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846)
마존현세강림기-847화(845/2125)
마존현세강림기 35권 (1화)
1장 계획하다 (1)
이성휘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이질감이라는 말은 조금 맞 지 않다. 지금 그가 느끼는 감각은 허공에 붕 뜬 듯한 기묘함이었으니 까. 적당히 표현할 말을 찾아낼 수 없다.
‘내게는 맞지 않는 자리야.’
어쩌다가 그가 이런 자리에 동석 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곳은 무인들이 서로 목숨을 걸 고 싸우는 곳이 아니었다. 이제는 스스로를 무인이라 칭하기도 어려워 진 이성휘이지만, 여하튼 이곳은 그 에게 맞지 않았다.
칼날같은 엄정함이 흐른다.
물론 이 분위기가 어색한 것은 아니다. 고풍스러운 다다미 방이라 든가,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주 발이 내려진 상석이라든가……. 그 런 것은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를 어색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반대쪽에 앉아 있는 사내다.
정확하게 그 사내의 손이었다.
사내의 손에는 네 개의 손가락밖 에 보이지 않는다. 새끼손가락이 있 어야 할 곳이 깨끗하다.
그 사실이 이성휘를 불편하게 만 들고 있었다.
일본 놈들이 괴상한 짓거리를 한 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저런 식으로 책임을 진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 다.
‘병신 같은.’
단지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한국의 열사들도 자신 의 의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손가락 을 자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적어 도 한국은 사람에게 책임을 물리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대지는 않았다.
문화의 차이라고 이해하기에는 너 무도 야만스럽다.
드러난 세상의 문화가 아니다. 야 쿠자나 사회의 쓰레기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그런 짓이 이곳에서 버젓 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성휘 를 불편하게 했다.
‘게다가 저놈은……
나카타 유지.
야마카와카이의 수장.
그래, 거물이다.
하나의 문파를 이끄는 이라고 해 서 반드시 거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 만, 나카타 유지는 분명히 거물이었 다. 일본의 무인계에서도 확실한 영 향력을 가지고 있는 자다.
그런 이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다.
꿀꺽.
이성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 말인즉, 지금 저 주발 뒤에 있 는 자가 나카타 유지의 손가락을 지
시만으로 잘라낼 정도의 거물이라는 뜻이다.
이성휘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 았다.
‘긴장이 라니.’
병신 같은 일이다.
저자가 거물이든 아니든 그게 무 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습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진호의 파 멸을 위해 목숨을 걸기로 했으면서 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달 라지는 자신이 우습다. 감히 저들의 단지를 야만스럽다 말하면서, 이 더
러운 머리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 숨을 건 열사들을 떠올린 것 역시 우습다.
그분들이 지금 이성휘를 보면 뭐 라 할 것인가.
침을 뱉고 욕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성휘가 과연 저들을 욕 할 자격이 있는가. 욕을 해야 한다 면 스스로를 먼저 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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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가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사이, 먼저 입을 연 것은 김석일이 었다.
“우선 이런 모습을 보여 드린 것
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표하지 못하는 것 역시 사죄드립니 다.”
“그럴 것 없다.”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성휘 는 그저 눈치로 대화를 짐작할 뿐이 었다.
“그래. 그대들이 홍왕계의 전언을 가지고 왔다 했는가?”
“그렇습니다.”
“홍왕계라……
침묵이 감돈다.
한동안 조용한 침묵이 이어진다.
방 안에 있는 누구도 감히 먼저 입 을 열지 못했다.
“그들이 우리를 도울 이유가 없을 텐데?”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니겠습니 까?”
“빤한 말이지. 적의 적 역시 적일 뿐이야. 친구라는 건 없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친구 는 아니어도 동료는 될 수 있지요. 목적이 같다면 뜻이 다르다 해도 잠 시 손을 잡을 수는 있을 겁니다.”
김석일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나카타 유지.”
“예, 수령.”
나카타 유지가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몸을 숙여 예를 표했다.
“어떻게 생각하지?”
“저는 좋은 제안이라 생각하고 있 습니다.”
“좋은 제안이라……. 어째서?”
“힘을 빌려주는데, 받지 않을 이 유가 없습니다.”
나직한 침음이 들려온다.
“네 계획은 실패했다.”
“그렇습니다.”
“생때같은 목숨이 떨어졌고, 차도 살인을 꾀한 것 역시 실패했지. 그
만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죽이려 한 강진호는 멀쩡히 살아 한국을 누 비고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나카타 유지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도 표정도 어 느 하나 비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너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예, 있습니다.”
“말해보라.”
나카타 유지가 낮게 심호홉을 했 다.
“수령, 물론 저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패했다고 해서 제가 수령을 보필할 사람 중 가장 영민하 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군.”
“사실입니다.”
낮은 웃음이 홀러나온다.
“계속해 보라.”
“예.”
나카타 유지가 단호하게 말을 이 었다.
“제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분명합 니다. 하지만 그게 제가 무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강진
호가 모두의 예상보다 더 강했을 뿐 입니다.”
“그걸 예측하지 못한 것이 무능이 아니라는 뜻인가?”
“세상 모두가 하지 못한 일의 책 임을 제게만 묻는다는 건 가혹하지 않겠습니까?”
세상 모두.
그 말에는 수령 역시 그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발칙하군.”
나카타 유지는 할 말을 끝냈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숙여진 어깨 위로 수령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온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겠지. 네 말은 여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말해보라.”
“예. 저들이 우리를 지원하기로 한 이상, 그 지원을 받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모든 지원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그들이 원하는 것이 우리가 하려 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 대가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국을 치려 한다는 말인
가?”
“아니십니까?”
처음으로 고개를 든 나카타 유지 가 주발 너머를 단호한 눈으로 쏘아 보았다.
“이미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습 니다. 강진호가 거기서 죽었다면 상 황은 조금 달라졌겠죠. 하지만 강진 호는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제 그는 실적과 명망을 동시에 손에 쥐었습 니다. 더 빠르고 강하게 한국을 바 꿔 나가겠죠.”
“어찌 생각하는가?”
김석일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대답은 제 몸으로 대신해도 되겠 습니까?”
주발 너머에서 차가운 눈빛이 김 석일의 육체를 더듬는다.
“좋은 꼴은 아니로군.”
“강진호가 없었다면 어쩌면 저는 지금쯤 한국의 대표로 수령을 마주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감히 수령의 앞에서 뻣뻣할 수 는 없었겠지만, 지금보다는 목에 힘 이 좀 더 들어갔겠죠.”
김석일이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이건 틀린 말이다. 육체가 멀쩡하던 때의 김석일이라면 지금
이곳에서 숨도 쉬지 못했을 것이다. 잃을 것이 있으니까.
지금의 김석일은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당장 죽는다 해 도 억울할 게 없다. 그러니 이런 태 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저를 이 꼴로 만든 게 강진 호입니다. 그리고 한국 최대의 조직 을 하루아침에 집어삼켰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자면 강진호는 더없이 탐욕스럽고, 더없이 잔인한 놈입니 다. 그런 놈이 힘과 명망을 모두 얻 었다면, 더 거칠게 용트림 칠 겁니 다.”
“흠……
주발 뒤에서 호성이 홀러나왔다.
“나카타 유지.”
“예.”
“지금 우리가 한국을 치지 않는다 면?”
“먹힙니다.”
그 대답만은 뜻밖이었는지 수령이 침묵했다. 그 침묵을 재촉으로 받아 들인 나카타 유지가 다시 입을 열었 다.
“한국과 일본의 전력은 비교할 수 준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말입니
다. 하지만 채 오 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강진호의 위험성은 단순한 개인의 강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변혁가이고, 개혁가입니다. 부 작용을 감안하고 빠르게 개혁을 추 진한다면, 한국의 총회는 전혀 다른 단체가 되어버릴 겁니다.”
“그 기간이 오 년이라는 건가?”
“예.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나카타 유지.”
“예.”
“너는 내가 강진호 하나를 막아내 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수령, 그 질문에는 이미 답이 나
와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나카타 유지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수령께서 강진호를 막아야 하는 상황까지 가버린다면,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농락할 수 있는 상대를 농락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쳐 대처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버린다면, 그 보다 큰 실패가 없습니다.”
“ 으음••••••
김석일이 나직하게 웃었다.
‘잘도 구슬리는군.’
저자는 확실히 위험하다.
수령에게 위기감을 주고 있기 때 문이 아니었다. 김석일이 생각하기 에 총회가 일본의 전력을 따라잡는 데는 채 삼 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 다.
그걸 나카타 유지쯤 되는 놈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나카타 유지는 굳이 오 년을 언급하고 있었 다.
수령의 자존심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 었다. 저런 말을 들은 이상 수령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쯤 그의 머리에는 오 년 뒤
총회가 무인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쳐들어오는 상상이 시작되었을 테니 까.
평범한 자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리 쉬울 리가 없지.’
신니치카이의 수령이다. 일본의 반을 지배하는 사람이다. 말이 절반 이지, 현실과는 다르게 관서가 관동 보다 영향력이 큰 일본 무인계에서 관서를 지배한다는 말은 일본 전체 를 지배한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 았다.
그런 자라면…….
“나카타 유지.”
“예.”
“머리가 좋은 놈들은 세상을 자신 의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지.”
“하지만 명심해 두는 게 좋을 것 이다. 머리만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는 이들은 자신의 발밑을 보지 못한 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 주겠다. 하지 만 다시 한 번 같은 짓거리를 저지 른다면, 그때는 손가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나카타 유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고 있었다. 그 모습만 봐도 나 카타 유지가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 과연.’
김석일은 차분하게 홀러가는 상황 을 주시했다.
나카타 유지 같은 이가 저런 빤 한 협박에 긴장할 리가 없다. 그 말 인즉슨, 저건 협박이 아니라는 뜻이 다. 그 사실은 나카타 유지의 잘려 나간 손가락이 증명하고 있다.
“그리 강하게 주장한다면, 이미
방도는 마련해 두었겠지?”
“그렇습니다.”
“승률은?”
“구 할.”
“구 할이라……
침묵이 흐른다.
잃을 것이 없는 김석일마저도 절 로 긴장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한 이성휘마저도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이미 차이 커창을 대면한 적 있던 이성휘이지 만, 주발 뒤에 보이는 실루엣이 내 뿜는 존재감은 감히 차이커창이 대 적할 수준이 아니었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 할의 승률을 두고 남조선을 먹느냐의 도박이라면, 패를 내지 않 을 수가 없군. 판돈까지 밀어준다는 데 손을 빼면 남아의 수치나 다름없 다.”
수령의 목소리가 일변했다.
“조선을 친다.”
나직하지만 확고한 선언이 단호하 게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