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34)
마존현세강림기-935화(933/2125)
마존현세강림기 38권 (16화)
4장 종언하다 (1)
“마스터답지 않으십니다.” 무례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아니,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 다. 하지만 그 말에도 화를 내지 않 은 이유는, 그가 비할 바 없이 관대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와 싸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얻는 것 없이 잃는 것만 존재하는 싸움입니다.”
“내가 질 것 같은가?”
“마스터께서 이긴다고 해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렇군.”
마스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원탁의 미래가 밝겠어.”
“••••••예‘?”
“나보다 옳은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찌 원탁 의 미래가 밝지 않겠느냐, 이 말일
세.”
차 안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자신이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걸 인정하는 말 이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월권에 대한 지적이었다.
마스터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 쉬었다.
‘옹졸하군.’
수행원이라고 해서 발언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발언 을 하고 모두의 의견을 고려한다. 그게 원탁의 가치가 아니던가.
모두가 참여할 수 없기에 나이트
라는 대표를 따로 만들기는 했지만, 원탁의 기본 원칙은 누구에게나 열 려 있는 공간이다. 설사 그게 이상 론이라 할지라도.
그 이상론을 마스터조차 관철하지 않으면 누가 관철하겠는가.
그럼에도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은 아픈 곳을 찔린 것에 대한 반발이었 다.
얻을 것 없는 싸움.
마스터는 그 사실에 공감했다. 지 금 이 승부가 어떻게 나더라도 한반 도의 정세에 딱히 영향을 끼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마스터가 강진호
를 죽이는 결과만이 판세를 뒤바꿀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할까?
어렵다.
설사 마스터가 강진호를 압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는 위긴 스가 있다. 위긴스가 마음먹는다면 승부에서 강진호를 살리는 것 정도 는 어렵지 않다.
이곳은 적지이고, 그의 수행원들 은 위긴스를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나약하다.
그럼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마스터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
었다.
‘이득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지.’ 어이없게도 그게 사실이었다. 원탁의 마스터라는 자리에 오른 이후로 그는 단 한 번도 세상을 계 산해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도 이득과 손해가 나뉜 다. 그가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따 라서도 세상이 뒤흔들린다.
그런데 어찌 계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강진호와 승부를 논하는 순간만은 마스터는 계산을 잊었다. 이 승부에서 누가 이기고 지느냐에
따라 어떤 이득과 손해가 발생하는 가를 셈하지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강진호의 도발이 마스터를 자극해 서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꼬인 상황을 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이것이라 생각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유를 가져다 대자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되 지 않는다는 것을 마스터는 알고 있 었다.
결국 그의 내면에 자리한 진짜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그러고 싶었다.
그는 너무도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다.
마스터라는 지위는 그에게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중립을 강요한다. 그가 마스터가 되는 순간, 그 이전 까지 존재하던 열정 넘치는 인간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기계적인 이성으로 판 단하고, 냉철하게 고민해야 하는 마 스터뿐이다.
한 번쯤은 벗어나 보고 싶었다.
그런 지위가 주는 갑갑함에서 말 이다.
선택의 당위는 찾아낼 수 있지만, 선택의 시점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 다.
그 한 번의 일탈쯤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일탈이 벌어진 곳이 하필 지금이고, 요동치 는 한반도라는 점은 마스터를 침묵 하게 만들었다.
어째서였을까?
그 이유도 사실 알고 있다.
위긴스와 같겠지.
강진호에게는 사람을 격동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아니
라, 무인을 격동시키는 무언가가 있 었다.
그는 파격적이다.
파격적일 정도로 무례하고, 파격 적일 정도로 즉흥적이다.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 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빛이 나는 거지.’
마스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곳에 작은 아이가 서 있다.
그가 마스터라고 불리기 전, 언젠 가는 원탁에 들고 말겠다는 꿈을 꾸 는 작은 아이였을 때의 모습이다.
그때, 그는 감히 마스터라는 직위 에 오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원탁에만 들 수 있어도 꿈을 이룬 것이라 믿던 시절이다.
그때의 마스터가 지금의 마스터를 보면 뭐라고 할까?
생각 이상으로 성공하고 위대해졌 다고 할까?
아닐 것이다.
그가 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 었다.
세상 모든 무인들이 그렇듯, 처음 마스터가 꿈꾼 자신의 미래는 지금 의 그보다 조금 더 거침없고, 조금
더 과격했다.
자신의 무위만으로 세상 모든 것 을 짓누르고, 세상의 정의를 지키는 영웅의 모습. 무가에서 태어난 아이 는 다들 그런 꿈을 꾸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꿈이라는 건 현실 앞 에서 깎여 나간다.
이룰 수 있는 것과 이룰 수 없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되고, 이룰 수 없 는 것을 허황되다 여기며 밀어내다 보면, 결국 꿈이라는 건 조금 작아 지게 된다.
그렇게 깎이고 깎여서 만들어진 게 지금의 마스터다.
그래서 후회하느냐고?
아니. 천만에.
마스터는 만족했다. 자신의 모습 에, 자신이 이룩한 것에.
조금 더 이루고, 조금 더 치열하 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낄지언정 지금 그의 모습에는 한 점 부끄러움 이 없었다.
강진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 다.
강진호가 자극한 것은 마스터의 호승심이 아니었다. 강진호가 자극 한 것은 마스터가 잃어버린 것이다.
살아가며 깎여 나가 버린 것들.
누구나 그러하다고 위안하고 있던 것들.
그렇지 않겠는가.
모두가 버리는 것들이라 그게 당 연하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잘려 나 간 상처가 쓰라릴 때도 있지만, 살 아가다 보면 이 정도 상처야 다들 안고 간다고…… 그리 믿었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이가.
꿈일 뿐이라고 생각해 온 과감성 과 파격성,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 같은 오만함 을 품은 이가 눈앞에서 그와 대화를
나눈다.
그건 신기함이 아니다.
차라리 서글픔이다.
마스터가 잃은 것이 강진호에게는 있었다. 그리 살다 보면 당연히 꺾 이고 무너져야 한다. 하지만 무너지 지 않은 이가 거기에 있었다.
그자는 단순히 무너지지 않은 것 을 넘어, 마스터조차 도달하지 못한 아성을 쌓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그의 모든 것이 부정당해 버렸는데.
위긴스는 동참하는 것을 택했다.
아직 미래가 있는 그는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위긴스 스스로 도 자신의 선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마스터는 이제 알 수 있 었다.
위긴스가 왜 강진호를 선택했는 지.
찾을 수 있으니까.
위긴스는 강진호에게 동참하고 그 와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서 깎여 나간 부분들을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거라 믿었을 것이다. 그리 고 더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럴 수 없다.
그는 이제 자신을 버릴 수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의 삶은 이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제 슬슬 마무리를 준비해야 할 시 간이다.
그런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평생을 걸쳐 만들어온 건물의 기 반 공사가 잘못되어 원하던 형태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무너뜨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겠는가? 그의 평 생은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럴 수 없다.
누구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마스터와 위긴스의 차이였 다.
위긴스는 자신의 눈으로 본 이상 을 자신의 발로 쫓을 수 있는 젊음 이 있다. 그를 젊은이라 말한다면 다른 이들은 이상하게 듣겠지만, 마 스터의 시점으로 볼 때 젊음이란 다 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이 들에게 주어지는 명칭이다.
그 기준으로 봤을 때, 위긴스는 충분히 젊은이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마스터는 다시 시작할 수 없다.
그게 지금 마스터를 더없이 불편
하게 하고 있었다.
동참할 수 없다. 다시 시작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확인이라도 해야 한다.
그가 가지 못한 길을 걸어온 이 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두 눈과 두 귀가 아니라 그의 몸으로, 그리 고 그의 무(武)로.
충동적이고 과격하지만, 더없이 확실한 방법으로 말이다.
“저는 이 사안을 원탁에 보고하겠 습니다, 마스터.”
“편할 대로.”
의자에 등을 기댄 마스터가 고개 를 살짝 젖혔다.
‘무겁구나.’
전신이 무겁다. 아니, 무겁다기보 다는 수많은 것들이 그의 팔다리를 잡고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고산지대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이 산소가 적은 환경에서 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알고 살아온 것들은 인식되지 않기 마련 이니까.
그들이 자신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은 산을 내려왔을 때다.
마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족쇄처럼 그를 묶어놓고 있는 수 많은 제약과 법칙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니까.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봐버린 것이다.
족쇄가 없는 사람을.
강진호 역시 고려하는 것들이 있 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족쇄나 제약이 아니 다. 풀어버릴 수 있는 족쇄는 장식 품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풀 수 없어야 족쇄이고, 벗어날 수
없어야 제약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진호는 한없이 자유롭다.
한없이.
“이해해 주십시오, 마스터. 저에게 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 의무.
그건 모두가 가지고 있지. 나조차 도 말이야.
하지만 때로는…..
마스터가 고개를 내려 앞을 바라 보았다. 차창 너머로 앞서가는 강진 호의 차가 보인다.
‘그대는 자유롭겠지.’
무인이 승부를 겨루겠다는 선택을 내렸다 해서 새파란 어린아이들이 따지고 드는 사태 같은 건…… 강진 호는 절대 겪지 않을 것이다.
그 행동 하나하나를 평가받고, 적 법했는지를 심사받는 과정 따위도 겪지 않을 것이다.
무인.
강진호는 그야말로 무인이었다.
스스로 이룬 무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 그 권리를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폭군.
아플 정도로 선명한 자유.
그 자유가 너무 눈부셔서 질투하
지 않을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는 무위도, 단기간에 쌓아 올린 그 어마어마한 업적조차 도 부럽지 않다. 하지만 저 자유만 큼은 너무도 눈부셔서 질투하지 않 을 도리가 없었다.
“마음대로 하게나, 마음대로.”
그러니 마스터도 조금은 누려도 되지 않을까?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굴 수 있는 작은 자유를 말이다. 적 어도 지금 한순간만이라도.
“마음대로.”
마스터의 시선이 차 뒷좌석에 앉
아 있는 강진호를 쫓는다.
이 한 번의 일탈로는 그의 자유 를 흉내조차 내지 못하겠지만, 적어 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강진호와 동 등한 위치에서 마주 보고 싶었다.
마스터의 평생에 없었고, 앞으로 도 없을 멍청한 선택일지도 모르지 만…….
‘그 멍청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자유겠지.’
깊은 물속에서 유영하던 마스터가 처음으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너무도 눈부시군.’
너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