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24)
마존현세강림기-925화(923/2125)
마존현세강림기 38권 (6화)
2장 증언하다 (1)
시선을 빼앗긴다는 말이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척이나 강렬한 기호가 작용했을 때, 사람은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에서 눈 을 떼지 못한다.
지금 마스터가 딱 그런 상황이었 다.
알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 그 뒤에 강진호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복도에 접어들면서부터 느껴지는 이 강렬한 존재감의 주인이 누구인 지는 굳이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가 아는 한, 이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그의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 었으니까.
‘하지만 상상 이상이로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 차 쉽지 않다.
마스터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
은 이 압력 속에 적의가 조금도 보 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숨을 쉬면서 공기를 내뿜 듯. 그저 자연스레 존재하며 내뿜는 기운일 뿐이다. 그런데 그 흘러나오 는 압력만으로도 마스터는 몸을 돌 리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흐려진다.
시야가 흐려지고 복도가 붉게 물 들어간다.
‘대체 뭐가 있다는 건가.’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현 실이 아니다. 그의 뇌가 만들어내고 있는 환상이었다. 그 환상이 지금
지옥으로 화하고 있었다.
문 너머에 있는 자를 만난다는 것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일 한 위험을 가진다는 사실을 그의 뇌 가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여기까지다.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마 스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 렸을 것이다.
원탁이라는 거대한 단체를 이끌어 가는 이가 가져야 할 소양은 위험과 위기를 온몸으로 돌파하는 과감성과 호전성이 아니다. 돌다리조차 두들
겨 보고 지날 줄 아는 신중함이다.
그 신중함이 말하고 있다. 돌아가라고.
저 위험한 무언가와 조우하는 것 은 너에게도 심각한 리스크를 가져 올 거라고 말이다.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고민 도 하지 않지.’
마스터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 다.
안타깝지만 그에게는 퇴로가 존재 하지 않았다. 이곳까지 온 이상, 공 항에서 되돌아간다는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다. 세상이 그를 비웃을 것
이고, 원탁에서의 입지도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 것이다.
기껏 직권을 사용해서 한 일이 머나먼 타국의 공항을 구경하는 일 이었다?
무엇으로도 이해받을 수 있는 사 안이 아니다.
마스터가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 다.
다행히 그의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지금 그가 동요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이해 못하겠지.’
다른 이들은 이 압력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이건 느낄 수 있는 이들에게만 작용하는 힘이다. 아마 지금 이 압 력을 내뿜고 있는 강진호 자신도 스 스로 누군가를 압박하고 있다는 생 각은 전혀 하지 않겠지.
마스터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무래도 안일했던 것 같군.’ 강진호가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충분히 짐작했다.
동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 인한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들과 대등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한 무인들이 이 좁은 접경을 두 고 운집해 있는 곳은 동아시아가 유 일하다.
그런 곳을 뒤흔든 이가 바로 강 진호였다.
강하지 않을 수 없다. 강할 수밖 에 없다.
하지만 그 강함이 지금 마스터의 예상을 웃돌고 있었다.
‘자, 마귀가 나올까, 아니면 괴물 이 나올까?’
등골이 오싹오싹하다.
마스터는 지금 더없는 두려움과
홍분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게 대체 얼 마 만이던가.’
비행기를 타고 오며 느낀 나른함 이 단숨에 날아가는 것 같다.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그의 신경이 전방으로 집중되었 다. 등 뒤에서 뭔가 속삭이는 소리 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 말은 마 스터의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모든 신경이 문 너머를 쫓 는다.
불길하고, 더없이 음울한…….
악마의 화신이라 부르기에 너무도
적절한 그 기운을 말이다.
문이 열린다.
살짝 어둑한 복도가 끝나자 수행 원들이 문을 열었다. 밝은 인공의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이러니한 일이군.’
이 악마 같은 기운을 내뿜는 자 가 더없이 밝은 곳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저자가 있어야 할 곳은 18층 지옥의 밑바닥이 아 니던가.
그 기묘한 느낌과 함께 마스터가 라운지 안으로 들어섰다.
마스터의 시선이 라운지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남자에게로 향했 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남 자 중 한쪽으로 향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낯선 곳.
낯선 환경.
그런 곳에서 사람은 보통 익숙한 것을 먼저 찾기 마련이다. 자신이 익숙한 곳에서는 낯선 것이 먼저 눈 에 들어오지만, 낯설다고 느끼는 곳 에서는 반대로 익숙한 것을 찾는다.
해외를 나가게 되면 자국의 물건 이나 자국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스터에게 익숙한 것은 우측에 서 있는 위긴스였다.
변하지 않은 얼굴, 그리고 변하지 않은 기운.
풍겨오는 마나의 향기가 더없이 친숙함에도 마스터의 시선은 그에게 로 향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향 한 곳은 위긴스의 옆에 서 있는 한 동양인이 었다.
뭐라 해야 할까.
겉모습은 딱히 인상적이지 않다.
마스터가 가지고 있는 스탠다드한 동양인의 모습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다. 팔이 여섯 개가 달려 있다 든가, 머리가 세 개인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겉모습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보인다.
아니, 느껴진다.
저 사내의 안에 비할 바 없는 무 언가가 약동하고 있다. 더없이 어둡 고, 파괴적이고, 그리고 폭력적인!
마치 인간의 육체 안에 인간이 품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는 느낌이었다.
숨이 막힌다.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지만, 지금
마스터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자각을 할 정신조차 없었다.
마치 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다.
압도적인 힘.
압도적인 악.
그 힘에 전율하는 것 말고는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위긴스.’
마스터는 위긴스가 이 한국에서 희망을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 니다. 마스터가 이 한국에서 본 것 은 거대한 악이었다.
마왕이라 불러야 마땅할 자.
그런 자가 이 작은 나라에 숨 쉬 고 있던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대체 어찌…….
그때 였다.
“읍읍읍!”
등 뒤에서 들려온 우스꽝스러운 목소리가 마스터의 귀를 파고들었 다.
‘ 아!’
그제야 마스터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던
긴장감이 일순 사라지는 기분이다.
강진호의 표정이 변한다.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일순 황 당함이 어리더니, 이내 다시 무표정 을 되찾는다.
그제야 마스터는 알 수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았어.’
문이 열리고 마스터가 이 안으로 들어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강진 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마스터에게 로 향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쫓 은 것은 그의 뒤에 있는 작은 동양 의 여인이었다.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한 발 앞
으로 나선다.
그 아무것도 아닌 동작에 반응하 여 몸이 움찔한다. 마스터는 뒤로 몸을 던지려 하는 육체를 억제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 했다.
저벅저벅.
두어 걸음 앞으로 나온 강진호가 마스터의 뒤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다.
“왜 그래요?”
“읍! 읍!”
“아니……
최연하가 샐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상황을 이해 못한 강진호가 고개 를 갸웃하자, 한은솔이 쪼르르 앞으 로 나와 강진호에게 뭔가를 속삭인 다. 그러자 강진호의 시선이 최연하 의 뒤에 있는 박학기에게 꽂혔다.
박학기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 었다.
이 상황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하 겠는가.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가 눈치 가 없는 이였다면 이런 위치에 있지 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감히 이 중 요한 순간에 정부의 대표로 이 자리
에 동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최연하와 강진호가 친분이 있고, 지금 모종의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단순한 연예인 나부랭이라고 생각 한 여자가 강진호의 지인이다. 그것 도 강진호가 직접 마중을 나올 정도 의 관계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백지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오늘의 일을 성공 시키려 했다. 그런데 가장 큰 실수
를 저지른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어 찌 받아들이란 말인가.
“어, 그게……
차라리 입을 닫고 있는 게 나았 을 것이다.
하지만 박학기는 이 고요함을 버 틸 수 없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호 전시켜 보고 싶었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 다.
“ 정부?”
강진호가 묻는다.
그 물음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박학기가 격하게 고
개를 끄덕였다.
강진호를 상대함에 있어서 고갯짓 으로 대답을 한다는 게 얼마나 무례 한 일인가를 알고 있음에도, 본능적 으로 나온 동작이었다.
“흠.”
강진호가 대충 사정을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박학기 는 강진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 졌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비상한 눈치와 VIP들에 대한 관 찰이 필수인 그의 직업적 특성이 만 들어낸 포착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모르고 싶었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아무것도 보 이지 않았다면 이런 기분은 아닐 것 이다. 저 라운지의 전면 유리창이 방탄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박학기는 유리를 뚫고 밖으 로 뛰어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지금 그의 상황과 기분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따로 이야기할 일이 있겠지.” 강진호가 박학기에게서 시선을 뗐 다. 그러고는 최연하를 돌아본다.
“온다고 고생했어요.”
“읍?”
“……말해도 돼요.”
“흐웅?”
최연하가 고개를 돌려 박학기를 쳐다본다.
눈으로 ‘말해도 된다는데?’라는 의미를 전하고 있었다. 박학기는 기 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부러질 기세다.
“하, 벙어리는 끝났나 보네. 그런 데 나…… 장님이라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괜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오느라 고생했어요.”
“네. 딱히 쉽지는 않은 길이었죠.
그런데 뭐, 괜찮아요.”
“네?”
“얼굴 보니 피로가 풀리네요. 역
시.”
박학기는 강진호의 얼굴에 어색함 이 감도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러면서도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 지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엿 됐다.’
이걸로 끝이다.
최연하와 강진호가 어떤 관계인지 를 이 이상 확실하게 알 방법은 없 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이 사태를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조금 전부터 마스터가 아무것도 하 지 못하고 서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 리지 못하고 말이다.
“가요. 차 가지고 왔어요.”
“네.”
최연하가 고개를 돌려 한은솔을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진호 씨 차 2인승이 라……. 4인승이었으면 너도 데리고 갔을 텐데, 어쩔 수 없지. 너는 회
사 차 타고 들어가. 내일 연락할게.”
“아, 네. 그럼……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른 차 타고 와서 탈 수
“그럼 간다, 은솔아.”
최연하가 강진호의 팔을 잡고는 쭉 끌었다. 강진호가 아연한 얼굴로 한은솔을 보며 질질 끌려 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한은 솔이 조용히 뇌까렸다.
“말을 말든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