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23)
마존현세강림기-924화(922/2125)
마존현세강림기 38권 (5화)
1장 마중하다 (5)
‘쓸데없는 짓을.’
박학기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일이 꼬였을 때는 항상 이런 기 분이다. 아침에 먹은 음식이 배 속 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느낌. 속이 더부룩하고 메스껍다.
다행인 점 하나와 불행인 점 하
나가 있었다.
다행인 점은 이번 문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점이다. 해결 방법 도 단순하고, 연류된 이들도 명확하 다. 확실한 처리와 정확한 사후 관 리만 있다면 큰 문제로 비화될 확률 은 높지 않다.
결국 입단속만 시킬 수 있다면 문제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불행인 점은 이 일에 연류된 사 람이 너무 거물이라는 점이다.
최 연하가?
물론 최연하가 연류되었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녀는 연예인이
고, 일반인들에 비해서 발언의 파급 력이 어마어마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 박학기가 생각하는 거물은 최연하가 아니었다.
바로 마스터다.
‘개국 이래 처음 한국을 찾은 거 물이란 말이지.’
물론 드러난 세계에서는 더한 거 물들도 방한한 적이 많다. 미국의 대통령들조차 심심하면 들르는 곳이 한국이니까. 하지만 숨겨진 세상의 거물이 이 나라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매뉴얼로만 존재하던 모든
대웅 체계가 몇 십 년 만에 빛을 보고 있다.
문제는 이게 작성된 지가 워낙 오래된 매뉴얼이라 실정에 전혀 맞 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지금 모든 대응은 거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것만 해도 환장할 일인데…….
마스터가 어디 보통 사람인가.
차라리 EU의 수장이 방문하는 게 낫다. EU가 공식적인 수장이 존재 하지 않는 곳이라고는 하나, 대표 격의 인물은 있지 않은가.
그런 이가 방문하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할 것이다.
그쪽은 적어도 미디어나 세상의 눈치는 보는 편이니까.
하지만 무인계는 그런 게 없다.
이들은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이 다. 드러나지 않았기에 위험하고, 드 러나지 않았기에 막무가내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래도 일단은 여론 과 체면을 생각하는 이들과는 달리 이들은 바로 총과 칼을 들이댄다.
야만인.
그래, 그 말이 적당하다.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야만인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야만인이라 지
칭되는 이들이 힘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악으로 움직이는 것에 반해, 이들은 거대한 힘을 가진 야만인들 이었다.
이들과 척을 진다는 것은 드러난 세상의 누군가와 척을 지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하다.
‘그러니 절대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돼.’
박학기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였다.
이번 마스터의 방문을 문제없이 마치는 일. 총회의 인간들은 통제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다른 곳에서만큼은 절대 일을 벌이 지 않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시작부터 지금 크게 틀어진 것이다.
‘빌어먹을, 그 나이에 여자를 밝 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쓸데없는 짓을 저질러서는.’
절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속으로야 무슨 말을 못하 겠는가. 안 보이는 데서는 나라님도 욕하는 법인데.
그만큼이나 박학기가 느끼는 황당 함이 컸다.
겨우 주변과 완벽하게 격리를 했
는데, 왜 굳이 최연하를 불러들여서 함께 검색대를 통과한단 말인가.
첫 번째로는 마스터의 동선에서 최연하를 치우지 못한 요원들의 문 제였다. 사실을 보고받은 뒤, 부하 요원들의 정강이를 모조리 박살 내 놨지만,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를 않 는다.
이게 어떤 일이라고 이따위로 처 리한단 말인가.
‘후우, 담배 땡기네.’
박학기가 주머니 속에 든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안 될 말.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공항에서 담 배를 피울 수는 없다. 그리고 흡연 실은 이곳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 져 있다. 바로 앞에 놓쳐서는 안 될 VIP를 놔두고 자리를 비운다는 것 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간만에 일 같은 일이 들어왔는데 말이야.’
무인계는 사실 국가에서도 특별히 관리하는 대상이다.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 하려 하지는 않는다. 무인계의 인간 들은 통제나 관리를 극단적으로 혐 오한다. 이건 단순히 한국의 무인계
에만 통용되는 사항이 아니다.
저 강한 미국이나 유럽조차 무인 계를 통제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인계에 대한 통제가 먹히 는 곳은 무인계가 극단적으로 약한 독재국가들뿐이다 .
그런데 한국이 무슨 수로 그들을 통제하겠는가.
하지만 나라 안에서 그들이 마음 대로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적절한 조율과 협상. 그게 박 학기가 맡고 있는 일이었다.
“부장님.”
“음?”
“VIP가 라운지로 이동하고 있습 니다.”
“알았어. 수행하지.”
“예!”
바로 달려가는 부하 요원을 보며 박학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문제없이 끝내야 해.’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만, 지금부터라도 문제의 소지를 제 거해야 한다.
이 일은 박학기의 커리어에 터닝 포인트가 될 확률이 높았다.
박학기는 국정원 소속이지만 국정
원 소속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정원에 지 원해서 합격했고, 국정원 소속이라 말하고 다니지만, 그는 사실 국정원 소속이라 말하기에는 애매한 처지였 다.
대외적으로는 국정원 소속이긴 하 지만, 그가 속한 곳은 일반적인 국 정원 소속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한 다.
내부적으로는 간첩 및 스파이 관 리, 그리고 국가 전복 세력들을 조 사하는 역할을 맡고, 외부적으로는 적국에 대한 정보를 관리하는 국정
원과는 다르게 그가 속한 부서는 오 로지 국내와 국외에 존재하는 무인 계에 대한 관리만을 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국정원 내에서 도 비밀스러운 존재다. 같은 국정원 요원들조차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좋게 말하면 은밀하 고, 나쁘게 말하면 활동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최근까지 그의 부서는 유명무실하 기 짝이 없었으니까.
한국의 무인들은 큰 문제를 일으 키지 않는다. 단체로 몰려다니며 전 쟁을 치르는 중국이나, 스스로 세력
을 공고히 하려 야쿠자나 정치인마 저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일본에 비한다면 한국의 무인계는 차라리 순진한 편이었다.
게다가 강진호 이전의 무인계의 지배자였던 이중걸은 정권에 뒷돈을 대면서 그들과 척을 지지 않았다. 그러니 딱히 경계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강진호가 등장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강진호가 이중걸을 무너뜨리고 한 국 무인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면 서 정부의 경계심이 확 치솟았다.
강진호는 이중걸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과격하고 잔인했다. 그런 이에 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쪽이 더 이 상하다.
정부는 잊혀진 조직을 다시 정비 하며 강진호에 대한 감시에 만전을 기울였다.
그 와중에 중국의 홍왕과 전쟁이 벌어졌고, 이제는 유럽 원탁의 마스 터마저 한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무인계의 변방이었던 한국이 단숨 에 무인계의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 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강진호는?”
“라운지에 있습니다.”
“ O ”
박학기가 침음을 홀렸다.
‘라운지라……
이곳을 벗어나면 바로 VIP 라운 지다. 이미 강진호가 그곳에 와 있 다면, 라운지에서 마스터와 강진호 가 서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박학기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 했다.
‘어마어마한 광경이로군.’
한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유럽을 지배해 온 유럽의 마스터.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고착화되
어 있던 동아시아에 뜬금없이 나타 나 단 일 년 만에 세력 판도를 바 꾸어 버린 신성.
이 두 사람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이거지.’
박학기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동안 그가 속한 부서는 심각할 정도로 천대를 받았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월급이나 받아가는 잉여 조직이라는 멸시에 속으로 피눈물을 삼킨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강진호의 등장으로 그들의 조직이
더없이 중요한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일을 잘 처리한다면 그들의 중요성은 더 올라갈 것이고, 받는 대우 자체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일은 완벽 하게 처리해야 한다.
“주변 통제는?”
“완벽하게 했습니다.”
“똑바로 확인해라.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니 대가리에 총알구멍을 내 버릴 테니까.”
“다, 다시 한 번 확인시키겠습니 다.”
“움직여, 새끼야!”
“예!”
뛰쳐나가는 부하 요원을 보며 박 학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똘똘한 놈들로 충원을 좀 받아야겠어.’
조직 자체가 한직으로 밀리다 보 니 제대로 된 신입이 들어오지 않았 다. 하지만 이제 정부에서 밀어주는 만큼 우수한 능력을 갖춘 신입을 받 을 수 있을 것이다.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좋은 일만 남았지만, 박학기는 이 좋은 기분을 즐길 수 없었다. 되레 아까부터 자
꾸 입술이 타고 마른침만 넘어간다.
강진호를 직접 대면한다는 사실이 그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동안 영상이나 사진은 수도 없 이 보고, 먼 거리에서 지켜본 적도 있지만, 이번만큼 근거리에서 강진 호를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동아시아의 마왕이라 불리기 시작 한 그를 직접 대면한다는 것은 박학 기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물론 그는 자신 따위에겐 관심도 가지지 않겠 지만 말이다.
강진호와 마스터의 만남.
이건 더없이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다.
‘저 문만 지나면……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박학기의 마음에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앞에서 먼저 걸어가는 마스터 일행, 그리고 그 뒤에…….
‘불순물.’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있 다.
“잠시.”
박학기가 앞으로 나서 최연하들을 불렀다.
“왜요, 또?”
“문을 통과하게 되면 주변을 보지 말고 바로 밖으로 나가십시오. 문 앞에 우리 요원들이 있으니 에스코 트할 겁니다.”
“……주변을 보지 말라구요?”
“당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보지 않는 것을 추천 합니다. 그리고……
박학기가 살짝 이를 드러내며 말 했다.
“연기자니 잘할 수 있겠죠. 엑스 트라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 냥 지나가십시오. 라운지에서 이루
어질 만남에 어떤 방해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진짜 별걸 다 시키네.”
최연하가 미간에 짜증을 잔뜩 담 고는 말했다.
“그런데 나도 만날 사람이 있거든 요?”
“누굴 만나든지 그건 내 알 바 아 닙니다. 그러니 일단은 라운지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경고하는데, 나가서 만날 이에게 안에서 이상한 일을 겪었다는 투의 불만조차 언급 하지 마십시오. 명심하세요, 최연하 씨. 우리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아, 알았어요. 나는 벙어리고, 나 는 장님이니까!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었고, 말도 못해요. 됐죠?”
“좋습니다.”
박학기의 허락이 떨어지자 최연하 가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이럴 거면 같이 가게 만들지나 말지.’
속이 터지는 일이지만 어쩌겠는 가. 저 인간이 말하는 게 단순한 협 박 같지는 않다.
국가라는 말을 저리 쉽게 입에 담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그때, 문이 열렸다.
박학기의 눈이 커졌다.
‘강진호!’
보인다.
열린 문 뒤로 두 남자가 서 있었 다. 그중 한 남자는 분명히 강진호 다. 그 강진호의 앞모습과 마스터의 중후한 뒷모습이 겹쳐지고 있었다.
‘이, 이 역사적인 순간에 내 가……
그때 였다.
저벅저벅.
뒤쪽에서 얌전히 따르던 최연하가
어깨를 쭉 펴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이 미친!’
그만큼이나 방해하지 말라고 했건 만!
마스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저들을 방치한 게 실수였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박학기가 뛰쳐나가 최연하를 잡아 끌려는 순간!
저벅.
강진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강진호의 행동은 박학기의 발을 땅에 붙여 버렸다. 그 압도적
인 존재감 앞에서 박학기는 감히 무 엇도 시도할 수 없었다.
그런 후에…….
“읍읍읍!”
최연하가 자신은 입이 막혀서 아 무 말을 하지 못한다는 시늉을 했 다.
뭔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최연하를 보던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최연하와 눈빛을 살짝 교환한 강진 호의 고개가 삐딱하게 옆으로 돌아 간다.
그의 눈이 박학기에게 꽂혔다.
가라앉은 강진호의 눈을 보는 순 간, 박학기는 직감했다.
엿 됐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잘 모 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 그는 확실하게 엿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