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895)
마존현세강림기-896화(894/2125)
마존현세강림기 36권 (25화)
5장 정화하다 (5)
“너는 죽어도 이해할 수 없겠지!” 목에 핏대가 선다.
겨우 멈춘 출혈이 그의 흥분과 함께 다시 터지며, 얼굴 위로 피가 줄줄 홀러내렸다. 이미 그의 앞섶은 피로 젖은 지 오래였다.
그는 이미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
다.
무너졌다, 모든 것이.
그들의 원정은 저들의 땅에 도착 하기 전에 이미 박살이 나버렸고, 마지막으로 강진호를 죽이겠다는 계 획조차 이미 틀어진 지 오래였다.
반도 남지 않은 전력으로는 절대 강진호를 감당할 수 없다.
일검.
단 일검이었다.
강진호에게 달려든 이들의 반수가 죽어 나가고, 남은 이들이 공포에 질려 바닥을 기게 만드는 데 필요한 건 단 일검뿐이었다.
괴물이라는 말도 이제는 무색하 다.
대체 저 인간을 어찌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나카타 유지는 이미 직감했다.
죽는다.
모두가 죽는다.
이 원정에 나선 이들은 단 한 명 도 곱게 열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 다.
단순히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다. 패한다고 해도 전력을 보존하는 패 배도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수천이 이 바다에서 죽어갈 것이 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나카타 유지 는 가슴이 불에 타는 것 같은 고통 을 느꼈다.
“나라를 위해?”
나직한 웃음이 들려온다.
강진호의 비웃음이 나카타 유지의 귀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너희가 여기서 죽는 게 너희 나 라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지?”
“내가 사람들에게서 이해할 수 없 는 개념이 하나 있어. 바로 희생이
라는 거야.”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희생은 참 좋은 말이지. 그리고 거룩한 말이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 터 인간은 희생, 그 자체를 대단하 게 여기더군.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걸 수 있다는 걸 대단하게 여긴다는 말이지.”
강진호가 가만히 나카타 유지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주저앉아 있는 그의 앞에서 몸을 숙여 나카타 유지 와 눈을 마주쳤다.
“정말 그럴까?”
“희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무언가를 이 루거나 지켜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희생 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있지. 개 죽음. 그렇지 않아?”
나카타 유지의 몸이 부들부들 떨 렸다.
강진호에게 패하는 것까지는 받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 는 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모욕하 고 있다. 설사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앞에 두고 있다 하더라
도 이런 식으로 조롱받으며 죽고 싶 지는 않았다.
“나라를 위해?”
강진호가 쿡쿡 웃었다.
“그건 지키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이지. 침략하는 이들이 할 수 있 는 말이 아니야.”
나카타 유지의 눈동자가 흔들렸 다.
“말해봐야 이해 못하겠지만.”
“이……
막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강진호 의 차가운 눈이 나카타 유지를 응시 했다. 그의 몸이 마치 뱀을 마주한
쥐처럼 굳어버렸다.
“나는 말이야.”
“말로 누군가를 이해시키는 것에 는 별로 자신이 없어. 특히나 말이 잘 통하지도 않는 외국인이라면 더 더욱 말이야. 그런데……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 다.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지. 내가 이해시킬 수 없다면 스스로 이 해하게 만들어 버리면 되는 거야. 자신의 의지라는 게, 내가 지금 내 세우고 있는 명분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무슨 말인지 알 겠어?”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할 것 같았다.
강진호가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만 약 그가 이 말에 반발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너무도 잘 알 수 있었다.
“결국은 개죽음일 뿐이지.”
강진호가 손을 뻗어 나카타 유지 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 이자가 왜 이런 짓을 하는
지 나카타 유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왜 뜬금없이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강진호는 승리했다.
패자를 어떻게 다루든 그건 결국 승리자의 선택일 뿐이다. 목숨을 걸 고 싸워 패배한 자는 숭리자에게는 그저 전리품일 뿐이었다.
패자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
무사도?
세상은 당연한 것을 굳이 지키라 고 법칙과 도리를 만들지 않는다. 어떤 것이 세상에 회자된다면, 그건 그대로 내버려 두면 지키지 않는 것
이기 때문이다.
기사도는 너무도 과격하고 문란하 던 기사들을 단속하기 위해 생겨났 다. 무사도 역시 마찬가지다.
패자의 명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패자는 패자일 뿐이다.
패자는 승자가 내미는 무엇이라도 감수해야 한다. 그게 승부의 법칙이 니까.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도무지 이 해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승 리한 그가 왜 굳이 패배한 나카타 유지에게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그저 죽여 버리면 그만일 텐데. 그리고 비웃으면 될 텐데.
“이렇게 죽으면 너는 그냥 개죽음 을 당하는 것뿐이야.”
“나, 나는……
“그리고 그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 던 일이지.”
나카타 유지의 눈이 의문으로 물 들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
강진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한쪽을 바
라보았다.
“장난은 끝났어.”
나카타 유지가 멍하니 그런 강진 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뭘 하는 거지?
“ 나와.”
누구에게?
나카타 유지의 하나 남은 눈이 강진호의 시선을 쫓았다. 하지만 강 진호가 바라보는 곳에는 아무도 없 었다. 대체 이자는 지금 누구를…….
“아••••••
그때 였다.
일그러진다.
어둠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파문.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조용한 파문이 인다. 그러더니 그 파문 안 에서 검디검은 사람의 형상이 그 모 습을 드러냈다.
그 검은 형상을 본 나카타 유지 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 인자?’
인술을 익힌 자다.
나카타 유지의 감각마저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 정도의 고수다.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 중 이곳에 누군가가 모습
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 모두의 감각을 피할 수 있 다는 것은…… 거꾸로 말해 저자가 이곳의 누구보다 강하다는 뜻이었 다.
배에 저만한 강자가 타고 있었는 데 나카타 유지가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
“수령••••••
나카타 유지가 이를 갈았다.
뱀같이 교활하고, 또한 음험한 자. 그런 이가 그 모르게 누군가를 잠입시켰다는 그자의 역할이야 너무
도 빤하지 않은가.
나카타 유지의 실패를 우려했다면 절대 저런 이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 다. 나카타 유지를 보좌하거나 도울 수 있는 이를 보냈겠지, 암살자를 보내지는 않는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명확했다.
‘ 개죽음.’
강진호의 말이 이해가 가는 순간 이었다. 아마 강진호는 처음부터 알 고 있었을 것이다. 나카타 유지의 주변에 은신하고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의 목적 역시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저자가 최후의 순간에 나카 타 유지를 제거하러 온 자라면, 이 전쟁 어디에도 나카타 유지가 설 땅 은 없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국 죽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 좋은 일만 시켜준 채 죽는다. 그게 개죽 음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나카타 유지가 자신도 모르게 소 리 쳤다.
“수령이냐! 네놈을 보낸 게?”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나카타 유지는 그의 관심사 가 아니었다. 그림자의 시선은 오로 지 강진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답을 듣지 않아도 나카 타 유지는 이미 답을 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 배에서 가장 강대한 전력은 수령이 보내준 이들이다. 신니치카 이의 정예들이 세 부대나 이 배에 탔다. 하지만 강진호가 배에 오른 이후, 그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둣 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배를 뒤져
그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들이 몸을 숨기 기로 마음먹었다면 나카타 유지가 그들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어떻게든 전력을 모아 강진 호를 상대한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 사실을 홀러 넘겨 버렸다. 하지 만 이제는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처음부터 그들은 나카타 유지의 명령을 따를 생각 따위는 일절 없던 것이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사람 은 따로 있으니까.
그림자.
카제이치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 진호에게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았 다.
“예상하지 못한 정도로 강하다.” 강진호와 카제이치의 시선이 마주 쳤다.
‘인간의 눈이 아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배에 오른 이후로 강진호는 줄잡아 일백 이상의 사람을 죽였다.
살인마라는 말이 무색하다. 강진 호는 마치 대나무를 잘라 버리는 것 처럼 사람의 목을 베어냈다. 그 움
직임 어디에도 인간을 상대한다는 껄끄러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건 악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적들에게 악마 라는 말을 듣고 살아온 카제이치이 지만, 강진호의 앞에 서니 스스로가 얼마나 인간다운지를 실감할 수 있 었다.
‘냉정함은 수령에 못지않을지도.’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수령의 차가움이 목적을 위해 수 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철혈의 심 장에서 나오는 거라면, 강진호의 차 가움은 인간, 그 자체에 배어 있다
는 느낌이다.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오면 저런 모습이 될 수 있는 걸까?
깊다.
강진호에게서 배어 나오는 어둠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깊 었다. 카제이치 역시 어둠을 살아가 는 존재이기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딱히 대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어둠이 내린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불빛.
그 불빛이 인간의 눈에서 뿜어지 는 안광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인다. 저 자는 신니치카이를 넘어 대일본제국 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자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불빛, 아니, 안광들이 강진호를 중심으로 조여오 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진호는 그들을 맞상대하 는 대신 나카타 유지를 툭, 걷어찼 다.
“통역해 봐.”
나카타 유지가 황당한 눈으로 강 진호를 돌아보았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는 강진호의 시선에 나카타 유지가 더듬더듬 카제이치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잘도 지껄이는군.”
이놈이고, 저놈이고…… 낯부끄러 운 말을 잘도 해 댄다.
저놈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지금 강진호가 일본의 침략에 맞서 한국 을 수호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웃기지도 않는군.’
그런 거창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 은 없다.
저놈들이 한국 땅을 밟는 게 짜 증이 나서 이곳으로 온 것뿐이다.
거기까지.
강진호가 이들을 다르게 대한 것 은 딱 거기까지뿐이다. 그 외의 모 든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짜증이 난다.
거창한 말을 해 대는 놈들도, 이 아무것도 아닌 싸움에 이상한 의미 를 부여하는 것들도 말이다.
“확인해 보지.”
강진호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홀러나오기 시작했다. 육체에서 뿜 어져 나온 마기가 마치 검은 화염처 럼 강진호의 육체를 뒤덮는다.
악마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형상이 되어버린 강진호가 두 눈을 붉게 물들인 채 입을 열었 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그렇게 거 창할 수 있는지 말이야.”
어둠 속에서 날개를 펼친 악마처 럼 강진호의 마기가 하늘을 향해 뻗 어 나갔다.
쿠웅!
쿠우우웅!
배가 뒤흔들리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전신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흔들림이 느껴진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노부오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조금 전부터 배를 뒤집어 버릴 것 같은 소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공격이라도 받는 건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여객선을 공격한다는 것은 전쟁을 치르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아무리 막나가는 놈들이라도 전쟁을 불사하고 일을 벌일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 흔들림과 충격은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다. 배에 이상이 생겨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물론 배에 이상이 생긴다고 이런 충격이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들지만,
노부오가 선박에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비명 소리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이곳에 타고 있는 이들은 무인이다. 심지어 배가 반으로 갈라져 모두가 바다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도 저리 호들갑을 떨 이들은 아니었다.
결국 이 모든 정황은 단 하나를 의미했다.
‘습격.’
누군가 이 배를 습격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이상의 합리적인 추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멍청한 질문이다.
이 배를 노릴 만한 이들은 하나 밖에 없다.
총회.
그들이 온게 분명했다.
‘미친놈들.’
황당하다.
물론 그들에게 일본이 침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낸 것은 다름 아닌 노부오 자신이다. 하지만 노부오 역시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대비할 기회를 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지금 누군가가 그쪽으로 쳐들어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준비를 마치고 중간에서 요격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특히나 덩치가 큰 조직일수록 신속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대화 된 조직은 당연히 보고 체계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효율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소규모 집단에 비해서는 그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뭔가.
그의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부터 바로 움직였다고 해도 이 정도의 쾌속함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저들이 노부오가 소식을 전하기 이전부터 이 상황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그게 말이 맞지.’
상식적으로는 그쪽의 말이 맞았다.
노부오가 저쪽으로 메시지를 넣은 것은 객기에 가까웠다. 반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굳이 확인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노부오가 총회의 소속으로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면, 과연 그걸 윗선에다 보고했겠는가.
설사 보고가 들어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간단한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확인해 볼 윗대가리 놈들이 있을리 없다.
확인을 해보면 된다고?
배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는 항로는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고정된 항로를 지키지 않을 경우를 감안하면 바다 전체를 뒤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걸 지시하고 확인하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날아든 메시지 하나에 그만한 일을 지시한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아는 총회라면 말이다.
이건 총회를 비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노부오가 일본에 있고, 그의 지인이 한국이 지금 일본을 침공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온다면 노부오는 어쩔 것인가.
보고?
그래,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보고를 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빤하다. 보고는 윗선으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의 상급자 선에서 잘릴 것이다. 정신 차리라는 말이나 돌아오겠지.
노부오 역시 자신의 메시지가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기를, 최소한 해안의 경비라도 강화하는 선택을 해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저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 배가 한국에 닿기도 전에 직접 배로 쳐들어온 것이다.
무시무시한 행동력과 무시무시한 결단력이었다. 설사 저들이 노부오가 보낸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고 준비했다 하더라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전 세계 어디를 뒤진다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조직은 없을 것이다.
“크흐흐..
노부오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럼 됐다.
그가 완전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저들은 어쨌거나 일본이 침공한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그럼 그걸로 된 것 이다.
그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
노부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훑어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깊은 한숨이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죽는 건가?’
이상하지 않지.
그가 당한 고문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인간의 육체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나카타 유지에게 그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두고두고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으니까.
아마 이 정도면 노부오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그가 계산하지 못한 것은, 노부오에게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의지가 없다는 정도겠지.
어차피 그는 그의 삶을 모두 버렸다.
이대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배신자가 되어 처절한 고문 끝에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간다고 해도 다를 것이 없다.
그곳에서 그가 받을 것은 반쪽발 이라는 멸시뿐이다. 더구나 지금까 지와는 전혀 다른 단절된 삶을 살아 야 한다. 그걸 어떻게 버틸 수 있겠 는가.
‘무공이라도 남아 있으면 모르겠 는데 말이지.’
노부오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아랫배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나카타 유지는 그가 저항을 시도하는 순간, 그의 단전부터 깔끔하게 파괴했다. 이제 그는 다시는 무공을 익힐 수 없을 것이다.
무학을 잃고, 나라를 잃고, 삶을 잃었다.
그런데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갈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으로 하려 했던 것이 이뤄 졌다면, 그걸로 됐다. 이제 노부오에 게는 다른 길이 남아 있지 않았다.
“큭큭큭.”
노부오가 나직하게 웃었다.
열사라도 된 느낌이다.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그분들의 이름을 노부오가 입에 올리는 것은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기분이었다.
‘후회하지 않았을까?’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가시지를 않는다.
그분들은 차디찬 감옥에서 고문당해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어떤 독립운동가는 감옥에서 고문 받고도 재판장에서 오히려 판사를 꾸짖었다고 한다. 스스로의 죽음을 앞당기는 그런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노부오는 이렇게 후회가 되는데.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회한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멍청했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지금 노부오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마지막에 노부오를 지배한 감정은 단 하나였다.
허탈함.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뿌듯함도,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는 후회도 남지 않았다. 한차례씩 격렬한 무언가가 그를 휩쓸고 지나가더니,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그저 허탈함뿐이었다.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은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현명하게 행동했다면, 그 역시 조금은…….
‘웃기지도 않지.’
이제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는 이제 죽어갈 텐데.
저들은 노부오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제보자가 있다고 해서 그 제보자 를 찾으려 들지는 않는다. 그저 제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할뿐이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뒤에야 노부오를 찾아보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에 노부오는 이미 죽고 없다.
한국이 이긴다고 해도 자신은 이곳에서 죽어갈 것이다. 그들이 굳이 이 배를 샅샅이 뒤져 그를 찾아내 데려가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일본이 이긴다면 당연히 죽는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이 개같은 일본 놈들에게 제대로 엿을 한 방 먹였다는 것을 위안 삼아 죽어가면 되는 것이다.
죽어가면…….
노부오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 했다.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인정하자 눈물이 계속 새어 나온다.
멋지게 죽을 수는 없다.
멋있는 죽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다. 노부오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보라.
세상이 흔들린다.
쿠웅, 쿠웅, 울려오는 거대한 폭음.
동시에 거대한 격랑이라도 만난 듯 뒤흔들리는 바닥.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어디선가 새어 들어온 빛과 만나서 제멋대로 뒤섞이고 있었다. 이것이 죽음을 맞는 이가 보는 광경이라면…… 꽤나 멋지지 않은가.
눈이 부신 듯한 빛의 환상 속에서 노부오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파묻힌 사내가 가만히 그를 내려다본다.
‘저승사자? 아니면 천사?’
그 어느 쪽이겠지.
확실한 것은 이자는 사람은 아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노부오는 확신했다.
그가 생각하는 저승사자나 천사와는 좀 다르지만, 이 사람은 분명히 그들이 갖추어야 할 ‘이질감’을 갖 추고 있었다. 그저 겉모습만으로도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말이다.
고통 없이 죽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할까?
노부오는 피식피식 웃었다.
그래, 죽었다.
그럼 이제 물어야겠지. 자신이 지옥으로 갈지, 그게 아니면 천국으로 갈지.
한국인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칭송받을 수도 있고, 어쩌면 길이길이 기억될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는 살육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살육을 저지른 죄인이 아닐까?
저들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천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천사의 언어는 노부오의 귀에서 해석되지 못했다. 들어본 적 없는 언어. 천사와 인간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노부오였다.
천사가 고개를 돌리더니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노부오의 귀에 익숙한 말이 들려왔다.
천사의 옆에 뭔가 인간 같은 얼굴이 불쑥 내밀어지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뭐야, 이 새끼? 왜 맛이 가 있어?”
‘한국어?’
뭐지?
왜 저자가 한국어로 말하는 거지?
그가 한국인이라서?
그럼 저 사람은 통역…….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니가 노부온가 뭔가 하는 그놈이냐?”
“ 예?”
노부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야? 여기 현실이야?’
그럼 이자는 뭔가?
보통 사람의 세 배는 될 듯한 덩치를 가진 이 괴물은?
“쯧쯧, 고문도 심하게 당했네. 일어나, 인마. 밖으로 나갈 테니까.”
괴물.
아니, 바토르가 혀를 차더니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노부오의 몸을 장난감처럼 달랑 들어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도 상황 파악이 덜된 노부오는 이런 공주님 안기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갑판 위로 올라온 노부오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뭔 상황이야?’
눈을 크게 떴더니 얼굴이 다 아프다. 끔직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다시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그만큼이나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광경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아••••••
뭔가 말을 하려는 찰나, 바토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내려가 볼 테니, 이놈 잘 좀 돌봐줘.”
“걱정 마시고 다녀옵셔.”
“주인이 반드시 살리라고 했다.”
“저도 귀 있습니다.”
“뭐라고?”
“제가 영어가 짧아서……
바토르가 눈을 한 번 꿈뻑거렸다.
살짝 미간이 좁아진 채 눈을 꿈뻑이는 바토르의 모습은 딱히 다른 것이 없어도 지켜보는 이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다, 다녀오십쇼.”
“흠.”
바토르가 몸을 돌리더니, 갑판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방진훈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무서워서 살겠나, 이거.”
제아무리 방진훈이 같은 이사라고는 하지만, 바토르와 맞먹을 수는 없었다. 일단 한국인인 이상 저 양반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설사 나이가 거꾸로 되더라도 바토르에게는 나이를 무시하게 만들 만큼 말도 안 되는 육체가 있지 않은가.
설령 바토르가 방진훈보다 약했더 라도 방진훈은 바토르에게 시비를 걸지 못했을 것이다. 저 몸뚱아리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차라리 곰이 귀엽겠다.’
일어서면 3m에 달한다는 그리즐리 베어보다 바토르가 더 흉악스럽다. 그리즐리의 발톱이나 이빨보다 바토르의 근육이 더 무섭다.
직접 바토르를 눈앞에서 본 사람 이라면, 다들 그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 와중에도 노부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해가 잘 안 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배에 가득 들어차 있던 일 의 병력들이 보이지 않는다. 구석을 보니 사람들이 배 밑으로 뛰어내리고 있다.
어째서?
이유야 너무도 간단하다.
배 위에 있으면 위험하다 싶으니 바다로 뛰어드는 거겠지. 설마 저 사람들이 단체로 이 야밤에 해수욕을 즐기고 싶어서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것으로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 예측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배 위의 병력들을 위협할 총회의 무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으로 북적대던 배가 마치 유령선처럼 변해 있었다. 보이는 것이 라고는…….
‘시체.’
노부오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갑판 위에 시체가 널려 있다. 그리고 시체에서 흘러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피가 고여 있었다. 마치 일부러 붉은 물을 배 위에 쏟아부어 채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순히 갑판 위만 피가 젖은게 아니다.
보이는 모든 곳이 붉다.
의문과 납득이 동시에 찾아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이런 광경이 생기겠는가 하는 의문과 동시에, 그만한 일이 벌어졌으니 사람들이 다들 기겁하여 배에서 탈출하고 있겠지 하는 납득이 말이다.
노부오가 고개를 슬쩍 돌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갑판 끝에 서있어 서인지 바다의 모습이 아주 잘 보인다.
‘저건 또 뭐야?’
바다 위에서는 또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다에 뛰어내린 무인들이 돌고래 떼가 헤엄을 치는 것처럼 아득바득 헤엄을쳐 옆에 보이는 다른 배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의 위에서는 일련의 무인들이 배 위로 오르는 이들을 막아내며 죽이는 중이다.
‘저거, 지금 붉은 건가?’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예전 다큐멘터리에서 포경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구석으로 몰아넣은 고래를 창으로 찔러 학살할 때, 바다가 완전히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지금 저 광경이 딱 그랬다.
바다가 붉다.
어둠에 가려 영상으로 본 것처럼 선명한 붉은색은 아니지만, 희게 보여야 할 포말이 선명한 핏빛으로 보이는 광경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노부오는 지금 이 상황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지 않았다면, 세상 누가 와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또 있었다.
마지막으로 노부오의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은 갑판의 중앙에 서 있는 한 남자였다.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노부오의 전신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인간이 아니다.
뒷모습을 보는 순간, 노부오의 머릿속에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처음 바토르를 봤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이건 격이 달랐다. 그때, 노부오는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 상태였다. 만약 노부오의 정신이 멀쩡했다면 놀라긴 해도 상대를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이다.
하지만 저건…….
저건 아니다.
맨 정신으로 보고 있음에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보라.
저 불길한 아우라를.
눈앞에 서 있는 남자의 육체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 시커먼 기운이 마치 타오 는 불꽃처럼 사내의 육체를 휘감아 돈다.
사내의 발끝에서 시작된 검고 불길한 기운이 어깻죽지에서 좌우로 뻗어 나가 마치 악마의 날개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입이 열리지 않는다.
노부오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완전하게 압도당했다. 눈을 뗄 수가 없고, 저항할 수 없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다 인간은 아니다. 저건 분명 인간이 아닌 무언가였다. 검게 타오르는 불꽃이 노부오의 눈에는 마치 원귀들이 뭉친 것처럼 보였다.
죽음을 몸에 두른 자.
그래, 표현하자면 그 말이 적당하다.
“아•••••• 으••••••
“ 흠?”
꾸욱.
그 순간, 방진훈이 노부오의 어깻죽지를 꾹 눌렀다. 그 손길에 노부오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아…… 아아……
“정신 차려, 인마.”
노부오의 목을 두어 번 주무른 방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저게 본다고 이해할 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
그리고 익숙해지는 광경도 아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본 방진훈이 아니지만, 지금 그의 심장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 친다.
그와 함께 밀려오는 공포.
강진호가 절대 그를 해할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의 이성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본능이 자꾸만 그를 뒤로 밀어낸다.
당장 저 위험한 것에서 떨어지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해롭다니까.’
저 양반과 같이 행동하다 보면 수명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방진훈은 한숨을 쉬며 노부오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네가 노부오 맞나?”
“••••••예.”
능숙한 한국어를 보고 자신이 사람을 제대로 찾았다고 확신한 방진훈이 손가락을 들어 강진호를 가리켰다.
“보이냐?”
“ 예?”
“저분이 우리 총회의 회주님이시다.”
회주?
회주라면…… 사람이라는 건가?
“그, 그럼 강……
“그래, 강진호. 우리 회주님이시다.”
노부오가 눈을 부릅떴다.
강진호라는 이름은 수도 없이 들어봤다. 지금 일본의 무인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바로 강진호였으니까.
한국 무도 총회의 회주.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 있다고는 해도, 한국의 가장 거대한 단체였던 한국 무도 총회를 일순 평정하고 한국의 무인계를 일통한 자.
그리고 그 홍왕과 격전을 치르고 도 살아남은 자.
그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너 무도 많은 사람.
그리고 이번 원정의 목표.
강진호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머 릿속을 휘돈다. 하지만 노부오는 그 모든 정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모습을 본 자라면 모두가 공 감할 것이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그가 얼마나 영활하고 위험한지.
말로 전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 가 없다. 저 사람은 직접 눈으로 확 인하지 않으면, 몸으로 직접 겪어보 지 않는 이상에는 재단되지 않는 사 람이 었다.
“어……
“뭘 그리 놀…… 아니, 이 새 끼…… 단전이 뚫렸잖아?”
방진훈이 인상을 확 썼다.
“아, 씨발. 상처 없이 데리고 오 라고 했는데. 와, 이거…… 저 양반 분명히 난리칠 텐데……
방진훈이 기겁하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를 찾는 것 같네만?”
“아, 오셨습니까?”
어느새 나타난 위긴스를 보며 방 진훈이 다급하게 말했다.
“얘 단전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인 것 같 은데, 이대로 두면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됩니다.”
“……영어로 말해주게.”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건 영어로 하기에는 너무 힘든 말이다. 그의 짧은 영어로는 도무지 표현을 할 수 없었다. 방진훈이 노 부오의 뚫린 아랫배를 가리키고는
온갖 바디랭기지를 통해 의사를 전 달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와중에 노부오는 살짝 허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배 위는 지금 지옥이라고 해 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다. 수많 은 이들이 죽어 나갔고, 살아남은 이들은 죽지 않기 위해 망망대해로 뛰어들고 있다.
그리고 배 위에는 악마가 강림해 있었다.
그런데 이 양반들에게서는 도무지 긴장감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래도 되는 걸까?
“흐음, 상처가 깊군. 여기가 동양 무인들의 핵심이 되는 곳이란 말이 지?”
위긴스가 흥미롭다는 듯이 노부오 의 아랫배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 다.
“심장이 아닌 아랫배에 기운을 모 은다는 건 참 편리하군. 이렇게 죽 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으니까 말이 야. 우리 같았으면 심장에 구멍이 뚫렸을 텐데.”
“고칠 수 있습니까?”
“자네, 나를 너무 만능 상자 정도
로 여기는 것 같은데 말이지.”
“아까 그걸 못 봤다면 안 물어봤 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습니까?”
“가능할 것 같네. 시간이야 걸리 겠지만, 한 사람 정도 치료하는 건 내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
“ 아••••••
“다만, 시간이 꽤나 필요하고, 노 력을 굉장히 해야 하네. 나는 정말 효율이 좋지 않은 치료사란 말이지. 한 명의 생채기를 치료하는 시간이 면 천 명도 죽이겠군.”
“……뭔 살벌한 소리를 그렇게 쉽 게 하십니까?”
“일단 응급처치 정도는 해두지. 그럼 시간을 들여 고칠 수 있을 걸 세.”
위긴스가 노부오의 아랫배에 손을 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서 새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얼마나 걸립니까?”
“대충 두 시간?”
“응급처치만요?”
“그렇다네.”
“……병원 가는 게 빠르겠네.” 위긴스가 인상을 확 썼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나는 효 율이 나쁘다고. 애초에 이건 내 전
공이 아니란 말일세.”
“네네.”
방진훈이 고개를 돌리자, 위긴스 가 노부오와 눈을 맞추고는 가볍게 웃었다.
“노부오라고 했나?”
“……예? 아, 예!”
“편히 있게. 자네는 회주님이 꼭 구해내라고 한 VIP니까. 회주님이 자네를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 누구 도 자네를 건드릴 수 없네. 그건 우 리라도 마찬가지이지.”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자신이 그리 중요한 인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러니 회주님을 잘 지켜봐 두…… 아니, 아니지.”
위긴스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장소를 옮기겠나? 지금부터 벌어 질 광경을 보고 회주님을 만난다면 오줌을 지릴지도 모르는데?”
협박 아닌 협박에 노부오가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