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01)
마존현세강림기-902화(900/2125)
마존현세강림기 37권 (8화)
2장 침몰하다 (3)
“말했을 텐데.”
무심한.
그리고 차분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하 지만 나카타 유지는 그 목소리가 저 남자와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 남자는 그런 남자니까.
세상과 조금은 동떨어져 있는 사 람.
상식이라든가 법칙이라든가, 일반 적인 세상을 지배하는, 그런 요소들 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다. 그 런 사람의 목소리이다 보니 주변 환 경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게 자연 스럽다.
강진호를 몰랐을 때는 이런 생각 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 진호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게 된 지 금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다르다.
이놈은 그가 알던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눈과 코와 입이 달렸다고, 팔이 두 개고 다리가 두 개라고 해 서 같은 인간이 아니다.
이놈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다른 무언가였다.
강함?
그런 게 아니다.
세상에 강진호만큼 강한 이는 또 있을 것이다. 강진호가 호각을 이루 며 싸웠다는 홍왕이 그럴 것이고, 어쩌면 수령 역시 강진호와 비슷한 경지에 올라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강진호가 될
수 없다.
강진호의 강함은 그저 무력의 강 함이 아니다.
주변을 압도하는 힘. 그게 강진호 에게는 있었다.
수도 없이 수령을 보고 그의 힘 에 떨어온 나카타 유지이지만, 수령 의 힘과 강진호의 힘은 그 종류가 달랐다. 수령에게서 느껴지는 공포 는 이놈이 언제 그를 죽일지 모른다 는 현실적인 공포다.
하지만 강진호에게서 느껴지는 공 포는 그런 게 아니다.
아무리 사람에게 길들여진 사자라
고 해도 사자의 주둥이 앞에 머리를 들이밀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 다.
그건 이성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 이다.
강진호에게서 오는 공포는 계산된 공포가 아니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를 바라볼 때, 인간이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 강진호에게는 그게 있었다.
“개죽음당하게 될 거라고.”
저벅.
강진호가 또 한 걸음 걸어왔다. 나카타 유지는 조금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그가 처한 상황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도, 그리고 그에게 다가오 고 있는 강진호까지……. 모든 것이 물속에 잠긴 듯이 흐릿하기 짝이 없 다.
나카타 유지가 입술을 질끈 깨물 었다.
‘현실도피다.’
현실은 현실이다.
그 어떤 상황이든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 식이었다.
지금 이곳은 지옥이다. 그리고 그 에게는 악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 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나카타 유지가 입술을 질끈 깨물 었다.
“어떻게 생각하지?”
저벅저벅.
강진호가 나타카 유지의 바로 앞 에 다가와 섰다. 주저앉아 있는 나 카타 유지의 눈에 강진호의 다리가 들어왔다.
실감이 난다, 지금 그가 어떤 상 황에 처해 있는지.
나카타 유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 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떠올 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무심하다는 뜻은 아 니다. 강진호의 얼굴은 처음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거지.’
이 전투가, 이 전쟁이.
이 사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는 뜻이다. 평범한 사람이 가벼운 산보를 가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
다. 수많은 죽음을 딛고 선 저자에 겐 말이다.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뭐라 했더라?
그가 이 사내에게 뭐라고 지껄였 더라?
처음 강진호가 배 위에 뛰어내렸 을 때, 그를 조롱했던 말들이 떠올 랐다.
얼마나 우스웠을까.
얼마나 같잖았을까.
그를 조롱하는 나카타 유지를 보 며 강진호가 어떤 느낌이었을지를 생각하니, 지금 당장 배에 칼을 박
고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 대답은?”
나카타 유지가 떨리는 눈으로 강 진호를 바라보았다.
“……개죽음.”
작게 뇌까린다.
그런 후, 나카타 유지의 눈에 확 고한 빛이 들어왔다.
“……나는 개죽음을 당하지 않겠 습니다.”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다.
“그럴 수 있을까?”
“예. 가능합니다.”
“어떻게?”
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러고 나서 주먹을 꽉 움켜잡는다.
알 수 있다. 지금 이 사내는 그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그건 제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정하는 거겠죠.”
“내가?”
“예.”
강진호가 흥미롭다는 듯이 웃는 다.
그리고 그 웃음에서 나카타 유지 는 강진호의 악마성을 실감할 수 있 었다. 지금 이 곳에서 강진호의 손
에 죽어 나간 이들만 해도 기백은 될 것이다.
바다에 빠져 죽어간 이들은 계산 에 넣지도 않았다. 이 배 위에서 강 진호가 직접 쳐 죽인 이들만 그 정 도는 된다.
그런데 웃고 있다.
아무리 전쟁이 그런 것이라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게 전 쟁이라지만…… 그만한 사람을 죽인 이가 웃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얼마 나 많은 전장을 겪어왔으면 이 지옥 같은 전장에서도 저리 아무렇지 않
다는 듯이 웃을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나카타 유지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조차 잊었 다.
그를 깨운 것은 강진호의 목소리 였다.
“왜 내가 정한다고 생각하지?”
“……당신이 저를 살려뒀으니까 요.”
“흠?”
나카타 유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침착해야 한다. 냉정해야 한 다. 지금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 디가 그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다.
수령 앞에서 말을 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긴장감이 몰려왔 다. 이미 손발은 배어 나온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고, 등판을 적신 땀 덕분에 옷이 바짝 달라붙는다.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 있습니다. 저는 이게 제가 운 이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습 니다. 당신, 당신께서 저를 살려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나카타 유지 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카타 유지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당신이 저를 살려두셨다 면 그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저는 그 이유가 제가 쓸모가 있기 때문이 라 생각합니다.”
“ 쓸모?’’
“예!”
나카타 유지가 확신을 담아 말했 다.
“저는 누구보다 일본의 무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 본의 무인계에 대한 정보를 당신께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
앞으로 일본을 막아내려 하거나, 혹 은 일본을 역으로 침공하려 할 때, 그 어느 쪽이든 제가 가진 정보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으로 파고 들었다.
눈이 따가웠지만 나카타 유지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강진호에게 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여기서는 수작을 부려서는 안 된 다.
그가 내보여야 하는 것은 진심이 었다. 이런 자들은 이득에 그리 연 연하지 않는다. 자신이 중분히 이득
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것을 주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그가 보여야 할 것은 그가 줄 수 있는 정보가 얼마나 가치 있느냐가 아니라, 지금 그가 얼마나 전향적으 로 강진호에게 협조하는가다.
나카타 유지는 그럴 자신이 있었 다.
국가? 민족?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단 내가 살아야 국가도 있고 민족 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살아날 방법은 이것밖에는 없었다.
나카타 유지가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필사적으로 앙다물고 강진호 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선다.
악마를 만나서 살아남는 법?
간단하다. 악마와 계약을 하면 된 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말이다.
그럼 더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살 아날 수 있다. 그리고 나카타 유지 는 그 방식을 철저하게 따랐다.
배신자가 되라면 배신자가 되고, 개가 되라면 개가 된다.
훗날을 위해서 진흙을 집어삼킨다 는 정신승리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강진호에게 복종하는 것뿐이다. 마음속에 있는 일말의 반항심마저 버리고 철저하게 이자를 따른다.
그게 나카타 유지가 선택한 길이 었다.
“이상한 소리군.”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마치 내가 일본에 쳐들어갈 것처 럼 말하는군?”
“……아니십니까?”
나카타 유지가 단호함과 긴장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이 공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걸 격퇴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계산으로는 이걸로 끝난 것 은 아니겠지요.”
“이유 없이 먼저 한 공격을 막아 냈다로 끝내기에는 당신의 피가 너 무 뜨겁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일본 을 징죄하려 들 것입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나카타 유지를 바라보았다.
생각처럼 머리가 똘똘하게 돌아간 다.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나카타 유지가 그 자리에 머리를 처박았다.
“저는 당신에게 유용할 수 있습니 다. 저를 이용하신다면 당신의 목적 은 조금 더 손쉽게 달성될 수 있습 니다.”
나카타 유지는 그 말로 입을 닫 아버렸다.
너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은 역효과다. 이럴 때는 가만히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머리를 숙이되 비굴 하지 않게.
그러자 강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과도하게 저자세로군.”
“일본인의 특성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민족성 같은 건 믿지 않아. 사 람은 그저 사람일 뿐이지. 그저 몸 에 베인 예의의 타입이 다른 거겠 지.”
강진호가 나카타 유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 싸우던 적에게 그토 록 저자세로 항복할 수 있는 이유를 묻지.”
“간단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탄복
했기 때문입니다.”
“ 탄복?”
“ 예.”
나카타 유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 사람을 보고 누가 탄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악마 같은 강함, 그리고 단호함, 그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신속함과 과감함까지.
누군가를 모셔야 한다면 이런 이 를 모셔야 한다.
“당신의 휘하에는 여러 국적의 사
람이 있습니다. 저들 역시 당신과 싸우다가 탄복한 이들이겠죠. 저는 저들이 왜 당신의 밑에 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 정점에 오 르지 못한다면, 그곳에 오를 수 있 는 이를 모시고 싶습니다.”
나카타 유지가 고개를 다시 바닥 에 박았다.
이걸로 끝이다.
이제 결정이 날 것이다.
그리고…….
‘이건 받는다.’
처음부터 결정이 나 있는 일이었 다. 그렇지 않다면 나카타 유지를
살려둘 이유가 없으니까. 그보다 강 한 이들이 모두 죽었는데 왜 그가 지금 살아 있겠는가.
적당히 구실을 주고 진심으로 따 르면 된다.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강 진호를 따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 다. 저 수령에 비한다면 이자는 진 정으로 모실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재미있군.”
나카타 유지의 생각을 깬 것은 들려오는 웃음소리였다.
“필요가 있어서 살려뒀다라……
그리고 그 웃음에 이어지는 웃음 기 섞인 말이었다.
“개죽음이 뭔지 알고 있나?”
“……제가 이곳에서 당신께 대항 하여 죽는 것입니다.”
“아니, 아니야. 그런 건 개죽음이 아니야.”
나카타 유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그의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눈.
강진호의 눈이 살짝 붉게 물들어 있다. 그 눈을 본 순간, 나카타 유 지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
다.
“네 명령 때문에 이곳에서 죽어간 이들의 죽음이 개죽음이지. 강요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이들의 죽음 이 개죽음이야.”
“저, 저는……
“물론 그들을 동정하지는 않아. 강요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선택은 선택이니까. 다만……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너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극.
강진호의 손에서 검은 마기의 손 톱이 돋아났다.
“이 전쟁이 성공했다면 너는 수많 은 것을 이뤘겠지. 그러니 실패에 대한 대가를 받고 죽는 것 역시 나 쁘지 않을 거야. 그렇지?”
나카타 유지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부들부들 떨리는 눈으로 강 진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 앞에 그저 떨 뿐이었다.
“걱정할 것 없어.”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내가 이건 꽤 능숙하거든.”
길게 돋아난 마기의 손톱 끝으로 핏방울 하나가 흘러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