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44)
마존현세강림기-945화(943/2125)
마존현세강림기 39권 (1화)
1장 협의하다 (1)
“그래도 어떻게, 오늘은 볼 수 있 는 모양이로군.”
마스터의 말에 위긴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성격이 조금 변하신 것 같은데.’ 그가 아는 마스터는 은은한 불만 과 비꼼을 말에 숨기는 사람이 아니
다. 제대로 불만을 표출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자신의 감 정을 숨기는 이가 마스터였다.
마스터가 변한 걸까?
아니겠지.
무슨 경험을 한다고 해도 사람이 단시간에 바뀌지는 않는다. 더구나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성격이 바뀔 확률은 거의 없다.
마스터가 지금 그를 조금 더 편 히 대하는 건, 성격이 아니라 관계 가 바뀌어서다.
나이트와 마스터는 서로 존중해야 하고, 서로 경계해야 하는 법이니까.
다시 말하자면.
‘이제 마스터는 더 이상 나를 나 이트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하나?
원탁과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위긴스에게는 항상 부담이었 다.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관계.
정상적으로는 그들과의 관계를 정 리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만, 절차를 밟는 시도조 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위긴스를 괴롭혔다.
하지만 지금 마스터는 그를 나이 트라는 직위에서 배제했다.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원탁과의 관 계를 끊어낸 것이다.
‘그저 시원할 줄 알았는데.’
부정할 수 없는 아쉬움과 섭섭함 이 밀려온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 다. 원탁은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 이었으니까. 수십 년 동안 인생을 바쳐온 원탁과 완전히 결별하는 일 이다. 담담할 수 있다면 사람이 아 니겠지.
“지금 오고 계십니다.”
“ 흐음.”
마스터가 볼을 긁었다.
“첫 단추를 잘못 뀄군. 자꾸 내가 기다리는 포지션이 된다는 말이지.”
“그런 걸로 기 싸움을 하실 분은 아닙니다. 약속이 이곳에서 잡혔으 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마스터가 홍차를 홀짝이고는 위긴 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위긴스.”
“예, 마스터.”
“이제 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 데.”
“예, 말씀하십시오.”
“한국에서의 생활은 괜찮은가?” 위긴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 질문은 지금까지 그가 마스터 에게 들었던 질문과는 그 궤를 달리 한다.
지금까지 마스터의 모든 질문은 결국 총회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보 기 위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질 문은 총회나 강진호가 아니라 위긴 스에게 그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딱히……. 음.”
위긴스가 머리를 긁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리 편
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문화가 다르다 보니 영 불편한 면도 좀 있 습니다.”
“그렇겠지.”
“게다가 저도 나이가 있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적응하는 일 이 영 쉽지가 않습니다.”
“내 앞에서 노인인 척하긴가?”
“저도 이제 손자가 있을 나이입니 다.”
“한창이지.”
위긴스가 쓴 웃음을 머금었다.
확실히 마스터의 입장에서 본다면 위긴스는 아직 젊다. 위긴스 스스로
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습니다. 엘레나 도 잘 적응하는 중이고.”
“그러고 보니 그녀도 따라왔었지. 어떤가? 엘레나와 자네가 원한다면 엘레나는 원탁에 복귀시켜 주도록 하겠네.”
“말씀은 감사합니다. 그 말 그대 로 전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는 그녀가 그걸 원할 것 같지는 않 군요.”
“……생각보다 총회가 괜찮은 곳 인 모양이군.”
“스케일적인 측면이라던가, 맡은
일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총회는 원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곳입니다. 하지만 총회에는 원탁에 없는 게 있죠.”
“그 이야기는 이제 됐네. 충분히 들었지.”
마스터가 턱수염을 쓸어 내렸다. 며칠 사이에 까슬하게 자라난 턱수 염이 그의 손끝을 간질였다.
“자네가 괜찮다면 그걸로 된 거 지.”
“송구합니다, 마스터.”
“아니, 아니.”
마스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보게, 위긴스.”
“예, 마스터.”
“솔직히 나는 여전히 원탁을 떠나 총회를 택한 자네를 이해할 수가 없 네. 자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나름의 당위에 대해 듣기도 했지 만……. 그래,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네.”
“마스터……
“아니, 비난하려는 게 아니네. 타 인의 선택이 반드시 이해되어야 하 는 것은 아니지. 내가 하지 않는 선 택을 타인이 했다고 그게 틀린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아네. 나이를
헛먹은 건 아니니까.”
마스터가 조금은 인자한 시선으로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존중. 그래, 존중이란 이런 거겠 지. 나는 자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지만 존중하네. 내가 알지 못하는,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거겠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가 빙그레 웃었다.
“어쩌면 나 역시 조금은 고집을 부리는 걸지도 모르지. 성장한 아이 는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법인데, 나는 자네가 가업을 이어주기를 바
랐거든.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그것 도 내려놓아야 하는데……. 보통의 부모는 그걸 하지 못하지. 그리고 나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 양이야.”
위긴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이.
그리고 가업.
이 말이 마스터가 위긴스를 어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 다.
그 무심하듯 던진 말이 위긴스를 아프게 한다.
마스터가 그에게 얼마나 많은 기
대를 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를 아꼈는지 어찌 모르겠는가.
“그런 표정 할 것 없네.”
“독립이라는 것은 하는 쪽 역시 힘겨운 일이니까. 하지만 결국 언젠 가는 이뤄져야 할 일이지. 옳다고 믿는 게 있다면 밀고 나가게. 뒤를 돌아볼수록 갈 수 있는 걸음 수는 줄어드는 법이니까.”
“예, 마스터.”
“그래, 그걸로 된 거야.”
위긴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와 마스터는 맞지 않다. 그는
마스터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마스터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 었다.
때로는 그의 기대가 과도한 부담 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위긴스는 마스터를 존경 했다. 그 존경심만큼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 다.
“자, 이제 그럼.”
마스터가 자신의 목을 주물렀다.
“내 목을 걸고 단판을 지어야 하 는 순간인가.”
위긴스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강진호의 기운이 느껴진 다. 마스터 역시 그 기운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라진 마나가 그의 감각마저 차단하지는 못할 테니까.
“조언 하나 부탁하지.”
“ 예?”
“자네의 로드는 말이 통하는 사람 일까?”
“ 물론••••••
위긴스가 입을 닫았다.
강진호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던 가?
대화는 되지. 대화는 정말 잘 이
뤄진다.
뭔가 이야기가 무척 잘 흘러갔다 싶은 순간에 갑자기 판을 잡고 뒤엎 어 버린 다음에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라 그렇지.
위긴스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자 마스터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 를 끄덕였다.
“됐네. 내가 생각한 그대로인 모 양이군.”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죄송 합니다.”
“아닐세. 이미 겪어봤는데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지. 그는 내가
알던 일반적인 독재자들과는 조금 달랐으니까.”
“……분명 다르긴 합니다만.”
위긴스가 고민에 빠졌다.
전혀 다른 과정을 가지고 동일한 결과에 도달하는 일을 과연 ‘다르 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과정이 조금 지난하고 복잡할 뿐, 결국 결과는 같지 않은가.
이건 생각해 볼 문제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생각의 시 간은 그리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강진호의 기가 바로 앞까지 도달했 다는 것을 파악한 위긴스가 문으로
향했다.
강진호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끝이 좋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극단적으로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능성 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 니까. 하지만 그 미약한 가능성에 비해 마스터의 끝이 좋지 않을 가능 성이 몇 십 배는 더 높다.
위긴스는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강진호는 협상이라는 것을 잘 모 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협상
이라는 것 자체를 그리 신뢰하지 않 는다.
기본적으로 협상이라는 것은 상대 에 대한 신뢰로 이루어진다. 일반적 인 사회에서의 협상과 협약, 그러니 까 계약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무인계의 협약은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에 대한 신뢰로만 이 루어지는 게 무인계의 협약이다. 그 리고 강진호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친인이라 생각되는 이가 아니라면 조금의 신뢰도 주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판단한다 면 결과는 너무 뻔하다.
‘적어도 내 손으로.’
이 협상이 틀어진다면 마스터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는 너무도 뻔 한 일이다.
그리고 강진호에게는 굳이 마스터 를 살려 보내야 할 이유가 없다.
명분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 강진호가 마스터를 초대한 것이 아 니라, 마스터가 다짜고짜 강진호를 찾아온 것이니까. 일국의 수장이 호 위대도 이끌지 않고 제 멋대로 잠재 적 적국으로 쳐들어와 도발을 해댔
다.
그 대가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들, 누가 강진호를 비난하겠는가.
대부분은 마스터의 무모함을 비웃 을 것이다. 길길이 날뛰는 것은 원 탁 하나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위긴스 는 여기서 마스터가 목숨을 잃는다 고 해서 과연 원탁이 한국에 적대적 으로 변할지조차 의문이었다.
원탁은 원래 그런 곳인데다가
“으 ”
강진호가 문 바로 앞까지 다가온
다.
위긴스는 설사 협상이 틀어지더라 도 마스터가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는 낮게 심호흡을 하고 문 을 열어젖혔다.
“어서 오십시오. 로……
문 앞에 서 있는 강진호를 본 위 긴스의 눈이 살짝 떨렸다.
‘응?’
안 그래도 미묘한 위화감이 있었 다.
강진호의 기운을 느끼기는 했다. 누가 봐도 명백한 강진호의 기운이
었다.
하지만 그 기운은 평소처럼 묵직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생명을 끊어야 할지도 모르는 곳, 그리고 앞으로의 원탁과 총회의 관계를 설정하는 자리다. 당 연히 강진호 역시 무거운 마음으로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운이 예상 보다 무겁지 않았다.
기운만으로 상대의 상태를 정확하 게 알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그러려니 했는데…….
강진호의 얼굴을 본 위긴스의 머 릿속이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이거 어쩌면?’
강진호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 져 있었다. 평소라면 이건 절대 좋 은 신호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그러짐은 평소의 일그러짐과는 달랐다.
실룩.
강진호의 입꼬리가 제멋대로 씰룩 인다.
웃음이 자꾸 터지는 걸 참으려다 보니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풀릴 수도 있겠는 데?’
그 순간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좋은 날이군. 그렇지, 위긴스?”
“아……. 아, 네! 로드!”
강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위긴스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러고는 양팔을 벌리며 마스터를 향해 다가 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자, 이제 이야기를 해보죠.”
평소 강진호에게서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리액션을 보며 위긴스가 주 먹을 움켜잡았다.
‘길이 열렸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강진호는 역대 최고로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런데 왜 저리 기분이 좋지?
위긴스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