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805)
마존현세강림기-806화(804/2125)
마존현세강림기 33권 (10화)
2장 위로받다 (5)
우득.
움켜쥔 이불이 찢겨 나간다.
그 기이한 감각에 강진호는 눈을 번쩍 떴다.
‘꿈?’
그래, 꿈이다.
정확하게는 기억이다.
그가 강진호가 아닌, 적천마존이 라 불릴 때의 기억.
세상을 패도로 물들인 악마였을 당시의 기억.
그 생생한 기억을 다시 보게 된 강진호가 저도 몰래 손을 들어 얼굴 을 감쌌다.
‘왜 이제 와……
이제는 그와 관계가 없는 기억이 라 생각했는데, 어째서 지금 이런 꿈을 꾼단 말인가. 그는 분명 과거 와는 선을 그었건만.
“후우우우우.”
강진호가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움직일 수가 없다.
너무도 생생한 꿈을 꿔서인지, 그 의 육체에 아직 그 감각이 남아 있 다.
마기가 흘러넘칠 듯 가득 몸을 채우고, 그조차도 두려운 패기가 전 신을 뒤흔드는 그 감각이.
적천마존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 는 너무도 당연하던 그 감각이 지금 의 강진호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태산을 한 손으로 뒤집고, 바다를 일검에 갈라낼 수 있을 것 같은 충
족감.
마음만 먹는다면 하늘조차도 무너 뜨릴 수 있을 것 같은 가공할 힘.
그제야 강진호는 자신이 잃은 것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지금에 와 그 경지를 다 시 되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도 말이다.
‘이 나약한……
웅?
나약?
강진호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 다.
“어?”
황당함이 어린 탄성이 흘러나온 다.
‘……이게 뭐지?’
강진호는 멍하게 자신의 몸을 내 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뭐냐고?’
세상이 변해 있다.
그저 느낌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세상이 다르게 다가오고 있었 다. 카메라 렌즈 앞을 가리고 있던 불투명한 필터를 뺀 느낌이라고 할 까? 세상이 더 선명하고 맑게 느껴 진다.
‘아니야.’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다.
어제까지 강진호가 보고 있던 세 상이 흐릿했던 것이다. 그게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맑게 개였 다.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서 깊 이 고민한 강진호는 결국 하나의 결 론에 도달했다.
‘심마(心魔) 였구나.’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대공 (大功)을 이루기 전, 악귀가 그를 찾아왔다. 무릇 드높은 경지로 나아
가려는 이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 을 만큼 심마에 들게 된다.
심마란 참 오묘한 것이어서 어떤 것이 심마라고 단언해서 말할 수가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기가 위한 과 정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심마라고 할 수 있다.
딱히 정의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심마에 시 달리는 이는 반드시 이전의 경지에 서 퇴보한다는 점이다. 무학을 사용 할 일이 없다면 스스로가 심마에 시 달린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다.
강진호가 딱 그런 경우였다.
지금 눈을 뜨기 전까지 강진호는 스스로가 심마에 들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지.’
강진호는 선택을 망설이는 사람이 아니다. 선택 이전에 있어서 숙고를 하는 일은 있어도 모든 문제를 검토 한 순간부터는 망설이지 않고 하나 를 결정하고 나면 돌아보지 않는 타 입이다.
그런 강진호가 선택을 제대로 하 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는 건 확실 히 이상한 일이었다.
강진호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
다.
아쉬움의 한숨이 아니라 안도의 한숨이다.
심마는 무서운 일이다.
절정을 달리던 무인이 심마에 휘 말려 폐인이 된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다. 사람들은 곧잘 노력하는 사 람은 반드시 앞으로 전진한다고 착 각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나아갈 수 있는 한계는 존재한다.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서 육체의 힘만으로 100m를 8초대에 주파할 수 있겠는가.
노력은 한계에 닿기 위해 필요한 요소다. 한계에 닿은 인간이 한계를 뚫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무언가 가 필요하다. 무학에서는 그 한계를 ‘벽’이라 부른다.
벽에 부딪힌 무인이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끼는지, 다른 사람은 상 상할 수 없을 것이다.
벽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점은, 이 벽을 건넜을 시에 내가 어느 경 지에 오를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 다는 점이다. 열홀을 굶은 사람 앞 에 세상 다시 볼 수 없는 진귀한 음식들을 끝도 없이 차려놓고 그 사
이를 무슨 수를 써도 넘을 수 없는 투명한 벽으로 막아두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 벽을 뛰어넘고 싶다는 간절함 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간절함은 인간을 갉아먹는다. 시 도하고 또 시도해도 넘지 못했을 때, 심력은 점점 갉아 먹혀 결국 폐 인이 되어버린다. 상승으로 가는 벽 은 그래서 무섭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오로지 스스로 넘어야 하 기에 더 무섭다.
이 벽의 끝판왕이 바로 심마였다.
벽은 나아가지 못하게 하지만, 심
마는 사람을 퇴보시킨다. 심마를 극 복하지 못하면 가진 것조차 점차 잃 게 된다. 좋은 일에는 화가 깃들 듯 이 커다란 벽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 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커다란 심마 를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이렇게 넘었어?”
강진호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 다.
황당할 수밖에 없다.
심마라는 건 이리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수라기 를 익히며 심마에 든 강진호는 그
심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1년에 가까 운 고행을 해야 했다.
외부를 단절하고 육체와 정신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또 몰아넣은 끝 에 겨우겨우 심마를 극복해 벽을 깨 고 나아갈 수 있었다. 마지막엔 거 의 죽을 뻔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심마에 시달린 기간이 일주일만 더 지속되 었어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 이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넘는다고?
이렇게?
“별……
그냥 황당하다는 말로 끝날 일이 아니다.
과거의 중원으로 돌아가 마교의 호법들이나 중원의 명사들에게 이렇 게 심마를 넘었다고 하면, 그들은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굴 것이다.
웃겨서?
아니, 배가 아파서.
그 망할 심마를 넘기 위해서 자 해를 하고, 폭포에 몸을 던지고, 곡 기를 끊고, 동굴에 처박혀서 십 년 씩 면벽을 하는 경우도 흔한데, 보 육원에 들어와서 삼 일 구르고 전화 한 통 했더니 싹 나았다?
눈에 핏대를 세우고 칼을 뽑아 달려들 이들이 보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사실인 것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혼란스럽다. 심지어 지금의 이 상 황조차도 심마의 일종이 아닌가 하 는 의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심마에서 벗어난 징후가 너무도 명확하다. 시야가 밝아지고, 머리가 개운해졌다. 그동안 그의 정 신이 얼마나 흐려져 있었는지 바로 실감할 수 있을 정도다.
삼 일 밤낮을 야근하다가 죽은
듯이 쓰러져 24시간을 자다 깬 것 처럼 세상이 또렷해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뭔가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입을 뻐끔거리던 강진호가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 모르겠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심마에 빠 졌다는 것을 자각하기도 전에 빠져 나와 버렸는데, 어떻게 빠져나왔는 지를 무슨 수로 분석하겠는가.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쨌든 이건 좋은 일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말이다.
첫 번째로 심마에 빠졌다는 것 자체도 분명 좋은 일이었다.
심마는 더없이 무서운 일이다. 하 지만 심마에 빠졌다는 것은 그가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 이다. 벽에 부딪힌다는 것은 나아가 야 가능한 일이니까.
방진훈과 새로운 무학의 창안에 대해 고민하면서 강진호가 본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새로운 체 계는 그가 뻗어 나갈 길을 완벽히 닦아내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잡을 수 있다.’
확신이 선다.
더없이 멀어 보이던 적천마존의 그림자가 그의 눈앞에 선명하게 보 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멀디멀어 아 득하기까지 하지만, 이대로 걸어 나 간다면 언젠가는 저곳에 닿을 수 있 을 것이다.
강진호의 입가에 더없이 환한 미 소가 새겨졌다.
“기분 좋아 보이네?”
«으 »
“오! 오빠, 진짜 기분 좋은가 봐‘?”
“으 ”
〒『•
강진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자꾸 입가가 실룩인다. 심마를 넘었다는 것은 강진호에게도 정말 기쁜 일이 었다.
과거, 그가 마교의 교주였을 때라 면 삼 일 밤낮을 웃고 떠드는 잔치 를 열었을 것이다.
“좋은 일 있어?”
“그래.”
조미혜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좋은 일? 오빠, 연애라도 해?”
강진호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대답이 터져 나온다.
“원래 연애는 하고 있잖아!”
“연하 언니가 들었으면 지금 니 머리채가 남아났을 것 같아?”
조미혜가 억울한 듯 항변했다.
“아니! 연하 언니는 지금 중국에 가 있잖아, 이 바보들아. 혹시 바람 피우나 떠본 거야! 왜 초를 치고 그 래!”
무서운 여자.
강진호가 오 년을 넘게 공들여 장악해 둔 보육원이다. 그런 곳에 두어 번 들르더니, 순식간에 여자아 이들을 정보원으로 써먹고 있었다.
새삼 최연하의 두려움을 실감하는 강진호였다.
“오늘 뭐 해?”
“응?”
난데없는 물음에 조미혜가 강진호 를 빤히 보았다. 강진호가 이런 걸 묻는 건 처음 봤다.
“뭐 하기는. 오늘 일요일이잖아. 학교도 안 가니까 딱히 할 건 없지. 어제 청소도 다 해놨고, 오늘은 그
냥 뒹굴대고 놀아야지.”
조미혜의 시선이 한쪽으로 칼날처 럼 박혔다.
“너는 안 돼. 공부해.”
한진성의 고개가 아래로 푹 처졌 다.
가련한 고3이여.
“할 일이 없다, 이거지?”
평소의 강진호였다면 여기서 물러 난다. 그러고는 구석에서 대충 시간 을 떼웠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강진호는 평소의 강진호가 아니다.
오늘은 더없이 기쁜 날이 아닌가.
“내가 쏜다.”
“••••••웅?”
“오늘 내가 쏠 테니까, 계획표 준 비해.”
“ 오늘?”
으 o ”
강진호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아침은 여기서 먹어야겠지. 그 뒤에 나간다. 그리고 저녁까지 먹고 돌아올 거야. 계획표 짜서 제출해.”
“오빠, 몇이나 나가는데?”
“전부 다.”
“웅‘?”
“전부 다.”
조미혜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여기에 있는 인원을 다 데리고 나간다고?
“어디 가는데?”
“그건 너희가 정해야지.”
“헐……
조미혜는 당황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딱히 별 계획이 없던 아이들은 외출, 그것도 강진호라는 전설의 호 구…… 아니, 전설의 보호자와 함께 나가는 외출에 벌써부터 흥분하고 있었다. 기이한 열기가 조미혜를 압
박했다.
“아니…… 오빠, 나는 오늘 쉬려 고……
벌떡벌떡.
사방에서 일어난 아이들이 조미혜 의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끌어낸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걸어와 조미혜 의 자리를 차지한 한진성이 구십 도 로 폴더 인사를 하며 말했다.
“한 시간 내로 결재 서류 준비하 겠습니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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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오늘까지는 쉬어야지.’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지만,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복귀하겠다는 말을 해봐야 조규민은 들은 척도 하 지 않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오늘 하루 확실하게 막 나가 버리는 것도 좋겠지.
아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계획표가 올라오자 강진호는 두말할 것 없이 폰 카메라로 계획표를 찍어 전송했다.
전송받는 이의 비명이 보육원까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