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889)
마존현세강림기-890화(888/2125)
마존현세강림기 36권 (19화)
4장 상대하다 (4)
콰아아아아아아!
이상한 일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냉 정히 바라볼 때, 이건 정말로 끔찍 하고 참혹한 일이었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광경도 없을 것
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광경을 지 켜보는 이들에게는 그리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일까?
방진훈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 었다.
남은 게 없다.
바토르의 기운이 휩쓸고 간 곳에 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통째로 갈려 나가 골조를 드러내고 있는 갑판의 모습만이 을 씨년스레 남아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곳과
잘려 나간 사람 두엇의 시체가 놓여 있는 곳 중 어느 쪽이 더 두렵게 느껴지겠는가. 명백하게 후자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바토르의 일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남긴 것이라고는 뻥 뚫려 버린 갑판 아래로 흘러내린 피뿐이다.
방진훈이 입을 꾹 다물었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버린 앞을 보 고 있으려니, 순간 허탈감이 찾아온 다. 그러다 이내 그 허탈감이 서서 히 껄끄러움으로 변하더니, 다시 두
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용케 그 권력의 범위에 들지 않 아 살아남은 일본의 무사들도 방진 훈과 같은 과정을 겪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갑판은 그들에게 의아함을 주었지만, 곧 그 의아함은 숨도 쉴 수 없는 공포심으 로 바뀌었다.
사라졌다, 모두가.
“꿀꺽.”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 소란스러웠던 공간이 순 식간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 적의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그제야 들린다.
파도가 배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곳에 있던 이들은 지금 그들이 바다 위에 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리고 그걸 알았다면 선택은 하 나뿐이다.
슬금슬금 물러난다.
눈치를 보고 물러나는 게 아니다. 머리는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했는 데, 몸이 먼저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머리가 상황을 완벽히 이 해한 순간!
“으아아아아아악!”
“뛰어! 뛰라고, 이 개새끼들아!”
“살려줘!”
대탈주가 일어났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세로 무사들이 밖을 향해 내달리 기 시작했다. 갑판 끝에 도달한 이 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몸 을 던진다.
“흠……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바토 르와 합작하여 만들어낸 판이 꽤나 마음에 든 눈치다.
“언젠가 한 번은 이걸 꼭 해보고
싶었죠. 원탁은 다 좋은데 나이트끼 리 협동 작전이 잘 안 이뤄지는 게 단점이거든요. 제가 붙들고 다른 이 가 마무리해 주는 연계를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생각처럼 잘 돼서 기분이 괜찮군요.”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방진훈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새끼도 제정신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래 도 나름 이 중에서는 제일 정상인이 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총회의 이사직 을 맡고 있는 놈들 중에서는 정상이
라는 말을 가져다 붙일 놈이 없다.
‘씨발, 나도 남이 보면 미친놈인 거 아냐?’
전장의 한중간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방진훈이었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지금 눈앞 에 펼쳐진 광경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방진훈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 다.
저 마법이라는 것은 확실히 무학 과는 달랐다.
무학으로는 저런 것을 할 수 없 다. 기세로 위압하고 내기를 쏘아내 한두 사람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건
가능할지 모른다. 방진훈에게는 무 리겠지만, 강진호쯤 된다면 그리 어 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위긴스가 보여준 것 처럼 다수의 움직임을 한꺼번에 묶 는 것은 아무리 강진호라고 해도 불 가능한 일이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무학은 애 초에 다수 대 다수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완벽하게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발전한 것이 무학이다. 무림에서 다수를 상대하 기 위해 발전한 것은 무학이 아니라
진법이다.
‘마법이라는 게 이런 거였군.’
다수의 숙련된 무인이 있어야 펼 칠 수 있는 진법. 그 진법으로 낼 수 있는 효과를 홀로 낼 수 있다. 물론 진법은 스스로 적을 쓰러뜨리 는 역할까지 함께 해내니 완벽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봐도 마법 쪽이 좀 더 간편하고 효율성이 높았다.
그리고 마법의 효용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방진훈이 보기에 위긴스의 마법은 개인전보다는 집단전, 즉 전쟁 시에
그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한 사람의 고수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 지만, 다수의 중수를 상대할 때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할 게 빤했 다.
“그거.”
“ 예?”
“그거도 굉장해 보이는데, 뭐 하 러 검술까지?”
“아, 뭐, 그건 나름의 이유가 있 습니다. 마법이라는 건 참 효율적이 고 좋은 수단이지만, 단 한 명을 막 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예전부터 마법사들은 단련된 기사가
가까이 붙으면 목을 빼는 것 말고는 저항의 여지가 없었죠.”
“……거, 한국말 배워볼 생각 없 소‘?”
위긴스가 쓰게 웃었다.
‘이 상황에서 팔자 좋게 번역 어 플을 켤 수도 없고.’
그가 한국어를 배우든 다른 이들 이 영어를 배우든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여지가 없으니까.’
마법사는 쉽게 말하면 포병이다.
현대전의 포병만큼의 위력을 가지
지는 못하지만, 원거리에서 광역으 로 대미지를 넣거나 보조를 한다는 측면에서는 지원의 성향이 강했다.
포병의 단점은 전차나 특작부대가 접근할 때 마땅한 대처 방안이 없다 는 것이다. 이 문제점은 마법사에게 도 그대로 적용됐다. 아니, 그 이상 이다.
포병과 전차의 기동성 차이보다 기사와 마법사의 기동성 차이가 더 심하다. 그리고 마법사의 사거리는 포병만큼 길지 못하다. 최대로 멀어 져 봐야 눈에 보이는 거리.
그 정도의 거리는 기사가 순식간
에 좁힐 수 있다.
물론 위긴스쯤 되는 수준에 오르 면 블링크나 텔레포트로 대처를 할 수 있지만, 위긴스 정도 수준이 되 는 마법사가 그리 흔한 것이 아니 다.
어떤 클래스든 최상위급 경지에 오르면 나름의 대처법이 생기는 것 은 다들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말이 다. 그렇기에 위긴스는 마법과 검술 을 둘 다 익혔다.
전쟁의 주인공과 전투의 주인공, 그 둘 다 포기하기 싫어서였기 때문 이다.
‘멍청했지.’
지금 돌이켜 보면 그만한 객기가 없다.
똑같은 무학이기에 그럴수 있 다?
웃기는 소리다.
이건 한 사람이 수학과 인문학을 동시에 대성할 급으로 익히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선택이다. 둘 모 두 학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속해 있다. 하지만 학문을 조금이라도 익 힌 사람이라면 둘을 같은 학문이라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괴물이 출현하여 전혀 연관성 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분야들을 모 두 극한까지 익혀내기도 하지만, 안 타갑게도 위긴스는 그만한 천재는 아니었다. 그걸 미리 알지 못한 게 지금의 위긴스를 만들었다.
“여하튼 정말 쓸모가 많은 양반이 구만.”
“그거 하나가 유일하게 내세울 만 한 점이지요. 그런데 저분들도 그렇 게 생각을 해주셔야 할 텐데.”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팔방미인.
말은 좋다.
여러 가지 분야에 모두 능통한 사람은 써먹기도 좋고, 똑똑해 보이 니까.
하지만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생각만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괴로울 뿐이다.
세상을 바꾸거나 지배하는 이들은 한 분야를 제대로 파서 극한까지 이 르는 이들이다. 여러 능력을 적당히 올린 이는 그 마지막 벽을 넘지 못 한다.
지금은 그가 바토르에 비해 그리 뒤지지 않는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 면 지날수록 그와 바토르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아니, 이미 벌어졌지.’
과거의 바토르도 강했다. 하지만 지금의 바토르는 과거와는 비교를 불허하고 있었다. 마공을 받아들인 덕분에 파괴력이 증가했고, 과감해 졌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불안정 한 부분도 생겼다. 이성을 쉽게 잃 는 점을 아직 보완하지 못했기에 고 수와 싸우게 될 경우, 예전이라면 노출하지 않던 약점을 보이는 경우 도 생기게 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일대일로 싸울
경우는 과거에 비해 오히려 약할 수 도 있다. 그만한 고수끼리의 싸움이 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건 보완할 수 있다.
바토르쯤 되는 무인이 자신의 상 태를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 보 완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게 마공이 더 깊어지고, 그 보완이 끝 날 쯤에 바토르는 이전과는 전혀 다 른 무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속이 쓰리다.
그가 강진호에게 합류한 이유는 그 개인은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이 유도 있었다. 그래서 원탁 이상의
조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억눌린 마음을 풀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직은 조직, 그리고 개인 은 개인이다. 총회는 커 나가고 있 지만, 위긴스는 그 안에서 생각만큼 의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머무른 사이 다른 이들이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박탈감마저 느 끼고 있었다.
‘이거, 곪겠는데?’
위긴스가 자신의 상태를 냉정하게 진단했다. 이만큼 괜찮은 그림을 만 들어두고도 기분이 상쾌해지지 못하 는 걸 보니, 내부적으로 불만이 꽤
나 쌓인 모양이다.
하지만…….
“고민할 문제는 아니겠지.”
“ 예?”
“아니, 아닙니다.”
위긴스가 손을 내저었다.
“아이! 그 손 함부로 휘두르지 마 쇼! 총구는 사람 향해 두면 안 된다 는 것도 못 배웠어? 군대 안 갔…… 아, 안 갔구나.”
위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 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 발랄함을 잃
지 않는 걸 보면, 이 사람도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다.
‘나 혼자 고민할 필요는 없지.’
강진호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마스터는 그 모든 것을 혼자 해 결했다.
그는 회의를 주재하고 다른 나이 트들의 의견을 듣기는 했지만, 그건 원탁의 시스템이 그런 것뿐이다. 마 스터는 의견을 들을 뿐, 조언을 구 하지는 않는다. 타인의 의견을 취합 하여 최적의 결론을 내리는 것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강진호는 달랐다.
그는 정말 다른 이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만한 수준에 오른 무인이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에게 의견을 구한다는 것은 위긴스가 보기에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강한 무인은 그만큼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노력과 근성, 그리 고 재능으로 그 위치에 오른 이다. 그런 이들이 왜 다른 이의 말을 듣 는단 말인가.
위긴스 역시 자신의 일은 오로지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 었다. 하지만 강진호 덕분에 그 생 각이 깨졌다. 강진호가 그에게 도움
을 구하듯이, 그 역시 다른 이들에 게 도움을 구할 수 있다.
‘로드와 한 번 상의해야겠어.’
강진호라면 그의 이 답답함을 풀 어줄지도 모른다. 설사 그게 아니더 라도 지금보다는 나은 방향을 제시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위긴스는 그렇게 믿었다.
그의 눈이 강진호의 등으로 향했 다.
이제는 검을 내리고 가만히 서 있는 강진호다. 그 등을 보고 있으 려니, 위긴스의 입에 미소가 피어났 다.
우습지도 않은 일이다. 이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웃게 되다니.
‘예전이랑은 참 많이 달라졌군.’
이제 그는 다시 과거의 나이트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역시 너 무 많이 변해 버렸으니까.
씁쓸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느끼면 서 위긴스가 고개를 돌렸다.
“자, 이제는 이사님이 뭐 하나 보 여주셔야죠.”
“……춤이라도 출깝쇼?”
괜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