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804)
마존현세강림기-805화(803/2125)
마존현세강림기 33권 (9화)
2장 위로받다 (4)
몽롱하다.
세상이 어둑하고 흐릿하다.
분명 눈을 뜨고 있음에도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부유감 이 강진호를 채우고 있었다. 그 저 항하기 힘든 부유감에 몸을 맡긴 채 강진호는 멍하니 그저 존재하고 있
었다.
“교주님.”
강진호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부유감이 사라진다. 그러고는 당 혹감이 그를 휩쓸었다.
“교주님?”
눈앞에 보이는 이를 확인한 강진 호가 손을 들어 얼굴을 살짝 문질렀 다.
‘청마.’
청마가 보인다.
이상하게도 청마의 얼굴이 조금 낯설었다. 매일같이 보는 얼굴인데
도 이런 어색함을 느낀다는 게 이상 하게 느껴진다.
“교주님, 혹여 무슨 문제라도 있 으십니까?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십 니다.”
“아니.”
강진호, 아니, 적천마존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청마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 는다는 얼굴이지만, 적천마존이 손 을 내젓는 순간 더는 입을 열지 않 았다. 교주가 아니라고 하는데 더 캐묻는 것도 불경이다.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려?”
“예.”
청마의 눈이 살짝 주변을 살폈다. 적천마존이 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찌하면 적천마존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에게 상 황을 설명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출정식의 날이 밝았습니다. 모두 가 교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 여 준비가 더 필요하시면 조금 뒤에 다시……
적천마존이 살짝 눈을 찌푸리자, 청마가 하던 말을 멈추고 조용히 시
립 했다.
‘그랬지.’
출정이다.
정파 놈들이 감히 교의 영역을 침범했다.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작정한 병력이 교의 영역으로 들어 왔다. 그러면서도 깊이 진격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 정도 선에서 타협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떠보기다.
적천마존이 천천히 태사의에서 일 어났다. 그러자 아래에서 그를 기다 리던 청마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저벅.
저벅.
계단을 따라 적천마존이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붉은 융단이 그의 발걸음에 따라 이지러진다.
저벅.
저벅.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대전에 존재하는 이는 그와 청마뿐이었다. 발소리가 울려 퍼져 메아리치며 돌 아온다.
대전을 가로지르자 대기하고 있던 시비들이 문을 열었다. 적천마존은 그 문을 지나 복도를 걸었다. 보보 마다 패기가 넘치고, 손짓마다 마기
가 연기처럼 휘날린다.
길게 자라난 머리가 걸음마다 흔 들린다.
패도의 화신.
마의 적통.
그를 수식하는 모든 말이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마교의 이인자이자 모든 이들이 두려워해 마지않는 청마조차도 그의 두 걸음 뒤에서 허리를 굽힌 채 조 심스레 따르고 있었다. 이 모습이 지금 적천마존이 마교에서 어떤 위 치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좌우로 불이 밝혀진 복도를 걸어
빛이 들어오는 입구까지, 적천마존 은 흔들림 없이 걸어 나갔다. 이윽 고 밖으로 나오자 광활함, 그 자체 의 드넓은 연무장이 그의 눈앞에 펼 쳐진다.
그 연무장을 마인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십만마도 (十萬魔道).
그 말이 아니고서야 이 광경을 어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넘어 또 사람이 있고, 그 뒤로 또 사람이 있다. 지평선 끝까 지를 사람이 모두 채운 것 같은 광 경이다.
이 광경을 보는 이라면 누구라도 숨을 멈추고 가슴을 움켜쥘 것이다. 도열한 마인들이 내뿜는 마기가 세 상을 태운 시커먼 연기처럼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수만의 마인이 숨을 죽인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적천마존을 쫓았다. 담이 약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적천마존은 그들의 시선을 오만하게 받아 넘겼다.
그는 애초에 위에 선 자.
존경과 경배의 시선을 끝도 없이 받아야 하는 자다.
저벅.
저벅.
수만의 마인이 광장을 가득 채우 고 있다.
하지만 그 수만의 마인들은 지금 감히 위세를 뿜지 못하고 있었다.
적천마존.
그는 수만의 마인 가운데서도 오 롯하다.
마인들은 그가 내디디는 걸음에 떨었고, 그의 손이 흔들릴 때마다 어깨를 움츠렸다.
이윽고 중앙에 멈춰 선 적천마존 이 모두를 둘러보았다.
투명한 그 시선을 마주한 이들은 감히 그를 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 았다.
교주.
마교에 있어서 교주란 신성하고 위대한 직위다. 모든 마인들을 대표 하고, 모든 마인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다.
하지만 교주라는 자리는 또한 위 태로운 곳이다.
적통을 나누고, 계승자를 선정하 는 여느 문파들과는 달리 마교의 교 주가 되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강함.
가장 강한 자가 교주가 된다. 어 떤 방식을 사용하든 간에 교주를 죽 일 수 있다면, 그자는 다음 교주가 될 수 있다. 지금 앞에 서 있는 적 천마존 역시 기존의 교주를 제 손으 로 죽이고 교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니 교주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하나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자 는 이전까지의 교주들과는 다르다.
교주이기에 존중을 받는 것이 아 니다.
강하기에 굴종을 강제한다.
설사 적천마존이 마교의 교주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지금 마인들이 그에게 보내는 경배는 조금도 달라 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모든 마인 들이 감히 범접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강하다.
법도? 예의? 과정?
그따위 것들은 강하지 못한 자들 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의 힘 만으로 마교의 모든 마인을 짓누를 수 있는 이에게는 어떠한 형식도 필 요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곧 법이 된다.
그가 하는 것은 곧 진리가 된다.
말 한마디, 손짓 하나로 마교의
법을 바꾸고, 마교의 정신을 뒤흔들 고, 마교의 혼을 내리밟는 자.
그가 바로 적천마존이었다.
그러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어찌 경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단 위에 적천마존이 서자, 마인 들이 움직인다.
마치 잘 훈련된 군대처럼 완벽하 게 도열하고 있던 마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쿠우우웅!
수만이 동시에 무릎을 꿇고 머리
를 숙이자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 럼 세상이 떨린다.
세상도 그 위용에 경배하듯.
“마존천세(魔尊千歲)!
만마앙복
(萬魔仰伏)!
수만의 마인이 내뿜는 경배의 목 소리가 세상을 떨어 울린다. 대전이 흔들리고 산이 비명을 지른다.
인간의 위용이 자연을 압도하고, 하늘마저 그 힘에 눈을 감는다.
적천마존은 가만히 그 모습을 내 려다보았다.
오만.
그의 모습은 오만함, 그 자체였
다.
하지만 누구도 감히 그 오만함을 역겹다 느끼지는 못한다. 오만함은 마치 처음부터 그의 일부였던 것처 럼 그와 완벽하게 어울리고 있으니 까.
적과 흑이 어우러진 옷 아래 늘 어뜨려진 손. 그 손에 새겨진 자욱 한 상처.
얼굴을 가로지르는 긴 검상 등이 그가 얼마나 험난한 삶을 살아왔는 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두터운 턱 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고,
치렁치렁 홀러내린 머리 사이로 슬 쩍 드러나는 눈빛은 그가 왜 적천마 존이라 불리는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수많은 마인들이 마의 극의를 좇 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의 극의에 오르지는 못했다. 마로서 극에 오른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모두가 포기할 때, 적천마존은 그런 이들을 비웃듯 스스로 극마에 오르고, 그 극마마저 부수며 역사상 누구도 닿 은 적 없는 경지에 홀로 올랐다.
그런 이가 보이는 오만을 오만이
라 할 수 있겠는가.
오만은 가지지 못한 자에게 해당 되는 말이다. 모든 것을 가진 이에 게 과한 자신감이란 말을 쓸 수는 없다.
청마가 단상 아래에 서 적천마존 에게 엎드렸다.
마교의 이인자.
중원의 무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죽이고 싶어 하는 자, 악마의 뇌를 가진 자, 그 손속이 너무 잔인하고 냉철하여 중원보다 마교에서 더욱 무서워하는 자.
감히 누구도 항거할 마음을 품지
못할 만큼 확고부동한 마교의 이인 자조차도 감히 적천마존과 같은 높 이에 서지 못했다. 그가 설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곳, 다른 마인들과 같 은 바닥이었다.
“모든 마의 주인이시여!”
청마의 목소리가 내공을 품고 광 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마를 모르는 이들, 마를 받아들 이지 않는 이들, 저 가련한 이들이 감히 교의 영역을 침범했나이다. 이 는 저들을 제대로 교화하지 못하고, 저들에게 마존의 위엄을 제대로 알 리지 못한 저의 책임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그 죄를 청하나이다. 제 목을 치고 지옥불에 저를 밀어 넣어 그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용서한다.”
적천마존은 담담히 대답했다.
쿵 쿵 쿵
세 번 바닥에 머리를 찧은 청마 의 이마에서 붉은 피가 홀러내렸다.
하지만 청마는 그 피를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금 목청을 높였다.
“미욱하고, 미천하고, 또한 미련하 기 짝이 없는 저희들만으로는 저들 에게 마의 위엄을 알려줄 수 없습니 다! 그렇기에 신은 감히 간청하나이
다. 저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진정한 마란 무엇인지, 진정한 공포가 무엇 인지! 감히 교주님께 간청하나이 다!”
적천마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마존천세!”
“만마앙복!”
세상을 떠오르게 만드는 울림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마인들이 제 머리를 땅에 박아 내는 소리가 거대 한 북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적천마존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 켜보다가 몸을 천천히 돌렸다.
말은 필요하지 않다.
“조마.”
“예!”
걸음을 옮기면서 적천마존이 부르 자, 조마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났다.
“선두를 맡아라.”
“마존천세!”
걸음을 멈추지 않은 적천마존의 입에서 조금은 나른한 듯한 목소리 가 계속 흘러나왔다.
“ 염마.”
“예, 교주님!”
“귀령단과 혈귀단을 이끌고 뒤를
쳐라.”
“마존천세! 만마앙복!”
적천마존이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마기가 물씬물씬 뿜어 져 나온다. 그야말로 마왕이라는 말 이 절로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청마.”
“예, 마존이시여!”
“지휘를.”
“제 모든 것을 걸고 적들을 분쇄 하겠습니다.”
“저들이 아니다.”
청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중원으로 가라. 교의 영역에 들
어온 이들을 벌하는 것은 너무도 당 연하다. 그들에게 알려주어라. 침범 하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들이민 이들은 발뿐 아니라 목도 잘린다는 것을.”
청마가 머리를 조아리고 목을 높 여 소리쳤다.
“만마앙복!”
청마마저 부복하자 적천마존이 가 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염.”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마염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으슥 한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검은 그림
자들이 일제히 날아들어 적천마존의 뒤를 채웠다. 마치 어둠 속에서 백 귀(百鬼)들이 춤을 추듯.
적천마존도 그들에게는 명을 내리 지 않았다.
“간다.”
대답도 없이 마염들이 그의 뒤를 따라붙는다. 적천마존이 천년마교의 거대한 정문을 열고 느릿하게 걸어 나갔다.
해가 두려워 몸을 숨기고, 어둠이 그 모습을 반기듯이 세상을 뒤덮었 다.
중원을 공포로 물들인 적천마존이
직접 마염들을 이끌고 나선다.
불과 삼 일 뒤.
중원에서는 십만이 넘는 피가 흐 르고 또 흘러 장강이 붉게 물들었 다.
시체로 산을 쌓고, 피로 바다를 만든다[屍山血海].
전에 없고, 후에도 없을 마의 종 주
적천마존이 세상에 그 이름을 완 벽히 새겨 넣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