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830)
마존현세강림기-831화(829/2125)
마존현세강림기 34권 (10화)
2장 정리하다 (5)
모든 일은 오히려 사후 처리가 더 골치 아픈 법이다.
조규민이 남긴 그 말을 강진호는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동안은 크게 실감할 일이 없었다. 그는 대개 일 을 저지르는 사람이었고, 그가 저지 른 일을 뒤처리하는 사람은 따로 있
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청마가 그 일을 했고, 현대로 와서는 조규민과 이현수가 그 일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상황만큼은 강진호가 온전히 그 일을 감당해야 했다.
행정적 처리나 대처 같은 부분이 야 이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 이지만, 사건 자체에 당황한 보육원 사람들을 달래고 진정시키는 것은 온전히 강진호가 할 수밖에 없는 일 이니까.
“애들이 크게 다친 건 아니지? 진호야, 애들 어디 있냐?”
“누나! 누나, 어딨어? 누나?”
“강진호 씨, 그러니까, 제 말은 왜 지금 애들을 보러 갈 수 없냐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내 눈으로 봐 야죠!”
“일요일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 야.”
강진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 었다.
‘한 사람씩만 말을 해주면 참 고 마울 텐데.’
안타깝게도 강진호의 입과 성대는 하나씩밖에 없고, 동시에 들려오는
다섯 가지 질문에 모두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은 채 갖추지 못했다.
다섯 가지 질문을 동시에 듣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 로를 칭찬해야 한다.
지옥 같은 시간이지만, 다행히 모 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아이들이 검사를 받고 나오는 순 간, 지독하게 시달리던 강진호는 순 식간에 관심에서 멀어졌다. 강진호 를 둘러싸고 괴롭히던 이들은 아이 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이 멀쩡한지를 두 눈과 손으로 확인했다.
덕분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꼴이
되어버렸지만, 차라리 그게 더 편한 강진호였다.
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 지 않았다.
이현수와 조규민의 주장으로 트라 우마 케어 일정이 잡히기는 했지만, 정신과 진료 자체는 급하지 않고 오 히려 아이들의 피곤함을 가중시킨다 는 이유로 오늘 당장은 받지 않기로 했다.
“저……
울고 불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병원 로비에서 이러고 있는 건 좀 그러니, 일단 보육원으로 이동을 하는게……
정당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다면 모두가 강진호 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 다.
듣는다면 말이다.
나름 힘을 주어 한 말이지만, 강 진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듣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정말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어……
뭔가 다시 말을 하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그냥 있자니 그것도 이상 하고. 최근 가볍게 말을 해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주는 것에 익 숙해져 있던 강진호가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이거, 이런 기분이었구나.’
첫 번째 삶을 살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그에게 누구도 관심을 주 지 않았다. 아니, 관심은 있었다. 장 애인이란 시각적으로 돋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뿐이었다.
눈으로는 봐도, 누구 하나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오랜만에 옛 기억을 떠올린 강진 호는 새삼 실감했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호사 인지 말이다. 첫 번째 삶의 그는 결 국 지켜봐 주는 이도 없이 홀로 쓸 쓸히 죽어갔다.
“형!”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강진호가 잠시 옛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한진성이 그의 옆에 다 가와 있었다.
“아, 잠시 다른 생각 좀 하느라
고.
“정신없지?”
강진호는 대답 없이 웃었다.
아직도 사람이 많은 곳은 어색한 강진호다. 이런 난잡한 상황이 익숙 할 리가 없다. 책임감이 있으니 버 티는 것이다.
“형, 고마워.”
“뭐가?”
“조 실장님한테 들었어. 형이 앞 에서 막아줬다며?”
애한테 무슨 이야기를 한 거지?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물 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이 아
이들도 강진호가 평범한 사람이 아 니라는 것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숨기고 싶 었다.
이 아이들은 무인계와 얽혀서는 안 된다. 평범한 사람이 무인들과 얽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로 만들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해주 고 싶다.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형은 항상 별거 아니라고 하더 라. 우리한텐 대단한 건데.”
“그런 의도는 아니고.”
“여하튼 고마워, 형.”
“고맙긴.”
강진호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재미있자고 나온 일인데 이런 일 에 휘말리게 돼서 내가 미안하지.”
“형 잘못이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왜 항상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저번 놀이공원 사태야 그놈이 미 쳐서 날뛴 것이니 이해가 가지만, 아쿠아리움은 외부의 개입 없이 자 체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연속적으로 이 두 일을
모두 겪은 아이가 얼마나 큰 충격에 시달릴지 걱정이었다.
“그렇게 뚱해 있지 마.”
“웅?”
“별거 아냐. 나는 차라리 이런 것 보다 선생님들이 화났을 때가 더 무 서워. 이건 끝이라도 나잖아.”
“……그렇지.”
그건 공감한다.
강진호도 백현정이 열이 받았을 때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그건 끝이 나지 않으니까.
“형이 그렇게 뚱해 있으면 애들이 불안해해. 우린 괜찮으니까 표정 좀
펴.”
“ O ”
강진호의 표정이 펴지자 한진성이 씨익 웃었다.
“이제 가자, 형. 다들 피곤하니까. 나도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어.”
“그래, 그러자.”
아이들을 버스에 나눠 태우고 보 육원으로 향했다. 불안한 기색을 보 이던 아이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들 잠이 들었다.
버스가 보육원에 도착하자 파김치 가 된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으으으으, 죽겠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이제야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다른 때 같으면 엄살을 논했겠지 만, 지금 아이들은 그 자리에 쓰러 져 잠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다.
“씻고 자야 하나?”
한진성의 말에 조미혜가 눈에 쌍 심지를 켰다.
“그럼 그냥 자게?”
“ 피곤한데……
“피곤한데 숨은 왜 쉬어! 사람이 할 건 해야지!”
“……야, 너는 기운도 좋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너는 왜 이리 쌩쌩 하냐?”
“오빠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이러는 거 아냐!”
“내가 뭐 어쨌다고.”
조미혜가 피식 웃으며 한진성을 욕탕으로 밀었다.
“빨리빨리 씻어. 빨리.”
“애들 먼저 씻기고……
“됐으니까 빨리 씻어!”
“남탕에 들어오지 마!”
조미혜가 싱글벙글 웃으며 한진성 을 욕탕으로 밀어 넣었다.
‘힘들겠지.’
한진성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자기 목숨 하나 를 건사하는 데도 정신이 없는 그 상황에서 한진성은 아이들 하나하나 를 다 챙겼다.
두 배로 힘을 쓰고, 몇 배로 신경 을 썼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가끔 한 번씩 이렇다니까.’
평소 같으면 우는소리를 죽도록 늘어놓을 텐데, 여기까지 도착하는 동안 한 번도 징징대지 않는다. 되 레 다른 애들이 괜찮은지를 몇 번이
고 살핀다.
평소 문지방에 발가락만 찧어도 죽느니 사느니 고래고래 고함을 지 르던 한진성을 생각하면 도무지 어 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조미혜는 알고 있었다.
한진성은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할 때는 군소리가 없는 사람이다.
‘가아아아아끔씩 멋있다니까. 가 아아아아끔씩.’
“꼬맹이들.”
“응!”
“오빠 씻다가 잘 수 있으니까, 들
어가서 오빠 씻겨.”
“라져!”
체력이 남아도는 초딩들을 욕실 안으로 투입하자, 안에서 죽는소리 가 들려왔다.
“자, 그리고……
다시 뭘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려 는 찰나, 그녀의 어깨를 잡는 손길 이 느껴진다.
“어?”
“너도 씻고 쉬어.”
“아, 오빠. 아니야. 내가……
“쉬어.”
어깨에서 느껴지는 힘.
강하게 잡지는 않았지만, 흔들림 없는 그 손에서 조미혜는 안도감을 느꼈다.
“네가 안 해도 돼. 내가 할 테니 까. 유민이도 있고, 선생님들도 있 고.”
“……응, 알았어.”
“어서.”
조미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 만 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어깨를 잡고 있는 이 손에서 느껴지는 안도 감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강진호도 그걸 아는지 더는 재촉 하지 않았다.
“알았어, 오빠. 그럼 나도 씻을 게.”
“그래.”
조미혜가 욕탕으로 향하자, 강진 호가 손을 털며 눈을 빛냈다.
‘자, 시작할까.’
아쿠아리움 사태를 겪은 아이들은 지금 겨우 눈만 뜨고 있는 상황이 다. 그러니 원래 그 아이들이 하던 일은 강진호가 해야 한다.
그럼 일단!
“ 진호야.”
“••••••어?”
“이리 와, 이리.”
“••••••예.”
의욕에 차 있던 중대장 강진호는 자신의 뒤에 있던 대대장 박유민의 존재를 깨닫고는 힘없이 다가갔다.
“애들 밥 먹여야 하는데, 보통 밥 은 안 넘어갈 것 같거든?”
“……그렇지.”
속이 받지 않을 거다.
“죽 쒀야 할 것 같아. 가서 쌀 좀 가져와 줄래?”
“몇 포대?”
“혹시 모르니까 두 포대 정도만. 한 포대면 충분할 것 같기는 한데, 일단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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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강진호가 터덜터덜 걸어 창고로 향했다.
“고생했어.”
박유민이 벤치에 앉아 있는 강진 호에게 콜라를 따 내밀었다.
“그래.”
강진호는 두말없이 콜라를 받아 들었다.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야.’
적성에 맞지 않아서인지, 그게 아 니면 원래 힘든 일이어서인지. 아이 들을 다루고 재우는 일은 언제나 쉽
지가 않았다. 겨우겨우 그 모든 일 을 끝마친 강진호가 벤치에 등을 기 댔다.
찰칵.
“좀 끊어라.”
“쉬운 거 아냐, 그거.”
강진호의 너스레에 박유민이 고개 를 저었다.
“남들은 잘만 끊던데.”
“남들 같을 수는 없지.”
“요즘 느끼는 건데, 너 정말 말 잘한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발전한 거지.”
가볍게 웃은 박유민이 강진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책하지 마.”
“너 때문에 생긴 일 아냐.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 크게 다친 애도 없잖아.”
“딱히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하는 데.”
강진호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어두운 밤하늘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느낌이다.
“어려운 것 같아.”
“뭐가?”
“호의로 시작한 일도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박유민이 피식 웃었다.
“다 그런 거지.”
“ 다?”
“그래. 다 그런 거지. 원래 일이 란 게 생각처럼 풀리지 않잖아. 그 래도 뭐라도 하는 거지. 그러다 보 면 조금은 나아져 있을 테니까. 다 들 그렇게 사는 거 아냐?”
“다들 그렇게라……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렇게’라는 말의 어감이 좋다. 언제나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동떨어진 삶을 살던 강진호도 그들 처럼 살게 되었다는 말 같아서.
‘평범하게라……
이제는 조금 이루어지기 힘든 꿈 이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처음 강진호가 꿈꿔온 평범한 삶 보다 지금의 삶이 몇 배는 더 즐거 우니까. 어쩌면 지금 강진호는 자신 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마셔.”
“그래.”
다 큰 성인 둘이 벤치에 앉아 콜 라를 마신다.
그 뒤로 벌레 우는 소리가 천천
히 퍼져 나간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하지만 특 별한.
그저 그런 날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