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20)
마존현세강림기-921화(919/2125)
마존현세강림기 38권 (2화)
1장 마중하다 (2)
마스터는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 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것이라고는 청명한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밖 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눈에 대지와 빽빽한 빌딩들이 들어 오고 있었다.
‘오랜만이 로군.’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것이 목적인 원탁이지만, 실제 나이트들이나 마 스터는 자국을 거의 떠나지 못했다. 그들이 직접 나서야 할 만한 일은 웬만해서는 벌어지지 않으니까.
원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비용이 마스터의 전용기를 점검, 보수하는 비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토록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니 마음이 설렐 만도 하다. 하지만 마 스터는 지금의 상황을 그리 즐기지 못했다.
평범한 이들에게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떠나는 일은 꽤 즐거운 일 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마스터는 달 랐다. 그가 타국으로 떠날 때는 항 상 심각한 일이 생길 때니까.
그러니 이 비행이 영 달갑지 않 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 다.
마스터는 끝도 없이 펼쳐진 빌딩 들을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좁혔다.
‘한국이라……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 음이다.
마스터의 머릿속에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소국 이었다.
‘올드하지.’
알고 있다.
지금의 한국이라는 나라가 결코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나라가 아니 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이 대표하는 동아시아를 평생 동안 봐온 마스터 에게 새로운 인식을 덧씌운다는 것 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마스터에게 자 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게 만 들어주었다.
‘늙었어.’
노쇠했다.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아 니다. 무인에게 나이라는 것은 딱히 의미가 없는 일이다. 마스터가 스스 로를 노쇠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 이기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었 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해간다.
그가 처음 마스터의 직위를 받았 을 때, 세상은 이리 빠르지 않았다.
물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골치 아픈 일도 많았지만, 나름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 르다. 세상의 속도는 이제 더 이상 마스터가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빨라 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몇 년에 걸쳐서 일어날 만한 변화가 단 일 년 만에 벌어진 다.
아침에 눈을 뜨면 훌쩍 변해 있 는 세상을 따라잡기 바쁘다.
마스터는 슬슬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선대 역시 마찬가지였겠지.’ 사람이 자신이 노쇠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내부에서는 이제는 그만 자 신의 노쇠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체 념과 아직은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미련이 공존했다.
선대 역시 이런 기분으로 그에게 마스터의 자리를 넘겼을 것이다. 스 스로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한다고 여 길 때 자리를 물려준다면 이미 늦은 뒤일 테니까.
마스터란 자리는 그런 자리다.
완전한 이성을 가진 자만이 이끌 어 나갈 수 있는 자리. 그렇기에 그 가 더 노쇠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 기 전에 마스터의 자리를 넘겨야 한
다.
선대는 이양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스터는 지금 그 일을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대와 그 의 가장 큰 차이는 단 하나다.
후계자.
선대에게는 자신의 일을 믿고 맡 길 수 있는, 그리고 시간을 들여 인 수인계할 수 있는 후계자가 존재했 다. 그것이 마스터 자신이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 후계자를 만 들어내는 것에 실패했다.
‘ 위긴스.’
그 이름을 떠올리자 전신이 물먹
은 솜처럼 축 늘어지는 느낌이 든 다.
위긴스는 그를 저버렸다.
가진 것과 가질 수 있던 것 모두 를 버렸다.
나이트라는 찬란한 영광은 그가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질 수 있던 것은 마스터라는 자리였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마스터 의 마음속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마 스터 후보가 위긴스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위긴스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
마스터는 빽빽하게 들어찬 건물들 을 보며 눈을 좁혔다.
활기.
그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활 기가 여기에 있다.
성장해 나가는 도시.
성장하고 있는 국가.
‘딱히 즐거운 광경은 아니군.’
자신들이 예전에 잃어버린 것을 다른 이들이 지니고 있다는 것은 서 글픈 일이다. 되찾을 수 없는 과거 의 영광이 떠오르니 말이다.
딱히 그 대답을 듣지 않았음에도 마스터는 왜 위긴스가 원탁을 버리
고 이 나라를 택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안정이란 때로는 너무도 지루한 것이니까.
원탁의 시스템은 완전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전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인 이상 완벽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 탁의 시스템은 오랜 시간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더 이상은 손 댈 곳이 없을 만큼의 완성도를 이룩해 냈다.
그 완벽한 시스템에서는 사람조차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아무리 완벽
한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감정에 휘둘리게 된다. 그게 인간이니까.
원탁은 그런 인간의 감정마저도 배제한다.
가장 완벽하고, 가장 이성적인, 그리고 더없이 합리적인. 그렇기에 더없이…….
‘숨이 막히지.’
마스터 역시 그 시스템에서 완전 히 벗어나지 못한다. 시스템은 그들 의 모든 것을 통제하니까. 원탁이라 는 시스템하에서는 마스터조차 그 거대한 시스템을 돌리기 위한 부품
에 불과하다.
원탁은 명예를 주는 대신 자유를 앗아간다.
지금 원탁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마스터의 직권을 이용하여 한국으로 이동하는 것이 원탁에 든 이후 마스 터가 저지른 가장 큰 일탈이었다.
이 아무것도 아닌 일조차 쉽사리 할 수 없다.
마스터가 이럴진대,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원탁을 아는 모든 이들이, 원탁에 들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이 선망하 는 마스터라는 자리의 실상을 알게
되면 어떨까?
마스터는 고소를 머금었다.
그렇기에 그는 위긴스를 미워하지 않았다. 원망할지언정 증오하지는 않는다.
마스터라는 자리가 가지는 무거운 무게감과 지독하기까지 한 부자유를 감내하기에 위긴스는 너무 젊으니 까. 어쩌면 그는 새로운 삶이 아니 라 새로운 시스템을 원했는지도 모 른다.
도시의 전경을 보고 있으니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뒤죽 박죽이다. 도시의 외관은 조금도 정
리되지 않았다. 그저 활기만 넘치는 혼란이 가득한 곳이다.
그렇기에 미래가 있다.
젊은이들은 때로는 완벽한 무언가 보다는 불완전한 무언가를 원한다. 스스로 완벽한 시스템에 녹아들어 안주하기보다는 자신의 손길로 무언 가를 만들어내기를 원한다.
더 나은 무언가를 말이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 았다.
위긴스가 원탁을 버리고 이 혼란 스러운 나라를 택한 이유를 말이다.
위긴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이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이상을 좇는 자는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된다.
현실은 이상론자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시 작은 모두가 이상론자이나, 결국에 는 현실론자가 되는 이유가 있는 것 이다.
위긴스는 그런 것을 모를 사람이 아니다. 그가 아는 나이트 위긴스라 면 그 누구보다 현실의 삼엄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그가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도 도전해 볼 만한 가치를 바로 이곳에서 찾았다는 뜻이다.
마스터는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 었다.
이 나라에 무엇이 있는지를.
세상을 놀라게 만드는 대한민국, 그리고 총회의 발전이 대체 무엇으 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강진호를 만나보고 싶다.’
결국 그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라기보다는 강진호
였다.
마스터가 가만히 가슴을 내리눌렀 다.
‘주책맞군.’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마스터는 지금 그의 가슴속에서 들끓는 열기에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긴스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길을 따 라 걷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고는 강진호라는 소국의 무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겼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가슴
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강진호와 자신은 뭐가 달랐던 걸 까?
위긴스는 대체 강진호에게 무엇을 보았기에 그가 아닌 강진호를 택한 것일까?
이런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건 알고 있다. 지금부터 그가 상 대해야 할 강진호라는 남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가 지금까 지 이룩한 것만 보더라도 이 사실은 명확하다.
적어도 일국의 패자.
작게는 일국의 패자에서 크게는
동아시아의 패자 중 하나로 상대해 야 할 인물이다. 그런 이를 만나는 자리에서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다 는 것을 절대 금해야 할 일이었다.
마스터는 마음속에서 자꾸 고개를 드는 강진호에 대한 호승심을 꾹꾹 억눌렀다.
‘아직은 나도 괜찮은 건지도 모르 겠군.’
타인에게 호승심을 가진다는 것은 아직 가슴 안에 열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마스터가 손을 들어 눈가를 꾹꾹 눌렀다.
그러니 지금이 적기일지도 모른 다. 아직 그의 열정이 모두 바스라 지지 않았을 때, 아직은 무언가를 열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때 만나야 한다.
강진호라는 괴물을 말이다.
“마스터.”
그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 다. 마스터는 그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배제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가면으로 가려진 얼굴이라 굳이 무 표정을 씌울 필요는 없겠지만, 이건 그에게 있어서 의식과도 같은 일이
었다.
“이제 곧 한국에 도착합니다. 기 체가 조금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알겠네.”
“예. 그럼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이자 승무원 이 자리로 돌아갔다.
‘조금 비용을 줄일 필요도 있겠 어.’
몇 년에 한 번 타는 전용기를 유 지하기 위해서 인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큰 낭비다. 마스터는 이번 일 이 끝나는 대로 이 전용기의 처우를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가 도시를 벗어나 드넓은 바다에 접어드는 것을 본 마스터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기다리고 있겠지.’
강진호든 위긴스든.
그가 한국으로 온다는 사실을 전 했으니, 반드시 반응이 있을 것이다. 공항에 내려 그가 만나게 될 얼굴이 누구일지를 생각하며 마스터가 미묘 한 미소를 지었다.
‘잘 대처해야 할 걸세, 위긴스.’ 만일…….
한국과 총회가 그의 기준에 부합
하지 않는다면, 사소한 욕심과 욕망 때문에 동아시아의 질서를 무너뜨리 고 있는 것이라면, 마스터는 힘을 투입해 한국을 평정하는 것을 주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원탁의 방식이다.
다만, 만남이 반드시 거칠 필요는 없다.
마스터는 자신의 옆자리에 놓인 아이스박스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는데 말 이야.’
위긴스에 대한 적절한 선물을 생 각하다가 마지막으로 고른 것이 바
로 이 페일 에일이었다.
한국은 맥주가 맛이 없다고 했으 니, 오랜만에 본토의 맥주를 보면 좋아하겠지.
‘이 선물만큼의 값어치를 해줬으 면 좋겠는데 말이야.’
마스터가 고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