다. 언 제나 홍왕의 의견에 반대를 표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나 이 번 강진호의 일을 겪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부담스러워졌다.
“우리의 재력이 쇠하는 것이 두려 운 게 아닙니다. 저들의 힘이 강성 해질까 두려운 것입니다. 쉬이 주어 버린 재물 때문에 저들이 위세를 떨 치게 된다면……
“상관없다.”
차이커창이 슬쩍 고개를 들어 홍 왕의 안색을 살폈다.
“차이 커창.”
“예.”
“시간은 시간대로 끌리고, 심력은
심력대로 소모하고, 그 와중에 재물 까지 넘겨야 하는 것이 최악의 길이 다.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너에게 그런 상황으로 흘러 들어 가지 않을 묘책이 있느냐?”
“……묘책까지는 아니지만, 시간 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피해를 줄 일 수는 있습니다.”
“내게는 그깟 푼돈보다 너의 심력 이 상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네 가치를 네 마음대로 재단하지 마라. 너는 나에게 있어서 네 생각 이상으 로 중요하다. 그딴 협상 따위는 원
하는 대로 해주어라. 그리고 스스로 를 정비해서 나를 이끌어라. 그게 너의 역할이다.”
차이커창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 다.
그는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 상황에 처하기까지 그에게 주 어졌던 수많은 기회 중 단 하나만 움켜잡았어도 이리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능하다고 욕을 먹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홍왕이 이 죄를 물어 그의 목을 치려 들었다면, 편한 마 음으로 깨끗이 씻은 목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런데 홍왕은 되레 그에게 믿음 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찌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찌.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홍왕이시 여.”
“차이커창.”
“예!”
“강진호와 총회는 강해진다.”
“막을 수 없는 흐름을 막으려 들 지 마라. 강 가운데에 세운 제방은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잠시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물살을 더 거칠게 만든다.”
“명심하겠습니다.”
“상대가 강해지는 걸 막는 게 꼭 상책은 아니다. 제대로 된 대책은 우리가 더 강해지는 거지. 격차를 유지한다면, 상대의 성장 따위는 아 무것도 아니게 된다.”
차이커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가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 도 아직 강해질 길이 있을 것이다. 비대해진 몸뚱아리를 자르고 갈라 쇄신해야 한다.
“내가 부상만 입지 않았다면 저
간악한 놈들이 이리 설치지도 못했 겠지. 지금은 참아라. 머리를 박고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아라. 진흙 탕에서 오물을 씹으며 참아내야 한 다. 그 모든 굴욕을 보상받는 때가 올 것이다.”
“……속하, 이 굴욕을 잊지 않겠 습니다.”
홍왕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 다. 그러자 차이커창이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하고는 무릎걸음으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겨진 홍왕이 손을 들어 배를 꾹 눌렀다. 둔중한 통증이 느
껴지자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상처 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강진호.’
강진호를 생각하자 상처가 또 한 번 쑤셔온다.
마귀처럼 웃으며 검을 휘두르던 그 얼굴.
전신을 뒤덮은, 그 끈적하고 불길 한 마기.
눈을 감을 때마다 그 모습이 보 이고, 잠을 이룰 때마다 악몽에 시 달렸다.
그럴 때마다 홍왕은 뼛속 깊이 분노와 증오를 새겨 넣었다.
“……강진호.”
강진호의 그의 몸에 남긴 상처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육체의 상처가 전부가 아니다. 강진호의 마기는 홍 왕의 전신을 뒤흔들어 놓았다.
게다가 선천지기까지 모조리 끌어 쓴 대가는 너무도 컸다. 쇠한 육체 를 마기가 헤집어놓았다. 본래의 그 라면 일주일이면 털고 일어날 상처 건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완벽한 상태로 되돌아가기까지 적 어도 몇 달은 걸릴 것이다.
협상을 서두르는 이유는 그 때문 이다.
그의 몸이 정상이 아니고, 그 틈 을 타 창왕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완벽했다 해도 앞뒤로 적 에 둘러싸여 싸우는 건 지양하고 싶 은데, 몸이 완벽하지 않다면 고민의 여지도 없다.
우드득.
홍왕이 이를 갈았다.
굴욕.
더없는 굴욕이다.
차이커창에게 한 말은 그를 다독 이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그 스 스로 다짐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제 분을 참지 못하고 설쳐 댄다면
그가 맞아야 할 미래는 너무도 빤하 다. 지금은 그저 참고 인내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절대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홍왕이 눈을 빛냈다.
비수는 배가 아닌 등을 향해야 한다. 상대가 가장 안심하고 있을 때, 등을 찌르는 것이 비수의 역할 이다. 홍왕은 지금 그가 해야 할 것 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 다.
“이번에는 네가 이겼다. 하지만 그 승리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상처 입은 사자는 옥좌 깊이 그 몸을 묻었다.
그가 이 옥좌에서 일어나는 순간, 세상은 또 한 번 변할 것이다. 이제 평화는 끝났다.
삼왕이 만든 세력의 균형은 강진 호의 등장으로 깨졌다. 이제 더 이 상 그들은 평화를 유지하지 못할 것 이고, 세상은 다시 한 번 전란으로 들끓게 될 것이다.
그 전란의 피해가 어디까지 미칠 지 지금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