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41)
마존현세강림기-942화(940/2125)
마존현세강림기 38권 (23화)
5장 호응하다 (3)
마스터가 없는 원탁.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다.
마스터를 죽이겠다는 뜻.
마스터와 같은 상위 마법사에게 결박이나 구금은 통하지 않는다. 그 를 완벽히 억제하는 방법은 오로지
숨통을 끊어놓는 것뿐이다.
마스터는 이 말이 결코 협박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는 수행원들이 없다.
본디 의식을 잃은 마스터의 곁을 지켜야 하는 이들은 그가 데리고 온 수행원이어야 한다.
그들이 모두 배재되고 위긴스가 이 자리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는 너 무도 명확했다.
위긴스가 그러했듯, 마스터도 마 음만 먹는다면 장거리 텔레포트가 가능하다. 수행원들을 데리고 가지 않고, 제 몸만 빠져나가는 방식이라
면 그를 잡아둘 방법이 없다.
같은 마법사인 위긴스가 아니라면 말이다.
위긴스는 마스터가 텔레포트를 시 전하는 틈을 타 그의 마법에 간섭, 취소할 수 있다.
이곳에서 오로지 위긴스만이 마스 터를 잡아둘 수 있는 것이다.
“순진한 소리를 하는군.”
마스터가 턱을 긁었다.
“자네 말일세. 내가 이곳에서는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영국으로 돌아 가 마음을 바꾸면 어쩔 텐가?”
“말씀하셨다시피 사람의 마음은
들여다볼 수 없는 법이지요.”
위긴스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행적을 돌아볼 수는 있습니다. 결국 현재와 미래는 과거에서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 까? 저는 마스터께서 그럴 분이 아 니라고 믿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온전히 믿겠다는 건가?”
“마스터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서슴없이 믿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마스터가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운 시선이 위긴스에게로 향 한다. 장성한 자식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뿌듯함이 담긴 시선. 그 부드 러운 시선과 함께 마스터가 입을 열 었다.
“거짓말이 능숙해졌구나, 위긴스.”
“하지만 아직은 조금 어설퍼. 결 국 거짓말은 상황과 맞아 떨어져야 신빙성을 띌 수 있는 법이지. 그 말 은 지금의 상황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군.”
“마스터……
“완벽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설사 내가 손을 떼겠다고 말해도, 죽일 셈이겠지.”
위긴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스터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이에게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구차할 뿐이다.
“이게 강진호의 생각인가?”
“아닙니다.”
위긴스가 선을 그었다.
“로드는 이미 마스터에게 흥미를 잃었습니다.”
“ 호오.”
“승부가 난 순간 마스터에 대한
처리는 제게 일임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로드께서는 저를 나무라지 않으실 겁니다.”
“그게 자네가 얻은 자유인가?”
“이건 자유가 아닙니다.” 단호하다.
“책임이지요.”
“책임.”
“로드께서는 제 행동을 제약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제가 한 행동을 돌아보고 그게 올바른 행동이었는지 를 일일이 체크하지 않습니다. 자신 이 믿었고, 자신이 밀어주었으니 그 모든 결정을 온당히 받아들인다. 그
게 로드의 방식입니다.”
“그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아니요. 그건 오히려 책임감이 높은 겁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결정 에서 나오는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로드 자신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군.”
위긴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있다.
원탁은 모든 것을 분담한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대한 매뉴얼이 완 벽하게 구축되어 있고, 그 매뉴얼을 나이트와 마스터가 검토하고 각각의 의견으로 재해석한다.
그리고 모두의 의견을 모아 결정 을 내린다.
“원탁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홈.”
“완벽한 시스템으로 완벽한 결정 을 내린다. 그 말은 다시 말하자면 시스템을 따르는 것만으로 모든 책 임을 면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잘못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그로 인해 희생되는 이가 있더라도 원탁 은 그저 시스템을 운운할 뿐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 지 않습니다, 마스터.”
“그럼 자네는?”
마스터의 눈빛이 조금 더 날카로 워졌다.
“이 나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마저 지겠다는 건가?”
“예. 그럴 겁니다.”
“착각하는군.”
마스터가 살짝 으르렁대듯 말했 다.
“인간이 질 수 있는 책임에는 한 계가 있는 법이야. 자네의 선택으로 원탁이 이곳을 침공하고, 그 침공의 대가로 수많은 목숨이 죽어나간다면 자네는 어떻게 그 책임을 질 건가?”
“막아낼 겁니다.”
“ 전쟁을?”
“아니요. 원탁을!”
위긴스의 눈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저는 이제 압니다. 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분쟁을 억제하는 것은 규율이 아니라 힘입니다. 원탁의 침 공은 분명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걸 두려워해 전쟁을 피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벼랑 끝에 몰리게 될 겁니다.”
“이보게, 위긴스.”
“마스터, 저는 제게 주어진 결정 을 피하지 않을 겁니다. 그에 따른
책임도 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는 전쟁마저 피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저는!”
위긴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피하지 않습니다.”
마스터의 눈이 흔들렸다.
‘아니구나.’
그가 알던 위긴스가 아니다. 이 사람은 위긴스지만 과거의 위긴스와 는 달랐다. 강진호가 그를 변화시킨 건지, 한국이라는 환경이 그를 변화 시킨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위 긴스는 과거와는 달라졌다.
성장?
모르겠다.
이것은 변화다. 하지만 이 변화가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는 마스터로서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 에 성장이라는 말은 붙일 수 없다. 성장이란 변화가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갈 때만 붙일 수 있는 말이니 까.
마스터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 다.
“그렇군. 그럼 자네가 내 사신이 라는 말이로군.”
“그래. 자네란 말이지.”
마스터가 가볍게 웃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는 지금 위긴 스를 감당할 수 없다. 평소의 그라 면 위긴스 하나를 처리하는 건 별일 도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의 몸 안에 담긴 마나는 산산 이 흩어졌다. 강진호가 전투를 통해 그의 몸에 때려 박은 마기는 여전히 그의 육체에 잔존하고 있었다.
이 마기를 밀어내고 다시 원래의 힘을 되찾으려면 최소한 며칠의 시 간이 필요하다. 그전까지 마스터는 평범한 노인에 불과하다.
위긴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 만 먹으면 마스터의 목을 꺾어버릴 수 있다.
“이보게, 위긴스.”
“예, 마스터.”
“나는 자네가 원하는 답을 줄 수 가 없네.”
“자네가 원하는 답이 뭔지 모르겠 거든.”
“ 그저••••••
위긴스가 입을 닫았다.
그가 말을 해서는 의미가 없다. 마스터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버렸지.”
“예?”
“가진 지위, 나라, 그리고 자네를 따르는 이들까지. 모두 버리고 이곳 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네. 그 결 과가……. 인정하지. 겉으로 보기에 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군. 자네 는 어쩌면 옳은 선택을 한 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자네같이 될 수는 없어. 버리는 것은 강함이지. 손에 움켜쥔 것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니까. 하지만 움켜잡는
것 역시 강함일세. 나는 내게 주어 진 것들을 버리지 않네. 그 모든 것 들을 안아들고 나아갈 뿐이야.”
“마스터……
“내가 어찌할 거냐고 물었는가?”
“예.”
“너는 그 대답을 들을 자격이 없 다.”
마스터가 허리를 폈다. 그 순간, 위긴스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바짝 몸을 밀어냈다.
소파 등받이가 더 이상 밀릴 수 없을 만큼 밀려나고서야 위긴스는 자신의 추태를 알아챘다.
‘아••••••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다. 하지 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마나를 사용할 수 없어 그저 나이든 노인에 불과한 마스터지만, 그 위엄은 조금 도 훼손되지 않았다.
선명한 눈으로 위긴스를 바라본 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나는 원탁의 마스터다. 너는 감 히 나와 협의를 나눌 자격이 없다, 나이트 위긴스. 아니, 총회의 위긴스 여.”
“……예, 마스터.”
“네 주인에게 나를 안내하라. 내
직접 그를 대면할 것이다.”
선명하게 뻗어 나오는 위엄.
그 위엄을 전신으로 느끼며 위긴 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마스터 와 강진호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위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로드와 자리 를 만들죠. 하지만 그러려면 내일까 지는 여기서 저와 기다리셔야 합니 다.”
“내일?”
마스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그도 총회의 회주이니만큼 바쁘겠지. 또한 할 일도 많겠지. 하 지만 나와의 마무리를 짓는 일은 지 금 그가 처리해야 할 어떤 일보다도 중요할 터. 그런데 내일까지 기다려 야 한다는 말인가?”
“……죄송합니다.”
“혹여 힘을 과도하게 써서 문제라 도 생긴 건가?”
과도하게 안 썼습니다.
그거 놀면서 한 겁니다.
할 말은 많지만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선약이 있으
셔서.”
“ 선약‘?”
“ 예.”
“누군지 물어도 되겠나?”
위긴스가 망설였다.
솔직하게 말을 하는 것과 대충 얼버무리는 것 중 어느 게 더 마스 터를 기분 나쁘게 할지를 고민해 본 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그게……
“응‘?”
“데이트가 있으셔서.”
할 말을 잃은 마스터가 위긴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위긴스는 슬쩍 고개를 숙여 마스터의 시선을 피했다.
“데이트?”
“••••••예.”
“혹시 그럼 저번에 그 처자?”
“예.”
“그래, 데이트라. 데이트……
마스터가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푸르고, 구름은 하얗다. 누가 봐도 데이트하 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천하의 내가 데이트 때문에 뒤로 밀리는군. 참 한국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군.”
“송구스럽……
“아니, 그런데 잠깐만.”
“예?”
“그 처자는 어려보이던데?”
위긴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자네의 로드가 육체적 나이야 얼 마 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실제로는 나보다 연상 아닌가? 그런데 그 어 린 처자와 데이트를 한다고?”
마스터의 얼굴을 본 위긴스는 어 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 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 에도 평정을 잃지 않았던 마스터의
얼굴을 깊은 분노와 짜증이 점령하 고 있었다.
“이런 도둑놈이……
그……. 뭐라고 할까?
아니, 진짜 화를 내고 있는 것 같 은데?
“끄응, 좋네. 하루 기다리지. 하지 만 반드시 내일은 그 강진호를 만나 야겠네. 알겠는가?”
“예, 마스터.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가보게.”
“ 예?”
“……나가보라고.”
“저 여기 있어야 합니다.”
마스터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 로 변했다. 그러고 보니 위긴스는 그를 감시하기 위해서 단 한순간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마나를 거의 쓸 수 없는 마스터지만, 그는 마스 터니까.
위긴스도 그를 혼자 둘 수는 없 을 것이다.
그럼 내일까지 위긴스와 이 호텔 방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
불편하다.
마스터와 위긴스의 관계가 미묘한 만큼 분위기도 미묘해졌다.
위긴스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체스라도 두시겠습니까?”
내일 반드시 이 사태에 대해 강 진호에게 따지겠다는 결심을 하는 마스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