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50)
마존현세강림기-951화(949/2125)
마존현세강림기 39권 (7화)
2장 진출하다 (2)
손목에 스치는 셔츠의 감각이 날 카롭다.
매일 입는 정장이지만, 오늘따라 어색한 느낌이 든다.
마스터가 고개를 살짝 젖혔다. 목 을 조이는 타이의 느낌도 오늘따라 갑갑하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그의 복장 은 지금보다는 꽤 널널했다. 타이를 완벽하게 조이느냐, 마지막 단추를 잠그느냐에 따라 슈트의 느낌은 완 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자유를 만끽했군.’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매일 이 정장을 입다 보니 답답 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 했다. 하지만 단 며칠 동안 앞섶의 단추를 푼 것만으로 평생 입어온 정 장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그리고 마스터는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가.
마스터가 손을 들어 얼굴을 주물 렀다.
단순히 며칠 동안 제대로 복장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이런 갑갑함 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느 낀 것은 복장의 편안함이 아니라 총 회와 한국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었 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마스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지 고 있다 해서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가
장 좋은 방법은 지금 스스로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그대로 인정하 는 것이다.
인정한다.
인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니 까.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눈을 다 시 뜨면 그는 원탁의 마스터로 돌아 갈 것이다. 완벽하게.
똑똑.
그때, 그의 귓가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이르군.’
아직 완벽하게 마인드 컨트롤을
끝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방해자 가 끼어든 이상 평정을 되찾는 것은 무리였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 일이 언 제나 완벽하게 돌아가지는 않는 법 이니까.
마스터가 낮게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수행원이 안으로 들 어왔다.
“마스터, 나이트들께서 모두 입장 하셨습니다.”
“흐음, 그렇군.”
마스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 다.
이렇게 모든 나이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나이트들은 각자의 국가를 이끌어 야 한다. 그들의 존재가치가 원탁의 유지와 운용에 있다고는 하나, 각국 에 산재해 있는 일들을 처리하는 것 도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원탁이 유지되 었는지 모르겠군.’
전화조차 없던 그 시대에 원탁은 어찌 유지가 되었을까?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마스터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과거의 나이 트들은 지금처럼 과도한 업무에 시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정 보량이 과도한 시대가 아니었으니 까.
“가지.”
“예, 마스터. 안내하겠습니다.” 수행원이 앞장을 선다.
방을 나와 이어져 있는, 고풍스럽 고 긴 복도를 보며 마스터가 가면을 살짝 밀어 올렸다.
‘거추장스럽군.’
장갑 너머로 닿는 가면이 어색하 고 차갑다.
마스터가 피식 웃었다.
우물 밖을 봐버린 개구리는 다시 는 우물로 돌아갈 수 없다. 호기심 에 우물 밖으로 뛰쳐나간 대가로 말 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마스터에게 있어 우물 밖을 본 대가는 이 타는 듯한 갈증일 것이 다.
복도 끝에 새하얗고 커다한 문이 보인다.
마스터가 살짝 심호흡을 했다. 내 부적으로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 른 이들에게 자신이 동요하고 있다 는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는 마스터.
원탁의 중심이다.
눈가에 드러나는 동요를 잠재운 마스터가 문을 열고 원탁 안으로 향 했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듯 고풍스러운 둥근 테이블에 나이 트들이 주르륵 앉아 있다.
‘과거의 모습이라……
마스터가 안으로 들어가며 슬쩍 입을 가렸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맺히는 비웃음을 가리기 위해서다.
얼마 전까지라면 마스터는 이 모 습을 전통을 지켜 나가는 모습이라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
는 원탁의 모습은 고리타분하기 짝 이 없다.
시대는 변한다. 세상은 바뀌어간 다.
그런데 과거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가짜. 적절하게 흉내를 낸 이미테 이션들.
이 시대에 만들어지는 물건이라면 훨씬 편의성을 고려할 수 있을 텐 데, 굳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과거 의 모습을 형상화한다는 게 새삼 우 습게 느껴진다.
저 원탁도.
그리고 그 원탁에 둘러 앉아 있 는 나이트들조차…… 모든 것이 부 자연스럽다.
“ 후우.”
낮게 심호흡을 한 마스터가 원탁 의 상석에 앉았다. 상석이라 해봐야 등 뒤에 조형물이 하나 있어 중심이 되어 보이는 자리에 불과했지만.
자리에 앉고 나자 형식적인 덕담 이 오고 갔다. 그가 조금 늦어서인 지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인사를 나눈 것 같았다.
“그럼 이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 다. 먼저 상정된 안건에 대해……
그나마 원탁이 마음에 드는 점은 일처리 자체는 실용적이라는 점이 다. 군더더기 없이 처리되어 가는 안건들을 보며 마스터가 고개를 끄 덕였다.
‘중요한 건 형식 같은 게 아니지.’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원탁 덕분에 세계는 좀 더 평화로워 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원탁 덕분 에 새로운 삶을 얻는 이들이 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면 오늘 상정된 안건들은 모 두 결정된 것으로 하겠습니다.”
“ O ”
丁그 •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트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이건 폐정을 해달라 는 뜻이 아니다.
“이제 내가 말할 차례 같군.”
“예, 마스터.”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마스터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 었다.
“먼저 사과를 하겠소.”
마스터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내 직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 독단으로 한국에 간 것은 과한 처사였소.”
“크흠.”
여기저기서 낮은 헛기침이 흘러나 왔다.
지적할 수도, 지적하지 않을 수도 없는 문제였다.
마스터가 어디를 가든 그건 마스 터의 권리다. 그의 행동을 강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원탁에서 가장 민감한 곳이라 여기는 한국으 로 향함에 있어서 다른 나이트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은 그들을 단 체로 무시하는 처사였다.
“마스터.”
그때, 나이트 르보가 입을 열었
다.
“말씀하시게나.”
“한국에 다녀오신 일이 어찌 되었 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은 정중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결코 정중하지 않았다. 아무리 마스터라 고 한들 원탁에 대한 보고의 의무에 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압박이었다.
그리고 마스터는 당연히 그 의무 를 받아들였다.
“안 그래도 지금부터 그 말을 하 려고 했소이다. 나는 직접 한국으로 갔소. 그리고 위긴스와 강진호를 만
나보았지.”
위긴스에서 살짝 흠칫한 이들의 반응이 강진호라는 말이 나오는 순 간 조금 더 고조된다.
마스터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4강진호라는 말에 민감하군.’ 하기야 왜 그렇지 않겠는가.
저들이 생각하는 강진호는 갑자기 동아시아에 나타나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강진호라는 개인이 어떤 사 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의도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마스터도 그를 직접 보기 전에는 그가 어떤 이인지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그의 존재가 가져오는 여파에만 집중했을 뿐이 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만.”
나이트 르보가 살짝 생각을 정리 하더니 눈을 빛냈다.
“지금 위긴스와 접촉하셨다 하셨 습니까?”
마스터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위긴스가 원탁을 버리고 간 지도 한참이 되었지만, 아직 나이트 르보
는 위긴스에 대한 호승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렇다네.”
“마스터, 위긴스는 배신자입니다.”
“물론 알고 있네. 하지만 배신자 라 하더라도 필요가 있다면 접촉해 야지. 그게 원탁이 추구하는 실용성 이 아닌가.”
“……일단은 알겠습니다.”
나이트 르보가 불만 가득한 목소 리를 숨기지 않은 채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며 마스터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스터의 자리는 모두에게 공평
해야 하건만.’
특정 국가와 특정인에 대한 악감 정을 숨기지 않는 나이트 르보가 마 스터가 된다면 원탁이 얼마나 큰 혼 란에 빠지겠는가.
‘어떻게든 그 일만은 막고 싶지 만……
시스템이 그를 선택한다면, 마스 터도 그 일을 막을 길이 없다.
위긴스가 말한 대로 마스터 역시 원탁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일 뿐 이니까.
“여하튼 그 안건으로 내가 할 말 이 있네. 내 의견을 들어주시게나.”
마스터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마스터는 자신이 느낀 것과 강진 호와의 협상 내용, 그리고 그 협상 이 원탁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까 지 모두 설명을 마쳤다.
살짝 목이 칼칼한 느낌이 들어 앞에 놓인 생수를 마신 마스터가 물 병을 구기며 앞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들 생각하시는가?”
“마스터.”
나이트 르보가 턱을 괴고 있었다. 한참을 고심하는 듯하던 나이트 르
보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마스터의 의견은 총회 가 외부의 국가를 공격하지 않는 조 건으로 그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자, 이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라니?”
마스터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만큼이나 설명을 했건만, 왜 이런 말이 돌아온단 말인가.
“지원이라는 것은 대가가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스터의 의 견에는 그 대가가 빠져 있습니다.”
“대가는 충분하네. 우리는 동아시 아의 평화를 손에 넣을 수 있지.”
“마스터……
나이트 르보가 냉랭한 어조로 말 했다.
“그럼 지금 마스터께서는 한국을 지원하는 것만으로 그들이 중국와 일본 사이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네.”
나이트 르보는 더 이상 말을 하 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다른 나이트들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나 이트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눈을 맞췄다.
“조금은 의아할 수 있네. 하지만 내가 본 총회와 강진호라는 자는 충 분히……
“잠시.”
나이트 르보가 마스터의 말을 끊 었다.
“이 의제를 결정하기 전에 저는 조금 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에 대 한 표결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마스 터, 받아들여 주시기를.”
마스터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떤 의제에 대해 논의를 하는 와중에 다른 의제를 들고 나오는 것
은 격식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건 나중에……
“아니, 지금 해야 합니다. 이 문 제를 먼저 결정해야 마스터가 말씀 하신 한국에 대한 지원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 음?”
마스터가 의아한 눈으로 나이트 르보를 바라보았다.
선행되어야 하는 결정?
“자네가 상정하려는 안건이 무엇 인가?”
“간단합니다.”
스르릉.
나이트 르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 니,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무척이나 위협적인 행동이지만, 누구도 그런 나이트 르보를 제지하 지 않았다. 원탁에서 검을 뽑는다는 것은 무력의 의미가 아니다.
기사에게 있어서 검은 의지. 자신 의 모든 의지와 지위를 건다는 의미 다.
나이트 르보가 뽑아 든 검을 원 탁에 올렸다. 그러고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마스터의 탄핵에 대한 표결을 시 작하고자 합니다.”
공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