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799)
마존현세강림기-800화(798/2125)
마존현세강림기 33권 (4화)
1장 약동하다 (4)
“개판이네.”
이현주가 헝클어진 머리를 쭉 올 려 묶었다.
탄탄하게 묶인 머리가 뒤로 늘어 진다.
모니터 안으로 보이는 자료를 보 니 속이 뒤집어진다.
‘할아버지는 왜 이걸 방치했을 까?’
차곡차곡 정리를 하다 보니 그동 안 총회가 얼마나 한심하게 운영이 되었는지가 새삼 실감 난다. 일부러 방치하지 않고서는 이리될 수가 없 다.
총회의 자금줄을 손에 쥐고 있던 사람은 이중걸이다. 이중걸은 이현 주에게마저 회계에 대한 권한을 주 지 않았다. 그녀가 맡을 수 있던 일 은 소규모 부서에 대한 관리뿐이었 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인의 치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이중, 삼중으로 단계를 거쳐서 세탁 된 돈이 이중걸과 장로들의 주머니 로 들어가는 꼴을 보고 있자면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래 못 버텼을 거야.’
환상이 깨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현주는 이중걸을 존경했다. 비 록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지탄받는 전 회주에 지나지 않지만, 총회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것에는 이중걸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눈으
로 보이는 증거는 그 모든 것이 다 허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중걸의 모든 업적은 이 자금 흐름에서 나온다.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 이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뒷 돈으로 찔러주고 체제를 공고히 한 다. 그러나 이 모든 돈은 원래 회원 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었다.
아랫사람을 수탈해서 지주의 배를 불리는 전형적인 고관의 작태가 얼 마 전까지 행해지고 있던 것이다. 그나마 감사를 받고 재무제표를 작 성해야 하는 기업은 눈치라도 보지 만, 총회는 타인의 눈치도 볼 일이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심하겠는가.
이런 자금 흐름으로는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재투자는 행해지지 않고, 장로들의 주머니만 불어났다. 이중 걸이 쌓은 부는 이현주조차도 할 말 을 잃을 정도였다.
‘왜 그러셨어요, 할아버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중걸은 돈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란점이 다.
이중걸은 사치를 몰랐다.
사치품을 사들이지도 않고, 비싼 집이나 차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렇 다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
다. 돈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 이 토록 돈에 집착을 했다는 사실이 기 가 막힌다.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던 이현 주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는 의자 에 등을 기댔다.
‘망할 놈.’
눈을 감으니 썩소를 짓고 있는 이현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굳 이 이현주에게 자금줄을 맡긴 것에 는 이런 의도도 있을 것이다. 아직 까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이중걸에 대한 환상을 깨라는 거겠지.
‘굳이 이런 짓까지 하지 않아도
환상은 진즉에 깨졌어. 멍청이.’ 이현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총회는 바로 잡히고 있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총회는 연합체의 성격 을 띠고 있었다. 스승과 유파를 중 심으로 엮인 소규모의 집단들을 끌 어다가 한데 모아놓은 것이 총회다.
이중걸은 총회를 만들면서 그들의 자치권을 인정했다. 그러고는 그중 강한 유파를 끌어들여 장로로 삼고, 자신의 통치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 체제가 수십 년 동안 유지되 었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는 법이
다. 한때 총회의 발전과 한국의 발 전이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젊음을 바치던 이들은 다들 나이를 먹었고, 결국은 돈만 밝히는 전귀가 되어버 렸다.
지금 이현수가 하는 일은 이 썩 은 체제를 뒤집는 것이다.
유파와 계파로 나뉘어 있던 이들 을 총회의 부서로 재편한다. 그 안 에서는 유파도 없고, 계파도 없다. 그리고 각자 다른 무학을 익히던 이 들에게 총회의 무학을 제공하여 일 체감을 가지게 한다.
‘중앙집권 체제네.’
빤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빤한 내용을 이룬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 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역사 적으로도 봉건제가 중앙집권제로 넘 어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 렸던가.
그런데 그 과정을 이현수는 구렁 이가 담을 넘어가듯 능글맞게 해내 고 있었다.
적절하게 강진호의 위명을 이용하 고, 바토르를 들이밀고, 민감한 문제 는 위긴스에게 떠맡기고, 그리고 이 중걸의 손녀인 자신을 자금책으로 이용하면서 말이다.
‘뱀 같은 인간.’
조직의 운영자로서 이현수는 더없 이 유능하다. 아무리 그의 유능함을 깎아내려고 해도 도무지 깎아낼 도 리가 없을 만큼.
더욱이 그가 짜증 나는 이유는 그의 모든 목적이나 계획이 본인의 권력이나 부와는 딱히 관련이 없다 는 점이다. 이 많은 자금을 손에 쥐 고 흔들 수 있음에도 이현수는 자신 에게 할당된 봉급 외에는 철저하다 시피 돈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게 다가 그 봉급마저 박봉이다.
유능한데 인간미도 없다. 최악의
상사다.
‘덜떨어진 인간.’
그의 권력이라면 이현주를 압박하 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마음만 먹 는다면 자금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현수는 요청한 자금을 이현주가 거부하자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 같은 얼굴로 돌아가 버 렸다.
“종잡을 수가 없어.”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 대책 없 는 인간들과 얽혀서 뚝딱뚝딱 뭔가 해 대는데, 그 결과가 최상으로 나 온다. 지켜보고 있자면 속이 뒤집어
지는 일이다.
물론 이현주 역시 총회에 투신한 몸. 총회가 발전해 나가는 것이 기 분 나쁜 것은 아니다. 그녀가 기분 나빠하는 것은 그녀의 두뇌가 미치 지 않는 곳에서 뭔가가 벌어지고, 그 결과가 최상으로 나온다는 현실 이었다.
“망할.”
왜 할아버지가 저런 덜떨어진 인 간에게 당했는지 이제는 납득이 간 다. 저 인간은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유형이었다.
그리고…….
벌컥!
그때, 문이 열리면서 이현수가 안 으로 들어왔다.
“어이, 이 부장. 나 승인받아야 할 돈이 있는데, 나 차 한 대만 사……
“노크하고 들어와, 이 매너 없는 인간아!”
“……죄송합니다.”
이현수가 시무룩해했다. 그 모습 을 보며 이현주가 손으로 얼굴을 덮 었다.
‘타이밍도 최악이지.’
저 인간은 왜 이럴 때 들어오는
가.
이현주가 심호홉을 해 마음을 가 다듬고 입을 열었다.
“차는 왜요?”
“업무상으로 외부로 돌 일이 좀 있는데, 차가 없어서 곤란할 때가 많아서.”
“개인 차량 없어요? 유류비 지원 해 주면 되잖아요.”
“ 없는데?”
“••••••예?”
“나 차 없어.”
이현주의 눈이 떨렸다.
“차가 왜 없어요? 출근은 뭘로
하고?”
“나 기숙사에서 먹고사는데, 차가
필요가 있나.”
종잡을 수 없는 인간.
그 평가가 딱 맞았다.
“법인 차량 한 대 해달라는 거예 요?”
“어려울까?”
“어떤 차 원하는 건데요?”
“굴러만 가면 돼.”
이현주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제대로 말을 해봐요. 어떤 차를 해달라는 건데?”
“……경차 하나 해주면 되는데.” 이현수는 살짝 겁먹은 얼굴로 뒤 로 물러났다.
‘얘는 왜 또 화를 내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현수는 바토르 나 강진호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 는다. 왜냐면 그들과는 대화가 통하 기 때문이다. 욕을 먹고 혼나더라도 이유가 있다. 그러니 무서울 게 없 다.
하지만 이현주는 달랐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트집을 잡고 화를 낸다. 그러니 상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경차?”
저 봐라.
그냥 경차 한 대 뽑아달라고 한 건데, 그것도 법인으로 뽑아달라고 한 건데 이마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 을
왜 화를 내는 건지 이해를 할 수 가 없다. 이현수에게 이현주는 미지 의 존재였다.
“내가 또 뭐 잘못했나?”
“총회의 실장이란 사람이 경차를 타고 다니는 게 말이나 돼요?”
“……안 되나?”
“사람은 겉모습에서도 권위가 나
오는 거예요. 실장님이 경차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구요. 그럼 회주님의 권위도 떨어지는 거 예요!”
반박하고 싶다.
입이 근질거렸다.
권위가 차에서 나온다니, 이게 얼 마나 구시대적인 발상인가. 막말로 강진호가 자전거…… 아니, 세발자 전거를 타고 출근한다고 해서 그를 우습게 볼 사람이 총회에 어디 있겠 는가. 차야 그냥 이동수단에 불과하 다. 계급에 따라 차량을 나눌 필요 가 없다.
“……라고 생각하고 계시겠지!”
“••••••예?”
이현주가 이현수를 똑바로 가리키 며 말했다.
“본인 머릿속에서는 타당한 이유 가 있겠죠. 그런데 실장님이 생각 못하는 게 있어요.”
“뭐‘?”
“실장님이 옳은가는 상관없다는 거예요. 세눈박이가 사는 동네에 가 면 두눈박이가 병신 취급을 당하는 법이죠. 다른 사람들이 차로 권위를 나누고 있다면, 나 혼자 아니라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무슨 말인
지 알아요?”
“어…… 음, 대충은.”
“세단 하나 뽑아줄 테니까. 그거 몰고 다녀요.”
“대답은?”
“가, 감사합니다.”
이현수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 다.
이현주가 컴퓨터를 끄고는 자리에 서 일어났다.
“이제 할 일 없죠?”
“웅?”
“업무 다 끝났죠? 시간이 시간이
니까?”
“아, 이제 뭐, 조금만 하면……
“남은 일 내일로 미뤄요.”
“••••••예?”
이현주가 눈을 찌푸렸다.
“남은 일 내일로 미루자구요. 상 의할 것 있으니까.”
“상의라……
그런 건 회의 시간에 해주면 좋 겠는데.
이현수가 두루뭉술하게 반응하려 했지만, 이현주는 놓아주지 않았다.
“차종이랑 색상도 상의해야 하니 까, 겸사겸사 저녁이나 같이 먹죠.”
“••••••어?”
“저녁 같이 먹자구요. 뭐 잘못됐 나요?”
“아, 아니, 나는……
밥 먹었는데.
하지만 도저히 그 말을 꺼낼 분 위기가 아니었다. 혼자 가라고 했다 가는 이현수가 저승으로 혼자 갈 판 이다.
이현수에게도 분위기를 파악할 줄 아는 최소한의 눈치라는 게 있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둘러대서……•
“식당 문 닫았을 텐데?”
“누가 구내식당 가제요? 밖에 나
가서 먹을 거예요.”
“밖에? 차 없는데.”
“제 차 있어요.”
치밀하다.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한 이현수 는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그래, 그럼 뭐.”
밥이나 먹고 오면 되겠지.
밥 한 끼 먹는 게 뭐가 그리 대 단한 일이라고, 그냥 먹으면 되겠지.
낙담한 이현수가 몸을 돌렸다. 이 현주가 보조를 맞춰 그와 걷기 시작 했다. 이렇게 둘만 있으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 어색하고 좀 부담스럽
기도 하고.
얘도 나랑 둘이 있으면 좋을 게 없을 텐데, 왜 자꾸 둘이 밥을 먹자 고…….
근데 얘 왜 이리 달라붙지?
어…….
“저기••••••
“뭐요?”
“ 팔짱••••••
“뭐?”
“아닙니다.”
자신의 팔을 잡은 이현주의 손길 을 느끼며 이현수가 뻣뻣하게 걸었 다.
조금 전부터 왼팔과 왼 다리가 같이 나가는 것 같지만, 괜히 몸을 뒤틀었다가 더 어색해질까 봐 그저 걷기만 하는 이현수였다.
이현주가 고개를 살짝 들어 이현 수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한숨 을 쉬었다.
‘ 최악.’
눈치 없고, 센스 없고, 무드도 없 고, 도무지 봐줄 수가 없는 사람이 다.
그래도 뭐랄까.
‘할아버지, 나는 안 되나 봐요.’ 바보 같아서 자꾸 눈이 간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실장님.”
“••••••예?”
“아니에요.”
“예‘?”
“아니라구요.”
“••••••예.”
얼이 빠진 듯한 이현수의 반응을 보며 이현주가 가볍게 웃었다.
팔짱을 끼고 총회를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등 뒤로 수많은 시선들이 꽂혔다.
그리고 목격은 소문이 되어 순식 간에 총회로 퍼져 나갔다.
도장이 찍히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